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54
“대개 그러할 것입니다.”
“경의 말로써 상책과 중책과 하책이 결정된 듯하다.”
유총은 공융을 흘끗 보고 말을 이었다. 공융은 이 순간만큼은 귀머거리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짐이 협조함에도 제갈찬이 대패하는 것이 상책이렷다.”
“그렇습니다.”
유총은 수염을 쓸었다.
“그러나 제갈찬이 대패를 하도록 하는 것은 조조와 마등의 몫이지 짐의 몫은 아니다.”
“그렇게 단정 지으실 만한 것도 아닙니다. 폐하께서 하실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낙준은 그렇게 말하고 말을 이었다.
“허나 정녕 폐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공 태부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대신 아뢰지요. 신왕 제갈찬의 승리를 적극적으로 원호하여 그가 종내 대승한다면, 아주 해로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경은 방금 전에 짐더러 양위를 하라 겁박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것은 다만 추정일 뿐입니다. 이 낙준의 추정일 뿐이지요. 태부께서는 다르게 짐작하실 겁니다. 그렇지요?”
공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나이다, 폐하. 신왕 제갈찬은 폐하의 충신이거늘 어찌 그토록 황망한 행태를 벌이겠나이까.”
충신이 황도에 병마를 들이민단 말이냐? 유총은 하고자 하는 말을 꿀꺽 삼켰다. 낙준은 공융과 유총을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누구의 진언을 신뢰할 것인지는 폐하의 뜻입니다. 신이 더욱 깊숙이 어심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불충입니다.”
“짐이 결정하고 짐이 책임지라는 말이군.”
“송구합니다.”
유총은 입맛을 쩝 다셨다.
“추후에 결단하겠다. 여 태위의 입시는 허하겠다.”
좌우의 조신들이 엎드려 천자의 영명하심을 찬양했다. 태위 여포의 병력 5천이 송경의 내부로 진입했다.
“태위 여포가 천자를 알현합니다.”
여포는 곰 같은 덩치를 천자 유총 앞에 숙였다. 유총은 본능적인 불편함을 느꼈다. 저 절구통 같은 팔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신왕이 경을 보내어 짐의 군무를 돕도록 하니, 고마운 일일세. 모쪼록 많이 도와주시게.”
“신의 재주가 참으로 모자라나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태부 공융이 태위를 잘 모시도록 하오.”
공융은 손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공융은 여포를 객관으로 인도했다. 유총과 낙준은 잠자코 숨을 죽인 채 여포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합비에는 신왕부의 전력이 집결했다. 조조의 병마를 제어하는 최전방에는 예주도독 고순과 서주도독 진등이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병력은 오로지 지역방어를 위해 배치되었기에, 대규모로 편성된 조조의 병력을 제어하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결국 합비에 집결하는 주동이 조조의 병력과 격전을 벌일 터였다.
후방에 물러나있던 병마들도 모두 합비에 집결했다. 군량이 부족하여 전원을 동원하지는 못하였으나 충분히 많은 수효였다. 익주의 도독부들 즉 한중도독 감녕, 서촉도독 장료, 삼파도독 좌자의 병력은 모두 가후의 지휘 하에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렸기에 합비로의 동원령에서 제외되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합비의 중앙군과 강동도독 제갈근, 형남도독 국태공 제갈현, 양주도독 장패, 형북도독 주환의 병력을 비롯하여 회계공 반림의 산월병도 제갈근을 따라 합비에 당도했다. 또한 조조가 요동과 오환을 겁박하여 병력을 갈취하였듯, 제갈찬 역시 교지의 사섭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병력 일만을 얻어냈다. 송경의 천자 유총과 장안의 장합, 홍농의 곽원에게도 협력하라 당부했으나 아직 공식적인 답신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곽원만큼은 동조해줄 의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엄밀한 의미로는 아니겠으나 거칠게 따지자면 양측 모두 다국적군이었다.
대도독 노숙이 나에게 보고했다.
“신왕 전하께 보고 드립니다! 북비의 참람한 침노에 맞설 진용이 갖춰졌나이다! 천하의 용장들과 모사들이 신의 깃발 아래 모여 전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주도독과 예주도독, 익주의 병마를 제외하고 합비에 집결한 병력만 도합 15만, 서주와 예주를 합하면 21만, 익주를 합하면 도합 27만을 헤아립니다.”
“장하고 위엄이 넘치는도다. 고가 그대들을 반드시 승리의 양지로 이끌 것이다. 그대들은 힘써 고를 도우라.”
나의 당부에 십 수 만 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존명!”
“이번에야말로 악의 뿌리를 뽑아내고 천하에 화평을 불러오리라. 그대들이 그리할 것이다.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뿌듯하고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출정이다.”
나의 말에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그들이 호응했다. 나는 그 함성이 전쟁이 끝나고도 그토록 크기를 바랐다.
