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71
“아직은 그다지 몸이 달아있지 않겠지. 우선 조인의 패는 잘 남겨둡시다. 변을 보고 뒤를 닦으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럴 때 조인이라는 야들야들한 비단 한 필을 내주면 옳다구나 받지 않겠습니까?”
유엽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뭐.”
유엽은 그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로 내 앞을 떴고, 그 다음 상서령 제갈량이 들었다. 나의 탑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나를 보자마자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국면을 한번 전환시키시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들 당파를 지어 씨름을 하는 통에 조정의 분위기가 많이 경색되었으니 말입니다. 큰 싸움도 지났고, 풍년도 들었으니 한바탕 축제를 열어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좋은 제안이군. 균이(제갈균, 제갈균은 천자의 내탕을 맡은 소부 벼슬)에게 말해서 풀 수 있는 대로 돈을 풀라고 해보지.”
“두둑한 상금을 비무대회에 걸어보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비무?”
“좌장군(허저)처럼 야전에 능한 장수들은 좀이 쑤실 터이고, 량왕부의 세자이면서 백각령을 지내느라 원지에 나와 있는 마맹기(마초)도 퍽 적적할 터이니 이름 높은 장수들의 비무대회를 열어 그들을 위로하는 한편으로 백성들에게 눈요기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나는 구미가 당겼다. 허저와 마초가 붙는다면? 그 결과가 퍽 궁금해졌다.
“좋아. 잘 성사시켜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외지에 있는 도독들도 일제히 소환하도록. 새로 부임시킨 서량과 삼보도독을 제외하고는.”
제갈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태여 그럴 까닭이 있습니까? 도독들은 폐하를 대신해서 임지를 관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일제히 자리를 비우면 소요가 일까 걱정됩니다만.”
“어느 간 큰 녀석이 천하를 삼키고 있는 세력을 상대로 소요를 일으키겠나? 전국에 풍년이 들어 모두가 배불리 밥을 먹고 있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반란도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그대로 결행해.”
“별 문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도독들을 소환하여 얻는 이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쯧, 혀를 한번 걷어차고 대꾸했다.
“도독들에게 각인을 시켜야지. 짐은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그들은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서로 무예를 겨루는 거다. 명백한 상하를 각인시키는 거야.”
제갈량은 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히도 정치적이시군요.”
“네가 이 자리 앉아봐. 안 그러게 생겼나.”
“앉겠다면, 앉게 해주시려고요?”
나는 그에게 찌릿 눈총을 쏘고는 머리에 얹은 십이류관을 벗어 그에게 휙 던졌다. 엉겁결에 받은 그는 귀신 쓰인 물건을 잡은 듯 부리나케 나에게 돌려주었다.
상서령 제갈량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대적인 축제를 열었다. 신왕 제갈찬이 제위에 등극한 것을 자축하는 동시에 풍년을 가져다준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올린다는 것을 그 명분으로 했다. 내가 등극한 것은 이미 여러 달이었으나, 이러나저러나 백성들은 즐기면 그뿐이기에 명분이야 크게 따지고 들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탕을 뚝 떼어 축제에 보태도록 했다. 소부 제갈균이 난색을 표했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도독들은 내 소환장을 받고 일제히 합비로 상경했다. 서촉도독 장료, 삼파도독 좌자, 한중도독 감녕은 부도독 문빙과 함께 왔고, 형북도독 주환, 아버지 제갈현이 태상황이 되면서 자리를 물려받은 형남도독 장선, 양주도독 장패, 제갈근이 종정으로 영전하면서 자리를 물려받은 강동도독 진도, 서주도독 진등, 예주도독 고순까지 그 면면이 화려했다.
그들은 합비의 서문에서 합류하여 한꺼번에 들어왔다. 좌자는 별다른 수행원 없이 홀로 술 몇 병과 주먹밥 몇 덩이에 의지하여 합비까지 왔다. 그에 반해 형남도독 장선은 무수한 시종들을 대동하고 우마차 몇 대를 끌고 왔는데, 그 우마차에는 개천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로 만든 어포가 한 가득이었다.
좌자는 그것을 넌지시 보고 다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
“이보오, 형남도독.”
장선은 좌자를 흘끗 보고 대답했다.
“왜 그러시오?”
왜 그러시오? 나이도 어린 짜식이…… 본래 부도독의 위신인데 태상황이 된 도독을 대리하여 도독행세를 하는 주제에…… 좌자는 속으로 울컥했지만 화를 삼켰다. 좌자는 장선의 심리를 잘 알았다. 그에게 좌자는 본래 천한 병졸 출신이었으나 어떻게 줄을 잘 타고 올라가 도독의 지위를 누리는 노인네였다. 그러하니 장선의 말투가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좌자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천자께서는 도독을 소환하였지 우마차를 소환하지는 않으셨수. 헌데 저게 다 무슨 풍경이우?”
장선은 뻐기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행간을 읽으셨어야지. 외관이 천자를 알현하러 가는데 응당 공물을 지참하여야 옳지 않겠소?”
좌자는 클클 웃었다.
“그런가? 이 늙은이가 예법에 밝지 못하였군.”
장선은 우월감이 잔뜩 번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런, 안됐소.”
좌자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를 지켜보던 형북도독 주환이 끼어들었다. 주환은 재수 없는 녀석을 견디지 못하는 성정이었다.
“허면 형남도독께서 삼파도독께 지참물을 좀 나눠주시는 건 어떻소?”
