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79
“말씀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조조는 저를 오랫동안 모신 탓으로 냉철하고 똑 부러진 중상시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 위에 올랐다.
“속히 가십시오.”
중상시는 들고 있던 채찍으로 말의 궁둥이를 맵게 갈겼다. 말이 길게 울었다. 조조는 몸을 푹 숙였다. 그 틈을 검은 마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그 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닫혀버렸다. 눈치가 잰 몇몇이 추격하려고 하였으나 죽어가는 환관들이 발목을 잡는 탓으로 결행하지 못했다. 검은 환관의 옷과 검은 말은 검은 밤 속으로 숨어버렸다.
“부디 우리의 죽음을 잊지 말아……”
중상시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도끼에 뒤통수를 맞아 단숨에 절명했다. 환관의 검은 옷 위로 검붉은 피가 흘렀다. 수백의 환관, 그들은 모조리 주륙되었다.
북문에서 소요를 일으키던 하후상의 병사들도 모두 진압되었다. 불가항력이었고, 중과부적이었다. 전멸되었다. 하후상 역시 최후의 순간을 미련 없이 받아들였다.
“꼭 피를 봐야했는가.”
여몽은 안타까운 심정을 토했다. 하후상은 씩 웃었다.
“안 볼 수가 없었지.”
여몽의 칼이 하후상의 가슴팍을 그대로 찔렀다. 하후상의 고개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환관 수백의 목숨과 병사 수백의 목숨, 그리고 하후상의 것을 더한 만큼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진 채, 조조는 묵묵히 북쪽으로 말을 몰았다.
“뭐라! 부황이 사라졌다니!”
중앙에서 모든 보고를 받고 있던 조비는, 환관들의 틈에서도, 병사들의 틈에서도, 천자의 침전에서도 천자를 발견하지 못했노라 알려오는 보고에 크게 진노했다.
“그것이 말이 되느냐!”
“서문의 환관들 사이로 말 한 필이 빠져나갔다는 몇몇의 말이 있긴 합니다만……”
바보 같은 소리에 조비의 분노만 더 커졌다. 그는 탁자를 쾅쾅 내리쳤다.
“환관들을 이기지 못해 부황을 놓쳤다는 말이냐, 지금!”
그때 오관중랑장 풍해가 태자 조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하,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급보라고 말하는 풍해의 표정이 밝지 않으므로, 조비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무슨 일인가.”
“대사마 조인이 병주 태원의 병마를 얻고 유주자사 이전과 합하여 일군을 이뤘으며, 황상께서 조인의 진에 닿았다는 전언입니다!”
그 말에 조비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뭣이!”
황상이 병주와 유주의 군에 닿았다. 조의 강역에서 병주와 유주를 제하면 오직 기주와 청주만이 남는다. 그러한즉 나라가 정확히 둘로 갈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주와 청주가 병주와 유주보다 부유하고 병력이 많았다. 실력이 그러하니 명분만 보존하면 조인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부황이, 부황이 병주에 닿았단 말이냐!”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태자는 태자고, 천자는 천자였다. 이 나라는 천자의 나라였다. 천자에게 대적하는 자는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역적이었다. 천자가 병주로 갔다면, 태자 조비는 얼마든지 황도를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반란군의 괴수가 되는 것이었다.
“대체 이런 일이……!”
조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유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완벽했다. 완벽했는데 어찌하여 대체…… 그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까닭에 맑은 피가 윗니에 고였다.
“주유!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주유는 고개를 숙였다.
“저의 패착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히 칭제하시고, 역적을 토벌하십시오.”
조비는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헛구역질을 할 것만 같았다.
“뭐라?”
그러나 주유는 시종 침착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하의 권력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것입니다. 명분을 잃었으니 명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역적을 토벌하라니, 부황이 역적이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대사마 조인이 천자를 납치하였고, 우선은 이 궐위와 난국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하께서 즉위하시는 것입니다. 조인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혹 필요하다면 천자를 역적으로 선포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으셔야 합니다.”
