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84
내 뒤에서 가후가 진언했다. 나는 옹성에 등을 기대고 그를 바라봤다.
“적을 사방에서 압박하자는 것이오?”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우리가 저들을 요격할 까닭이 없습니다. 괜한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업을 굳게 지키고, 사방에서 적을 에워싸 스스로 지리멸렬하게 만드는 것이 상책입니다.”
“과연 그렇군.”
“폐하, 이 전략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이 최선이다. 적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하고 우리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그러나 그 전에 짐에게 한 가지만 허락해주시오.”
가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천자에게 감히 허락할 수 있는 신하는 천하에 없습니다.”
조조는 한참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뒤통수에는 흙먼지가 서캐처럼 날렸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은 거지꼴이었다. 천자의 행색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그는 굼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짐과 회담하고자 한 용건이 무엇이냐.”
조조는 흙바닥에 앉아 물었고, 나는 흙바닥에 앉아 대답했다. 그것이 천자끼리의 회담이었다.
“급할 것이 무업니까. 술이나 한 잔 나누시지요.”
그러자 조조가 짐짓 눈에 힘을 주었다.
“이놈, 독을 탔으렷다!”
나는 푸 웃으면서 병째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입가에 흐르는 맑은 술을 슥 닦으면서 나는 조조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조제 폐하를 독살할 연유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죽일 가치도 없다는 것이지.”
그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는 술을 꿀꺽꿀꺽 시원하게도 넘겼다. 나는 가부좌를 튼 채로 그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조조는 나에게 다시 술병을 넘기며 말했다.
“술도 먹었겠다, 얘기를 해봐라! 어차피 너의 속셈쯤이야 이 조맹덕이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느니라!”
“호오, 그렇습니까? 허면 제 속셈을 조제 폐하가 대신 말씀해주시지요.”
조조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흥! 항복을 종용하러 온 것이 아니냐!”
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조조는 나를 노려봤다.
“뻔뻔한 말을 참으로 활기차게도 하는군.”
“섭섭지 않게 대우해드리죠.”
조조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어디 조건을 말해봐라.”
“조제 폐하를 조왕(趙王)에 봉하고 업도의 조씨는 짐이 분명히 교지를 내려 그 신분을 보장하겠습니다. 또한 식읍 2만 호를 내리고, 이 또한 역모에 가담하지 않는 이상 절대 삭감하지 못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에 더하여 3품 이상의 벼슬에는 반드시 진출하도록 보장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파격적이지요?”
내 말을 다 듣고 조조는 수염을 꼿꼿이 세웠다.
“나름 노력은 했다만.”
“했다만이요? 어째서 했다만입니까.”
“식읍 4만 호를 보장하고 구경 중 한 자리를 반드시 보장한다면 받아들이지.”
“끝까지 협상이십니까?”
“조맹덕은 그렇게 살아왔다.”
2만 호나 4만 호나 대업 앞에서는 하찮은 숫자였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업도 조씨의 신변은 보장하되, 업도 조씨의 범주에서 제외할 녀석들은 분명히 제외를 해줘야 할 것이야.”
나는 그 녀석들의 정체를 알았지만 굳이 한 번 더 물었다.
“녀석들이라 하면?”
“누구긴 누구야! 감히 짐을 제위에서 끌어내리고 제멋대로 칭제를 한 조비란 녀석이지!”
“그리고 그 밑에서 몸을 수그리고 있는 조홍이란 녀석도 그렇지요?”
조조는 벽력같이 소리쳤다.
“말하자면 입이 아프니라!”
“그들은 조제 폐하께 역적질을 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짐이 입은 은혜가 없으니 조제 폐하의 뜻대로 하시지요.”
“짐의 뜻대로 하자면 꿩고기처럼 찢어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느니라.”
“그것은 조제 폐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말해놓고 조조를 흉내 내어 조건을 달았다.
“단, 조홍만큼은 짐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조조는 내 기세가 제법 흉흉하였는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 조홍의 일에 있어서는 그대가 나보다 너그럽지는 않겠지.”
