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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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핏빛 서주
나에게 다가온 문사가 막 입을 떼려던 참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하고 깊은 호흡을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주문했다.
“나쁜 소식이거든 최대한 건조하고 간결하게 전해주십시오.”
문사는 잠시 고심하더니 내게 귓속말 했다. 그는 말을 하기 전 입술을 여러 번 붙였다 뗐다. 그 말인즉슨 할 말을 정리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며 또한 이 말인즉슨……
“낭야상 소건의 부장이자 도서주의 수하인 기도위 장개(張闓)가 조연주의 부친인 조거고(巨高, 조숭의 자)를 살해했습니다.”
나는 절망하여 양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조숭의 죽음은 필연인 듯, 역사의 물길이 조금은 달라진 지금에서도 벌어지고 말았다. 순유와 곽도, 노구와 왕수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내 안색을 살피던 문사가 괜찮으십니까, 물었다. 나는 미동에 가까운 손짓으로 다음 말을 주문했다. 문사는 눈살을 찌푸린 채로 말을 이었다.
“본디 도서주는 조거고를 인질로 삼아 조연주의 철수를 권유할 생각이었지만, 장개가 조거고의 어마어마한 재산에 눈이 멀어 죽이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는 재물을 탈취하고 도주했습니다.”
조숭의 죽음은 서주대학살로 이어진다. 서주, 특히 조숭의 피가 뿌려진 낭야의 숨소리들은 무자비한 창칼에 무참히 쓰러지리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찌르르한 격통이 나를 엄습했다. 윤랑아, 어머니…… 장개의 탐욕으로 죄없는 민중들, 그중에서도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 조조의 말 한 마디에 모조리 죽은 목숨으로 화하리라. 안 돼. 절대 안 돼. 나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다. 여기서 또, 그 지옥 같은 슬픔을 감당하라는 거야? 죽음 같은 분노를 또 느끼라는 건가? 빌어먹을,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노구에게 말했다.
“어서… 어서 낭야로…… 나한테 군대를 줘, 대장……”
노구는 미간을 좁히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 왜 이래?”
하기야 노구를 비롯한 이 자리의 이들은 조숭의 죽음이 어마어마한 학살의 신호탄임을 모를 것이다. 곽도는 순유를 힐난하면서 조조가 죄 없는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순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른 말로 받아쳤다. 순유는 고고한 청류파의 선비이다. 유교를 숭앙하는 그가 대규모의 양민학살을 저렇듯 대수롭지 않게 치부할 리는 없다. 따라서 곽도의 힐난은 다만 힐난일 뿐, 무고한 백성을 죽였다 해도 그 수가 많지는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조숭의 죽음으로 조조는 잠재된 짐승 같은 광기를 뿜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과녁은 낭야가 될 것이다. 노구와 영자를 비롯한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옆에 앉은, 윤랑의 오라비인 영자도 고개만 까딱거리며 혹시 모를 변란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러하니 군대를 운운하는 내 말이 노구는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조연주는 다만 도겸과 장개만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청주병을 출진시킨단 말이냐.”
나는 순유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는 우리의 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체 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감각을 내 입에 집중하고 있겠지. 앙큼한 자식.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구를 다른 방으로 이끌었다. 순유는 헛기침을 서너 번 하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는 왕수에게 읍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 사람은 사자로서의 의무를 다 행하였으니 그만 주공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왕수는 가볍게 읍하며 그리하라고 말했다. 돌아가겠다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사나운 눈빛을 뿌리며 순유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순공달께서는 이곳에 조금 더 계셔주셔야겠소이다!”
일순 순유의 얼굴에 참담한 빛이 번졌다. 그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노구와 왕수 등은 나의 언행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쌕쌕 소리 내 숨을 쉬며 조자룡의 어깨를 짚었다.
“조 장군, 순공달을 공관에 모시고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식은땀이 끈끈히 배어나온 내 손을 붙들며 조자룡도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몸… 괜찮은가?”
“…안 괜찮습니다.”
조자룡은 내 말대로 순유를 공관에 억류했다. 순유도 내 이러한 행동의 까닭을 알았는지 무의미한 항의는 관두고 순순히 조자룡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내 손에 이끌린 노구는 내 어깨를 붙들며 안색을 살폈다.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꼴일지 짐작이 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눈에는 피로가 가득 쌓였겠지. 입술이 메마르고 얕은 숨을 달싹이는 목젖은 무기력하겠지.
“대장, 제발 나한테 군대를 줘. 나는 낭야로 가야 해……”
“이봐, 화평자, 군대 타령은 뜬금없어. 대체 그 군대로 뭘 하겠다는 건가. 도겸을 도와 조연주를 축출하기라도 하겠단 거야? 아니면 너와 술 몇 잔 마셨던 조숭을 추모하며 장개를 찾아 주살하겠다는 건가?”
나를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살리고 싶어서……”
“누구를 살린단 말인가.”
물기가 마른 뻣뻣한 혀에 울음기가 섞여서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윤랑, 어머니… 그리고 낭야의 사람들.”
“그들은 네가 살리지 않아도 살 것이다.”
