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17
“그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고가 들어 알고 있다. 그런 그에게 오수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에게 그것보다 더 큰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제갈량은 눈을 빛냈다.
“때로는 처지가 능력보다 강한 힘을 떨치는 법입니다.”
“쉽게.”
내 분부에 제갈량은 제법 긴 시간을 들여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파했다.
서량으로 간 마등은 한수를 단기간에 몰아냈다. 한수는 뜻밖의 전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가 마등에게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보라고 조언을 했던 만큼, 마등이 한중을 얻는다면 반드시 상존과 힘을 합하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적중했다. 그러나 마땅히 힘을 합쳐 열심히 한중을 두드려야 할 마등이 군대를 거두어 도리어 서량으로 오니, 한수는 그야말로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네가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마등은 포획한 한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형님을 몰아냈듯 형님이 나를 몰아냈으니 어찌 억울하겠소.”
“네가 나를 놓아주었으니 똑같이 너를 놓아주겠다. 모든 권력을 버리고 고향으로 가 술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자애로운 처분이었다. 한수는 땅에 머리를 박았다.
“고맙소, 형님.”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서량의 문화였다. 먼 땅에서 온 자들은 이런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이고 아우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수가 토벌당한 역적이라는 것일 뿐. 역적은 들풀과 같아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 다시 허리께까지 자라는 법이다. 뿌리를 뽑는다는 말에서 뿌리란, 위로는 아비와 할아비를 말하고 아래로는 아들과 손주를 말했다. 법정은 사마의와 만난 자리에서 제의했다.
“죽여야겠지?”
법정은 응당 사마의의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마의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째서요?”
“음?”
사마의는 점잖게 웃었다.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죽이면 안 됩니다.”
그는 말미에 시한부의 전제를 달았다.
“지금은.”
법정은 침묵 속에서 사마의를 가만히 바라봤다. 언제는 소년처럼 허술했다가 지금은 노인처럼 간사하다. 이 자는 도대체 소년인가, 노인인가? 아니면 소년이면서 노인인가? 그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한수는 고향으로 추방되었고, 서량왕의 작호를 빼앗겼다. 다시 관중제장의 인심이 마등에게로 쏠렸다. 게다가 먼 곳 합비에서 신부가 들어오니, 마등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는 상존과 법정, 사마의를 대우해주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송경에 천거하는 형식을 띠어 상존을 양주자사(凉州刺史)에 임명하고, 법정을 양주별가에, 사마의를 양주치중에 임명했다. 기실 량왕 마등의 영토가 양주 한 곳이다 보니, 실질적인 연립정권을 수립한 것이었다.
“제길, 또 다시 긴장인가.”
상존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얻지 못할 승리를 연달아 얻었다. 백수관의 그저 그런 장수로 사라질 운명이었던 그였다. 대개의 전투에서 손쉬운 승리를 얻었던 신왕 제갈찬을 그가 저지할 것이라 예상한 자는 손에 꼽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승리했다. 백수관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군부에서 인망을 얻고 황권이 장료의 병마에 갈려나가는 동안 그는 후방에서 군을 온전히 보존했다. 그 연후 방통의 병력에 내응하여 촉왕부를 무너뜨리고, 무사하게 익주를 벗어나 이제는 량왕 마등과 맞먹는 위세를 지니게 되었다. 그에게는 다시없을 광영이리라. 그럼에도 그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은 행운은 행운이 아닌 거야. 불행인 거야.”
상존의 두툼한 볼 살이 축 늘어졌다. 서량의 칼바람이 좀체 적응되지 않았다.
통재대부 부손은 나에게 이왕평 오수로 선발한 상인들을 알려주었다. 하북에서 활동하다가 서주가 평정된 후 서주의 거금을 주무르는 상인인 장세평, 정의로운 상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위자의 후계를 이은 위리홍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거상이나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는 풍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머지 셋은 내가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부손이 말하기를, 셋 중 둘은 회계와 익주의 상인들로서, 왕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고 수완도 좋아 오수로 삼으면 백성과 왕부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했다.
“박호(朴皓)?”
나는 부손이 설명하지 않은 나머지 하나의 이름을 발음했다. 부손이 이에 답했다.
“부호라고 읽습니다.”
“글자가 박인데 어찌 부라고 읽는단 말이오?”
“글쎄요.”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글쎄요라니.”
“기실 이 부호라는 인물은 서쪽의 파족 사람입니다. 그곳의 부락을 다스리던 자이지요.”
“부락을 다스리던 자가 돈을 만지려 드는 것이오?”
부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락을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개 태수보다도 못한 위신이니까요. 자신의 부락을 이끌고 아조에 귀순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열후로도 봉하셨는데요.”
열후로 봉해놓고 왜 시치미를 떼냐는 의미였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열후로 봉했다지만 기실 도장만 한번 꾹 찍었을 뿐이었다. 최고의 스시 장인으로 꼽히는 이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이미 나에게 왔을 때 스시는 이미 9할 이상 만들어져 있습니다. 열후로 봉하고 어쩌고 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도장을 찍는 일뿐. 박호인지 부호인지 하는 이름을 어떻게 하나하나 다 기억하냐는 말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전하께서 열후로 봉하셨으나 먼 땅의 출신이라 그런지 허울뿐인 벼슬보다는 돈을 좋이 굴려보는 쪽을 낫다고 본 모양입니다.”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허울뿐인 벼슬?”
