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10
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일이로다.”
두 제갈 씨의 반응에 조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전하! 백각령 장송이 적의 손에 죽었다는 보고입니다! 혹여 잘못 들으신 것이 아닙니까!”
나는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단번에 들이켜며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들었습니다, 조 장군.”
장송은 가지각색의 신왕부의 조신들 중에서도 출신이 특이했다. 익주에서 해적질을 했던 감녕을 제외하면 유일한 익주 출신이었다. 다만 출신이 익주인 정도가 아니라, 촉왕부의 중신이자 토족들의 으뜸이었다. 그와 동시에 촉왕부를 나에게 넘기려고 모의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음양이 뚜렷한 인물. 그가 나에게 촉왕부를 안겨준 공훈이 남았다면 모르는 일이지만, 그는 결국 공훈의 탑을 쌓는 데 실패했다. 남은 것은 구질구질한 배신자라는 낙인뿐. 그럼에도 나는 포용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를 중용했다. 형주의 안위를 해칠 수 있는 괴월은 숙청했지만.
이제는 익주가 목전에 왔다. 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장송이 가진 음과 양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다시 생각해봤다. 그의 양, 익주 토족들의 으뜸. 그의 음, 촉왕부의 배신자. 익주가 비록 껍데기만 남았다고는 하나, 그 넓은 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그곳의 토박이들에게서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그들이 익주의 별가가 되고 치중이 되고 그 아래의 높고 낮은 구실아치들이 될 터였다. 그런 그들에게, 장송은 어떻게 보일까.
익주 토족의 으뜸이라는 점은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지방의 토족들을 규합할 여지를 남긴다. 촉왕부의 배신자라는 점은 성도령 동화 이하 왕당의 반발을 살 여지를 남긴다. 장송은 익주의 분열을 야기할 잠재적인 진앙이었다.
법정이 나를 흠모하여 장송을 제거한 것은 아닐 테고 다만 필요에 의했을 뿐이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차도살인의 계책을 쓴 격이었다.
“그러나 웃음이 난다고 웃는 것은 필부의 일이다.”
내가 오랜 생각 끝에 말하자, 량이가 웃음으로 화답했다.
“저는 필부니까 좀 웃겠습니다.”
“그러시든지.”
나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녀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어깨 위에 가죽옷을 올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걸치고 찬바람 부는 실외로 나갔다. 나를 따르는 신하들이 내 뒤를 쫓았다.
“방통의 시체는 어디 있느냐?”
내가 전령에게 물으니 전령이 대답했다.
“저자에 버려놓았습니다. 다만 잡인이 함부로 훼손하거나 수습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량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유비처럼 직접 주검을 다스리실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끓는 노기는 이제 없어. 내 마음을 주무르려고 방통을 원한 것이 아니야.”
나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매듭을 지으려고 했을 뿐.”
한숨을 한번 쉬고 나는 량이에게 명했다.
“행궁에 있는 모든 신하들을 부르도록.”
량이는 허리를 꺾으며 명을 받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궁의 밖에 문무의 신하들이 도열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는 백각령 장송을 은밀히 상존에게 보내 그와 교섭하게 했소이다.”
행궁의 수뇌를 제외한 자들에게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기에 잠깐의 술렁거림이 있었다. 적과의 밀담은 항상 좋은 수다거리가 되는 법이었다. 나는 여유롭게 그들의 술렁거림을 기다려주다가, 소리가 잦아든 후에 다시 말했다.
“그것은 상존이 볼모로 잡은 촉왕부 조신들의 식솔을 인계하는 것과, 우리의 불구대천지수인 방통을 인계하는 것이었소.”
어느 정도 교섭의 내용을 예견했던 이들은 종전만큼 술렁이지는 않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간악한 방통의 주검이 지금 우리의 앞에 있는 것이오.”
조신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허면 볼모들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볼모는 아직 인계받지 못하였소. 그것은 앞으로 잘 처리해야 될 일이지. 고깃덩이가 된 방통만 받고서는 수지가 영 안 맞으니까 말이오.”
가벼운 농담에 군데군데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내 입에서 무거운 소식이 이어졌으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백각령 장송이 변고를 당했소이다.”
밀담의 소식을 전할 때보다 더 큰 소란이 일었다. 만일 저들이 장송을 흠모하고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면 도리어 소란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동공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지 무어라 떠들어대지는 않으니까. 저들이 저렇듯 떠드는 것은 조정의 거물이 적진에 나아가 밀담을 하던 중 사망했다는, 퍽 재미난 이야기에 원초적인 자극을 받았을 뿐이었다. 나는 이 점에서만큼은 장송을 진심으로 추모했다.
이제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일 시간이었다. 참으로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회피할 수 없었다.
