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28
“서주가 청주를 붙들고 예주가 연주를 붙들었습니다. 북비가 연주의 병력이 적은 것을 우려하여 낙양태수 조인에게 원병을 보내라 하였으니, 판이 좋게 짜였습니다. 이제 출병하시면 되겠습니다. 장군.”
왕수가 말하자, 곽원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즉시 낙양으로 출병하도록 하겠소이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신왕을 기꺼워하는 까닭이 아니라, 갈 곳이 없어진 나의 충심이 오로지 조조에 대한 증오로 끓는 까닭이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분명히 신왕께 큰 도움을 주셨으니, 보상은 확실히 주어질 것입니다. 신왕께서는 예의와 의리를 아는 분입니다.”
“큰 관심은 없소.”
왕수는 얌전히 웃으면서 곽원의 얼굴을 살폈다. 관심이 없다지만, 관심이 없을 리가.
왕수는 오랜 시간 홍농에 머물렀다. 제갈근의 딸을 신왕 제갈찬이 입적시키고, 화평공주에 봉하여 서량으로 시집보낼 때, 왕수가 동행했다. 그러나 그는 서량까지 닿지 않고 중간에 홀연히 방향을 틀어 홍농으로 향했다.
곽원을 내방하여 그를 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장안의 장합은 여전히 모든 세력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어 쉽지 않았으나, 곽원은 장합과 다소 결이 달랐다.
차분하고 냉철한 장합과는 달리, 곽원은 내키는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는 은왕부에 대한 충심이 여전히 굳건했고, 그 충심에 비례하여 조조를 증오했다. 다만 홍농이 장안에 딸린 도시이듯 곽원도 장합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지금껏 장합의 묵수를 지지하고 따라왔다.
그런 그가 왕수의 집요한 공작에 무너졌다.
“청금령 유엽이 말하기를, 북비가 은왕가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곳의 부장품을 모조리 도굴했다는군요.”
“은왕부를 섬기던 두기가 북비에게 알랑방귀를 뀐답시고, 은왕부를 능멸하고 북비를 추켜세우는 시를 썼다지요.”
“양왕(원소의 시호)의 시녀들을 북비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간음하였답니다. 쳐 죽일 놈이지요.”
“외숙부이신 아조의 내사령(종요)께서 거듭 귀순을 청했습니다. 내사령께서는 신왕께서 크게 신임하는 관료임과 동시에 많은 당여의 신임을 얻고 있는 유력가입니다. 장군께서 결단하시어 큰 공훈을 세우신다면 내사령의 비호가 더하여 신왕께서 크게 쓰실 겁니다.”
개중 몇몇은 거짓이었으나 곽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곽원은 마침내 신왕부와 발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제갈량의 계책 입안은 곽원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는 왕수의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이뤄졌다.
장안의 장합은 곽원의 결정에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굳이 막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익주가 신에 의해 병탄되고 신과 량의 국혼이 성사된 마당이었다. 만일 제갈찬의 행마를 억지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제갈찬에 의해 공적으로 선포될 것이었다. 빼어난 전략적 안목으로 정평이 난 장합이라지만 광활한 영토와 그 땅을 딛고 빽빽이 서있는 대군을 적으로 돌린다면 폭풍에 묘목이 뽑히듯 멸망할 터였다. 장합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장합은 곽원의 행동을 묵인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와 여포는 연주의 남쪽을 계속 건드렸다. 전황을 지지부진하게 몰고 갔다. 목표는 연주도, 청주도 아니었다.
낙양, 하내, 그리고 그 북녘의 병주였다.
강호를 업도로 보낸 것은 사항계를 위장한 교란작전이었다. 조조의 선택지를 청주와 연주로 좁혀 조조의 시야를 차단하려는 뜻이었다. 청주에 전력을 집중해야할지, 연주에 전력을 집중해야할지 조조가 고민하는 동안 나는 낙양을 노렸다. 홍농의 곽원을 포섭하여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리고 나와 여포가 연주의 발목을 붙잡는 동안, 손관과 감택에게는 낙양을 치도록 했다. 여포의 병력이 대부분 전력외의 노병으로 구성됐다는 강호의 보고는 허위가 아니었다. 다만 개중 3할은 정예병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 정예병들과 감택의 증원 7천을 합하여 낙양으로 보냈다.
