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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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애초에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천자는 낄낄거리며 다시 가장 높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유비에게 말했다.
“너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유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한 발짝 뒤에 서있던 방통이 대신 발언했다.
“폐하, 상서령 낙준이라면 그 해답을 알 것입니다.”
“뭐?”
유총은 낙준을 흘끗 보고는 다시 방통을 바라보며 흐흐 웃었다.
“옳아, 네놈이 유비의 팔략 방통이로구나. 같은 동료라고 역성을 들어줄 줄 알고 그리 말하는 것이냐? 그런데 어쩌면 좋냐, 상서령은 천자인 짐한테도 대드는 아주 성격이 파탄 난 인물인 것을.”
낙준은 짧게 숨을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통은 이어서 말했다.
“담왕을 익주 촉땅으로 보내주시죠.”
유총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저 놈이. 짐을 대체 무엇으로 보고 저런 오만방자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것이냐. 유비는 대역죄인이다. 물론 그와 직접적으로 얽힌 악연은 없지만 송경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제갈찬은 그를 뼈마디마다 오독오독 씹어 먹고 살은 잘게 다져서 회로 먹고 싶은 심정. 그를 송경에서 처단하든 합비로 인도하여 제갈찬의 속으로 처단하게 하든 죽어야 마땅한 목숨이었다. 촉으로 보내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냔 말이야. 목에 핏대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일갈하려는 찰나, 낙준이 발언권을 낚아챘다.
“폐하, 그렇게 하십시오.”
쏟아내려던 고함이 유총의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유총은 미간을 좁히며 낙준에게 말했다.
“충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군, 상서령.”
낙준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충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상서령, 짐 모르게 방통이란 녀석과 입을 맞췄나? 아니면 팔략끼리는 통하는 이상한 소통방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방통은 경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니 경도 방통의 말대로 유비를 익주로 놔주라고 하는군?”
“그것이 폐하께 이롭기 때문입니다.”
유총은 눈빛을 벼렸다.
“어째서.”
“촉왕부의 사정이 퍽 복잡하더군요. 장송을 비롯한 토족들을 크게 짓눌렀다지만 황권이 군권을 틀어쥐고 촉왕 유장의 후견인인 방희와 대립한다 하더이다.”
“그런데?”
“유비는 유장과 더불어 같은 종씨이며 한때 동맹을 맺었을 정도로 겉으로는 돈독한 사이이지요.”
유총은 낙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유비의 자질이 예사롭지 않으니 그를 촉으로 보내면 유장이 반드시 가까이 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그의 야심을 두려워하여 간언할 테지만 어리석은 유장은 유비를 믿을 것입니다. 혈혈단신으로 익주에 찾아왔으니 야심이 있다한들 무슨 대단한 일이야 저지르겠냐며. 당장은 유비를 기용하여 황권의 기를 꺾을 궁리를 하겠지요. 유비는 동맹국의 군왕이자 황실의 족척이니까요. 황권 따위의 입은 당장 다물게 할 정도의 위인이지요. 유장은 자신에게 퍽 도움이 되리라 여길 겁니다.”
방통은 저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제 속을 들여다보는 듯 그대로 천자에게 말하는 낙준이 기꺼웠다. 이것이 심심상인(心心相印)인가.
“음……”
“그러나 용은 연못에 풀어놓아도 비를 내리게 하여 금세 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영물입니다. 유비는 맨손으로 다시 촉 땅에서 기업을 닦을 것입니다. 종내는… 유장을 제거하고 스스로 촉왕이 되겠지요.”
유총은 픽 웃으며 유비의 헐벗을 꼴을 바라봤다. 그는 유비를 턱짓으로 부르고 물었다.
“어이, 정말 그럴 수 있겠나?”
유비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유총을 똑바로 바라봤다.
“물론이다.”
유비의 서늘한 시선이 그대로 전해져 유총은 목 주위가 선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건드리며 낙준에게 물었다.
“이놈이 그렇게 되어봤자 짐에게 이로울 것이 없질 않은가?”
낙준은 가볍게 웃었다.
“왜 없지요? 지금 제갈찬은 담왕부를 집어삼킬 기세입니다. 이미 남쪽은 모조리 석권했지요. 유비가 빠진 담왕부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조조가 연주를 노린다고 치고 예주, 서주는 온전히 제갈찬의 손에 들어가는 겁니다. 허면 제갈찬은 양주와 형주, 익주 북부를 비롯하여 예주와 서주를 모조리 손에 넣은 웅걸 중의 웅걸이 되고 맙니다. 제갈찬이 거기서 그치리라 생각하십니까? 어떻게든 몸집을 불리려 들 테지요. 그 다음 목표는 어디겠습니까?”
