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50
“어찌 그들과 통할 수 있었는가?”
“뭐, 익주로서는 여러 세력과 교분을 쌓아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사마의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익주로부터 양곡을 들여오고, 과할 정도로 후하게 값을 쳐주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사마의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서량의 재물을 다소간 빼돌려 그들에게 뇌물로 주었다. 그러한 바를 마등에게 구태여 아뢔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에, 사마의는 가볍게 둘러댔다.
“한중의 토족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중을 들이치면, 반드시 그들이 호응할 것입니다.”
“으음……”
“한중을 점령하면 성도 역시 흔들릴 것입니다. 익주는 지금 합비에 깊은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양곡의 반출에 관하여 가혹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이요, 한중을 핍박한 칼날이 곧 자신들에게도 닥치리라 확신할 테니 말입니다. 성도마저 호응한다면, 제갈찬의 세력은 삽시에 붕괴할 것입니다.”
“확신하는가?”
마등의 물음에 사마의는 웃음을 지었다.
“확신이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것들 중 가장 나은 것을 택할 뿐이죠.”
법정이 쐐기를 박았다.
“분명한 건, 전하께서 지금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훗날 반드시 제갈찬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불경한 말씀이지만 틀리지 않습니다.”
량왕 마등의 사신이 업도에 당도했다. 내륙으로는 장안의 장합과 낙양의 곽원에 의해 길이 차단되어있으니, 부득불 북방의 험지를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 천자 조조는 그를 환대했다.
“중달,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네. 오늘 얼굴을 마주하니 감개무량하군. 외모까지 훤칠한 당대의 기린아로세.”
조조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황상. 소인이야말로 당대의 웅걸이신 황상을 뵙자오니 지극한 광영일 따름입니다.”
“사탕발림도 곧잘 하고. 그래, 오늘은 량왕의 사절로서 짐을 만나고자 했다니, 량왕의 뜻을 전하러 왔을 터.”
“그렇습니다.”
조조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 말해보시게. 량왕의 뜻을.”
사마의는 정돈된 자세로 조조에게 량왕 마등의 뜻을, 실은 자신의 뜻을 전했다.
“량왕께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황상과 군을 합하여 신왕 제갈찬을 토벌하기를 원하십니다.”
조조는 수염을 팽팽히 잡아당기면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호오, 재밌군. 귀국과 제갈찬은 사돈지간이 아닌가? 구태여 모험을 감행할 까닭이 있는가.”
“영구한 화평이 아님을 황상께서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짐과의 화평은 영구하다고 여기는가?”
사마의는 미소를 지었다.
“신왕부를 토멸할 때까지는 유효하겠지요.”
“신왕부를 토멸한 연후에는?”
“황상, 그것을 논하기에는 제갈찬의 위세가 태산처럼 높지 않은지요.”
승상 정욱이 점잖게 사마의를 질책했다.
“외방의 신하가 어찌 천자를 가르치려 드오?”
사마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송구합니다.”
조조는 슬며시 웃음을 지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그대가 심히 마음에 드는군.”
“변변찮은 포의를 각별히 여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조는 바로 내질렀다.
“짐의 신하가 됨이 어떠한가?”
“외람되오나 저는 이미 모시는 주군이 있습니다.”
조조는 조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주군? 그대에게 주군이 있던가? 양주자사 상존을 이름인가? 량왕 마등을 이름인가? 이보게, 우리 이러지 마세. 그대가 정녕 상존이나 마등 따위를 주군으로 삼는단 말인가.”
“황상이 보시기엔 일개 촌뜨기에 불과하겠지만 저에게는 더없이 고귀한 분입니다.”
“부려먹기 쉬운 분이겠지.”
사마의는 말없이 고개만 살짝 숙였다.
“좋아. 량왕의 뜻을 받아들이겠네. 아조와 량왕부 사이에 놓인 흉노 족속에게 벼슬을 내려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고, 안전한 교통로를 확보하겠네.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적절한 전략을 논의하도록 하세.”
“참으로 반가운 말씀입니다.”
“제갈찬 녀석이 가장 쇠약하고 량왕이 손을 내밀어준 이때가 우리에게도 분명한 호기다. 다만, 양국 화호의 징표가 필요한데.”
“국혼을 원하십니까?”
사마의의 물음에 조조는 푸 웃었다.
“피 몇 방울 섞인 계집을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는 것이 무슨 징표가 되겠는가.”
“허면……”
“짐은 그대를 안남장군에 명하겠다. 그대는 조의 벼슬을 받들어 병마를 이끌라.”
