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29
“낙양이 아니라 하내로 말씀입니까?”
“지원군이 낙양으로 갈 때쯤이면 이미 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을 테니까.”
조앙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조비를 꾸짖었다.
“너는 어찌 그리 불길한 결과를 속단하느냐!”
조비는 비웃는 얼굴로 조앙을 바라봤다.
“긴급한 상황입니다, 형님. 냉철하게 판단을 하셔야죠. 적의 병력이 십만에 달한다는데 낙양태수가 아무리 이름난 명장이라지만 오래 버티겠습니까? 하내에서 명운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승상 정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황자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선 그리하시지요.”
조앙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승상의 말씀대로 하겠소.”
조비는 자신의 의견이 아닌 정욱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형님을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아, 그리고 또 하나. 그 부호인가 뭔가 하는 세작 놈의 목을 따야지요. 지금껏 효용이 있어 살려두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모두 그놈의 탓이 아닙니까?”
“물론이다……”
복잡한 표정의 조앙을 뒤로 한 채, 조비는 업도의 대전에서 물러났다. 오질이 킬킬거리며 따랐다.
“뭐 좋은 일이라고 그리 웃냐?”
“태자께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태자답지 못해서요.”
“어허, 불경하다.”
꾸짖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실려 있지 않았다.
“이황자는 이황자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그 본분이란 무업니까?”
“뭐긴, 노는 거지. 유의미하게.”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궁중의 뜰로 나아갔다. 그는 뜰의 경비병에게 물었다.
“쇠뇌가 있는가?”
황자의 물음에 경비병은 바로 준비하겠다고 아뢴 뒤, 병기고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을 바쳤다.
“좋군.”
조비는 그것을 대강 살펴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어서 경비병에게 다시 물었다.
“저 흰 코끼리를 무엇으로 묶어놓았는가?”
“강한 쇠사슬로 앞다리 한쪽과 뒷다리 한쪽을 묶었습니다.”
“도망치지 못하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흰 코끼리는 한가롭게 여물을 먹고 있었다. 조비는 그 코끼리의 미간에 쇠뇌를 겨누었다. 경비병이 당황하여 물었다.
“이, 이황자 전하!”
“저 요물이 폐하의 눈을 가렸다.”
경비병이 무어라 말리기도 전에, 조비는 쇠뇌를 발사했다. 핑, 날아간 화살이 코끼리의 미간에 적중했다.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코끼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여유 없이 꽉 조인 철사에 다리의 가죽이 벗겨져 피가 뿜어졌다.
“역시 한 발로는 어렵군.”
조비는 주저 없이 세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한 발은 눈에, 한 발은 귀에, 한 발은 목에 적중했다. 코끼리의 흰 피부 덕분에 붉은 핏기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황자 전하! 제발!”
경비병은 감히 황자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로만 만류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미 조비의 손에서 다섯 발의 화살이 더 날아갔다. 코끼리는 온몸이 시뻘게진 채로 천천히 몸을 무너뜨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퍼지며 코끼리의 큰 대가리가 여물통에 박혔다.
조조의 병력은 북해에 당도했다. 그는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때 이곳은 제갈찬 녀석의 근거지였지…… 재수 없는 땅이다. 서둘러 전란을 끝내고 이곳을 떠나고 싶군.”
“그리되실 겁니다.”
주유가 근거 없는 위로를 건넸다. 조조의 병력을 하후연이 맞이했다. 오랜만에 주군을 뵙는 하후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먼 곳까지 친정을 오시게 하여 참으로 참괴한 마음입니다.”
“묘재(하후연의 字), 짐이 묘재를 믿지 못함이 아니라 놈들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가 없는 까닭이지. 묘재가 참괴할 까닭이 없네.”
“소장 또한 제갈찬의 행마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해안을 통해 공습을 가하던 후장군 육의의 병력이 상륙은 시도도 하지 않고 바로 군을 물려 되돌아갔습니다. 정상적인 전술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속이냐……”
조조와 하후연의 의문은 오래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낙양에서 급파된 전령이 청주에 당도하여 진상을 소상이 아뢰었으므로. 소식을 들은 조조와 하후연, 주유의 표정은 조인, 조앙 등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적병 십만이 낙양으로 향한다는 말이냐!”
주유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놈들이 대담한 기술을 걸었군요……”
조조는 입술을 씰룩이면서 주유의 말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성공시켰지. 젠장.”
의문은 모두 해소되었다. 지금까지 조조로 하여금 두통을 앓게 했던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러나 안개가 사라지고 눈앞에 드러난 것은 고산준령. 조조는 더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조조는 몸을 휘청이면서 주유의 어깨를 붙잡았다.
“공근(주유의 字), 머리가 아프다. 어찌해야 좋겠는가.”
“어찌해도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할 뿐이죠. 바로 철군하셔야 합니다. 병주를 지원하셔야 합니다.”
이에 하후연이 우려를 표했다.
“병력의 피로가 극심할 터인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란 말을 하고 싶군요. 낙오자는 낙오자대로 버릴 수밖에요. 폐하, 바로 가시지요.”
조조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놈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격이다.”
“맞아줄 때는 시원하게 맞아야 합니다. 별 수 없죠.”
