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86
“이 상황에서는 어떠한 말도 달콤하지 않느니라.”
“결사항전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조조는 턱수염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글쎄.”
노숙은 무사히 돌아와 내 앞에 엎드렸다.
“조조가 회담에 응했습니다.”
나는 입을 살짝 벌리고 웃었다.
“오, 그래요? 잘됐군.”
내 옆에 서있던 가후는 영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째서 회담을 제의하셨습니까? 어차피 조조는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오환과 요동이 알아서 제거를 해줄 텐데요. 감히 말씀 올리자면 좋은 책략이 아닙니다.”
“조조는 일세의 영걸인데 저렇듯 처참하게 가도록 놔둘 수는 없잖소?”
“그런 물렁한 마음가짐으로 천하를 어찌 경영하시겠다는 겁니까.”
가후의 잔소리가 내 귀에 따갑게 박혔다.
“이미 결정된 바이니 후속처리나 궁리하시오!”
나는 가후를 피해 부랴부랴 외투를 걸쳤다. 나는 내 뒤에 바위처럼 서있는 허저의 어깨를 잡았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장군이오. 짐과 함께 회담장으로 갑시다.”
그 말에 조운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자룡도 있습니다.”
나는 조운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허 장군 같은 덩치가 뒤에 떡하니 버텨줘야 조조가 감히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겠지.”
조운은 탐탁지는 않은 표정이었지만 내가 그렇다고 하니 물러났다. 허저는 헤벌쭉 웃으면서 말했다.
“성심을 다해 지키겄슈!”
“든든하오.”
업도의 밖으로 나서는 제갈찬을 보고 가후는 팔짱을 꼈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조조는 여우야. 흉계를 꾸밀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에 노숙이 말했다.
“허저가 있으니 미덥지 않습니까.”
가후는 웃으면서 노숙을 바라봤다.
“하기야 저 덩치를 누가 당하겠냐마는.”
나는 마차에 올랐다. 마부 한 명과 장군 한 명, 그리고 황제 한 명이 중간지대로 향했다. 저 멀리서도 먼지가 올랐다. 조조는 조인을 대동하고 나섰다. 조조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얼마만인가.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했다. 그렇게 거대해보였던 영웅이, 이제는 궁지에 몰린 신세가 돼서 나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우쭐하는 마음보다는 감개무량한 마음이었다.
먼지만 보이다가 조조의 형체가 어슴푸레 보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졌다. 곧 이목구비마저 분간이 되었다. 조조 역시 나를 만나러 오는 이 시간이 어딘가 오묘한 듯 입술을 뒤틀었다.
“여어, 오랜만이군.”
조조의 목소리가 내 귀에 또렷이 들릴 정도로 우리 둘은 가까워졌다. 나는 공수하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제 폐하.”
조조의 뒤에 선 조인은 역시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거봐, 내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했지? 나는 그에게 찡긋 눈빛을 보냈다. 조인은 반응하지 않았다.
조조는 마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도 그렇게 했다. 허저와 조인은 돌발상황을 대비하여 바짝 긴장했다.
“손이나 한번 잡아보지.”
조조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름의 호의라고 생각해 기꺼이 그 제안에 응했다.
“그러시죠.”
나는 손을 뻗어 조조의 손을 잡았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흑!”
조조가 온힘을 다해 나를 자신의 방향으로 확 잡아당겼다. 반림이 손을 좀 봐주긴 했지만 관우의 일격에 성치 않은 내 어깨가 심하게 뒤틀렸다. 나는 낚싯대에 딸린 고기처럼 그대로 조조의 아귀힘에 낚여 들어갔다.
“폐하!”
허저가 속히 칼을 빼들고 나를 구원하려 했지만, 조인이 기민하게 칼을 빼들어 허저를 저지했다. 완력으로 조인이 허저를 당하겠냐마는, 조조가 나를 어찌해볼 짬 정도는 벌 수 있었다.
“이 개자식!”
조조의 얼굴이 귀신처럼 험악했다. 그는 나를 그대로 잡아당겨 고꾸라뜨리고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나를 찌르려고 했다. 살기가 뜨겁게 내 얼굴 위로 뿜어졌다.
“크윽……!”
