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21
“코, 코끼리……?”
“그대는 헛공부를 했군. 맥은 코끼리의 코를 했다고 나와 있지. 그렇다면 잘 보시오. 저 기다란 것이 코끼리의 코요. 코끼리의 코를 보고 코끼리를 닮은 맥이라고 짐작하다니, 그대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까닭을 알겠군.”
선비의 일침에 백성들은 와르르 웃었다. 그럼 그렇지! 일생 공부만 하면 뭘 하나! 코끼리를 눈앞에 두고 코끼리를 닮은 것을 생각하다니! 백성들의 신랄한 조롱이 따랐다. 서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 네놈은 무엇 하는 놈이기에 감히 나를 비웃느냐!”
“아, 이 몸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그대가 함부로 업신여길 체신은 아니라네.”
“그러니까 네놈이 누구냐고!”
“이황자(二皇子) 조비(曹丕)다.”
선비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서생은 입을 떡 벌리고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우, 우으……”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백성들은 존귀하신 천자의 혈통이 자신들의 틈바구니에 섞여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자리에 엎드렸다. 조비는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아무튼, 헛똑똑이들 때문에 맘 편히 돌아다니지를 못해요.”
“전하가 괜히 아는 척을 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이황자 조비의 벗인 오질(吳質)이 킬킬거리며 퉁을 놓았다. 조비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허, 참! 잘못된 말로 백성을 미혹하는 놈을 놔두고 나를 힐난하느냐? 성미가 못되었군.”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고, 누구한테 배웠게요.”
“에잇, 황자를 능멸하는 말 꼬락서니라니.”
조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소매를 좌우로 휘적거리며 군중들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수염이 덜 자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웬 코끼리람……?”
강호는 업도의 황궁으로 나아갔다. 그의 표정은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움츠러든 어깨는 좀체 펴질 줄을 몰랐다. 두호가 강호에게 충고했다.
“그 어깨 좀 어떻게 해봐요, 형님!”
그러는 두호의 목소리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강호는 잔뜩 긴장하여 두호의 충고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왕평은 점잖은 표정으로 얌전히 강호를 따를 뿐이었다.
황궁의 오문에 이르니 수문장이 눈을 부라리며 강호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퍽 고압적이었다.
“웬 놈이냐!”
왕평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합비의 상인 강호가 천자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어찌 천한 장돌뱅이 따위가 천자를 알현하겠다고 드느냐!”
천자의 명이 수문장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왕평은 수문장의 으름장이 기운을 빼놓기 위한 포석임을 눈치 챘다. 이럴 때는 얼른 수그려주는 것이 상책이었다.
“예법을 깨치지 못한 천것이라 크나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상서령 두 대인(두기)을 뵙고자 합니다.”
더 트집을 잡기 어려워진 수문장은 흥, 콧방귀를 뀌고 위병들에게 명했다.
“오문을 개방하라!”
업도의 거대한 오문이 천천히 열렸다. 잡인들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강호와 두호, 왕평과 코끼리를 끄는 몇몇만이 조의 황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왕평은 황궁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좌우로 곁눈질을 보냈다.
‘과연 천자를 자칭할 만하군……’
위세는 천자에 뒤지지 않지만 엄연히 군왕의 작록에 그치는 신왕 제갈찬의 궁궐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어중이떠중이들은 황궁의 어마어마한 규모만으로도 압도될 터였다.
오문의 안으로 들어가니, 한 잘생긴 관료가 강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냐!”
강호는 입을 꾹 다물고 왕평에게 떠넘겼다.
“합비의 상인 강호가 상서령 두 대인을 뵙고자 합니다.”
“본관은 광록훈 주유다. 역적 제갈찬이 서쪽 오랑캐의 부족장 부호에게 사성했다고 하는데, 혹시 강호의 강이 역적의 사성이냐!”
왕평이 얼른 정정했다.
“크나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합비의 상인 부호가 상서령 두 대인을 뵙고자 합니다!”
주유는 피식 웃고 길을 터주었다.
“좋다. 지나가라.”
강호는 우여곡절 끝에 상서령 두기를 만날 수 있었다. 두기는 반나절 동안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접견을 허락했다. 한참 접견하고 나서야 겨우 알현의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천자께서는 이미 모든 일을 마치셨으니 내일 뵈어야 할 것이다.”
두기의 말 한 마디에 강호는 다시 황궁의 밖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강호는 황궁의 안으로 들어왔고, 수문장과 광록훈 주유와 상서령 두기를 거쳐 마침내 조 천자 조조를 알현하게 되었다. 조조의 머리 위에서 찰랑거리는 열두 개의 면류에 강호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선을 땅에 박았다.