“백각령 장송은 연고도 없는 고를 섬겨왔소이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였소. 이번 역시 변을 당할 공산이 큰 소임임에도 그는 기꺼이 익주로 갔소이다.”
물론 조정 내에서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였지만. 나는 목소리에 처연함을 담아 계속 말했다.
“그의 충절을 고가 무엇으로 갚겠소? 천금을 달라면 줄 것이요 비단 일만 필을 달라면 줄 것이요 식읍 일천 호를 달라면 줄 것인데, 장송이 이제 세상에 없으니 고가 그 충절을 무엇으로 갚는단 말이오?”
나의 말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으면서 숙연함까지 느껴졌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행궁에 들어갔다. 합비에도 급사를 띄워 장송의 변고를 전하고, 그에게 시호를 올리라 명했다. 백각경 가후는 즉각 답신을 보냈다.
전하, 신 백각경 가후 아룁니다.
백각령 장송의 죽음은 나라로서는 큰 인재를 잃은 시린 아픔이요, 소인으로서는 아끼는 부하를 잃은 처절한 슬픔입니다. 조정에 이를 알리니 슬퍼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전하의 당부대로 백각령 장송의 시호를 지어 송경 천자께 품신하였고, 합비에서 제축대부 두습의 집전 하에 성대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의 고향인 익주가 곧 병탄되어 다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차에, 이렇듯 비극적인 변고를 당하니 신으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나이다. 제축대부 두습이 장송의 시호를 지어 올리기를, 영(靈)으로 하였습니다. 사기시법해에 이르기를 영은 사이성지(死而成志), 즉 죽어서 뜻을 이룬 자에게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장송이 마침내 죽어서 큰 공훈을 세웠으니 어찌 적절치 않다고 하겠습니까. 그리하여 장송을 영후(靈侯)의 시호를 내리고 의후(유복)와 더불어 공신각(功臣閣)에 배향하고자 하니, 모쪼록 이를 승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겨울바람이 시리옵니다. 한중의 바람은 더 매서우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용체를 보중하시옵고, 익주를 얻어 당당히 합비로 돌아오시어 위로는 천자를 위무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칭송을 받으시옵소서. 미신(微臣)은 부족한 재주를 다하여 전하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후의 서신을 다시 곱게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폐부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인 한숨이 뿜어졌다. 남을 속이는 일, 남을 해치는 일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대단한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제아무리 화려한 사후처리를 해준다 해도, 그 유쾌하지 않음, 불쾌함은 몸에 새긴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장송의 시호를 승인하는 답신을 합비로 곧장 보냈다. 나의 비겁한 생각으로 그대의 비명(碑銘)을 쓰나니, 그대여 부디 편히 잠드시오. 나의 모진 마음으로 그대의 젯밥을 차리나니, 그대여 부디 흠향하시오.
법정은 백수관을 지나 무사히 익주의 북녘에 닿았다. 저간의 사정을 들은 백수관의 문빙은 병력을 물리고 법정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두었다. 간혹 그들을 급습하여 제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의가 올라왔으나 나는 물리쳤다. 방통이 없는 그들은 이제 적이 아니었다. 법정과 사마의가 배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우리가 급습을 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급습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들의 뒤를 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아군의 병력도 상당수 잃게 될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촉의 세자 유순을 비롯한 촉 조신의 식솔들이 떼죽음을 당하여 안전한 익주의 병탄에 실패할 것이 자명했다.
그들이 마등과 합류하여 무사히 서량으로 돌아가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그렇게 된다면 한수와 일대 격전을 벌일 테고, 서량은 돌고 돌아 다시 끝없는 내전에 돌입할 것이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그들과의 약조를 배반하게 된다면 그 상황을 내내 지켜보던 촉왕부의 조신들이 나에게 자연한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니, 그 또한 좋지 않았다. 촉의 선비들에게 나는 신의를 지키는 제후여야만 했다.
상방법사가 아니라 이제는 상망(亡)법사가 된 그들은 한중에 이르러 마등의 세력과 합쳤다. 나는 마등에게도 따로 사절을 파견하여 저간의 사정을 이해시키고, 그들의 동의를 구했다. 생경한 땅보다는 고향이 좋은 그들 역시 우리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량이를 보내 그들과 회담하게 했다. 상존 측에서는 법정이, 마등 측에서는 양천만이 배석하여 일을 종결 지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이제 서량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제갈량의 물음에 양천만이 고개를 끄덕여 확인해주었다.
“그렇소. 서량왕 한수가 우리를 위압하여 물러나게 했으니, 이제는 우리가 그를 위압하여 물러나게 할 때요.”
제갈량은 법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군 상존의 뜻도 그러하오?”
“그렇소이다. 우리 또한 신을 상대로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소. 우리는 이제부터 량왕 전하를 따라 서량으로 갈 것이오.”