“주유!”
주유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이미 전하께서는 청사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면, 이대로 망해버려 웃음거리마저 되시렵니까!”
“으윽……”
“하옥한 전 승상 정욱과 전 대장군 하후돈 이하 모든 공신들을 처형하십시오.”
“뭐……?”
“그들은 업도의 신료들에게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하여 어떤 방식으로 달아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굳이 그들을 주살하였음을 이곳저곳에 알릴 까닭은 없지요. 은밀히 손을 써서 그들을 주살하십시오.”
조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정녕 괴물이 된 것만 같다……”
주유는 싱겁게 웃었다.
“괴물이기는 옛날부터 괴물이셨습니다.”
그러자 그 옆의 오질이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대가 잘났다고 떠들지만 전하의 심기를 항상 먼저 염려해야 할 것이다!”
주유는 오질을 오래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괴물도 못 된다.”
정욱. 하후돈. 하후연. 악진. 우금, 두기, 순심, 조순. 만총. 모개. 주령. 그리고 그 이하 숱한 황족들과 공신들. 그들은 지체에 어울리지 않는 업도의 감옥에서 누군가의 창칼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날, 개구리가 유독 사납게 울어댔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정욱이 죽기 직전 가장 마지막으로 흘린 것은 피가 아니라 눈물이었다.
“북비가 조인의 진에 무사히 당도했다는 전언입니다.”
노숙은 보고를 받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에게 서주도독 진등이 말했다.
“북비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났군요.”
노숙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폐하께서 가장 바라시던 상황입니다. 이호경식지계.”
“허면 이대로 업도를 향해 밀고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노숙은 짧게 숨을 쉬고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은 아닌 듯합니다.”
진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더 기다리십니까? 지금 들어간다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피를 가장 적게 흘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조와 조인은 눈물로 재회했다. 조조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대번에 쏟았다.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조인 역시 참았던 소회가 일순 폭발했다. 태자 조앙의 죽음, 친절하여 더욱 굴욕이었던 타향살이, 그리고 고국의 분열.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그들의 상봉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도리어 극단으로 치닫는 일임을 알기에 더욱 절망적이었다.
“자효야, 자효야, 내가 어찌해야 하겠느냐. 나는 정말이지 무엇을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조조는 눈물을 구슬프게 짜냈다. 조인 역시 조조의 손을 잡고 말과 울음의 경계에 있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소제가 참으로 부덕한 까닭이옵니다. 이 황망함을 견딜 수가 없나이다.”
“어찌 너의 잘못이겠느냐. 그런 말은 관둬라.”
“자환(조비의 字)은 물론이요 이런 해괴한 일을 두고도 제 이득에만 눈이 먼 자렴(조홍의 字) 역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조인의 말에 조조의 눈이 휙 돌아버렸다.
“그놈들은 조씨가 아니다! 개의 자식이다! 자환이니 자렴이니 고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그놈들은 그냥 개야! 짐승이야! 괴물이야!”
조조는 허공을 바라보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주유는 차를 따라놓고 마시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여몽은 그것이 기이하기도 하고, 어딘가 딱하기도 하여 말을 붙였다.
“주공, 어째서 차를 드시지 않습니까?”
“너는 꼭 차는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농을 건넬 여유를 되찾았구나, 여몽은 그것이 반가워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럼 마시지 않으면 차를 어디에다 쓴답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예?”
주유는 고개를 들어 여몽을 바라봤다.
“너는 나의 판단이 온당하다고 보느냐?”
“판단이라 하옵시면.”
“정욱과 하후돈 등을 일시에 주륙하고, 조비더러 제위에 오르라고 한 판단 말이다.”
여몽은 쓴웃음을 지었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다소 과격한 것이 아닌가 여겼지만은, 주공께서 품은 적절한 계책이 있지 않겠습니까?”
주유도 여몽을 따라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