“네가 부호냐……?”
“그, 그렇습니다, 폐하!”
“짐의 밀서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너의 대답이 궁금하다.”
부호의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따랐다. 일개 상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천자가 기다렸다. 조조가 불쾌한 듯 끙, 얕게 소리 내자 대장군 하후돈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이놈! 속히 답을 하지 못할까!”
대궐을 무너뜨릴 기세의 고함에 부호의 몸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떨렸다. 부호가 부리나케 대답을 내놓았다.
“그, 그렇습니다! 천한 부호가 어찌 천자의 명령을 거역하겠습니까!”
그는 급히 대답하느라 고개를 똑바로 들어 조조를 바라봤는데, 역시 하후돈의 매서운 꾸지람이 따랐다.
“감히 천자의 용안을 바로 보느냐!”
부호는 얼른 머리를 땅에 박았다. 조조는 그 꼴이 우스워 흐흐 웃었다.
“짐은 너에게 세작의 소임을 맡길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너는 제갈찬에게 예와 변함없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헌데 어찌 너는 도망치듯 야음을 틈타 업도로 온 것이냐?”
“그, 그것은……”
하후돈이 다시 꾸짖었다.
“말을 더듬지 말라!”
“예, 예엣! 아둔한 소인이 천자의 명을 잘못 이해한 듯싶사옵니다. 소인은 단지 천자께 크게 이로울 정보를 얻어 그것을 전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깊이 생각하지 못했나이다!”
“하기야 네놈의 배포를 보아하니 세작질을 하기에는 글렀다.”
“그, 그러하옵니다!”
승상 정욱이 픽 웃었다.
“천자께서는 너의 모자란 배포를 꾸짖으시는 것이다. 어찌 그러하옵니다라고 고하느냐. 너의 모자란 배포를 사죄해야 마땅할 일이다.”
“소, 송구하옵니다……!”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었다.
“너는 짐에게 크게 이로울 정보를 가졌다 했다. 그것이 무엇이냐? 아니 그 전에 먼저 묻자. 네가 가져왔다는 짐승이 무엇이냐……?”
“신왕 제갈찬께서……”
부호는 운을 잘못 뗐다. 하후돈은 당장 그의 목을 벨 기세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제갈찬을 높여 부르느냐!”
“으으, 죄, 죄송합니다! 제갈찬이 익주를 정벌할 적에 오랑캐왕 고정이 흰 코끼리를 바쳤었사옵니다. 소인이 그것을 훔쳐 오늘 천자께 신표로서 바치고자 합니다!”
“흰 코끼리……?”
“그, 그렇습니다!”
“오호라… 오랑캐왕이 제갈찬에게 바친 흰 코끼리를 네가 가져왔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
되묻는 조조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승상 정욱과 광록훈 주유의 표정도 미묘하게 뒤틀렸다.
“오냐, 고맙다. 너의 그 이로운 정보란 것은 다음에 청해 듣자. 짐이 고단하다.”
여부가 있을 리가. 강호는 일각이라도 빨리 자신을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강호는 바짝 바닥에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예, 예! 물러가겠사옵니다!”
강호는 허리를 수직으로 꺾은 채 뒤로 물러나는 종종걸음으로 편전을 나갔다. 강호가 물러나고, 다시 천자와 대신들이 모인 편전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그 닫히는 문틈으로, 일제히 모여들어 조조와 대신들이 무어라 의논하는 모습을 보며 왕평은 눈빛을 번뜩였다.
“코끼리라니.”
조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를 따라 대신들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주로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자들이었는데, 남에게 속고 남을 속이는 책략에 깊지 못한 무장들은 그들의 웃음이 궁금할 뿐이었다. 천자 조조를 호위하는 위위(衛尉) 전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조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웃으십니까?”
“너는 이게 웃기지 않단 말이냐?”
조조는 전위를 격의 없이 부르면서 흐흐 웃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웃음기를 거둬들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줍지 않은 수작이구나, 제갈찬……”
승상 정욱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언했다.
“이는 사항계가 분명합니다. 코끼리는 남방의 귀한 동물입니다. 하물며 흰 코끼리는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오랑캐왕이 제갈찬에게 진상하였으니 그것을 지키는 자들이 숱할 것입니다. 대체 무슨 재주로 부호 따위가 코끼리를 빼돌렸겠습니까? 또한 그 커다란 덩치를 들키지 않고 어떻게 이곳 업도까지 온단 말입니까?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조조는 크게 흥미가 동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는가. 괜한 힘 빼지 마시게.”
전위는 조조의 말을 듣고 어깨를 움찔거렸다. 조조는 그쪽에 시선을 던질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승상은 사항계라고 확신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