“허면 이것으로 된 겁니까?”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여정은 이것으로 끝이 났네. 설마 나더러 그대에게 높임말을 쓰라는 요구까지는 하지 않겠지?”
조조는 더 이상 스스로를 짐이라 일컫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나는 일어나 조조에게 손을 내밀었고, 조조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있는 힘껏 그를 잡아당겨 일으켰다.
“항복례는 구태여 하지 않겠습니다. 신과 조가 합병하기로 협의했다고 백성들에게 알리지요.”
조조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미련처럼 털며 고개를 저었다.
“할 건 해야 해. 나는 그대에게 머리를 조아리겠네. 그리하여 똑똑히 알도록 하겠네. 천하에 유일한 천자는 바로 그대임을 말이야. 물렁하게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꼭 불순한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거든. 나는 그걸 원치 않아.”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물렁한 천자는 섬기고 싶지 않네.”
나는 어설픈 웃음으로 화답했다.
조조와 조인, 이전을 비롯하여 업도의 북쪽에 진을 치고 있던 장졸들이 모두 업도로 귀환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움도 비쳤지만 잘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 지배적이었다. 어찌 되었건 업도는 그들의 고향이었고, 무사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조조는 극진한 예의로써 항복례를 거행했다. 스스로 흰 옷을 입고,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을 조의 만조백관이 다 보도록 하였다. 기실 만조백관이라고 해봐야 조비에게 부역한 이들을 제외하면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조인은 눈물을 훔쳤고, 이전은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틀었다. 나는 민망한 웃음으로 조조의 절을 받고 그를 친히 일으켰다. 그 자리에서 조조를 조왕에 봉하고 식읍 4만 호를 하사했다.
“만세를 누리시옵소서!”
조조는 또박또박한 발음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을 높여 축수했다. 나는 조인을 내군의 장군으로 임명하고 이전을 서주자사에 임명했다. 새로 정복한 조의 땅은 나의 믿음직한 신하에게 맡길 작정이었다.
“이제 조비는 맘대로 족쳐도 되지 않겠소?”
나는 가후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가후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꾸했다.
“어쨌거나 회담은 무모한 선택이셨습니다.”
“어쨌거나 잘 풀렸잖소?”
가후는 소리가 안 나게 쯧, 혀를 차고 물러섰다. 노숙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조조의 야심은 자타가 알고 있습니다. 어찌 조조가 항복할 줄 아셨습니까?”
나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목소리로 뻐기듯이 말했다.
“천자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달까?”
가후에 이어 노숙 역시 질리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뭐, 아무렴 어때. 이 좋은 날.
나는 약속대로 조조에게 조비와 그를 따랐던 자들에 대한 처분을 맡겼다. 서궁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조조가 그의 방식으로 처분하도록 철저히 배려했다. 나는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가후와 노숙, 허저와 조운을 비롯한 문무의 신료들과 차를 나눌 뿐이었다.
“…할 말이 있느냐?”
조조는 말아 쥔 주먹을 떨면서 조비를 내려다봤다. 조비는 포승에 묶여 무릎이 꿇려졌다.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비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조조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조비에게 던졌다. 묵직한 금속음이 바닥에 울렸다. 조조에게는 멀리 들리되 조비에게는 가까이 들리는 소리였다.
“그것은 내가 제갈찬을 해하려 꺼냈던 단도이니라.”
조조의 목소리는 차분한 슬픔이 어려 있었다.
“제갈찬은 다른 단도를 꺼내 나를 막았느니라. 그리하여 나는 제갈찬을 죽이지 못했다. 그래서 항복했다.”
조비를 내려다보는 조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에게 단도가 있느냐?”
조비는 고개를 처박고 역시나 유구무언이었다.
“없겠지.”
조조는 등을 돌렸다.
“자결하라.”
조조는 그렇게 말하고 서궁을 빠져나갔다. 조인은 검으로 조비의 포승을 자르고 서궁의 문을 걸어 잠갔다.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는가 하더니 이내 멎었다. 조조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