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40
종요는 익주에 과중한 조세를 부담시켜 익주의 인심을 백각으로부터 떨어뜨려놓겠다는 심산이었다. 이에 가후가 방어에 나섰다. 유순에게 종요를 상대하게 하기에는, 유순의 체급이 너무 달렸다.
“상께서는 어찌 익주를 먼저 거론하십니까? 우선 여러 방책을 강구해보고, 그 부족분을 계산한 연후에 익주의 사정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가후에 말에 유순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각경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선 교지태수 사섭에게 사신을 보내어 양곡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 대가로 일정한 보상을 내준다면 어찌 사섭이 거절하겠습니까.”
외교를 담당하는 외사령 왕수가 이 방안에 동의했다.
“사섭이 다스리는 땅은 일 년에 서너 차례도 벼를 수확하는 지방입니다. 쌀은 넘치되 다른 것은 적으니, 우리가 교역을 요청하면 반드시 이에 따를 것입니다. 그로서는 지금 밉보여서 훗날 토벌당할 구실을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이에 사농대부 보즐이 말했다.
“사섭의 땅에 쌀이 풍족하나 우리의 부족분을 모두 충당할 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익주는 고통을 나눠야 합니다.”
정청은 집요하게 익주를 물고 늘어졌다. 가후는 이를 방어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백각의 관리들이 흔들리고 말 터. 백각대부 왕보와 이회 등은 신왕 제갈찬이 발탁한 인물인 동시에 익주의 토족들이 추천한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익주의 이익을 어느 정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익주의 토족들은 그들 대신 다른 인물을 천거할 것이고, 신왕부는 어느 정도 이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 익주의 토족들이 유장을 버리고 제갈찬에게 투항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제갈찬 역시 자신이 이익을 심히 침해한다고 여긴다면 필시 단독행동에 들어갈 공산이 컸다. 서촉도독 장료와 삼파도독 좌자가 그들의 땅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절반에 못 미치는 직할부대를 제외하면 모두 익주의 토족들로부터 병력을 제공받고 있는 터였다. 어느 지방의 토족들이나 입김이 강한 법이었지만, 익주는 더욱 그랬다.
가후가 발언했다.
“사섭으로부터 얼마간의 양곡을 충당하고, 가뭄의 피해가 적은 월주로부터 얼마간 충당하면 상당 부분의 결손을 메울 수 있소.”
보즐이 받아쳤다.
“월주는 농경에 능하지 못한 지방입니다. 회계공(반림) 역시 월주의 백성을 먹이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이미 사자를 보내 알려왔습니다.”
백각령 등애가 앳된 목소리로 가후를 지원했다.
“량왕부에서 조달하는 방안도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외사령 왕수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청과 백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량왕부야말로 말 먹일 풀은 많이 기르되 쌀은 적게 기르는 지방이오. 그들에게 잉여가 있을 리 없소이다.”
한참 셈을 마친 청금령 유엽이 말했다.
“사섭을 최대한으로 압박해 충당할 수 있는 양은 최대 이 할이올시다. 또한 보관하고 있는 양곡을 최대한으로 풀면 다시 이 할을 충당할 수 있소. 허면 육 할 가량의 양곡이 부족하오. 이 육 할을 채우는 방법을 전하께 품신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임이오.”
그 말인즉슨 다른 대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육 할에 해당하는 결손을 익주에서 메우겠다는 뜻이었다. 유순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수치였다. 유순이 말했다.
“이왕평의 상인들이 보유한 양곡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에게서 양곡을 몰수하여 백성을 구휼함이 옳을 것입니다.”
그 말에 대신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통재대부 부손이 바로 공격하고 나섰다. 그는 형주 장사군 출신으로, 모내기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가 거의 절멸 위기에 처한 지방 사람이었다. 백각과 정청의 갈등도 있었지만, 배불리 먹는 익주와 배곯는 형주의 감정 또한 이들의 논의에 서려있었다.
“백각령께서는 지금 당장의 위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라의 백년대계를 무너뜨리자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위험한 발언이시군요!”