홍농의 곽원이 쥔 병력이 많지 않고, 손관과 감택의 병력을 합한다 한들 낙양을 쉽게 병탄할 만큼의 전력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진짜 주력은 서주의 가후도, 예주의 여포도 아니었다.
곽원이 무장을 갖추고 병력을 사열하는 그때, 전령이 홍농에 당도했다. 전령이 엎드려 왕수와 곽원에게 보고했다.
“노 도독(형북도독 노숙)의 병력 사만이 홍농에 당도했습니다!”
전령의 보고에 왕수는 미소를 지었다.
“옳거니.”
“장군 곽준, 서서, 마량이 이끄는 천자의 병력 이만 역시 사흘 후 홍농에 당도한다는 전언입니다!”
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다.”
왕수는 곽원을 바라봤다.
“이 전쟁은 오로지 두 가지의 예측이 가능합니다. 조조가 완벽히 망하느냐, 덜 망하느냐.”
조조가 합비의 동향에 모든 힘을 쏟는 사이에, 나는 양양의 노숙에게 전통하여 마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을 끌어 모으도록 주문했다. 그 후, 보는 눈이 많지 않은 샛길을 통하여 홍농으로 향하게 했다. 홍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지독하게 험했지만, 덕분에 보는 눈도 없었다.
노숙과 더불어 송경에도 사자를 보내 천자를 압박했다. 북방의 사이비천자를 토벌하려 하는데, 천자께서도 도와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내가 지닌 조정의 대사마로서 천자에게 권유했다. 권유의 탈을 쓴 명령이었다.
부디 천병을 내주소서.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싸우는 시늉만 하는 고순의 진을 멀리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조조한테 미리 귀띔을 해줬는데, 조조는 아예 몰랐던 모양이지요.”
여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띔이라니요.”
나는 웃으면서 여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제 놈을 북비라고 부른다 하지 않았습니까. 글자 속에 답이 들어있었는데. 북비의 비(匪) 말입니다. 내가 홍농의 곽원과 통하지 못하면 녀석을 비 자처럼 삼면으로 둘러싸지 못하지요. 서주로 청주를 싸고 예주로 연주를 쌌지만, 홍농이 있어야 낙양까지 삼면으로 싸는 형세입니다. 어찌 보면 패를 다 보여준 셈이죠.”
여포는 시시하게 웃었다.
“억지입니다. 조조 할애비가 와도 알아먹기 힘든 귀띔이군요.”
나는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남은 웃음을 마저 웃었다.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낙양.
홍농의 소식은 인접한 낙양에 곧바로 전달되었다. 낙양태수 조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연주의 방위를 지원하기 위해 낙양의 전력 중 삼분의 일이 연주로 파견된 상태였다.
“병력이 도합 얼마라고 하였느냐?”
조인의 목소리는 얼떨떨했다.
“곽원의 병력 일만과 예주에서 떨어져 나온 손관, 감택의 병력이 이만 오천입니다. 형주의 노숙이 사만, 가짜 천자 유총이 곽준, 서서, 마량에게 이만의 병력을 맡겼으니 도합 구만 오천, 십만에 달하는 병력입니다.”
“십만……”
조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낙양에 속한 병력은 삼만, 개중 일만이 연주로 갔으니 남은 것은 이만뿐이었다. 낙양의 방비가 탄탄하다 하나 물경 십만이나 되는 병력을 상대로는 어림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낙양을 빼앗기고 나면 그 뒤로는 무주공산이라는 점이었다. 하내를 지나 병주에 이르면 소수의 병력만이 주둔해있을 뿐이었다. 접경지대인 연주와 청주에 전력을 집중시킨 결과였다. 조조는 하후연을 청주목에, 관우를 연주목에 임명하여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였지만, 병주에는 주목을 두지 않고 주자사만을 두었다. 그 병주자사란 위인도 칼을 쥐어본 적도 없는 완전한 먹물이었다. 신왕부와의 결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조조는, 병주의 바깥에 있는 오랑캐들에게는 유화정책을 펼쳤다. 병주자사는 그런 오랑캐들을 토벌하여 다스리는 것이 아닌, 거래와 뇌물로 사귀었다. 그러한 형편이니 병주의 방비가 탄탄할 수 없었다.
“젠장……”
조인은 낭패감이 번진 표정으로 고뇌했다. 그의 부장으로 낙양에 속한 조홍이 몸을 떨며 물었다.
“형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인은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평정을 찾았다.