시종 평안하던 사마의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황상, 허나 저는 량왕을 섬기는 몸으로……”
조조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안다. 그러나 그 옛날 소진과 장의는 한 몸으로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니 그대라고 조량 양국의 벼슬을 공히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대에게 안남장군의 직을 내리나니, 이것으로써 조량 양국 화호의 징표로 삼고자 한다. 만일 그대가, 량왕이 이를 거부한다면 조량 화호와 공동 남벌은 없다.”
사마의는 못 이기는 듯 고개를 숙였다.
“허면, 량왕께 이를 소상히 아뢰어 반드시 설득하겠습니다. 제가 황상의 뜻을 량왕을 대리하여 응낙하니, 이로써 량조 양국이 화합하여 신을 토멸할 뜻을 합하였나이다.”
조조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다.”
그는 구태여 사족을 붙였다.
“그대는 오늘부로 조의 안남장군이니, 돌아갈 집이 두 군데가 되었다. 선택은 그대가 하라.”
사마의는 조조를 흘끗 올려다보며 절을 올렸다.
“때가 되면 선택하겠습니다.”
한중의 토족들은 비밀리에 량왕부를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연통했다. 한중도독 감녕의 칼끝이 이미 토족 여럿을 해쳤다. 한중토족들은 불안감에 벌벌 떨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아침에 뜬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떨렸다. 아침식사를 하기도 전에 한중도독부의 관병들이 들이닥쳐 잡아갈지 모르므로.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량왕부가 유일했다. 수신인을 사마의로 상정한 무수한 구원요청이 서량에 쇄도했다.
업도로 향한 사마의 대신 법정이 그것들을 수습하여 상존에게 올렸다.
“아주 안달이 났군요.”
법정의 말에 상존이 어정쩡한 웃음을 띠었다.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익주에서 벼슬을 지냈소. 그들의 생리를 잘 알지 않소? 그럴 만도 하지. 다 죽게 생겼으니.”
“그들의 기대에 적절히 부응해야할 것입니다.”
“음… 항상 그랬듯이 모든 일은 중달과 그대에게 일임하겠소. 나는 굳은 머리로 할 수 있는 일만 하겠소.”
“서량의 병마와 조의 병마, 그리고 한중의 토족들을 합쳐 일거에 쳐들어가면 반드시 귀한 수확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힘을 소모하여 제갈찬의 힘을 소모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중달과 그대의 생각은 단지 신왕부의 힘을 꺾는 데만 있지 않은 것 같소.”
법정은 미소를 지었다.
“용케 제갈찬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한들 량왕부와 조 역시 상당히 쇠약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전력을 보존한 후에 허약해진 량왕부의 마씨를 제거하고 서량을 꿰찰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고향 익주를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쪽의 조, 남쪽의 신과 함께 천하의 삼대 세력으로 구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상량주께서는.”
“나는 태어나기를 야망이 없이 태어났소. 나는 선천적으로 야망이 거세된 위인이오. 구태여 나에게 야망을 풀무질할 필요가 없소. 다만 그대들이 역경을 잘 헤쳐 나가면 그만이오.”
법정은 상존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찻잔은 만들어질 때부터 차가 따라져있지 않습니다. 빈 채로 만들어지지요. 그러나 찻잔은 반드시 찻물이 담길 운명입니다. 상량주의 빈 마음에 저와 중달이 야망을 따라드리지요. 즐기십시오.”
상존은 희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청금령 유엽이 나를 찾아왔다. 사방팔방에서 정보들이 쏟아졌다. 유엽은 그 정보들을 최대한 정돈하여 나에게 일러주었다.
“북비와 량왕부가 은밀히 교통하는 것 같습니다. 한중의 토족들이 량왕부에 계속하여 내침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북비가 지속하여 병력을 모으고 군량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북비와 량왕부가 짜고 전쟁 준비를 한다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서량으로 시집간 화평공주가 걱정되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과연 내가 그녀를 걱정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했다. 내가 그녀를 사지로 보낸 장본인이었으니까. 결국 정치의 대의명분으로 옹졸한 합리화를 되뇔 뿐이었다.
유엽은 뭐라 말하려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관뒀다. 그리고는 원래 품었을 말이 아닌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마냥 방관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도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요. 대도독 노숙을 소환하고 백각을 소집하세요. 일을 논의해야겠습니다.”
“존명.”
나는 백각의 요인들이 모두 모였다는 보고를 받고 백각으로 행차했다. 백각경 가후와 백각령 유순의 자리만이 비어있었다. 내가 백각으로 들어가자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앉으세요들. 기근 때문에 밥도 많이 못 드셨을 텐데 오래 일어서있기 힘들지 않습니까.”
내 말에 그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착석했다. 대도독 노숙이 나서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과 확보한 군량 등을 보고했다. 나는 그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평공주는 안전할까.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