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03
“이 상황에서 지나치게 가깝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어.”
“…알겠습니다.”
“중앙군 이만을 동원한다. 내군경 손관, 전장군 조운.”
“알겠습니다.”
“네가 나와 같이 가고, 백각령 장송 역시 대동하겠다.”
“알겠습니다.”
“왕부의 조신들을 소집해.”
내 명령에 량이는 즉각 조신들을 소집했다. 나는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분부했다.
“고는 상용에 행궁을 두고 서방의 난리가 진정될 때까지 머물겠소. 고를 대신하여 합비는 오원공(여포)께서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자질구레한 일들은 백각과 정청의 먹물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각경 가후와 내사령 종요가 오원공을 빈틈없이 보필하도록 하시오.”
가후와 종요 역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예, 전하.”
“유장을 대충 정리하려고 하니 마등이 귀찮게 구는군.”
나는 혀를 쯧, 걷어찼다.
나를 비롯하여 정청령 량이, 익주 출신인 백각령 장송, 내군경 영자, 전장군 조운이 기병 이만을 거느리고 속히 서쪽으로 향했다. 감녕의 판단을 믿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세가 감녕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위중했다. 마등과 상존이 결합한다면 나에게도 퍽 위협적이었다.
마등은 오랜 고향을 떠나 한중을 향해 남하하면서도, 당최 한중을 얻을 계책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형지물이란 게 있는 법이라고?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복잡한 생각을 안고 내려오는 와중에, 양천만이 마등에게 말했다.
“전하께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이런 신세에 세 가지씩이나. 마등은 쓴웃음을 지었다.
“말하라.”
“첫째, 소인의 고향이자 전하의 외척들이 있는 저족의 땅으로 가서 은거하시는 겁니다.”
양천만의 첫 번째 가능성에 대해 마등은 버럭 성을 냈다.
“차라리 한중으로 가 장렬히 전사하겠다! 불명예가 이 마등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냐!”
“허면 둘째, 저족을 동원하여 다시 서량을 공략, 서량왕의 정권을 다시 전복시키고 스스로 복위하시는 겁니다.”
이 말에도 마등은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어불성설. 저족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부족이 있고 문약(한수의 字)을 좋아하는 부족도 있다. 내가 스스로 물러나고 문약이 서량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를 따르던 부족 중에서도 문약에 가담하는 자들이 상당수일 터. 그것은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는 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하나뿐이군요.”
마등은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중으로 가서 사력을 다해 감녕을 치는 것이지.”
“맞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정녕 한중을 얻으시려거든, 홀로 나서서는 안 되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서량왕이 말한 지형지물입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마초가 물었다.
“그게 누군데?”
천만은 웃으면서 말했다.
“성도의 상존입니다, 동궁.”
마등은 무의식적으로 천만의 말을 곱씹었다.
“상존.”
“성도의 상존은 이제 막 촉왕부를 무너뜨렸으나 기반이 매우 불안합니다.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비를 잃은 방통, 유장을 내세울 수 없는 상존 모두 제후의 반열에 오르기 힘든 자들이지요. 그들은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실력은 있지만 권위는 없지요.”
마등이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에겐 권위는 있지만 실력은 없고.”
양천만은 멋쩍게 웃었다.
“실력이 약간 부족할 뿐입니다, 전하.”
“그래서 나더러 상존에게 손을 뻗으라 그 말인가.”
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서쪽 저강(氐羌)의 땅을 경유하여 성도로 들어가 상존과 교섭하겠습니다. 또한 저강의 제부족들과도 만나 전하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천만은 저족의 큰 부락인 양씨 출신이었으므로 저족과 강족 일대에서 이름이 높았다. 천만의 말을 마등은 받아들였다. 그 이상의 수가 없었다.
“그럼 자네에게 부탁하지.”
“감사합니다.”
마등은 저강의 부족장들에게 증정할 보화를 양천만의 편에 딸려 보냈다. 또한 그를 호위하기 위하여 아장(牙將) 다섯과 기병 삼백 기를 붙여주었다.
전운이 감도는 한중, 그곳을 지켜야만 하는 감녕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천하에서 패업에 가장 가까운 신의 장군이면서 유리한 수성군의 입장에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한중은 신의 영토에서 곶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었으며, 곶처럼 차라리 바다로 둘러싸였으면 좋으련만 삼면이 쟁쟁한 적병들이었다.
량왕 마등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위협적인 적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업을 모조리 한수에게 빼앗기고 악과 독만 남은 그를 녹록하게 볼 수도 없었다. 그의 병력만 해도 수만을 헤아렸다. 처자식까지 모두 살림을 짊어지고 종군하였으니 보조적인 전력은 훨씬 많았고 적병들이 향수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위협적이라면 위협적이었다.
“그놈들은 반드시 성도와 접촉할 것이다.”
성도의 상존은 병력도 병력이지만 그 밑에서 기략을 입안하는 방통, 법정, 사마의의 존재가 감녕에게는 벅찼다. 기실 힘 대 힘으로 맞붙는다면 자신이 있었으나 그들은 뱀과 같은 혀를 지니고 있었고 여우와 같은 꾀를 지니고 있었다. 감녕은 책략의 비겁함을 두려워했다. 더군다나 이들을 과도히 신경 쓴다면 장안의 장합이 마냥 장안에 눌러앉아 있으란 법이 없으므로 또한 위협적이었다.