“아니…… 내가 살리지 않으면, 죽어.”
단정적인 말에 노구는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나는 숨을 깊게 쉬고 최대한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조조가 대학살을 벌이리란 것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지만, 내가 너무나도 확정적으로, 더불어 감정적으로 읍소하듯 하니 내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청주에서 낭야는 지척이었다. 기병으로만 빠르게 기동하면 조조의 학살을 막을 수 있다. 그의 강병을 공격해서 이기겠다는 철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최소한 백성들이 북으로 도주할 시간을 벌고 나의 개인적인 소망, 윤랑과 어머니를 저 지옥도에서 구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태산과 낭야는 노구 일파의 본거지였다. 병사들은 자원하여 낭야로 뛰어들겠노라고 아우성쳤다. 나는 그들 중 일천을 선발했다. 공융에게서 말 몇 필을 더 꾸어 모두 기병으로 편제했다.
“다녀올게, 대장.”
나는 짧게 인사하고 임치를 떠 낭야로 향하려 했다. 발걸음을 떼려는 내 팔을 노구가 붙잡았다. 내가 뒤돌아보니 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넌 임치에 남아.”
이게 무슨 개소리야.
“대장!”
노구는 단호했다.
“냉철하게 생각해라, 화평자. 그렇게 나약해진 정신으로 네가 일천의 기병을 제대로 이끌겠느냐? 애초에 너는 승마에도 서툴고 군의 지휘해도 서툴다. 네가 이들일 이끌고 능히 낭야를 구하겠느냐? 애꿎은 목숨만 더 상하겠지. 너는 임치에 남아야만 해.”
“그래도!”
노구는 나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나는 너의 읍소를 받아들여 낭야로 일천의 군세를 보내기로 했다. 내가 한 번 따랐으니 너도 한 번 내 뜻에 따라라.”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우두망찰했다. 노구는 다른 곳을 바라봤다.
“노아, 암노! 너희가 갔다 와라.”
노아와 암노가 노구를 향해 읍했다.
“섣불리 먼저 나서진 말아라. 조조가 백성들을 해치려는 움직임이 보이거든 그때 비로소 움직여라. 최대한 조조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백성들을 북으로 피난시켜라. 특히 윤랑과 화평자의 모친을 먼저 구출하도록 해.”
노아는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우리만 믿으라고! 낭야는 본래 우리의 땅, 외지인인 조조가 맘대로 휘젓지 못할 걸.”
나는 망루에서 노아와 암노가 빠르게 남하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나에게 영자가 다가와 내 어깨를 짚었다. 그도 불안한 눈빛으로 노아와 암노의 기병들이 풀풀 날리는 먼지를 보았다.
“괜찮겠지?”
나는 침을 삼켰다.
“괜찮아야 해……”
노구는 제남의 손강에게도 급히 전령을 보내 낭야로 출전하라고 명했다. 북방의 임치보다 손강의 제남이 낭야와 더 가까웠다. 북해의 공융은 우선 출진은 보류했다. 조조가 정말로 학살을 자행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군을 움직였다가는 괜한 전면전으로 비화되기 때문. 나도 공융의 판단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했다. 대신 공융은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차와 항상 상비군을 비상대기하고 있으며 돌발한 변고가 발생하자마자 출병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성의껏 감사의 답신을 그의 앞에 보냈다.
순유는 잠자코 공관에 억류된 채로 있었고, 곽도는 귀환 일정을 뒤로 미뤘다. 그는 임치를 떠나 북해로 향했는데, 청주자사인 공융이 있는 쪽이 정보를 확보하기 더 수월하기 때문일 터였다. 노아는 전령을 보내 손강의 군사와 무사히 합류했다고 말했다. 나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남쪽을 바라보며 쌀쌀한 밤공기를 맞았다. 제발 내 예상이 터무니없는 호들갑으로 끝나기를…… 나는 망루를 내려와 임치의 시가지를 걸었다. 쓸쓸한 걸음을 어느 목소리가 붙들었다.
“화평자 치중 어른이 아니십니까!”
나를 어른이라고 부른 이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는 주막에서 곡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누구냐고 물으려다가 그 질문을 삼켰다. 냇가에서의 고기잡이를 진두지휘하는 솜씨 좋은 자였다. 성이 장씨였던가, 왕씨였던가. 그는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 곡주를 따라주었다. 탁한 술에 내 얼굴이 비쳤다. 장씨였던가 왕씨였던가 하는 이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낭야로 출병한 까닭을 천한 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요. 부디 힘을 내십시오, 치중. 제 아들 녀석도 낭야로의 출병에 자원을 했소이다.”
나는 손의 온기를 느끼며 곡주를 들이켰다.
“아예 낭야의 백성들을 죄다 제군으로 받으십시오. 이렇게 훌륭한 은택을 저희만 누려서야 되겠습니까. 치중 어른의 얼른 고기 잡으라고 닦달하는 잔소리를 우리만 들을 수는 없죠.”
이 말이 뭐라고 또 눈물이 솟나. 장씨였던가 왕씨였던가 하는 그가 내 눈물은 애써 모른 체 하고 잔을 들어 내게 술을 다시 권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건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