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73
0277 / 0284 ———————————————-
23.
양주 합비군 합비현, 합비공부.
내 앞에 지독히 미운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머리는 풀어헤치고 헤진 베옷을 입었으며 표정은 침통했다. 원요와 원윤. 나의 처남과 처숙부. 한때 구강공 원술의 후계를 놓고 다투었던 경쟁자. 비극적 조우에 나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들을 높은 곳에서 바라봤다.
“너희의 죄를 논해봤자 입만 아프다. 너희 더러운 입으로 논변하는 것도 듣기 싫다.”
나는 그들을 냉대했다. 좌우에 도열한 백관들도 이따금 혀만 끌끌 걷어찰 뿐이었다. 저들은 시영의 남동생이고 숙부였다. 그러한 까닭으로 시영에게 그들을 접견하고 가당한 처분에 대해 발언하도록 했으나 시영은 거부했다.
“저는 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합비공과도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엄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합비공께서 처분을 내려주세요. 저는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시영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구제하라 읍소하지도 않았고, 당장 참수하여 효시하라 역정을 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온이를 보러 교의 방으로 향했다.
결국 저들의 목숨은 사내들이 결정해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발언을 자제했다. 량이가 먼저 말했다.
“죽을죄입니다. 죽이십시오.”
명료한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에 오류는 없었다. 오래 원가를 섬겨왔던 염상이 이어 말했다.
“남양 원씨의 명예에 먹칠을 한 자들입니다. 죽이십시오.”
장사 주환도 그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죽이십시오.”
북부사마 서성.
“동정의 여지가 없습니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각자 다른 목소리가 그 말을 한 번씩 더할 때마다 원요와 원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우선 그들을 물리치고, 등애를 불렀다. 나는 등애를 대사마부의 하급관리인 시랑(侍郞)으로 삼아 가까이 두었다.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러 임무를 군더더기 없이 처리해왔다. 나의 신임이 퍽 깊었다.
“원윤과 원요를 백관이 주살할 것을 주장한다.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등애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마땅히 죽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마땅함의 범주를 벗어나는 데서 군주의 걸출함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나는 턱을 괴고 그의 말을 들었다.
“역적을 죽이는 까닭은 다른 이들이 감히 역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것이 첫째요, 역적의 보존한 목숨이 군주에게 해악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둘째입니다.”
“그러하다.”
등애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러나 누대의 군주들이 역적질을 한 이들을 모두 잔혹하게 죽여왔습니다. 역적질이 죽을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원윤과 원요를 죽인다고 해서 특별히 이로울 것은 없습니다.”
나는 침묵하면서 등애의 말을 계속 들었다.
“또한 원윤과 원요를 살려둔다고 하여 그들을 내세워 반역을 일으킬 자는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값은 없느니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옳은 말이었다.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천하가 합비공을 욕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 않고 다만 유폐한다면 적지 않은 이들이 합비공의 유덕함을 칭송할 것입니다.”
“음……”
“다만 그들은 원씨를 더럽힌 자들인 바, 그들에게 다른 성을 하사하고 아예 절연하시면 가문의 명예를 더럽힐 일을 막게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등애를 돌려보냈다.
그의 말을 따랐다. 등애가 앞서 제시했던 구실은 그야말로 구실에 불과했다. 시영에게 이 이상의 피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원윤과 원요에게서 원씨를 빼앗고 대신 흔하디흔한 하씨(何氏)를 내렸다. 동탁이 발호하기 전 소잡이 출신으로 대장군이 되었던 하진(何進)의 성이었다. 하윤과 하요가 된 그들을 저 멀리 형주의 남쪽으로 정배(定配)했다. 나에 의해 복권된 남군왕 유기는 유표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으나, 더 이상 원씨가 아닌 그들에게 봉사(奉祀)의 권리는 없었다.
“형님, 어째서 죽이지 않으십니까?”
량이가 가볍게 항의했다. 나는 동문서답했다.
“모란이는 잘 지내느냐?”
“…네.”
