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87
“중앙에서 술만 푸니 느는 건 살이쥬.”
“이곳도 한동안은 한가해서 나 또한 술만 늘었소. 후장군도 오랜만이군. 많이 자랐어.”
장료는 무럭무럭 크는 조카를 보는 숙부의 마음으로 육의에게 인사를 건넸다. 허저가 육의의 대답을 가로챘다.
“헹, 술도 못 마시는디 많이 자라기는 멀 많이 자라유. 아직 철부지예유.”
육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장료는 가볍게 웃으면서 허저에게 말했다.
“좌장군은 다 커서도 옷을 다 벗고 춤을 신명나게 추지 않았소? 술 못 마시는 것쯤이야.”
그 말에 허저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그 얘기가 왜, 왜 나와유!”
육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옷을 벗고 춤을 췄습니까?”
“아, 후장군은 모르는 일인가? 그게 황건 잔당을 토벌할 때의 얘긴데……”
허저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도독!”
허저가 장료의 진에 합류했을 즈음, 유비는 오의와 양회를 부장으로 거느리고 성도를 나섰다. 오의와 양회는 유비를 존대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적군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일에 어깃장을 놓았다.
“이곳에 막사를 치고 쉬다 간다.”
유비가 전군에 명령을 하달했지만, 오의와 양회의 병력은 십 리는 더 진군을 한 뒤에 멈췄다. 밥을 지으라 명령하면 군불 떼는 시늉만 하고, 막사를 걷고 진군을 명하면 그제야 기지개를 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중한 성품의 서황마저도 그들의 무례에 거품을 물 정도였다.
“주공! 이대로 놈들을 묵과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대로라면 장료를 만나서도 제대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서황이 분개했지만 유비는 도리어 천하태평이었다.
“허허, 공명(公明, 서황의 字)은 어찌 그리도 성정이 급한가. 못된 아이가 생떼를 쓰는 정돈데.”
“주공, 도저히 용납할 수준이 아닙니다.”
유비는 싱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쓸데없이 화를 내면 자기 수명만 깎인다니까. 여기 와서 차나 한 잔 들어.”
서황은 답답하여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방통도 얌전히 유비의 옆에 앉아 차만 홀짝였다.
유비의 병마는 그렇지 않아도 느린 속도로 진군하는 데다가 오의와 양회가 도와주지 않는 탓으로 예상보다 상당히 지체되었다. 이미 장료는 목책을 이중으로 세우고 유비를 맞이할 채비를 마친 뒤였다. 그는 자신이 중군을 맡고 호장 허저로 하여금 선봉을 맡게 했다. 부도독이자 자신의 오랜 심복이었던 학맹에게는 후방과 보급을 담당하게 하고, 육의를 참군으로 삼았다.
기실 서황과 방통이 준재라고는 하나 좌우 부장으로 오의와 양회를 둔 유비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포진이었다. 장료의 본대 삼만과 허저의 증원 일만, 여기에 장사에 있는 국태공 제갈현이 일만을 추가로 증원하여 병력 또한 도합 오만으로 유비의 삼만보다 많았다.
이렇듯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벼락처럼 들이치는 전략이 중요하거늘, 유비의 진군은 적이 능히 파악할 만큼 여유로웠다. 이에 촉왕 유장은 노파심에 장군 장임을 보내 빠른 진군을 주문했다.
“허허, 서두르면 일을 망치는 법이올시다.”
재촉에도 유비는 느긋했다.
나는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백각으로 나아갔다. 내정이야 나보다 훨씬 나은 내사령 종요가 양주자사 염상, 통재대부 환계 등과 잘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드러지는 활약은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음지에서 대단한 수완을 발휘했다. 특히 종요가 제안한 관제개편 이후로 행정의 효율성이 크게 상승하여 물산이 증가하고 중복되는 업무가 감쇄되었다.
“외사령(왕수)께서 발 빠른 인편을 보내, 유장이 법정의 파면을 거절했으며 유비로 하여금 선제공격을 가할 공산이 높다고 전해왔습니다.”
백각경 가후의 아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희와 황권이 눈엣가시를 먼저 쳐내려고 합의를 본 모양이군. 우리로서도 나쁘지 않소이다.”
량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유비가 등 떠밀리듯 전선으로 나섰군요. 큰 의욕이 없을 것입니다.”
백각대부에 중용된 등애가 긍정했다.
“맞습니다. 일단은 유비의 동향을 살피면서 진을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등애의 말에 량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쯤은 백각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구태여 말을 보탤 까닭이 없어.”
그의 꾸지람에 등애가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주제넘었습니다.”
나는 눈썹을 치뜨며 량이를 타박했다.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말을 보태서 나쁠 것은 없다. 공명, 너는 어찌하여 아랫사람의 기를 죽이나?”
량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언로는 트여야 한다.”
가후는 량이와 등애를 흘끗 바라보고 화제를 전환했다.