“예, 기실 그렇지요. 출신이 출신인지라 제대로 기용하지를 않지요. 능력을 검증할 기회가 주어지질 않으니 출세는 요원합니다. 열후라는 작호가 화려하기는 하나 알맹이는 없으니 그들에겐 거추장스러운 비단옷일 뿐입니다. 열후라고 누구 하나 받들어주지 않으니까요. 오랑캐 열후라, 비웃음당하기 아주 좋지요.”
기가 막힌 일이었다. 부호라는 자가 유능하고 무능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열후의 작호에 봉했다면 그에 합당한 구실을 하도록 기회를 터주는 일이 따라와야만 했다. 기껏 마음먹고 귀순했더니 찬밥 취급을 하고, 결국 오랑캐 열후라는 특이한 신분을 오랑캐 열후 상인이라는 더 괴이쩍은 신분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단 말인가. 이런 형편이라면 대체 누가 신에 귀부하고자 하겠는가?
“합비에서 보자면 익주나 저강의 땅이나 매한가지로 멀 뿐이오. 그런데 익주의 출신은 적극 기용하면서 저강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오? 대체 정청은 어찌하여 그것을 아뢰지 않는 것이오?”
부손은 쓴웃음을 지었다.
“외람되오나, 부호를 쓰지 않은 것은 전하이십니다.”
그의 짧은 말이 비수처럼 내 속으로 쑥 들어왔다.
“그, 그건.”
“그를 써라, 한 마디만 하셨으면 썼을 것입니다.”
“……”
“주제넘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 말해주었소……”
부손에게 그가 발탁한 대로 오수를 구성하고, 부호를 부르도록 했다. 부호는 뜻밖의 소환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내 앞에서 그는 꾸벅 절을 올렸다.
“미천한 신이 전하를 뵈옵니다.”
부호의 발음은 어눌했다. 이민족의 억양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나는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경의 귀부를 듣고도 고가 오래 쓰지 않았으니, 고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소?”
“어, 어찌 그렇겠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신을 경이라 불러주시는 지금이 너무나도 분에 넘치는 광영이나이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나는 부호와 한참 말을 나눴다. 아쉽게도 그의 식견은 지극히 평범했으며, 그의 배포도 식견과 다르지 않았다. 벼슬을 내려줄 수는 있었으나 오수에서 돈을 굴리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높게는 내릴 수 없었다. 나에게 그를 추천하지 않은 정청의 판단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 신이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표식으로 강(康) 씨 성을 내렸다. 그의 이름을 강호로 쓰도록 했다.
부호, 이제는 강호가 감격에 젖어 돌아가자마자 정청령 제갈량이 안으로 들어왔다.
“담화는 잘 나누셨는지요?”
나에게 부호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그였을 터였다. 필시 허탕을 친 나를 골려주려는 수작이었다. 나는 냉소했다.
“그래, 잘 나눴다.”
“벼슬보다는 오수가 그에게 더 흡족할 것입니다. 기실 통재대부에게 그를 추천한 것도 신입니다, 전하.”
공치사를 할 것이라면 저렇게 해야 한다. 솔직하게, 대놓고. 은근히 겸양 속에 공치사를 숨기면 간사하게 들릴 뿐이다. 나는 그를 치하했다.
“오냐, 잘했다.”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하셨는지요.”
특이? 오랑캐 열후 상인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뿔 달리고 갈기 달리고 발굽 달린 개가 있다고 치자. 그놈의 눈동자가 붉다고 한들 그것을 특이하다고 여기겠는가. 내가 고개를 젓자 그는 흐흐 웃었다. 어딘가 모르게 얄미웠다.
“무슨 특이한 점. 빙빙 돌리지 말고 재깍재깍 말하는 게 좋을걸.”
성년의 증거로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저 개털 같은 턱수염을 당장에라도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니까. 제갈량은 눈썹을 씰룩이면서 대답했다.
“부호가, 아니 강호가 말하지 않던가요? 신병(晨兵, 신의 병사)에게 부인을 잃었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잠깐 얼굴을 찡그렸다.
“어지간히도 조심스러운 품성이군요.”
“신병에 의해 부인을 잃었는데 우리에게 귀순한 것인가?”
“강호에게는 이것이 도리어 사랑과 절조를 지키는 일일지 모릅니다.”
제갈량의 말은 다소 이치에 닿지 않았다.
“어째서지.”
“강호의 부인이 신병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천하에 파다하게 알려졌습니다. 누구나 강호가 아조에 앙심을 품으리라 생각했겠지요.”
부인의 원수에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강호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봤자 신왕부에게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에 불과할 테지만.
“그런 탓에 군부에서는 강호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논의가 실제로 전하께 품신하기 직전까지 이뤄졌었지요.”
“그때 강호가 우리에게 귀순한 것이고?”
제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일 귀순하지 않았다면 강호는 죽고, 그의 부락은 완전히 토벌되어버렸겠지요.”
“그러니까 도리어 우리에게 귀순하여 목숨을 건지고, 그리하여 죽은 부인을 오래 애도하는 것이 그의 가치관에 합당한 일이었다?”
제갈량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산 자는 사는 것이, 또 이왕이면 잘 살아야 된다는 사상을 가졌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불행은 불행이지. 고의 이름으로 해서 그를 더욱 두터이 위로해주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