나는 정청령 제갈량과 내군경 손관에게 합비를 비롯한 전국의 사무를 맡겼다. 지금은 어린 아들 단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춘군이나 시영 등에게 뒤를 보도록 하는 위험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내부의 작은 바람이 전장에 태풍이 되어 불어올 염려가 있었다. 제갈량을 동행시키는 것이 절실하긴 했으나, 그가 아니면 확실하게 합비에서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없었다. 또한 그가 안정적으로 보급을 맡아주어야만 지구전에서도 버틸 수가 있었다. 특히 이렇듯 물자가 절대적으로 모자란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군경 손관의 경우도 그랬다. 군부의 수장인 대도독 노숙이 전장에 나서고 상징적 존재였던 태위 여포 역시 송경으로 간 상태에서, 합비의 중앙군을 단속할 만한 인물이 손관뿐이었다. 그러한 바를 다 알기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자신에게 선봉을 맡겨달라 우는 소리를 했을 손관도 얌전히 분부에 따랐다.
“부디 무운을 빕니다. 반드시 합비로 개선하셔서 신이 그 전장에 없었던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손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줄게.”
손관은 목소리를 낮추며 편한 말씨로 투덜거렸다.
“지라고 할 수도 없고……”
“합비 지키는 일도 전쟁만큼 만만치 않을 거야. 잘 단속해두라구. 좀도둑 하나 드나들지 못하게.”
“걱정 마십시오! 전하!”
나는 손관에게 장난스런 웃음을 보내고는, 그 옆의 왕후들과 나의 자식들의 격려를 받았다.
“이런 떼쟁이들. 그동안 모후 말씀을 잘 듣고 있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온이, 영이, 단이는 입을 모아 외쳤다.
“그리하겠사옵니다!”
나는 빙긋 웃고 그들의 모후들에게도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금방 돌아오겠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운을 빌게요.”
“고맙소.”
나는 더 미적거리지 않고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오랫동안 잔정을 나눌 틈도 없었을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 이런 부분에서라도 나에게 부여된 특별한 지위를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나의 몰염치와 비양심을 변호할 약간의 부스러기가 되어줄 것이니까.
나는 서둘러 합비의 북문을 나섰다. 출정 명령에, 나보다도 앞선 무수한 자들이 합비의 북문을 빠져나갔다. 군의 선봉은 양주도독 장패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의 좌우로 좌장군 허저와 후장군 육의를 배치했다.
나는 중군을 맡았는데, 대도독 노숙을 비롯하여 전쟁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의 아버지 형남도독 국태공 제갈현, 그리고 역시 왕실의 요인인 강동도독 제갈근이 나와 동행했다. 회계공 월주자사 반림 역시 나와 같은 마차에 올라탔다.
“회계공께서 강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내가 묻자, 반림이 대답했다.
“지금 촌뜨기라고 놀리시는 겁니까?”
“아니 뭐,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요.”
반림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처음입니다.”
그가 묘한 열패감에 사로잡힌 걸 보고 나는 킬킬 웃었다.
“이번에 회계공께서 물경 이만의 병력을 내주시니, 이번 싸움은 쉽게 갈 수도 있겠습니다. 놈들이 바닥까지 달달 긁어 십 몇 만을 동원한다지만 우리는 도합 삼십 만에 육박하지 않습니까?”
“산월의 병력은 전하의 병마에 비하자면 작은 편린에 불과합니다. 듣기에 민망합니다.”
“산월의 용맹은 고가 익히 봐왔습니다. 겸손 떠실 거 없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달콤한 말로써 전장을 향해 등을 떠미시는군요.”
“회계공은 꼭 애먼 곳에서 심사가 뒤틀리시더라.”
“제가 전하를 하루 이틀 뵙습니까?”
나는 턱을 긁으면서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렇게 천천히 북으로 향했다. 조조의 병력을 나와 비슷한 속도로 남으로 오고 있겠지. 그리고 그 북과 남의 사이 어딘가에서 무수한 죽음들이 속출하겠지.
가후는 비밀리에 성도에서 한중으로 향했다. 성도에는 촉왕부의 세자이자 백각령인 유순이 중심을 잡도록 주문했다. 그가 한중으로 간다는 것은, 무언가 한중에서 일이 터진다는 의미였다. 그는 오로지 제 몸을 지켜줄 측근의 검객 둘만을 대동하고 한중으로 은밀히 잠입했다.
한중에 잠입한 그는, 한중도독 감녕과 만났다. 감녕은 떠들썩하게 연회를 베풀고자 했으나 가후는 한사코 거부했다.
“한중도독께서도 량왕부가 병마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을 이곳 한중으로 보내고 있음을 아실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법정이 주장을 맡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고작 일만 오천에 불과하기 때문에 막는 데 큰 부담은 없을 것입니다.”
“도독께서는 법정이 뭘 믿고 그 정도의 병력으로 오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단지 익주의 병마가 서량으로 북진할 것을 염려하여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까?”
가후는 곧장 대답했다.
“아니올시다.”
감녕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가요……”
“법정은 익주를 취하기 위해 오고 있소.”
“고작 일만오천으로 어찌 익주를 얻습니까?”
“혼자 힘으로는 안 되지. 누군가 돕는 이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소?”
감녕은 잠깐 생각하고 되물었다.
“내통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리하여 소장이 백각경의 명을 받들어 일망타진을 하려 하였는데, 백각경께서 고의로 천천히 잡아들이라 분부하시는 까닭에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잔당이 날뛰는 것이로군요.”
감녕은 그렇게 말하고 말을 이었다.
“허면 지금이라도 놈들을 색출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