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58
“제갈찬이 이 사실을 눈치 챘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된다면 짐은 그에게 맞서 일어설 용기가 없다.”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쪽은 곽원에게 일임을 해놨는데, 곽원 역시 사수관에서 한바탕 싸우느라 서쪽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진을 치고 덤비지 않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여겼을 겁니다. 사마의는 야음을 틈타 횃불도 밝히지 않고 조금씩 병력을 이동시켰으니 제갈찬은 아직 모르고 있을 겁니다.”
“…으음……”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충분히 생각하시고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러나 이미 내린 결단을 번복하지는 마십시오.”
“됐네. 결단을 내렸네.”
유총과 낙준의 시선이 교차했다.
“우선 량왕부의 놈들을 송경으로 불러들이게. 단, 무장을 철저히 해제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합비의 더듬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걸세.”
“물론입니다. 그리 당부하겠습니다.”
“따분하기 짝이 없군.”
여포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늘만큼은 술 없이 버티기 힘들겠어.”
그는 그렇게 합리화하며 함께 대동한 종자에게 명했다.
“여봐라, 주안상을 들여라.”
여포를 오래 모신 종자는 조심스레 말했다.
“약주는 존체에 해롭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재고하심이……”
“어허, 네놈의 말에 어폐가 있다. 말은 약주라고 해놓고 어째서 몸에 해롭다는 것이냐? 몸에 해로운 약도 있더냐? 그게 어디 약이라더냐?”
“약이라고 마냥 이롭기만 하겠습니까. 독약이라는 낱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놈이 이제는 말대답을 하고 드는구나. 서너 잔만 마실 터이니 괘념치 말고 들여라.”
한 잔만 마신다고 하면 한 말을 마시는 주인의 성품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말조차도 서너 잔이라고 했으니 기실 서너 말을 마시겠다는 뜻이었다. 종자는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여러 번 만류할 용기는 없었다. 결국 종자는 굴복하여 주안상을 들였다.
“계집을 들일깝쇼?”
“되었다. 소란스레 마시고 싶지 않다. 천자께서 괜히 트집을 잡아 이 몸을 쫓아낼 수도 있는 노릇 아니겠느냐. 괜한 소란을 피워 전하께 폐를 끼칠 수는 없느니.”
그래도 주인의 생각이 그만큼 숙성했다는 것에 안심하며, 종자는 정성스레 주안상을 들였다.
“참 반갑구나.”
여포는 입맛을 다셨다. 감질나는 술잔은 저만치 멀리 두고 병나발을 불었다. 뜨끈하게 목을 데우며 넘어가는 술이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진미였다.
“어, 좋다.”
그렇게 호젓하게 한 병을 다 비운 여포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술벗이 없으니 심심했다. 오랜만에 술기운이 도니 과거의 무용담을 떠벌리며 마시고 싶어졌다.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이 송경 땅에 나와 면식이 있는 자가 공 태부뿐이라. 너는 공 태부의 댁으로 가서 모셔오도록 하라. 여 태위가 미주를 대접하려 한다고. 혹 주무시거든 되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공 태부도 술이 당길 것이다.”
종자는 넙죽 허리를 꺾어 명을 받들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태부 공융의 저택을 향했다.
한참이 지나자, 여포가 머물고 있는 객관의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서너 병을 비운 여포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란을 피우기 싫다니까 제 놈들이 먼저 나서서 소란을 피우는군. 괘씸하다.”
술기운도 어지간히 도는지라, 여포는 그들을 호되게 치죄할 생각이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 여포가 머물고 있는 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오원왕이자 조정의 태위이며 실권자 신왕 제갈찬의 장인이 되는 여포가 머무는 방이었다. 함부로 그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천자라 한들.
“누구냐!”
여포가 다소 취기 오른 목소리로 꾸짖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림자가 방 안으로 침범했다. 여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태위.”
“네놈은 장군 반장이 아니더냐. 나는 공 태부를 뵙고자 하였는데 어찌하여 네놈이 왔느냐?”
반장은 완전히 무장한 채였다. 투구와 갑주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손에는 각궁과 화살을 들었다. 반장의 좌우로도 그러한 차림의 병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차림은 어찌하여 그리도 괴이하냐……?”
“칙명을 받들 뿐입니다.”
여포는 픽 웃었다.
“칙명? 칙명이 무엇이냐?”
“역적 제갈찬과 그를 돕는 자들을 토벌하라. 먼저, 역적 여포를 처단하라.”
“이놈……”
여포가 맨몸으로 반장에게 뛰어들려는 찰나, 반장과 그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화살을 매긴 뒤 여포의 거대한 몸뚱이를 향해 일제히 사격했다. 소의 힘줄로 삼은 시위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화살을 뿜었다. 그 화살들은 거대한 과녁을 향해 쇄도했다.
