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01
방통은 씁쓸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지표를 잃어버리니 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상존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겠소이다. 여기 세 분께 모든 것을 의탁하겠소. 다만 한 가지, 한 가지만큼은 내 뜻이 분명히 관철되었으면 하오.”
방통은 굽힌 허리를 천천히 피면서 상존과 눈을 맞췄다.
“무엇입니까?”
“익주의 백성들이 애꿎은 목숨을 버리지 않도록 해주시오. 제 목숨을 보중하자고 숱한 목숨을 외면하는, 그런 꼴사나운 촌극은 벌이지 말아주시오.”
방통은 상존의 말에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약조 드리지요. 억울한 죽음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장군의 분부를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습니다.”
상존은 전권을 법정, 사마의, 방통에게 위임했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법정, 사마의, 방통 전원이 팔략의 일원이었다. 자발적 허수아비가 된 상존은 부금과 함께 수확이 끝난 수수밭으로 나갔다. 휭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면서 상존은 메마른 밭 위에 발을 디디고 섰다.
“허수아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 자리에 서있는 것. 새싹이 돋든 이삭이 여물든 수확을 마치든 이 자리에서……”
부금은 상존과 나란히 서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님답지 않게 청승맞은 말씀을 다 하시오.”
상존은 부금을 바라봤다.
“청승맞게 안 생겼는가? 주제에 맞지 않게 붉은 술이 흐르는 투구를 쓰고, 큰 칼을 차고 뒤뚱거리는 꼴이 참으로 추하잖아. 차라리 청승맞은 것이 낫지.”
“형님의 밑에 있는 똘똘한 세 분이 알아서 잘 할 것이오.”
상존은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이 시렸다.
“내 밑의 세 사람이라고……?”
상존은 픽 웃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지는 웃음은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놈들이 내 밑에 있는 사람들 같은가.”
상존은 발뒤꿈치로 수수밭의 흙을 얕게 팠다.
“허수아비는 그저 서있으면 되는 거야……”
“서있는다고 해서 아무런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오. 허수아비는 서있는 것만으로도 날짐승을 쫓아 수수를 보존하지 않소?”
“제법 위로도 할 줄 알고.”
상존의 칭찬에 부금은 코끝을 훔치며 흐흐 웃었다.
“그건 그렇다. 허수아비는 서있는 것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지……”
그는 비대한 몸을 굽혀 손으로 흙을 쓸었다. 다 익지 못해 버려진 수수 낟알들이 흙과 함께 손에 묻었다. 상존은 찌뿌듯한 허리를 다시 세웠다. 물끄러미, 밥상에 오르지 못한 수수알곡을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가련한 것들이지, 이것은. 실컷 자라서 종내 먹히지도 못하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 버려진 것들. 병신으로 태어나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들.”
상존의 눈두덩에 눈물이 스몄다.
“허수아비가 가을걷이 끝난 맨땅에 내내 서있는 것은……”
상존은 엄지로 손바닥을 훔쳤다. 흙과 수수가 다시 땅에 떨어졌다.
“이 병신 같은 알곡들도 지키려고 그러는 것이겠지.”
상존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쳤다.
“수수를 뭐라고도 하는 줄 알아? 촉서(蜀黍). 그러니까 촉 땅에서 나는 기장이라고도 부른다던데.”
부금은 조용히 상존을 응시했다.
“되먹지 못한 주제로 장군이라고 들먹이고 있네. 싸움도 못하는데 말이지. 허면 적어도 애꿎은 민초를 해치지는 말아야 옳을 것인데……”
상존은 울음 섞인 한숨을 토했다.
“이제는 이 촉의 기장을 지키는 허수아비 노릇도 못 하게 될까봐… 그게 두렵군.”
상존의 물렁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법정과 사마의와 방통은 머리를 모으고 향후의 군략을 논했다. 그들은 공통된 전제에 합의했다. 첫째, 익주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둘째, 다른 곳을 둥지로 삼아야 한다. 비록 촉왕 유장과 호군 황권을 물리쳤다 하나 익주의 인심이 상존에게 쏠리지는 않았다. 자리보전을 하던 방희가 다시 떨쳐 일어나 왕당을 규합한다면, 성도령 동화 이하 문관들이 방희를 따르지 상존을 따르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그 전에 방희를 제거할 수는 있겠지만, 방희 하나만 잘라낸다고 하여 부유하는 인심이 상존에게 정박하지 않을 터였다.
법정은 신왕부의 병력에 막힌 동쪽과 북쪽의 지도를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걷어찼다.
“이래서야 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잖소.”
사마의가 한중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신의 익북도독 감녕에게 사자를 보내 교섭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교섭?”
법정이 눈을 치뜨며 사마의를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얌전히 성도를 내줄 터이니 길을 터달라고……”
사마의의 말을 방통이 싹둑 잘라먹었다.
“교섭을 시도한다면, 감녕은, 신왕 제갈찬은 우리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할 겁니다.”
법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방통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울렁이는 제 목젖을 가리켰다.
“이 방통의 목입니다.”