량이는 더 묻지 않고 물러났다. 그는 내 앞에서 물러나면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요즘 시랑 등애를 과히 총애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시시하게 웃으면서 일축했다.
“너보다는 덜 예뻐한다.”
량이도 픽 웃고 내 앞에서 아주 물러났다.
며칠 후, 태위 여포로부터 담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특히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은 조자룡이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그를 소환하고 얼싸안았다. 그는 상당히 어색해하는 표정이었다.
“제후의 체면이 있지요.”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퉁을 놨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 공자님도 친구가 멀리서 오면 펄쩍펄쩍 뛰셨다는데 제후가 뭐라고.”
“여전하시군요.”
그제야 조자룡도 편히 웃었다. 나는 그를 내당으로 이끌어 독대했다.
“마음 같아서는 삼군을 맡기고 싶지만 원래 항장(降將)을 우대하면 오래된 이들이 질시를 하는 법입니다. 형주 유씨를 섬기던 황한승(황충)도 이제 교위가 되었으니 조 장군도 해량을 해주십시오.”
조자룡은 이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것이야 당연합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비공께 창을 겨눴던 적장이었습니다. 저를 절대로 대우하지 마십시오.”
“훗날 공훈을 세우거든 반드시 그에 합당한 봉작을 드리지요.”
“봉작은 봉작일 뿐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조운은 잡호장군 중 하나인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었는데, 비록 작위는 낮았으나 이는 불세출의 명장인 마원이 역임한 벼슬로 상징성만큼은 어느 벼슬에도 뒤지지 않았다.
담왕부를 정벌하기 위해 나로서도 무리가 되는 병력을 동원한 터라 급히 군을 해산시켰다. 이로써 서주 전역과 유비가 점유하고 있던 예주 전역이 새로이 합비공의 영지로 편입되었다. 나는 태위 여포에게 식읍 육백 호를 내리고 그 이하의 공신들에게도 합당한 작록을 내렸다. 고순을 예주자사로 삼고, 본디 서주의 명사였던 진등을 서주자사로 삼았다. 이제 북방으로는 조왕 조조와 경계가 맞닿게 되었고, 서북방으로는 다 허물어져가는 은왕 원상, 서방으로는 촉왕 유장과 닿게 되었다.
유비의 담왕부가 무너지면서 천하는 유주를 차지한 오환왕 답돈, 연주·기주·청주·유주 일부·병주 일부를 차지한 조왕 조조, 사례교위부·병주 일부를 차지한 은왕 원상, 서량을 차지한 량왕 마등, 익주를 차지한 촉왕 유장, 형주 북부·예주 서부를 차지한 천자 유총, 그리고 양주·형주·서주·예주 동부·익주 북부를 차지한 나 합비공 제갈찬의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영토의 크기로 치자면 나를 따라올 제후가 없었으나 물산이 풍부하고 예로부터 개발이 이루어진 조조가 상당히 위협적이었고, 험준한 산세를 낀 익주의 촉왕 유장도 난적이었다. 그러나 천하의 판세는 상당부분 내 쪽으로 기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기주 업도, 조왕부.
조조는 관우의 귀순을 뛸 듯이 기뻐했다. 게다가 삼만의 정병이 넝쿨째 들어오니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관우가 업도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조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그를 맞이했다. 쓸데없이 무희가 옆에서 춤을 추고 악사가 현을 뜯었다. 조조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이 관우의 손을 붙잡았다.
“운장, 그대가 어찌나 보고 싶던지.”
관우도 조왕부의 객식구가 된 마당에 뻣뻣하게 굴 수만은 없었다. 그도 한 걸음 물러나 예를 갖췄다.
“조왕 전하를 뵙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비록 담왕 유현덕과는 앙숙이지만 과인은 그를 미워하지만은 않소. 그 또한 걸물이지. 비록 천하의 패권을 다투느라 서로 사사로운 꾀로 속고 속였지만 사내끼리 술 한 잔 앞에 놓고서는 좋은 벗이 되지 않겠는가?”