“으윽……”
여포는 그대로 그 화살들을 몸에 모조리 품었다. 술기운으로 혈행이 빨라져 출혈도 그만큼 심했다.
“이놈들… 감히 네놈들이 제갈찬의 앞길을 막느냐! 내 사위의 앞길을……”
여포는 휘청거리는 몸을 떳떳히 세웠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천하를 날려버릴 듯 고함을 질렀다.
“네놈들이 감히 제갈찬을 이기겠느냐!”
그 쩌렁쩌렁한 고함에 두 번째 화살을 매기던 이들은 휘청거렸다. 그러나 반장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악물고 화살을 쏘았다. 그 화살은 정확히 여포의 이마를 꿰뚫었다. 두개골을 뚫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감히……!”
이마에서 시작된 출혈이 금세 여포의 얼굴 전체로 퍼졌다. 여포의 눈이 서산으로 물러나는 노을처럼 붉어졌다. 여포의 몸뚱이가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장안을 지나쳐 남양에 진입한 사마의의 병력은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송경으로 향했다. 량왕부의 세자 마초와 사마의는 일부러 남루한 차림을 하고 송경의 천자궁으로 들어가 천자 유총과 접견했다.
“량왕 마등의 세자 마초가 폐하를 알현합니다.”
“포의 사마의가 폐하를 알현합니다.”
그들의 인사에 유총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위명은 짐도 익히 들어왔소. 멀리 서량에서 이곳 송경까지 오느라 고생이 자심하였겠소.”
“폐하께서 저희에게 살 길을 내주신 바, 어찌 먼 길이라고 불평하겠습니까.”
낙준이 사마의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신왕 제갈찬을 역적으로 선포하실 것이오. 량왕부는 폐하를 도와 역적을 토벌하는 데 주력해주시길 바라오.”
사마의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향후 신왕부를 절멸시키고 한, 량, 조(유총은 한나라의 천자), 삼국이서 천하를 두고 다시 경쟁하는 것이오.”
“말씀만으로도 가슴이 뛰는군요. 꼭 나중에 경쟁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한과 조 두 제국을 두고 어찌 변방의 량이 대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겠습니까. 지금은 화호만 생각하십시오.”
교묘하게 말을 돌려 긴장을 피해가는 사마의를 보고 낙준은 입술을 비틀었다. 세자 마초가 우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어느 경로를 통하여 적을 토벌하길 원하십니까?”
마초의 질문에 유총이 낙준을 바라봤다. 모든 권한을 그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었다. 낙준이 그 기대에 부응하여 말했다.
“우리는 합비만을 노리고 나아갈 것입니다.”
“합비를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송경에서 합비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보급의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모든 문제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합비를 먼저 점령하지 않으면,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신왕 제갈찬의 저력을 얕잡아봐선 안 됩니다.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형양으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차근차근 기반을 다지며 나아간다면 제갈찬은 그 이상으로 신속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으음……”
마초가 갈등하자 사마의도 나서서 낙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낙 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합비를 쳐서 무너뜨리면 적의 세력이 일거에 와해될 것이나 그리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적은 단합할 것입니다. 단숨에 합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구슬을 묶은 꿰미를 깨트려야 합니다. 산산이 흩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지체 없이 합비를 치도록 합시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어야 합니다. 이미 천병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바로 내일 진군하시지요.”
마초는 전례 없는 신속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쟁 역시 전례 없는 전쟁이었다.
그때 뒤늦은 소식을 들은 태부 공융이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하여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폐하! 폐하!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어찌……”
유총은 늙다리 공융 따위를 상대해줄 짬이 없었다. 그는 공융을 외면하며 짧게 대답했다.
“태부는 눈물을 거두고 돌아가라! 짐은 이미 제갈찬을 역적으로 선포하였느니라.”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대체 신왕이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이곳 송경에서 천자의 십이류관을 쓴 것이 누구 덕이었습니까. 배고플 때 양곡을 주고 몸 시릴 때 땔나무를 준 것이 누구입니까?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신왕 제갈찬이 어째서 역도입니까!”
“어허, 지금 경은 역적도당을 비호하고 있다.”
“신왕 제갈찬과 그들의 무리는 역도가 아닙니다!”
낙준이 준엄한 표정으로 공융에게 경고했다.
“태부,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천자께서 그러하시다면 그런 것입니다. 천자의 성지를 감히 망가뜨리시렵니까.”
“낙준… 간악하구나.”
“말씀을 가려하시지요, 태부. 저는 천자께 진짜 천자가 될 조언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태부께서는 천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역적을 비호하면서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간악합니까?”
공융은 떨리는 눈동자로 유총을 바라봤다.
“폐하, 신은 더 이상 폐하를 모시기 어렵겠습니다.”
“사직하려는가?”
“그렇습니다.”
유총은 미련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