기실 제갈찬의 숙적은 유비였지만, 유비를 처단한 마당에 남은 주적은 방통이었다. 각종 사계를 승인한 것은 유비이되 그것을 입안한 것은 다름 아닌 방통이었으니까. 제갈찬의 심중을 잘 알고 있는 감녕이 얌전히 방통이 지나가도록 둘 리가 만무했다. 그 말을 들은 법정 역시 방통처럼 쓴웃음을 지으며 사마의를 바라봤다.
“귀공에 더하여 중달(사마의의 字)의 머리 또한 요구하겠지. 중달 역시 귀공 못지않게 백수관에서 제대로 물을 먹였거든.”
문자 그대로 물을 먹였지. 사마의는 한중 위에 올려놓았던 손가락을 슬그머니 거두었다.
법정은 턱을 괸 채로 결정을 보류했다.
“영안에 틀어박힌 장료가 다시 동병하기는 어려울 테고, 한중의 감녕 역시 장안의 장합과 서량의 마한(馬韓, 마등과 한수)을 신경 써야하는 탓에 쉽게 성도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오. 우선 우리는 북쪽의 검각, 동쪽의 강주를 든든히 지키면서 향후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십시다.”
사마의가 법정에게 건의했다.
“우리가 성도를 바로 떠날 것이 아니라면, 우선 문관들과 잘 타협해야 합니다.”
법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일세.”
“성도령(동화)을 만나 잘 말씀을 나눠보시죠. 왕당의 문관들이 신왕부와 내통하여 우리를 들이치면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겠네.”
방통은 수염을 배배꼬며 말을 더했다.
“호군 황권과 촉왕 전하의 거취 역시 합의해야 할 것입니다. 별궁에 유폐하고, 옥에 가두고 있는 지금은 너무나도 위태롭습니다.”
법정은 고개를 끄덕여 방통의 의견에 동감했다. 촉왕 유장은 그 깜냥과는 별개로 촉왕부 그 자체였다. 그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다만 별궁에 유폐시킨 상황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그를 난적으로 적시하여 벌하든지, 복권을 시키든지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호군 황권의 처분이야 어렵지 않았다. 그는 무조건 죄인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의 뒤통수를 치고 방통의 병력을 불러들인 상존, 법정, 사마의의 행위가 면죄부를 받게 되니까.
“허면 성도령과 회담하면서, 촉왕 전하는 세자(유순)께 양위하여 상왕으로 물러나도록 하고 호군 황권은 촉왕부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감히 정권을 넘본 죄목으로 벌하도록 하겠소.”
법정의 말에 방통과 사마의는 동의를 표했다.
천하의 전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럴 때에 필요한 여러 조치를 해두어야만 했다. 서쪽으로는 익주부터 동쪽으로는 대륙의 끝까지 미치는 나의 강역이었지만 이 넓은 땅덩이가 내 골머리를 썩였다.
한 해를 열심히 경작하여 소출을 계산해보아도, 땅의 면적이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조조의 조왕부와 엇비슷한 정도였다. 밥이 곧 인구로 직결되고 인구가 곧 국력으로 직결되는 터였다. 이래서야 조조를 압도할 수 없었다.
그러한 까닭은 형주 남부와 강동 대부분의 땅이 미개발지이기 때문이었다. 관개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고 온통 늪지대가 아니면 황무지이니 소출이 늘라야 늘 수가 없었다. 이것을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또한 가도가 정비되지 못해 행정력이 미치는 곳이 여전히 허다했다. 이것은 치안의 공백과 도적떼의 출몰로 이어졌다. 손을 본다고 봤는데도 이렇다.
나는 정청령 량이와 내사령 종요, 양주자사 염상, 사농대부 환계, 통재대부 부손을 불러다가 이 일을 논의했다. 내 말을 들은 종요가 말했다.
“허면 우선 이곳 합비와 형주의 중심인 양양을 잇는 대로를 구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합비와 양양을?”
내가 되묻자 종요는 지도를 펴 손가락으로 합비에서 양양을 훑었다.
“합비와 양양은 모두 장강의 북쪽에 있어 조운(漕運)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장강의 수로를 따라가면 반드시 천자의 송경을 지나가야 하니, 천자께서 혹 짓궂은 마음을 품으신다면 물자의 수송이 어렵게 됩니다. 그러하니 합비와 양양을 잇는 대로를 조성하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종요의 말에 량이가 이의를 표했다.
“지금 전하께서는 양주와 형주의 남쪽에 대해 걱정하고 계십니다. 합비와 양양은 이미 개발이 잘 이뤄진 지역이 아닙니까? 우선 남부의 개발에 치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종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청령의 말씀도 맞습니다. 합비와 양양을 잇는 한편, 동시에 구강의 시상과 국태공께서 계시는 장사를 잇는 대로를 조성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물론 작은 고을로 통하는 길이 정비가 돼야하지만, 동물의 뼈도 그렇지 않습니까. 척추가 먼저 있어야 다른 뼈들이 그것을 축으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말에 염상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물자가 투입돼야 할 텐데요.”
“투입할 건 해야지요. 이것은 급한 일입니다.”
“으음, 합비의 살림이……”
나는 흐흐 웃으면서 염상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알뜰하게 잘 아껴서 잘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염상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으음……”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다른 건을 내밀었다.
“남부는 늪지대가 많아서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모내기를 해서 벼를 재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량이가 되물었다.
“이앙법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다시 염상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가능은 하겠지만… 관개시설을 대대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