가후도 유순의 말에 허점이 있음을 알았다. 가뭄은 한시적인 재난이나 이왕평에서 거둬들이는 재물은 영원할 터였다. 만일 지금 이왕평의 상인들을 겁박하여 양곡을 몰수하면 이들은 신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이다.
가후는 유순의 말을 다듬어 말했다.
“이왕평의 상인들 중 자원하여 양곡을 내놓는 이에게 혜택을 내리면 될 것이오. 그들에게는 이번 재난이 신왕부에 눈도장을 찍을 절호의 기회이니 그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이에 정청의 대신들이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내사령 환계가 말하기를, 그렇다 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모두 충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익주가 부담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후는 속을 끓이며 제갈량을 바라봤다.
“정청령은 어째 한 말씀도 없으시군. 뭐라 입장을 밝히심이 가당하오.”
내심 제갈량의 도움을 바란 것이었다. 제갈량은 반드시 백각의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으므로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아, 여러분의 고견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모자란 소생이 더 보탤 말이 없더군요.”
내사령 환계가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청령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각령의 말씀처럼 이왕평 상인들의 재물을 몰수해야 한다고 여기시오?”
가후가 정정했다.
“그들로 하여금 자원해서 물자를 풀게끔 하자는 것이오. 말씀은 바로 하셔야지, 내사령.”
환계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가후는 몸을 틀며 제갈량을 바라봤다.
“그대의 생각을 들려주시오, 정청령.”
좌중의 시선이 제갈량의 입을 주목했다. 제갈량의 입은 그의 것만이 아니었다. 제갈량은 신왕 제갈찬의 족제이자 그의 가장 가까운 신하이며 그의 궐위에는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는 인물이었다. 정청령이란 벼슬은 여타 다른 3품의 벼슬아치들과 동렬이었으나 실질적인 힘을 따지자면 격이 달랐다.
제갈량은 오래 침묵하지 않고 답을 내놓았다.
“이왕평의 상인들에게 모종의 겁박을 한다면, 이왕평은 반드시 황폐화될 것이고 그로 인해 얻는 해악이 더 많을 것입니다. 또한 쌀값이 치솟아 천하 각지의 상인들이 쌀을 짊어지고 이왕평으로 모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 쌀값이 하락한다면 그때 대대적으로 사들임이 옳겠습니다.”
가후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말이었다. 뜻밖의 지원을 얻은 정청의 관료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가후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여간해서 낯빛에 감정을 담지 않는 그였다. 그의 떨리는 눈썹은 그가 적잖이 당황했음을 나타냈다.
“허면 정청령은 익주를 핍박하여 그들로 하여금 전국을 먹여 살리게 하겠다는 뜻이오?”
“제 의견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익주가 감당할 건 감당해야지요.”
가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는 생떼를 피우지는 않았다. 익주에게 조세를 부담시키겠다는 대의명분은 충분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신왕 제갈찬은 가후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끼나 그것은 그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로서 존중하고 아낀다는 사실이었다. 백각의 우두머리로서 구실하는 가후에게는 서릿발처럼 냉정하다는 것을 가후는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고 마냥 당해줄 가후는 아니었다. 가후 역시 동지로서의 제갈찬을 사랑했으나 사무적 주종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히 계산적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익주가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오. 그러나 그 전에 선결되어야 할 조건이 있소이다.”
제갈량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기선을 제압한 환계가 승자의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배 곪는 자들의 고통을 배부른 자들이 방관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소. 특히 백성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관료들은 더더욱 그렇소. 본관은 관료들이 자발적으로 사재를 털어 환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여기오.”
가후는 이렇게 말하고, 스스로 먼저 나섰다.
“백각경 가후는 사저의 곳간에 보관된 양곡 팔 할을 털어 구휼미로 사용하도록 내놓겠소.”
