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81
유장은 유비를 좌장군으로 삼고, 방통을 군사장군으로 삼아 유비를 돕게 했다. 서황은 유비 막하의 사마(司馬)로 삼았다. 유비와 방통은 재빠르게 촉왕부의 구도를 이해했다. 촉왕 유장은 장인인 방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그런 대로 권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황권은 합비공의 침입을 총지휘하여 군부의 신임을 얻어냈다. 촉왕 유장과 군부의 황권이 촉의 양대 권력 축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한 군데 있었다.
“상존……?”
방희와 황권이야 촉왕부의 바깥에서도 나름대로 명성을 떨치는 명사였다. 그러나 상존은 유비에게 생소했다. 그가 역임한 벼슬도 영 시답지 않았다. 백수도독이라니. 인물평도 그저 그랬다. 성정이 무르고 여리며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인물이라고.
“그런데 이런 놈팡이가 황권 다음으로 군부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유비는 의문을 표하면서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곧바로 상존과의 면담을 추진했다. 군사장군 방통이 은밀히 상존의 측근인 사마의와 접촉했다. 방통은 사마의를 만난 순간부터 상존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는 사마의가 궁금해졌다. 방통은 한참 사마의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마의 역시 방통에게서 강한 인력을 느꼈다. 둘은 밤새도록 술 없이 말만 나눴다.
방통은 유비에게 돌아와 아뢨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 같지 않은 결기가 들어있었다.
“상존이 왜 상존인지 알았습니다.”
유비는 방통의 말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렇소? 상존이 왜 상존이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였습니다.”
방통은 사마의를 유비의 면전에 대령했다. 유비는 젊은 사마의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유비는 검은 연못 같은 사마의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도 알겠다.’
유비는 천천히 사마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사마의 역시 유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자다.’
사마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검으면서 희고, 선하면서 악한 자……’
유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사마의의 손을 거머쥐었다. 유비의 손에 절로 악력이 들어갔다.
“유현덕이오.”
사마의는 유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화답했다.
“사마의, 자는 중달입니다.”
촉이 기반으로 삼은 익주는 풍족한 땅이었다. 험준한 산지에 둘러싸인 평야지대는 기름져서 농사가 잘 되었고, 소금이 족해 먹고 남은 것을 팔아 두둑한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그 서쪽으로는 척박한지라 그 근방의 저족이나 강족이 익주의 물산을 노리고 자주 침략했다.
그들은 터전이 되는 영토 없이 풀 따라 물 따라 유랑하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기실 병법의 교묘함이나 책략의 기이함은 갖추지 못하였으나 기질이 억세고 사나워 화인들을 곧잘 핍박했다.
이 무렵, 강족의 두령 하나가 일만의 사내를 거느리고 강토를 침범했다. 이에 촉왕 유장은 황권의 측근인 중랑장 오의(吳懿)에게 병력을 들려 토벌토록 했지만, 이내 패주하고 말았다.
오의의 패주로 강족의 기세는 더욱 들불처럼 사나워졌다. 방희는 오의가 패주한 죄를 엄히 물어, 그의 벼슬을 깎았다. 좌장군 유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출진을 자처했다.
이에 방희가 주저했다.
“좌장군은 아직 촉의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않으시므로……”
기실 방희도 유비가 유장의 신임을 받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유장이 제 종중을 크게 발탁하는 것은 황권을 견제하려는 뜻도 있지만, 지독한 시어미처럼 왕좌에 착 달라붙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방희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오고자 하는 의도 역시 있었다. 그러니까 유장은 방희도 황권도 아닌 촉의 왕족인 유씨의 힘을 키워내고 싶은 터였다. 그 뜻이야 옳았지만 뜻을 담을 그릇이 작았으므로 유장의 선택은 그다지 온당하지 않았다.
방희의 만류에 유장은 우선 뜻을 꺾고, 방희의 측근이자 촉에서 명장으로 대우받는 양회에게 오천의 병력을 맡겼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양회는 오천의 정병으로도 강족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들불에 마른 섶나무를 더하듯 강족의 사기가 들끓어 성도의 서쪽 사백 리까지 강족의 창칼이 미쳤다.
황권도, 방희도 실패한지라 이제 유비의 출진을 막을 자가 없었다. 유장은 기다렸다는 듯 좌장군 유비와 군사장군 방통, 사마 서황에게 병력 삼천을 맡겨 강을 격퇴하도록 했다.
중원에서 숱한 군벌과 아귀다툼을 밥 먹듯이 벌였던 유비에게 사납기만 하고 교묘함은 없는 이민족은 어린 애 손목 비틀 듯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방통이 강족을 도발하여 마른 갈대밭으로 유인하고, 기다리고 있던 유비가 불을 놓아 그들을 모조리 태워 죽였으며, 도주하려는 두령의 앞을 서황이 가로막고 눈을 부릅뜨며 그의 수급을 낭중물처럼 간단히 취했다.
“도적의 수급을 촉왕께 바치나이다.”