“경은 지금 그 착한 아이가 다음으로 짐을 노릴 것이라 말하는 것인가.”
낙준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착한 아이는 무슨. 천자께서는 농담으로라도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천자의 직할령은 제갈찬의 영토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제갈찬으로서는 퍽 불편할 것입니다. 속살을 천자께 온전히 내보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말이 좀 야한걸.”
“때를 가려서 농담을 하십시오.”
낙준은 한숨을 쉬며 유총을 꾸짖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호랑이도 새끼일 적은 순하고 귀엽지요. 제갈찬은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반드시 폐하를 노릴 겁니다. 당장 노리지 않더라도, 훗날 반드시 노릴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제갈찬의 눈엣가시입니다.”
유총은 진득한 침을 삼켰다.
“유비를 익주로 보내십시오. 익주로 보내 그곳의 왕 노릇을 하게 하십시오. 허면 반드시 제갈찬의 다음 과녁이 될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제갈찬의 세력을 좀먹어줄지.”
유비는 제 면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3자 취급을 하는 낙준이 놀라우면서도 웃겼다. 유총은 눈살을 찌푸리며 낙준에게 딴죽을 걸었다.
“경은 합비공을 너무 미워하는군.”
“그 넓은 땅덩이에 그 많은 병력에 그 걸출한 재사들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제갈찬은 동지가 아니라 적입니다. 천하를 두고 다투는 적이란 말입니다.”
유총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조언에 이마를 짚었다.
“그래, 유비를 보내준다고 치세. 그러나 그를 촉으로 보내려면 제갈찬, 그 녀석의 땅을 지나가야 하는데, 무슨 수로 그런단 말인가.”
“어사대부 관녕을 촉왕부에 사신으로 보내십시오. 천자께서 익주의 암염(巖鹽)을 구하신다는 명목으로. 그 대가로 장강에서 잡은 어포를 좀 챙겨서 보내시지요. 단순히 먹을 것을 교환하기 위한 사신을 보내는 것이니 제갈찬이 의뭉스럽게는 여겨도 딴죽을 걸지는 못할 겁니다. 유비를 그 사절단의 사환으로 위장시켜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혹 이를 수상히 여긴 놈이 깐깐하게 조사할 수 있으니 어사대부 관녕을 사신으로 명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정의 원로를 그리 엄하게 조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어사대부는 대사마에서 경질된 이후로 이를 만회할 욕구가 충만합니다. 본래의 기질도 괄괄하니 위엄으로 그런 시도들을 짓누를 것입니다. 그러니 어사대부 관녕이 적임입니다.”
유총은 낙준의 계책이 썩 내키지 않았다. 저 쥐새끼 같은 놈을 저자에서 참수했으면 속이 다 후련하련만. 어사대부를 촉왕부에까지 보내는 수고를 하면서 그를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그의 기질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낙준은 권하고 권했다.
“부디 잠깐의 권태로 일생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유비가 만약 촉에서 승승장구하지 못한다면 짐의 수고는 헛것이 되고 말지 않은가.”
낙준이 대답하려는 것을 유비가 낚아챘다.
“그런 쪽으로는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소.”
유총은 냉소했다.
“흥, 퍽이나.”
낙준이 유비의 역성을 들고 나섰다.
“허면 유비의 그릇이 거기까지인 것이지요. 딱히 천자께서 손해 보실 일은 없지 않습니까? 손해가 없는 장사를 왜 하지 않으려 하시지요?”
유총은 대답할 말이 변변치 않아 수염을 쓰다듬었다. 오랫동안 침묵한 후, 무어라 비답을 내놓지 않은 채로 몸을 일으켜 밀실을 빠져나갔다. 낙준은 승낙의 뜻으로 알았다. 혹여 눈치 빠른 제갈찬의 먹물들이 사전에 손을 써놓으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방통은 낙준을 재촉했다.
“빨리 놔주시지요.”
낙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오만하기 짝이 없군.”
“피차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무용한 언어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낙준은 그리 말하고 밀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사환을 바라봤다.
“유비를 풀어주어라. 칙명이시다.”