조조의 말에 미축이 손을 비비며 비위를 맞췄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미축에게는 시선 한번 던져주지 않았다. 시종 관우에게만 웃는 낯이었다.
“비록 객장의 신분이지만 천자께 주청하여 그대의 위신에 맞는 작록을 내리도록 하겠소.”
“배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관우는 말뿐인 인사치레는 하지 않았다. 그는 조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밥만 축내지는 않겠습니다. 밥값은 철저히 치르겠습니다.”
오호라, 조조는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제 직할의 삼만 병력은 담왕 전하의 근왕병인 바, 편제를 쪼개거나 지휘관을 교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오롯이 제게 맡겨주십시오.”
조조도 역린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이 조맹덕의 이름을 걸고 약조하리다.”
허면…… 조조는 곧장 관우를 써먹을 요량이었다. 연주를 거저 탈환하다시피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대의 병력으로 오환을 격퇴해주시겠소? 너무나도 사나운지라 여태 토평을 못했다오.”
관우는 해놓은 말이 있는 탓으로 곧장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동안 두 분 왕비를 편히 모시도록 해주십시오.”
조조는 뒷짐을 지면서 당당하게 웃었다.
“이미 나이 먹은 후궁년들을 죄다 치워버리고 그곳에 담왕의 비들을 모시도록 조치를 해놓았소. 또한 미축을 황문시랑(黃門侍郎)으로 삼아 두 분을 모시도록 할 것이오.”
“허면, 소장도 안심입니다. 즉시 떠나겠습니다.”
조조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술 한 잔 하시잖고?”
“북방의 환란이 급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술은 다녀와서 들겠습니다.”
조조는 씩 웃었다.
“든든하군.”
조조는 즉시 천자에게 주청을 올려 관우를 진북대장군에 봉하고 그의 직속 삼만 병력을 북진시켜 오환을 정벌하게 했다. 조군과 맹렬히 싸우던 오환왕 답돈도 관우의 위명을 들은지라, 적극적인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리고 관망세로 전환했다. 조조는 관우를 업도의 북문까지 전송하고 정욱을 바라봤다.
“운장이 전장에 도착하는 대로 오환과의 전선에 있던 병력을 후방으로 차출하도록 하라.”
정욱은 몸을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피로가 심할 터이니 그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요.”
조조는 눈을 치뜨며 정욱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휴식? 변방의 오랑캐 하나 상대로 변변찮은 전과를 올린 놈들에게 휴식이 가당키나 한단 말인가.”
정욱은 굽혔던 허리를 천천히 일으켰다.
“허면… 또 다른 전쟁을 벌이시겠다는 말씀이시온지.”
“그렇네.”
“병주를 노리시는군요.”
조조는 웃음으로 긍정했다.
“공근(주유의 字)은 운장의 귀순까지 예측을 했더군. 그 녀석이 그리하라고 했어. 가납할 만한 의견일세.”
“그렇습니다. 지금 은왕부는 요행히 전란이 지나고도 버티고 있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았을 것입니다.”
조조는 뒷짐을 지고 허리를 바깥쪽으로 굽혔다.
“그놈들은 너무 질기게 버텼어. 사라졌어도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자들인데 말이야. 천하가 원씨를 원하지 않아. 천하를 대신하여 이 조맹덕이 놈들을 역사의 뒤편으로 쫓아내버릴 걸세.”
“옳으신 분부입니다.”
“조인을 주장으로 삼고 우금과 악진을 부장으로 하여 병력 삼만을 내도록 하게. 안량이 용맹하다고는 하지만 거듭된 전쟁으로 퍽 지쳤을 것이다. 병주는 손쉽게 넘어올 거야.”
그는 즉시 뱉은 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조인을 평서대장군으로 삼아 삼만의 병력을 병주로 보냈다. 병주는 이미 초토화되어있었다. 한동안 전란의 중심에 있던 땅이었다. 하북상장 안량은 결사항전을 다짐했지만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했다. 북방의 대지가 다시 말발굽으로 진동했다.
============================ 작품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