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46
마등은 부드러운 웃음으로 넘겼다.
“세자빈, 그러니까 화평공주의 상태가 심히 염려되오.”
그는 화평공주를 세자빈으로 부르는 것조차 꺼렸다. 말이 세자빈이지 목석을 들여다 놓으나 화평공주를 들여다 놓으나 매한가지였다. 이제는 그녀의 얼굴마저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세자빈으로서 가장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서둘러 량왕부의 원손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미 세자 마초는 준비가 돼있었다. 그렇잖아도 혈기 넘치는 서량의 사내인 데다가, 타고난 신체가 개중 으뜸이었으니 언제든지 원손을 생산할 역량이 충분했다. 세자가 이미 그러하거늘, 그를 수용하기만 하면 그만인 세자빈이 세자의 얼굴 보기는 물론이요 섭식마저 뿌리치니 마등으로서는 밉기도 이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백 번 양보해서 원손은 후궁을 들여 낳으면 된다고 칩시다. 허나 저렇게 굴어서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 아니오?”
상존은 난감하게 웃었다.
“그렇지요.”
말이 짧은 상존 대신 사마의가 말했다.
“불길한 얘기를 입에 담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만일 서량 땅에서 세자빈이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신왕부와 화호를 도모하기 위해 맺은 국혼이 도리어 양국의 화호를 깨트릴지도 모릅니다.”
“과인의 말이 바로 그것이올시다. 애써 맺은 국혼인데… 과인이 화평공주에는 별다른 정을 두지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맏아들의 부인이 아니오? 이래서야 세자가 의욕적으로 정사에 임할 수 있겠소이까?”
눈치 없는 상존이 쓸데없는 농담으로 끼어들었다.
“정사라 하시면 무슨 정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마의는 상존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의 실없는 말을 차단했다.
“신의 마음도 그럴진대, 전하의 어심이야 오죽하리까.”
마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신왕부에 좋은 말로써 국혼을 파기하겠다고 알리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 순간 상존과 사마의는 동시에 눈빛을 교환했다. 사마의가 나서서 간했다.
“전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소.”
“신왕부는 이쪽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도 전하께서 먼저 국혼을 파기하겠다고 전하면 분명히 크게 언짢아할 것입니다.”
마등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겠지.”
“어쩌면 화평공주는 신왕 제갈찬의 흉계일지도 모르겠군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등은 사마의를 바라봤다.
“흉계라니?”
“저럴 줄을 알고 량왕부로 시집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뭐라. 일부러 침략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사마의는 차의 향기를 맡았다.
“고전적인 술수죠.”
“그런……!”
“그러니 세자빈은 반드시 살려놔야 합니다. 세자빈의 마음이 어떻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숨만은 반드시 붙들어놔야 합니다.”
“으음……”
마등은 찻잔을 세게 쥐었다.
나는 유순이 보낸 사자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았다. 기분이 매우, 퍽, 아주 언짢았다.
“백오십만을 달라고 했더니 사십만만 주겠다고?”
제갈량의 표정도 내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만하기 짝이 없군요.”
“성도령 동화를 해임하고 좀 말랑말랑한 사람을 갖다 앉히는 게 어떨까?”
내 말에 제갈량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동화를 해임하면 익주의 인심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가후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익주의 민심은 이미 최악입니다. 더 나빠질 것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인심은 민심이 아닙니다. 익주의 토족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 민심을 토족으로 바꿔도 말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소이다.”
가후의 말이 제갈량과는 미묘하게 결이 달랐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백각경은 익주에 군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동의하시오?”
“기술적 교묘함이 뒷받침된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나는 김이 팍 샌 표정을 지었다.
“항상 그것이 문제요. 기술적 교묘함.”
“적극적으로 군사적 조치를 검토해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서촉도독(장료)이나 삼파도독(좌자)이라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교묘한 작자들이 아닙니까?”
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지. 기술자 중의 기술자들이오.”
제갈량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촉왕부와 익주의 토족들 사이에 창칼이 개입하게 되면 당장의 양곡을 얻을 수는 있을지언정, 향후 원만한 관계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고려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가후도 동의했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조언이군요.”
가후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무장한 병력 오십 여가 그를 호위했다. 나는 몸소 대궐 밖까지 나가 그를 전송했다.
“꾀돌이를 익주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소.”
가후는 마차에 한 발을 걸치며 대꾸했다.
“꾀돌이라니, 저 같은 영감쟁이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별명입니다.”
“익주의 토족들과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정직하게 교섭하고 싶었소.”
가후는 나머지 한 발을 마저 마차에 올렸다. 그는 점잖게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정직한 교섭이요?”
가후는 나를 향해 씩 웃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백마와 흑마, 두 마리 말이 이끄는 가후의 마차가 합비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를 등지고 다시 합비궁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마차도 꼭 저 같은 걸 타고 다닌다. 흰 말과 검은 말이라니, 겉 희고 속 검은 자신을 구태여 감추지 않는다. 감추지 않으니까 더 의뭉스럽다.
나는 내 뒤를 따르는 제갈량에게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정직한 교섭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제갈량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저는 백각경보다는 그래도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과 의리에 기반을 둔 정직한 교섭이 가능합니다.”
“그럼 너는 백각경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나의 물음에 제갈량은 입가를 벌리며 웃었다.
“아뇨.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라고 했습니다만.”
“뭐?”
나는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치적 적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야수일 뿐입니다.”
나는 뭐라 말하려던 입술을 꾹 다물었다.
“생각하는 야수와의 교섭에서, 정직은 있을 수 없지요.”
그는 나와 나란히 서면서 말을 맺었다.
“정직은 없습니다. 다만 거짓의 거짓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합비궁의 안으로 들어갔다.
조 업도 천자궁.
조나라 조정은 태자 교체의 건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물론 천자의 후계를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은 중죄에 해당했다. 더군다나 냉혹하기라면 십이월 동장군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조조의 앞에서라면 뼈도 못 추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조정에서 태자 조앙을 이황자 조비로 교체해야 한다는, 용감하기보다는 무모한 소리를 하는 작자가 없기야 했지만 그에 준하는 목소리들은 꾸준히 이어졌다.
이를 테면 이러했다. 태자비가 사사로이 궁녀를 매질하니, 훗날 나라의 어미로서 자애로이 구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나이다. 외람되오나 동궁의 내관들이 사사로이 이르기를, 밤마다 태자 전하께오서 합궁을 거부하시는 말씀을 엿들었다 하니 이 어찌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황자께오서 오늘 사냥에 나서 큰 사슴을 잡았다고 하옵니다. 그 녹용을 잘라 천자께 진상한다고 하니 그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지 않은지요?
“머저리들.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는……”
조조는 턱을 괴며 그다지 기껍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난날 신왕 제갈찬의 친정으로 무수한 영토를 상실했다. 이런 형세가 지속되면 조는 신에게 무난하게 패배하고 말 터였다. 어떻게든 신을 꺾을 책략을 궁구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후계를 운운하다니. 승상 정욱 역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참으로 소인들이 아닙니까.”
“경은 어찌 생각하는가. 태자를 교체해야 옳다고 보는가? 지난날 제갈찬 녀석에 맞서 짐이 출정하였을 때, 태자의 대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짐 역시 생각한다.”
정욱은 얼굴에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틈바구니에 신까지 끼어들 계제는 아닌 듯하옵니다.”
“경은 태자를 밀잖아, 그렇지?”
정욱은 조조를 잠깐 올려보다가 다시 눈을 깔았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천자께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