가후의 말에 백각의 신료들이 나서 사재를 털겠다고 공언했다. 정청의 신료들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상황이 우습게 되었다. 정청상 종요 이하 내사령 환계 등 정청의 신료들 역시 사재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백각의 신료들은 비록 지체는 높았으나, 가진 재물은 많지 않았다. 백각경 가후는 원체 재물에 욕심이 없었고, 백각령 등애는 일개 농민의 출신이어서 가진 재물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백각령 유순은 촉왕 유장의 장자로서 지닌 재물이 많았지만, 어차피 촉왕부는 익주의 인심을 다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재를 출연해야만 했다. 백각대부들 역시 유복한 집안의 출신이라기보다는 저마다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자들이라 사재를 내놓는 데 부담이 적었다. 가후가 사재의 팔 할을 털겠다고 얘기했지만, 그의 사재 팔 할은 종요가 보유한 사재의 십분지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정청의 대신들에게 해코지하기 위한 물귀신 작전은 아니었다. 가후는 제갈량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제갈량은 화답하듯 환하게 웃었다.
가후가 익주의 증세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관료들의 자발적 사재출연을 제안했다. 이는 정치적 거래로서, 정청상 종요 이하 정청의 신료들이 받지 않을 수 없는 안이었다.
만일 신왕 제갈찬이 그들에게 사재출연을 강권했다면, 대신들의 반발이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가후를 압박하여 백각의 기세를 적당히 눌러주는 한편, 그로 하여금 정청의 사재출연을 이끌어내도록 하여 신왕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제거했다.
대신들의 회의를 파하고 나오면서, 백각대부 왕보가 슬그머니 제갈량의 옆에 가까이 붙었다. 제갈량은 그를 흘끗 바라보고는 그와 동행이 아닌 양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각경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시던가?”
왕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제갈량은 가후의 생각을 간파하고 있었다.
“백각경을 비롯한 백각의 대신들이 내놓는 사재는 모두 익주에 투입하였으면 좋겠다는 말씀이겠지?”
왕보는 짧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알겠네.”
제갈량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왕보에게서 멀어져갔다.
익주의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백각에서 내놓은 사재로 익주가 빼앗긴 양곡의 얼마간을 벌충하는 것으로 그들의 인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이는 신왕부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백각대신들의 얼마 안 되는 사재를 투입하여, 합비에서 익주를 중히 생각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까닭이었다.
나는 정청의 대신들이 내놓은 막대한 양곡을 모내기를 시도했다가 크게 망해버린 형주의 남쪽으로 보냈다. 백각의 양곡은 예정된 대로 익주로 보냈다. 나는 강호의 뒤를 이어 오수를 꿰찬 새로운 강호를 소환했다. 결룡안사 왕평으로 하여금 수염을 깎게 하고, 그 자리에서 강호에게 말했다.
“나라가 개판이오.”
적잖이 가라앉은 목소리에 강호는 바짝 엎드렸다.
“…예.”
“어떻게 하시겠소?”
강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신이 모은 재물의 절반을 내놓겠습니다.”
왕평은 내 턱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다 끝났습니다.”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
나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말했다.
“조금만 더 쓰시오.”
“어, 얼마나 더 내놓으면 될는지……”
나는 대답 대신 왕평을 바라봤다. 결룡안사 왕평은 강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밑천만 남기고 다 내놓으십시오.”
대상인의 돈을 뜯어내는 꼬락서니가 영 불량스러웠지만, 내가 누구처럼 죽여주는 말 한 마리 사자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다 백성을 위함이 아니겠는가.
외사령 왕수는 교주의 사섭에게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송경에 들러 사섭을 교지공(交阯公)에 봉해 달라 품신했다. 사섭에게 군공의 작위를 내린 후, 양곡을 지원해달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일단 천자의 책봉이 내려진 후에는 무를 수 없다. 그런 고로, 사섭이 신왕 제갈찬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제갈찬은 교지공의 작위만 내주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는 크나큰 치욕이니, 훗날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할 터였다. 사섭으로서는 어마무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천자 유총은 왕수의 품신을 윤허했다. 즉석에서 사섭을 교지공에 봉한다는 칙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천자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왕수는 그렇게 볼일을 다 보고 물러나려는데, 낙준이 그를 붙들었다.
“외사령, 이 사람과 얘기를 잠깐 하시지요.”
“무슨 일이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