사환은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칙명이라는 단서를 붙이자 재빠른 움직임으로 걸쇠를 풀었다. 낙준은 죄수 셋에게 의복을 내주고 계획을 설명했다. 암염과 어포를 교환하는 사절의 일원으로 촉에 보내겠다고. 귀가 밝은 방통은 간단한 설명에도 얼른 알아들었다. 낙준은 밤중에 어사대부 관녕을 청해 자초지종을 알렸다. 관녕은 제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준 낙준에게 감사를 표하고 즉시 채비를 서둘렀다. 궁중 곳간의 어포를 죄다 털어 달구지에 싣고, 누구의 환송도 받지 않은 채 관녕의 사절단은 송경의 서문을 통과했다. 숨을 한번 돌리고 다시 상서령의 집무실로 복귀하는 낙준에게 사환이 다가와 알렸다.
“상서령, 대장군부 좨주 제갈량이 접견을 청합니다.”
낙준은 픽 웃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약삭빠르고 비상한 놈 같으니. 벌써 냄새를 맡았나.
“아닌 밤중에 웬 접견이란 말인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찾아오라고 하게.”
“급한 용무라며 가급적 바로 뵙고 싶다고……”
사환이 말을 길게 끌자 낙준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축했다.
“일개 좨주 따위가 건방지구나! 어림없다고 해라!”
낙준은 부러 소매를 휙휙 저으며 집무실로 돌아갔다.
제갈량은 사환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미 모든 계산을 마친 뒤였다. 제갈량은 동행한 부관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너는 서둘러 황상의 직할지를 횡단하여 형주자사(노숙)께로 가라! 어떤 구실도 좋으니 반드시 송경에서 익주로 가는 모든 교류를 차단하라고 해! 강릉에도 사자를 보내 같은 내용을 전달하라!”
서릿발 같은 명령에 부관도 바짝 얼어 크게 대답했다.
“존명!”
제갈량은 궁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부관으로부터 보고가 당도했다. 송경에서 심한 강도가 발생했는데, 그를 쫓고 있으니 어떠한 사람도 해가 뜨기 전까지 통과시킬 수 없다는 구실이었다. 제갈량은 탁자를 쾅 내리쳤다.
“여우같은 자식……!”
결국 제갈량의 부관은 송경의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우회하여 양양으로 향했다. 제갈량은 해가 뜨자마자 송경의 성문에서 대기하다가, 열리자마자 궁성에 들어가 상서령 낙준에게 접견을 요청했다. 낙준은 조반을 아직 들지 않았다며 제갈량에게도 여유롭게 조반을 들고 다시 오라고 답변했다.
“상서령께서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리겠다.”
제갈량은 집무실 앞에서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선 채로 기다렸다. 먹은 음식물이 위장을 통과하기에도 족한 시간이 돼서야 낙준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군, 좨주. 유훈을 수장시킨 뒤로 처음이지 아마?”
제갈량은 꾸벅 절을 올렸다.
“상서령을 뵙습니다.”
“먼 합비에서 이곳까지 어인 일로?”
제갈량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비를 내주십시오.”
“뭐라?”
“유비는 반드시 이곳에 있을 겁니다. 유비를 내주십시오.”
낙준은 얼굴을 찌푸렸다.
“모를 소리를 하는군. 이보게, 여기는 담왕부가 아니라 천자의 궁중일세.”
제갈량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
“자네야말로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군. 되지도 않는 강짜는 그만 부리시게.”
제갈량은 정황상 반드시 유비가 이곳에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을 떳떳하게 논변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유비가 반장을 찾아간 것도 불명이거니와 유비가 송경으로 압송되었다는 것은 더더욱 불명이었다. 낙준을 더 붙잡고 늘어져봤자 도리어 결례로 여겨져 꾸지람만 더 살 뿐이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낙준의 앞에 근거 없는 외침은 공허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당당함이 부럽군요, 상서령.”
제갈량은 그 말을 끝으로 낙준의 앞을 떠났다. 낙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너희가 우리를 위하는 척 한다지만 정녕 마음으로 위하는 탓인가. 다만 잡아먹기 여러모로 불편하니까 남겨두는 것이지. 이해와 필요로 인하여 우리를 위하는 주제에 흡사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짓는구나. 위선자. 우리도 우리 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 작품 후기 ============================
오전 내내 수정을 마쳤습니다.
유비를 그만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러 독자분들이 말씀해주셨지만,
유비는 작중 주요한 대적자이기 때문에 제거하게 되면 구상한 스토리를 아예 틀어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특히 kunhe님이 많은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셨는데, 느끼신 실망과 더불어 품을 많이 들여 해주신 조언에 대해 사과드리고, 감사드립니다.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전개는 아마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재주나마 최선을 다하여 설득력 있고 다소나마 재미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아직 미치지 못한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더욱 깊이 고민하여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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