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85
나는 조례에 출석하지 못하고 반차를 냈다. 현대적 개념으로 말하자니 반차지, 정청령 량이에게 나 조례에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말하고 아예 드러누웠다.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저 얌체는 내막을 다 알면서도 굳이 캐물었다.
“간밤에 일이 있으려면 하나밖에 더 있겠냐. 더 묻지 마. 다친다.”
“으흥, 무슨 일일까?”
량이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를 골렸다. 가서 뒤통수라도 세게 후려주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유장은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법정을 내치든, 내치지 않든 왕수에게 촉왕의 뜻을 밝혀 신왕 제갈찬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본디 황권의 군부와 방희의 왕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문제였다. 군부는 법정을 내줄 수 없으며 응분의 책임을 유비가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왕당은 법정을 내주어 화친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틈바구니에서 유비는 법정을 내줄 필요도 없고, 자신이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강변했다. 기실 그의 논변이 가장 이치에 닿았으나 정파적 이익에 의해 힘을 잃었다.
그러던 상황이 황권과 방희의 회담 이후 아예 뒤집어졌다. 방희가 유비를 견제하고 나섰다.
“전하, 가맹관 공략을 제의하고 결행한 것은 좌장군 유비입니다. 신왕이 즉위하고 아국과 겨우 말의 물꼬를 트자마자 전쟁을 벌이자 주창했습니다. 이는 온당하지 않은 판단, 좌장군 유비가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유비가 한숨을 탁 쉬며 같은 논리로 항변하려고 나서자, 방희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좌장군을 파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면 방파서는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오?”
방희는 몸을 틀어 유비를 바라봤다.
“좌장군, 그대는 법정 역시 파면할 까닭이 없으며 본인 역시 파면당할 까닭이 없다고 말했소. 맞소?”
유비는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말은 존대였지만 날이 곤두서있었다. 방희는 황권을 흘끗 보고 말을 이었다.
“또한 신왕 제갈찬의 말에 굴종할 필요도 없다 하였소. 맞소?”
“물론입니다.”
방희는 옷깃을 탁 펼치며 말했다.
“허면, 저 동방 전선에 도사리고 있는 익남도독 장료의 대군은 어찌해야 하오?”
유비의 눈가에 찌르르 전류가 흘렀다.
“지금 신과 촉의 관계가 이토록 틀어진 것은 순전히 그대의 탓이오, 좌장군. 촉은 신으로부터 오히려 전화의 상처를 입었소. 신이 우리에게 거드름을 피울 까닭이 없었소이다. 헌데 그대가 이곳 촉왕부로 흘러들어온 이후로 기류가 완전히 변했소. 신왕 제갈찬은 우리를 핍박하고도 양국의 화친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가 촉왕부에 있다고 강변하오. 그 뻔뻔한 꼬락서니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제갈찬의 불구대천지수인 그대가 바로 촉왕부의 벼슬을 받고 녹을 먹기 때문이오. 이것은 명백히 그대가 촉왕 전하와 촉왕부에 진 빚이오. 이것을 부정하겠소?”
유비는 분을 삭이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부정하지 않지요.”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가맹관 공략의 탓이 아니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하지. 제갈찬이 이토록 촉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모두 다,”
방희는 검지를 들어 유비의 명치를 겨눴다.
“그대 때문이오, 유현덕.”
유비는 험악한 표정으로 방희를 노려보기만 했다. 방희는 그 눈빛에 짓눌렸지만 이미 꺼낸 말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대를 발탁한 것은 촉왕 전하이시오. 이러한 고난을 감수하실 각오를 하고 발탁하셨을 터.”
방희는 유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맞지요?”
유장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방희는 다시 몸을 틀어 유비를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실각할 까닭도 없지. 그러나 촉왕 전하께서 내려주신 은총과 그대가 지니고 있는 원죄를 갚아야 하지는 않겠소?”
시종 험악한 표정을 짓던 유비는 일거에 표정을 탁 누그러뜨리며 되물었다.
“그 은총과 원죄를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신의 익남도독 장료가 대군을 이끌고 동방에 진을 치고 있소이다.”
방희는 씩 웃었다.
“그들을 토벌하시오.”
그의 말에 군사장군 방통이 항변했다.
“방파서, 장료는 단지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서 동병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우리를 칠 만한 의지도, 여력도 없습니다. 구태여 우리가 유리한 지형을 박차고 나갈 까닭이 없습니다!”
지체가 한참 낮은 방통의 주장은 방희가 직접 상대하지 않았다. 군부의 오의가 나서서 공박했다.
“그들은 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오! 그들의 침노에 대비하여 항시 방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되오. 그러자면 무수한 전비가 소모되는 바, 차라리 먼저 나아가 적의 의표를 찌르는 편이 옳소이다.”
“그것이 대체 무슨……!”