“뭐요?”
장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외관이 고루 천자의 신임을 얻어야만 천지사방이 안정될 것이오. 어포를 조금 나누면 삼파도독의 면이 살 것이 아니오?”
장선은 쯧, 혀를 찼다.
“삼파도독께서 예법에 어두워 실수를 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굳이 본관이 그 책임을 나눌 까닭은 없는 듯싶소만.”
좌자는 쿡쿡 웃음을 삭이면서 말했다.
“그거, 아쉽게 됐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급히 몰아 우마차 한 대를 급습했다. 장선의 수하들이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벼락같이 나아가 칼로 어포가 든 자루를 부욱 찢었다.
“이, 이 무슨 짓이오!”
장선이 절규했지만, 좌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포 한 장을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술을 마셨다.
“맛 좋다! 역시 민물고기는 형주의 것이 제일이야!”
“이런 심술을 부리는 법이 어디 있소!”
좌자는 혀를 쭉 빼 물며 대꾸했다.
“천자께 바칠 공물을 이렇듯 허술하게 지키다니! 그대의 잘못이지!”
좌자는 그렇게 약을 올리고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얄밉도록 합비의 서문을 통과했다.
“설마 신하가 먼저 맛본 공물을 감히 천자께 바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지?”
장선은 낭패감이 어린 표정으로 사정없이 뜯긴 어포 자루를 바라봤다.
도독들은 일제히 천자를 알현했다. 나는 부러 높이 세운 전각에 올라 그들의 문안을 받았다. 도독은 병사를 보유한 영주가 아니라 병사를 대신하여 관리하는 천자의 마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이기 위함이었다. 나는 부러 표정을 엄하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는데, 도독들 가운데에 섞인 좌자가 한쪽 눈을 찡긋 감는 탓에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오랜만에 다 같이 술잔이나 나눌까 하여 불렀소. 오늘은 푹들 쉬고, 날이 밝으면 낮부터 술에 거나하게 취해봅시다.”
나의 말에 눈치를 보던 장선이 잽싸게 나섰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그런 폐하의 은혜에 보답코자 신이 작은 선물을 마련했사온데, 보여도 되겠사옵니까.”
장선의 말에 좌자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선물이라니.”
“형주의 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로 만든 어포이올시다. 폐하께서 술잔을 기울이실 적에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 지참하였사옵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어포?”
“예, 그렇사옵니다.”
장선은 냉큼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신의 정성을 시기한 삼파도독 좌자가 자루 한 개를 훼손하여 훼방을 놓았으나, 그 자루에 담긴 것은 붕어를 말린 것이옵고 다른 자루에 담긴 것은 붕어가 아니라 다른 것들을 말린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좌자가 훼손한 것을 제하고 성한 것만을 바치옵나이다. 허니 기꺼이 받아주시기를 앙망하나이다.”
“허어.”
나는 짧게 탄식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좌자는 소리 없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히 천자의 공물을 훼손한 혐의가 드러나 당혹한 표정일까? 아니, 그것은 장선을 안타깝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장선!”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장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예, 옛! 폐하!”
“너의 행동이 심히 괘씸하도다!”
장선은 나의 진노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물을 주겠다는데 대뜸 화를 내니까. 게다가 그의 상식대로라면 좌자를 질책해야 옳았으니까.
“백성들이 흉년에서 갓 벗어났다. 여전히 궁핍한 자들이 허다하다. 그 어포가 다 어디서 난 것이냐! 백성들의 것을 도둑질하여 얻은 것이 아니냐!”
장선은 황급히 대답했다.
“시, 신은 오로지 폐하만을 생각하는 충심으로 백성들을 부려 어포를 만들었나이다!”
나는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 듣자듣자 하니 더 참을 수가 없구나! 네놈은 짐이 맡긴 군사를 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다! 네놈에게 사사로이 백성을 부릴 권한이 있느냐? 없다! 그들은 짐의 백성이다! 네놈의 행태는 마치 남의 집 머슴에게 고기를 잡게 한 뒤, 그 집 주인에게 고기를 바치는 것이니 어찌 괘씸하지 않겠느냐! 배를 곯는 백성들이 고기를 잡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겠느냐? 잡은 고기를 빼앗기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겠느냐? 짐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였겠느냐? 백성의 배고픔은 아랑곳 않고 제 술안주만을 챙기는 폭군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 그렇지 않사옵니다!”
일부러 화를 내던 나는 장선의 대답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닥쳐라! 불충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다! 짐의 백성을 함부로 부려 어포 몇 장을 바치고 짐이 가진 민심을 산산이 흩어버렸구나! 그래놓고 뭐? 선물? 네놈을 대역죄로 다스려도 모자랄 것이다!”
한번 치솟은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삼파도독 좌자가 그런 너를 측은히 여겨, 스스로 욕을 먹으면서도 너를 도와주었느니라. 그런데 너는 그 은혜를 모르고 짐에게 좌자를 참소하니, 그 죄가 하늘을 덮고도 남음이 있구나! 너 같은 악인이 짐의 신하라는 것이 참으로 치욕이구나!”
“요, 용서하여 주십시오, 폐하!”
좌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의 옆에 엎드린 한중도독 감녕에게 소곤거렸다.
“게다가 하필 선물이 민물고기 어포라니. 민물고기로 두 번 죽다 살아나신 분한테.”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상서령 제갈량에게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