“힘든 싸움이 되겠군……”
감녕은 시종에게 술을 대령하게 하여 한 동이를 다 비웠다.
그는 문빙에게 백수관을 맡겨 성도로부터 올라오는 병력을 차단하도록 했고, 유반에게는 장안 방면의 경비를 맡겼다. 마등이 한중으로 들어오는 마당에 한수가 움직이기야 하겠냐만은, 항상 변고는 가장 튼튼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법이었다. 하변 방면의 부도독인 척기에게 한수의 동향을 살피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한중으로 들어오는 마등의 병마를 제어하고자 했다.
그즈음 합비에서 신왕 제갈찬이 친히 이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상용에 행궁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감녕에게 전달되었다.
“전하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인가.”
감녕이 전령에게 묻자, 전령은 그 물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사세가 위급하다며 전하께서 친히 대국을 지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디 무부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감녕이었기에 평소였다면 신왕께서 자신을 신용하지 못한다며 길길이 성질을 부렸겠지만, 사세가 위급하다는 신왕의 판단에 그 또한 동감했다. 당금의 상황은 자신이 홀로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벅찼고, 감녕은 자신의 능력을 신용하는 것만큼이나 한계 또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녕은 짧게 한숨을 쉬고 전령에게 말했다.
“익북도독의 인끈을 받았음에도 전하께서 친히 상용으로 거둥하시게 하는 불충을 저질렀다. 너는 전하께 가 죄인 감녕이 차후 형벌을 달게 받겠다 하였노라고 전하께 아뢰어라.”
“존명.”
전령을 돌려보낸 후 감녕은 독주를 잔에 가득 담아 한 번에 비웠다.
법정은 정변에 성공한 상존의 대리인으로서, 성도령 동화는 지금껏 익주를 지탱해온 왕당의 대리인으로서 회담했다. 칼자루를 쥔 것은 법정이었으나, 동화가 쥔 붓대가 칼보다 약하지 않았다. 본디 칼의 시대에는 붓이 업신여겨지기 일쑤지만 위력은 동등했다. 상존이 군부의 인망을 얻고 있다지만 이번 정변으로 그의 인덕을 의심하는 자들이 부쩍 늘었다. 다만 갓 탄생한 정권이 두려워 표출하지 않을 뿐이었다. 성도의 밖, 익주의 곳곳에는 토족들이 있었으며 이번 혼란을 틈타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준동이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만일 성도령 동화가 촉왕 유장과 파서태수 방희를 빙자하여 촉왕부의 재건을 부르짖는다면 근왕을 부르짖는 사방의 적들에 의해 상존의 정권은 붕괴되고 말 터였다. 그러므로 법정에게도 동화와의 회담은 중요했다.
“성도령, 지금의 상황이 잘 납득이 되시지는 않을 겁니다.”
법정의 말을 동화가 비아냥거렸다.
“잘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되지 않네만.”
“고상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다만 살고자 했습니다.”
동화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차를 머금었다.
“나 또한 호군 황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호군은 촉왕 전하를 별궁에 유폐시키는 불경은 저지르지 않았지.”
“예, 이 법정, 참으로 불경하였습니다.”
“솔직함이 죄를 사해주지는 않네.”
“법의 사면과 역사의 사면을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비겁을 택하여 숨을 쉬는 지금에 안도할 뿐입니다.”
동화는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궁상맞은 하소연은 그만두게. 그대의 계획을 듣고 싶군.”
“동원할 수 있는 전군을 이끌고 북진, 한중의 감녕을 물리칠 것입니다.”
“감녕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닐세. 또한 익주의 험준한 산세는 적침을 방어하기에 좋지만, 반대로 밖으로 나아가기에는 큰 장애물이 되는 법. 명민한 그대가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법정은 미소를 지었다.
“모르지 않습니다. 잘 압니다. 다만 감녕의 적은 저희뿐만이 아니기에.”
“량왕 마등이 한수에게 쫓겨나 한중을 들이치려 한다는 소식은 나 또한 들었네. 마등과 손을 잡을 텐가.”
법정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는 입안이 간지러워져 다시 차를 마셔 입안을 헹궜다. 개운해지지는 않았다.
“그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군 상존이 한중에 닿을 때까지 성도가 우리의 뒤를 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보장한다고 말해도 그대가 그것을 믿지 못할 것이 아닌가?”
“예, 그래서 담보를 받아두고자 합니다.”
“무엇인가.”
법정은 미소를 거두었다.
“성도령 이하 성도 모든 고관들의 처자식을 인질로 삼겠습니다. 아, 여기에는 촉왕 전하의 자제이신 동궁도 포함됩니다.”
그 말에 지금껏 잠잠하던 동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뭣이! 그런 고얀!”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서로 간에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서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지요.”
“용납할 수 없네.”
동화의 단호한 태도 법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웃음을 거둔 법정은 싸늘하게 선언했다.
“이를 거부하시면 저는 학살을 선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