어차피 성문을 걸어 잠그면 적의 침입에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다. 오의의 말은 궤변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이미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방희와 황권이 짜고 자신을 찜 쪄 먹으려고 하는 상황을. 방통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유비가 제지했다.
“좋습니다. 소장 유현덕, 익남도독 장료의 진을 파훼하겠습니다.”
방통이 만류의 눈빛을 유비에게 보냈지만 무소용이었다. 황권은 유비의 말을 덥석 확정지었다. 이대로 무르기 없기, 황권은 곧바로 도장을 꽝 찍어버렸다.
“좋소. 좌장군께서 나서준다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릴 것입니다.”
방희는 유비가 뭐라 손쓸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군의 편제는 호군 황권이 결정하여 촉왕 전하께 품신하도록 하시오.”
쿵짝.
“예, 방파서.”
유비는 어느새 예의 물렁한 인상으로 바꾸어 황권에게 익살맞은 목소리를 건넸다.
“최소 이만은 주셔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에누리는 사양하겠어요.”
황권은 우호적이지 않은 표정으로 흥,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 괴물의 아가리로 발을 내딛는 유비가 가소로울 뿐이었다. 제 잘난 맛에 취해 죽는 줄도 모르는 놈!
유장은 왕수를 소환하여 법정을 파면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것으로 하여 신이 촉과의 화친을 저버리겠다면 기꺼이 전쟁이 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선택은 촉왕께 달린 일이었으니, 그대로 전하지요.”
왕수는 유장의 탑전에서 물러났다.
왕수는 합비로 바로 귀환하지 않았다. 그는 익주 전선에 대기하고 있던 익남도독 장료의 진으로 찾아갔다.
“촉왕이 법정을 파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허면, 모든 책략이 무위로 돌아간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기류를 느꼈을 때 도리어 호재입니다.”
장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재라니?”
“성도를 떠나면서 가능한 시야를 넓혀 탐색을 해봤는데, 대장간에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가 갑자기 요란하게 나고 정렬한 사졸들이 분주히 오가더군요.”
장료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우리를 기만하기 위한 술책이 아니겠습니까?”
왕수는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전쟁의 의지를 드러내어 그들이 얻을 바가 없습니다. 또한 제 이익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방희의 왕당이 법정을 파면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합의한 것은 황권의 군부와 어느 정도 짬짜미가 성사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장료는 왕수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방희와 황권이 노리는 공동의 목표가 성취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곧, 유비를 곤란한 지경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방희와 유비가 같은 왕당이라고는 하지만 방희를 따로 만나 얘기를 해보니 극도로 그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생각이지요. 황권이 법정의 파면을 모면하는 대신, 유비를 제거하기 위해 의기투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장료는 왕수의 말에 공감하며 진일보한 답변을 요구했다.
“유비를 곤란한 지경으로 내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유비로 하여금 장 도독(장료)의 병력을 치도록 하는 것일 테지요.”
장료는 호방하게 웃었다.
“그 귀 큰 놈이 제 발로 나를 치러 온다?”
“그렇습니다. 유비가 만일 도독의 손에 패한다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니 그들로서는 더없이 좋을 것이요, 유비가 용케 도독을 무찌르고 동방전선을 안정시킨다면 촉왕부의 위신이 서는 일이니 그 또한 나쁘지 않지요. 물론 그들은 유비가 이기지 못하도록 술책을 쓸 것입니다.”
“그런 술책이 없어도 유비 따위가 이 장문원을 꺾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데 그 술책이란?”
왕수는 얌전히 웃었다.
호군 황권은 유비를 주장으로 한 장료 토벌군의 편제를 밝혔다. 부장은 오의와 양회로 삼도록 했다. 법정과 사마의는 편제에서 제외했다. 오의와 양회는 군부의 숙장들이니 유비와는 궁합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의가 강족 토벌에 나서 패주한 이후, 유비가 나서서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오의는 묘한 열패감에 사로잡혀 유비를 시기하고 있었다. 군사장군 방통과 서황은 유비와 한 몸 같은 존재이니 배제하지는 않았다.
총 병력은 삼만. 적은 병력은 아니지만 장료의 병력보다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황권은 장료가 농성하지 않고 반드시 요격할 것이라며 적절한 수효라고 말했다.
유비도 이에 따랐다. 그에게 유리한 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호군 황권에게 편제를 일임했으니 그가 따지고 들 계제가 아니었다. 유비 역시 자신을 전장으로 내몰 때부터 이러한 일이 있으리란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황권은 오의와 양회를 불러 당부했다.
“그대들은 영민한 자들이니 내 굳이 밝히지 않아도 그대들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그 역할이란 유비의 순한 양이 아니라 거친 멧돼지가 되어 유비의 병법에 어깃장을 놓으며 그가 승리할 공산을 깎고 깎는 것이었다. 만일 여차하여 유비가 승기를 잡게 된다면,
“죽이시오.”
황권은 오의와 양회의 어깨를 붙잡고 엄히 명했다. 그들은 공수하며 명을 받들었다.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