병력의 손실은 거의 없이 유비가 유장의 앞에 적장의 수급을 대령했다. 얼떨떨한 촉왕부 제신의 시선을, 유비는 옅은 웃음을 띤 채로 만끽했다. 뭘 이 정도 갖고 놀라시나.
유비의 종횡무진은 그치지 않았다. 사마의는 신왕의 칼끝이 성도까지 미치는 것을 저지했지만 백수관, 가맹관의 낙성은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촉으로 들어오는 입과 같은 가맹관의 상실은 촉으로서 뼈아팠다. 신왕은 가맹관에 부도독 문빙을 앉혀놓았는데, 문빙은 형주에서도 손꼽히는 맹장인지라 촉에서는 감히 수복의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비는 스스로 가맹관을 수복하겠다고 나섰다. 방희는 제 아무리 유비라고 하여도 가맹관을 떨어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벼룩이 높이 뛰어봤다고 아예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방희는 유비의 출진 요청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 멋모르고 날뛰는 기세가 스스로의 패착으로 꺾이기를 바라면서. 유장은 이를 염려했다.
“자신 있소……?”
“안 되면 제 목으로 죗값을 치르지요.”
“허어……”
이윽고 유비가 허락을 따내고 투구를 쓰며 보무당당하게 가맹관으로 갈 채비를 하는데, 사마의가 나섰다.
“소생도 따르겠습니다.”
두툼한 상존의 턱살이 살짝 떨렸다.
“굳이 자네가……?”
사마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지난날 신왕을 맞아 수성은 해봤는데 저 철벽같은 가맹관을 치는 것은 이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상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몸조심 하시게.”
사마의는 상존의 짧은 당부에서도 온정을 느꼈다.
“제가 없으면 누가 장군을 모시겠습니까.”
상존은 실없이 웃었다.
“그러니까.”
“다녀오지요.”
사마의가 유비의 진에 참가했다.
그 말고도 한 명의 재사가 유비에게 흥미를 느꼈다. 법정은 황권에게 은밀히 말했다.
“이번 가맹관 공략에 저를 참군으로 삼아주십시오.”
황권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나마나 질 싸움에 뭐 하러 튀기는 똥물을 맞으러 가나?”
“이기든 지든 어떻든 좋은 구경거리는 되겠지요. 참군에게 패전의 죄를 묻는 법은 없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황권은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자네도 아니고. 다녀오시게.”
“예.”
법정 역시 유비의 진에 참가했다. 방통, 사마의, 법정.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는 세 재사가 이번만큼은 유비와 한가지로 움직였다. 유비는 뜻밖의 내방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못된 인간들 같으니! 유현덕이 어떻게 망하는고, 구경을 하려고 주검의 까마귀 떼처럼 날아드는군!”
넉살 좋은 환영인사에 법정이 마주보고 웃었다.
“이 법정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시면 그만인 것을요.”
“자네의 책략이 나를 좀 도와주면 자네 코를 아주 짓뭉개버리기 수월할 텐데?”
법정은 픽 웃었다.
“바랄 걸 바라십시오.”
“쯧쯧, 매정한 사람. 중달은 안 그러겠지? 저 법효직(법정의 字)처럼 아주 못되게 굴지는 않겠지?”
유비의 물음에 사마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그저 견학 차원으로……”
“에잇! 견학은 무슨 견학! 그냥 효직처럼 구경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느니만 못하는군! 이래서 먹물들이란!”
법정은 팔짱을 끼고 웃음을 흘렸다.
“한 가지 도움을 드리자면, 백수관에 주둔한 부도독 유반이 와병 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비는 혀를 탁 찼다.
“내가 움직이기로 결심한 게 바로 그 정보 때문일세. 세상 저만 귀가 뚫려있는 줄 아나봐?”
“하기야, 그 큰 귀로 제가 듣는 소리를 못 들으실 리가 없지요!”
“얼씨구! 이젠 인신공격까지!”
유비는 무어라 꿍얼꿍얼 뇌까리며 가맹관으로 향했다.
유비가 가맹관으로 향하는 사이, 방희는 유장을 접견했다. 그의 표정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전하, 유현덕에게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정곡을 찔린 유장은 도리어 펄쩍 뛰었다.
“장인, 그 무슨 말씀이시오?”
“야심이 만만한 자입니다. 도리어 전하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렵습니다.”
“장인은 지금 과인이 그 정도 사리분별도 못하는 위인이라 생각하시는 게요!”
양순한 성품의 유장이 대뜸 소리를 지르자 방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번 불붙은 유장의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과인을 자리를 유비가 위협할까 두렵다? 미안하지만 장인, 과인은 그 말이 달리 들리오. 기실 유비가 장인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운 것이 아닌지!”
“저, 전하! 어찌 그런!”
“흥, 과인이 지금 촉왕이랍시고 면류관을 쓰고 있지만 모든 정사가 장인을 통해 과인의 귀로 들어오지 않소? 유비가 권력의 부스러기를 좀 쥔다고 한들 어차피 과인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소. 허나 장인은 좀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