오래 참았던 곽원과 그의 병력은 홍농을 박차고 나갔다. 곽원의 일만 병력은 오래 굶주린 야수처럼 낙양을 향해 나아갔다. 노숙과 곽준이 열심히 뒤를 쫓았지만 끝까지 따라잡지 못했다. 곽원은 창고에 오래 숨겨두었던 은의 깃발을 꺼내들었다. 노숙으로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으나 은의 깃발은 전의를 끓게 하기에 족했다. 곽원은 신의 도우미가 아니라 은의 유신(遺臣)으로서 정당한 복수의 명분으로 불탔다.
“적을 막아라.”
조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조인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은 이것이 전부였다. 격랑에 이길 수 있는 것은 굳은 바위이지, 산산이 흩어지는 모래알이 아니었다. 수성의 지휘관은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굳건한 표정과 침착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부려야 한다. 지휘관부터 허둥거리면 바위는 산산이 흩어져 모래알이 되고 만다. 그러면 격랑에 휩쓸려 종내 멸망한다.
서쪽에서는 선봉의 옛 은장(殷將) 곽원과 형북도독 노숙, 송경의 곽준이 오고 있었다. 동쪽에서는 신의 상장인 내군경 손관과 백각대부 감택의 병력이 몰려오고 있었다.
“많기는 더럽게 많군.”
누각 위에 올라 서쪽과 동쪽을 연달아 바라본 조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적병의 무수한 깃발들이 나부끼는 소리가 메뚜기 떼의 날개소리처럼 들렸다.
내군경 손관과 은의 유장 곽원은 거의 동시에 낙양성에 사다리를 걸었다. 조인은 끓는 기름을 붓게 하고, 기름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미리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합비에서는 코흘리개 원자 제갈단을 앞세운 여 왕후의 대리청정이 이뤄졌다. 여춘군은 제갈찬의 당부대로 정사에 관한 일은 내사령 종요와 의논했고, 군사에 관한 일은 허저와 의논했다. 기실 허저는 이러쿵저러쿵 조언하기에는 말주변이 달렸지만, 제갈찬이 구태여 허저에게 맡긴 것은 그의 솔직함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혹여 저지를지 모르는 불민한 일들을 훗날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조조와의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군사에 관하여 의논할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춘군은 주로 종요와 정사를 의논했다.
명목상 신왕부 신료들의 좌장이자 존경받는 원로인 정청상 한단순 역시 춘군이 자주 찾았다. 한단순은 정파가 없고 지혜가 깊은 탓이었다. 춘군의 질문에 한단순은 명쾌한 답을 내놓는 법이 없었다. 두루뭉술하고 불분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언만큼은 분명하고 간략하게 내놓았다.
“큰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크게 베풀면 크게 돌아옵니다. 왕후께서 베푸는 것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왕후께서는 구분하지 못하십니다. 그러하니 아예 베풀지 마십시오.”
“새겨 듣겠습니다, 정청상.”
춘군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본능적인 욕구가 솟았다. 원자가 제갈단이라지만 기반이 불안했다. 시영은 삼왕후 중에서 제갈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신왕 제갈찬이 교가 낳은 딸을 시영에게 입적시켰듯, 시영이 불임이라 하더라도 교가 아들을 낳으면 그를 시영의 슬하로 입적시켜 세자로 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그녀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원자 단이 아직 장성하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신왕의 궐위를 대신 맡아 처리하면서 신왕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내사령,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사농대부 환계가 말했다. 그는 내사령의 직속 부하로서 종요의 당여였다. 환계의 말에 종요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서 엄준이 환계를 이어 말했다.
“백각경 가후와 정청령 제갈량이 전하를 따라 원정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백각령 등애마저도 출진했지요. 백각령 유순이 남긴 했지만 그는 허울만 있고 실속이 없으니, 지금 조정은 무풍지대입니다.”
종요는 환계와 엄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겐가. 백각의 요인들이 원정에 나가있는 사이에 음모라도 꾸미라는 겐가.”
엄준이 말했다.
“음모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내사령을 비롯한 의기로운 선비들이 나라를 위해 힘쓰려면 단단한 땅을 디디고 있어야만 합니다. 훗날 북비마저 병탄되었을 때를 생각하십시오.”
종요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백각경을 비롯한 백각의 요인들은 모두 전하께서 직접 발탁하신 심복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전하의 신임은 매우 두텁습니다. 토사구팽이라지만, 백각의 요인들은 기실 전하의 사냥개라기보다는 애견에 가깝습니다. 토끼를 잡은 후 사냥개는 삶지만, 애견에게는 그 토끼고기까지 먹여주는 법이죠. 냉철한 군주라면 사냥개와 애견을 구분하지 않습니다만, 전하께서 그런 분은 아니니까.”
“그대의 말은 우리는 사냥개라는 뜻인가?”
엄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라고는 못하지요.”
환계가 종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권했다.
“그러니 우리도 누군가의 애견이 되어야 합니다.”
“거 자꾸 사람을 개에 비하니 듣기 불편하네.”
“불편한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요.”
종요는 끙,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환계에게 물었다.
“허면, 그대가 여기기에 우리는 누구의 애견이 되어야 하는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