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99
또한 오환을 마음으로 복속시킨 유주의 관우를 중앙으로 소환했다. 관우를 소환하기 위한 사자가 급히 유주로 파견되었다. 유주로 보내진 사자는, 조조의 소환령 외에 또 다른 소식을 지참하고 있었다.
“담왕 유비가 훙서하였음을 또한 관우에게 알리도록 하여라.”
조조는 전령에게 분부했다. 전령은 읍하며 조왕 조조의 명령을 받들었다. 전령을 떠나보내고, 조조는 연못을 끼고 있는 누각에 올라 조용히 술을 마셨다.
“관우의 표정이 궁금하군.”
목을 넘어가는 술이 유난히 쓰고 뜨거웠다. 조조는 시린 햇빛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유비가 없으면, 관우가 계속 내 품에 있을까.”
그는 너른 연못을 향해 속에서부터 끌어올린 가래침을 탁 뱉었다. 잉어가 저를 먹이는 고기밥인 줄 알고 날름 수면 위로 입술을 뻐끔거렸다. 전령의 말발굽은 관우가 있는 유주를 향해 쉬지 않고 내달렸다.
“형님이 합비에서 돌아가셨다고.”
되묻는 관우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 소식을 함께 들은 위연과 관평 역시 몸서리를 쳤다. 유비가 촉왕부에 귀부하여 좌장군의 벼슬을 받았다는 소식이 접수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익주에서 유주까지는 발 없는 말도 세 번은 쉬어갈 정도로 머니까. 그러나 유비의 죽음은 그 사안이 위급하고도 중대한지라 금세 천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조조의 품을 떠나 익주로 향할 채비를 서두르던 관우에게, 유비의 부음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다던가.”
관우는 겨우 소리를 밖으로 내보냈다. 전령은 관우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답했다.
“합비의 세작이 보고하기를, 신왕부에서 담왕 전하의 목을 베어 저자에 효수하였다고 합니다.”
“제갈찬, 그 자가 비석이나마 세워줬다고 하는가.”
전령은 거짓을 고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담왕 전하의 시신을 심하게 훼손하여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쾅. 관우의 거대한 주먹이 목재 탁자를 내리쳐 두 동강 냈다. 전령은 침을 꼴깍 삼키며 바들바들 떨었다. 관우의 눈이 심하게 충혈 되었다. 아들 관평은 유비의 죽음보다도 아비의 흔들림이 더욱 저어되었다. 그는 아비를 처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슬픔과 분노를 삼키는 관우의 목울대가 심하게 일렁였다. 위연 역시 거푸 젠장, 젠장을 외치며 몸을 떨었다. 관우는 동강 난 탁자에 이마를 쾅 박았다. 그 상태로 관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꽉 거머쥔 주먹에 푸른 핏줄이 밭이랑처럼 돋아났다.
관우는 탁자에 이마를 박은 채로 중얼거렸다.
“제갈찬… 그놈이 익덕(장비의 字)을 앗아가더니 이제는 기어이 나의 주인마저 앗아가는가.”
그 탄식에 누구도 개입하지 못했다. 무덤 같은 적막이 흘렀다. 전령은 죄인이 된 듯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위연이 부러 있는 분노 없는 분노를 이끌어내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독! 이대로 참을 수 없습니다! 당장 전군을 이끌고 합비를 치십시오! 이 문장(위연의 字)이 앞장서겠습니다! 담왕 전하의 원수를 이 문장의 칼로 해내겠습니다!”
관평 역시 차분하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관우에게 말했다.
“예, 아버지, 명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합비로 가서 담왕 전하의 무덤에 순장되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관우는 이마를 박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위연과 관평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위연은 가슴을 쾅쾅 치면서 분을 참지 못했다. 관평 역시 이마를 싸쥐고 더 말하지 못했다. 전령은 조조의 소환령을 전달할 의지를 감히 느끼지 못했다. 관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위연은 손을 내저으며 전령을 물리쳤다.
“물러가라! 도독께서는 더 들으실 말도, 하실 말씀도 없으시다!”
“하, 하오나 조왕 전하의 명을……”
위연이 고리눈을 홉뜨고 전령을 내려다보니, 전령은 숨이 턱 막혀 더 말하지 못하고 후다닥 관우의 앞에서 물러났다. 위연은 주먹으로 단단한 석벽을 가격했다.
“젠장!”
관우는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머리를 박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흐느끼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위연은 가슴에 저미는 분노와 슬픔, 연민과 충정에 관우에게 촉구했다.
“도독! 창을 드시지요! 합비로 가시지요! 위연이 따르겠습니다!”
관우가 그 말에 이윽고 대답을 내놓았다.
“가면, 내가 이기겠느냐?”
“도독!”
“가면, 내가 제갈찬의 목을 따겠느냐?”
“……”
“나는 제갈찬을 이기지 못한다.”
그 말이 위연의 심장을 흔들었다.
“그러나 나는 제갈찬을 이길 것이다.”
위연은 눈물을 흘렸다.
“반드시… 이기겠다……”
관우는 천천히 이마를 떼서 위연을 바라보았다. 관우의 눈은 뻑뻑하게 말라있었다. 그는 눈물조차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제갈찬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참겠다.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참겠다. 내가 이길 수 있을 때, 그때 창을 들고 일어서겠다. 그 무엇도 나를 막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나를 꺾지 못하리라.”
관우는 입술을 악물었다. 강한 힘에 억눌린 입술이 터져 피가 흥건하게 턱을 타고, 긴 수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때까지 울지도 않겠다. 분노하지도 않겠다. 나의 주인이자 나의 형님의 죽음을 추모하지도 않겠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는 인내, 인내다. 나는 내 목숨마저 제갈찬이 취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두지 않겠다. 나는 참고 참을 것이다. 제갈찬의 머리를 이 손으로 쥐어 바스라트릴 때까지……”
관우의 온몸에 지진이 일어난 듯 경련이 일었다.