“훌륭하오.”
제갈량은 미소를 지었다. 양천만은 잠시 주저하는 빛을 띠더니, 제갈량에게 제안했다.
“지금까지 신과 량은 서로 척을 지고 싸웠으나, 기실 그것은 상황의 이해득실을 위해 싸운 것이지 유비처럼 깊은 원한을 품고 싸운 것은 아니지 않소?”
제갈량은 양천만의 말에서 행간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허면 이참에 양국이 화친을 맺어 오랜 우의를 다짐하는 것이 어떻소이까. 구태여 반목할 까닭이 없소.”
화친은 신으로서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그의 오랜 숙적인 조조가 열심히 세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조만간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만만한 적수가 아니기에, 조조를 제외한 다른 세력들과는 부지런히 손을 잡아놔야 했다. 그러나 먹기 좋은 음식이라고 한입에 가득 넣었다가는 탈이 나는 법이었다. 양천만의 제안을 덥석 받는 것은 대국의 체면에 할 일이 못 되었고, 속내를 고스란히 내비치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양 머리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었다.
“그런 큰 사안은 일개 신하가 어떻게 할 부분이 아니오. 신왕께 품신하여 의중을 여쭤보겠소이다.”
양천만도 즉답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오.”
제갈량은 양천만에게 미소를 보이고 법정에게 시선을 보냈다.
“볼모는 즉각 넘겨주셨으면 하오.”
이제 볼모는 법정에게 발목에 매단 모래주머니 이상의 가치가 없었다.
“좋도록 하시오.”
정해진 소임 이외에 별달리 나눌 사담이 없는 사이인지라, 셋의 자리는 술 없이 끝났다. 제갈량은 모든 소임을 완수하고 볼모들을 거느린 채로 행궁에 귀환했다. 오랫동안 억류되어있던 볼모들은 법정의 족쇄에서 벗어나자마자 긴장이 풀려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짜고 한숨을 쉬었다. 귀인들이라고 별 수 없네. 제갈량은 그들을 흡족한 곁눈질로 살피고 행궁으로 들어가 신왕 제갈찬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수고했다.”
나는 량이를 치하했다.
“전하께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갈만 얹었을 뿐입니다.”
오, 이런 현대적인 겸양이라니. 역시 제갈공명인가.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마등이 화친을 제의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외교에 나서는 대국의 군주는 잽싸지 않고 눈치가 없다. 말하는 입은 심하게 더듬고, 일어서야 하는 엉덩이는 한없이 무겁다. 상대방의 은근한 비유는 무학자(無學者)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읍소하고 나서야 알은체를 한다. 상대방의 은근한 눈치는 소경처럼 보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대답을 한다. 그것이 대국의 외교인데, 나에게는 술과 장신구가 과히 달린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임이니 어쩌겠는가.
화친에 응하는 사신이 마등에게 닿은 것은, 족히 달포가 지난 뒤였다. 마등은 송경 조정의 책봉을 받기를 원했다. 내가 유총의 옆구리를 찔러 마등에게 왕의 작호를 내리도록 했다. 마등은 모시는 천자를 갈고 여전히 량왕이 되었다.
나는 좌우를 물리치고 촉왕부의 세자 유순과 독대했다. 유순은 안전한 익주 병탄의 열쇠였다. 그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귀인이고, 요인이었다. 유순은 행궁에 들자마자 꾸벅 허리를 숙였다. 착석해있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맞절을 했다.
“촉의 동궁 유순이 신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는 얼핏 보기에 나와 동년배였다.
“말씀은 많이 들었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맹관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인 전례가 있었지요?”
유순은 그것이 자신을 꾸짖는 말인 줄 알고 굽힌 허리를 더욱 굽혔다. 나는 그의 접은 허리를 몸소 일으키고 자리를 권했다.
“그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올시다. 그때는 참 잘 싸워주었소이다. 인상 깊었소.”
“송구합니다.”
양순한 말씨가 적어도 면전에서 칼을 꽂지는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감사를 표했다.
“난신적자 상존과 법정이 저를 포함하여 조신의 식솔들을 유수하였사온데, 신왕께서 우리를 구명해주시니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익주를 내놓으면 돼. 나는 그 말은 쑥 삼키고 만면에 미소를 걸쳤다. 그래도 뻔히 보이는 가식보다는 적당한 솔직함이 좋기에, 내 본심을 조금 다듬어 말했다.
“어떻게든 익주에 한 발 걸쳐보려는 수작이니, 세자는 그리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실 것이오.”
유순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언뜻 쓸쓸했고, 언뜻 유쾌했다.
“천하의 순리가 전하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하늘이 전하를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힘없는 제가 무슨 수로 전하께 대항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