“당장 연주로 보낸 병력을 거둬들이고, 업도와 연주에 전령을 보내 폐하께 이 사실을 알려라. 무조건 이곳 낙양에서 놈들을 격퇴해야만 한다. 낙양을 빼앗기면 놈들은 병주로 들어와 업도로 향하는 요로를 손쉽게 얻게 된다.”
“알겠습니다.”
침착한 성정의 부장 우금도 당면한 상황이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십만의 적병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조인은 이마를 쓸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대한 버텨야지……”
곽원의 선봉 일만이 먼저 홍농을 박차고 나섰다. 장합이었다면 절대 선봉을 자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왕수가 날름 홍농을 점거하고 곽원을 공적으로 선포할 확률이 없지는 않았으므로. 그러나 마구간에 오래 갇혀있던 군마의 신세였던 곽원은 개의치 않았다. 왕수가 먼저 요구하기도 전에 선봉을 자임했다.
“오랜만이군요. 전장에 나서는 것은.”
노숙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뒤로는 사만의 대군이 뜨거운 인기척을 뿜고 있었다. 왕수가 화답했다.
“지체하지 말고 서둘러 나아가 낙양을 병탄해야지요. 그런 연후, 하내를 수복하여 양왕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이어 병주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 도독께서 멀리까지 나오셨는데, 제대로 전공을 챙겨야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출진하시지요.”
“도독 자리도 버거워 죽겠는데 무슨 전공을 더 바라겠습니까. 다만 서둘러 출진하는 것이 전하의 뜻이시니 신하는 따를 뿐이지요.”
“이번에 발군의 전공을 세우셔서 화려하게 합비 조정에 복귀하십시오. 일이 잘 되면 곽원 역시 전하께서 크게 상찬하실 것인데, 곽원은 내사령의 외조카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강성한 내사령의 당여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노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합비의 사정에 어두워서 그렇습니다만, 당파가 있습니까?”
“생긴 지는 꽤 되었지요. 특히 정청에는 상서를 새로이 들이고 백각에는 백각대부들을 들인 이후로는요.”
노숙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청과 백각이라, 허면 내사령과 백각경이 각을 세우는 것인가?”
“두 분은 그리 충돌하지 않습니다만, 그 아래의 관료들이 기승이지요. 노 도독 같이 온화하고 통합을 지향하시는 분이 합비에 복귀하시어 분위기를 주물러 줄 필요가 있습니다.”
“허허, 이 몸이 무슨 힘이 있다고… 합비의 상황도 퍽 복잡했군요. 알겠습니다. 우선은 전장에 힘쓰겠습니다.”
노숙과 왕수는 천자 유총이 보낸 곽준, 서서, 마량과도 회담했다. 공식적인 위신은 제후왕의 신하인 노숙•왕수보다 천자의 직속 신하인 곽준 등이 높았으나, 경륜으로 보나 실질적인 권한으로 보나 아무래도 노숙과 왕수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형세였다.
“천자께서 이렇듯 대병을 보내주시니, 하해와 같은 은택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노숙이 좋은 말로 인사를 건네자, 주장인 곽준이 웃음을 머금었다.
“신왕께서 친히 역적을 토벌하신다니 천자께서 쾌히 소장을 보낸 것입니다. 신왕 역시 천자의 충신이시니 도독께서 따로 감사하실 일은 아닙니다.”
좋은 말이었지만 뼈가 심어져 있었다. 노숙은 웃기만 할 뿐 받아치지 않았다.
노숙의 형주군과 곽준 등이 이끄는 천병이 곽원의 뒤를 이어 낙양으로 진군했다.
낙양에서의 소식은 빠르게 업도로 전해졌다. 이미 조조는 청주로 떠난 뒤였다. 조조를 대리하여 업도를 다스리던 태자 조앙은 머릿속의 모든 생각이 하얗게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승상 정욱의 표정에도 낙담이 스쳤다.
“놈들이 낙양으로 온다고……”
엉거주춤 서있던 조앙은 털썩 주저앉았다. 이황자 조비도 윗니로 아랫입술을 다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악이군.”
조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 청주의 폐하께 소식을 전하도록 하라!”
“낙양태수께서 이미 전령을 띄웠을 것입니다. 급한 건 그게 아니지요, 형님.”
조비의 다소 비꼬는 듯한 말투에 조앙은 눈빛을 쐈다.
“뭐라?”
“업도에 남은 가용병력을 모조리 하내로 보내야 합니다.”
상서령 두기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