“서주의 재건 작업이 지지부진한 모양입니다. 연주를 장악한 조왕 조조 역시 제 일을 챙기기에 급급한지라, 당분간은 서로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고가 서주 낭야에 있을 적이 생각이 나오. 그때 조조가 참으로 잔혹하게 백성들을 대우했지. 게다가 전란이 거듭되었으니 지지부진한 것도 이해가 되오. 합비의 잉여물산을 서주도독(진등)에게 보내 도움을 주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나는 백각령 장송을 바라봤다. 그는 익주에서 귀부한 이후 몸을 사리느라 별 다른 제언을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나쁘지 않은 재주를 가진 선비였다. 특히 향후 촉왕부를 정벌한다면 크게 중용할 만한 재목.
“량왕부의 동향은 어떻소?”
장송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답했다.
“서량왕 한수의 기세가 여전히 드센 모양입니다. 전하의 즉위식 때 량왕의 측근인 양천만이 아니라 서량왕 한수의 측근인 성공영을 보낸 것도 그렇고, 지난번 의후(유복)의 일 이후로 축소된 관중제장에게 임의로 공후의 봉작을 내렸다고 합니다. 확실히 서량의 인심은 한수에게로 쏠리는 모양새입니다.”
“음… 허면 그쪽도 집안싸움으로 시끄럽겠소. 우선은 촉왕부에 전력을 집중함이 옳겠소이다.”
백각경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유비는 출정한 지 아흐레가 되어서야 산 너머 익주의 경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느린 것을 넘어 굼뜬 진군에 병사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고, 전쟁의 긴장은 어느새 증발해버렸다. 심지어는 따분한 기류마저 엿보였다. 처음에는 정열적으로 딴죽을 걸던 오의와 양회가 도리어 진군을 보챌 정도였다. 그럼에도 유비는 그야말로 만만디.
군기는 해이해지고 병사들의 입은 걷는 와중에도 하품을 하느라 쩍쩍 벌어졌다. 유비는 꾸벅꾸벅 졸다가 낙마의 위기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겪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가자. 다리 아프다.”
이제야 겨우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했다. 욕심을 낼 것도 없이 나아가던 관성만으로도 전장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만 가자고 하는 유비의 명령을 들은 양회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 가자고? 다리가 아프다고? 말 타고 가면서 왜 다리가 편찮으시단 말인가?”
그의 뇌리에서 황권의 당부가 흐릿해질 정도로 유비의 행마는 형편없었다. 오의도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그의 눈두덩에 고였다.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좌장군(유비)도 전장에 큰 열의가 없는 거야. 아니면 겁을 먹었든지. 군기도 흐리멍덩하고 부장이라는 우리들도 목이 뻣뻣하니, 장료를 이길라야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게야.”
양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즐기게, 즐겨. 이대로만 끌고 가면 유비는 촉왕부에서 버틸 명분이 없어진다네.”
“허 참.”
유비가 전장의 초입에 이르러 막사를 치고 숙영한다는 소식이 장료의 귀에도 들렸다. 장료는 팔짱을 낀 채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다가 확 덮치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장료의 말에 육의가 동의했다.
“유비는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적수입니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네, 후장군. 아니, 우리는 품계가 같은데 존대를 해드려야 가당하겠군. 부디 용서하시게.”
육의는 입가를 벌리며 웃었다.
“좌장군(허저)의 치욕스런 과거를 알려주신 것만으로도 은인 대우를 받으셔야지요. 편하게 대하십시오.”
“고맙네.”
“유비가 전장에 다 와서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니 좌장군을 도발하여 꾀어내려는 계책을 쓸 수도 있겠습니다. 좌장군께 각별한 당부를 남겨주십시오.”
장료는 미소를 지었다.
“좌장군이 비록 지모가 모자라다지만 병법은 꼭 지모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네. 피가 터지고 창자가 굴러다니는 전장에 오래 굴러본 사내라면 느낌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야. 그것은 꼭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곧잘 들어맞거든. 좌장군은 그 감이 뛰어난 인물일세.”
“그래도 당부를 남겨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지요?”
장료는 육의의 어깨를 잡았다.
“아니, 나빠. 내가 비록 주장의 짐을 짊어졌지만 나와 좌장군은 동렬일세. 그가 이미 느끼고 있는 바를 내가 구태여 전령을 띄워 강조한다면, 혹 내가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인가, 불신하고 있는 것인가 잡념이 솟게 되지.”
“좌장군이 그 정도로 소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장료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물론. 그러나 폄하 당한다는 불쾌감,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자연히 생겨나는 사람의 마음. 당장 이번 전장에서 그것이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지만, 나중에 다시 합을 맞출 때에는 생각보다 큰 독으로 작용할걸세.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야. 논리로는 알지 못하는 요소가 전쟁에는 허다해.”
장료는 육의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악력을 실었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지.”
그의 말대로 허저는 유비의 책략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부장 서성에게 긴한 당부를 남겼다.
“적의 화살촉이 영문 앞에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태산처럼 지킨다.”
서성은 읍하며 명을 받들었다.
막사를 치고 숙영준비를 마쳤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밝았다. 병사들은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유비는 서황, 방통과 주먹밥을 나눠먹고 늘어져라 트림을 했다.
참다 참다 못한 서황이 언성을 높였다.
“놀러 오셨습니까? 대체 전쟁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