“나는 참겠다.”
위연은 그 앞에 무너지듯 엎드려 절을 올렸다.
“따르겠습니다! 도독을 따르겠습니다! 참으라면 참고 나서라면 나서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도독!”
관우의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관우는 조조의 소환령에 응했다. 조조는 알량한 배려로, 관우에게 기분이 내킬 때까지 등청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우는 업도에 도착한 당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조조가 하사한 위로주도, 명마도, 보검과 명궁도 모조리 받지 않았다. 관우의 얼굴은 평정했으며 관상을 잘 본다는 이도 그의 얼굴에서 조금의 노기도, 조금의 슬픔도 발견할 수 없었다.
“관우가 마음을 금방 추스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조왕 전하께 완전히 마음을 바치지 않을는지요?”
측근들과의 술자리에서, 장군 주령이 말했다. 그 말에 주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보일 듯 말 듯 저었다. 주유의 반응처럼 조조는 주령을 도리어 힐난했다.
“쯧, 너는 어찌 그리도 사람 보는 눈이 없느냐?”
주령은 순진한 눈을 깜빡거렸다. 덕담으로 건넨 말을 사납게 받는 주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예?”
“너는 관우의 모습이 마음을 추스르고 과인에게 마음을 열 것처럼 보이느냐?”
“그, 그것이 아니오면……”
조조는 째진 눈으로 주령을 흘겨보면서 부러 소리 나도록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에잇! 술맛 떨어진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고 입술만 씰룩이자, 주유가 점잖은 말씨로 주령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관우의 고요한 모습은 도리어 그의 마음이 오로지 유비에게 쏠려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령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울음을 토하고 분노를 뿜으면 나았을 겁니다. 울음과 분노는 휘발하니까요. 그러나 고요한 슬픔, 조용한 분노는 영구합니다. 관우는 이제 오로지 한 가지만 보고 살 겁니다.”
주유는 입맛을 쩝, 다시고 말했다.
“실현할 수 있는 복수.”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안주 먹을 기분마저 사라졌는지, 닭고기 볶음을 뒤지던 젓가락마저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조조의 표정이 복잡했다.
유비의 처단은 나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것을 달성했다. 나의 과제가 곧 신왕부의 과제였으므로, 유비의 주검이 저자에 부려진 이후로 신왕부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무관이고 문관이고 할 것 없이 그동안 참았던 한숨을 몰아쉬는 그때, 내사령 문관은 지독한 일중독이었다. 그는 모두가 태업을 하는 시기에 홀로 무언가에 골몰하더니, 등청하여 나에게 아뢨다.
“전하, 건의할 것이 있습니다.”
유비의 처단 이후 나의 마음은 깊은 잠과 오랜 여유를 요구했다. 그러나 종요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단히 일하려는 신료를 다그칠 수는 없었으므로 내가 고개를 끄덕여 언로를 텄다.
“내사령은 말씀하시오.”
“그동안 문무신료들이 오로지 전하만을 위해 공을 세워왔습니다. 이것은 지극한 충정으로, 장려할 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신료가 그와 같지는 않습니다.”
“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료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동력으로 충정을 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자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요의 말에 내군경 영자가 발끈했다. 그럴 만도 하지. 영자는 오로지 나와의 우정만으로 여기까지 온 인물이니까.
“내사령의 말이 해괴하기 짝이 없소. 신료는 오로지 충으로써 군주를 섬기는 법, 어찌 다른 것으로 군주를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영자의 항변을 예상했다는 듯 종요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군경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료로 하여금 직분에 종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군주를 섬기는 것이 곧 신료의 직분이오.”
종요는 그것만큼은 단호히 부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엄연히 다릅니다.”
군주를 흠모할 수는 있으나, 직분에 주력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좌자를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지. 그가 나를 흠모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위급한 때가 아니면 파락호가 따로 없거든. 그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열과 성을 다해 직분에 종사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거창하게 이름이 신왕부지만 기실 직장이 아닌가. 경영자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일에 골몰하는 것은 그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기실 경영자를 좋아하는 직원은 극히 소수다.
대다수는 경영자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공명심과 때마다 돌아오는 급여를 위해 일한다. 나는 대강 종요의 의도를 이해했다. 종요는 영자의 말을 일축하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신료들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함이 옳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겠소?”
종요는 짧게 대답했다.
“식읍(食邑)입니다.”
“식읍.”
예상하던 대답이었다. 식읍이란 봉지(封地)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었다. 봉지의 영주는 대개 그 일대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갖는다. 그러니까 그곳의 속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속민을 무장시켜 사병으로 기용할 수 있고, 여차하면 갓 애티를 벗은 소녀를 취하여 첩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식읍은 오로지 그곳의 조세만을 거둘 수 있는 땅을 말한다. 식읍은 가구 수, 그러니까 호(戶) 단위로 지급한다.
종요의 말에 영자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든 신료들은 그 품계에 맞는 봉록을 받고 있소. 헌데 식읍까지 따로 지급해야 한단 말이오?”
영자의 말은 틀렸다. 봉록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만 하다. 게다가 품계는 직분의 수행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품계는 조정에 오래 버티고 있으면 자연히 높아지는 법이다. 공훈을 두텁게 세우면 품계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통상 선배를 역전하는 일은 드물다. 봉록만으로는 신료들이 신나게 일할 수는 없다.
나는 영자를 웃음으로 제지했다.
“내사령의 말이 옳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