나는 안간힘을 쓰며 조조의 몸무게를 견뎌냈다. 조조는 단도를 내 경동맥에 박으려고 했다. 살고자 하는 나의 힘과 죽이고자 하는 조조의 힘이 팽팽하게 맞닥뜨려 둘은 파들파들 떨었다.
“젠장… 어찌 이렇게도 추해지셨소……”
내가 이를 악물고 강변했지만 조조는 흘려 넘겼다.
“역사에는 승패만 남는다. 추한 일은 남지 않아.”
“이익……!”
나는 온힘을 다하여 그를 밀쳐냈다. 조조는 거의 예순이 다 된 노구였다. 내 아무리 허약한 체질이라지만 그 정도 노인네쯤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게 해드리지요.”
나는 그를 완전히 깔아뭉개고 품안에서 똑같이 단도를 꺼냈다. 허저와 칼을 맞대고 있던 조인이 외쳤다.
“폐하!”
나는 조조의 목을 향해 단도를 겨눴다. 조조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내 단도를 막아냈다. 그는 힘겹게 신음을 흘리는 와중에 웃었다.
“크, 크하하… 네놈도 단도를 지니었느냐?”
나는 악에 받쳐서 대꾸했다.
“허면 호랑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맨몸으로 가오리까.”
“젠장!”
조조는 허공에 대고 버럭 외친 뒤에 풀썩, 모든 힘을 풀고 큰 대 자로 누웠다. 갑자기 힘을 쭉 빼니 하마터면 내가 조조의 목을 찌를 뻔했다. 가까스로 방향을 바꿔 칼날은 흙바닥에 박혔다. 조조가 무력하게 숨만 쉬자, 나는 그 옆의 흙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쌕쌕 몰아쉬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조인과 허저도 칼을 거두고 눈빛으로만 대치했다. 한참 숨을 몰아쉰 조조는 드러누운 채로 말했다.
“나는 나만 단도를 가져올 줄 알았지.”
나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슥 닦으며 대답했다.
“저 또한 난세를 누려온 자입니다.”
“그렇지! 제갈찬도 그러했지! 난세를 누려왔지! 그리고 곧 난세의 문을 닫으려고 하지!”
조조는 누운 채로 흙을 움켜쥐었다.
“나는 치사하기로는 제갈찬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군.”
그는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바람이 제법 불어 구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도 이제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구나.”
나는 묵묵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조조는 그렇게 드러누운 채로 눈물을 흘렸다. 손에 힘을 풀어 움켜쥔 흙을 놓아주었다. 고운 흙이 스르르 내려가 바람에 내 쪽으로 날아갔다.
천하를 일통하였으니 모든 것이 편안해지고 이제 은퇴나 하여 술이나 진탕 퍼마시고 다니면 원이 없겠으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천하는 오랜 전란으로 궁핍해져있으니, 다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러자면 쉴 수 없었다. 전쟁은 장군에게 부절을 나눠주고 병력을 떼어주면 그만이었지만, 정치는 그럴 수 없었다. 정치란 그 자체로 권력이며 부절을 회수하면 알아서 돌아오는 병권과는 달리 정권은 한 번 손을 떠나면 기약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권은 망령 든 노인의 곶감단지처럼 최후까지 쥐고 있어야만 했다.
권력은 달궈놓은 쇠와 같아서, 태어났을 때 가장 강하고 그 이후로는 쇠약해질 일만 남는 것이었다. 그러한즉 나의 권력은 천하를 막 일통한 지금 가장 강했다. 그렇기에 강한 권력을 요구하는 사업은 속전속결로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천하를 일통하자 사방의 제국(諸國)이 사신을 보내 축하했다. 사방 천지에 대적할 세력이 없는 최고의 강국이었으므로 저들이 앞 다투어 축하를 올리는 것은 지당했다.
오환과 흉노, 선비, 저, 강, 갈의 유목민족들과 저 멀리 왜에서도 사자를 보냈다. 남방의 이러저러한 나라들과 고구려, 부여, 백제에서도 사자를 보내왔다. 어찌 알음알음으로 서역과 천축(天竺, 인도)의 이질적 외모의 사자들도 찾아왔다.
그들은 저마다의 특산을 나에게 바치며 축수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을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짐은 그대 임금들이 보내온 성의를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오. 그렇듯 기쁜 표정으로 서로 넘치는 것을 주고 모자란 것을 받는 상생의 관계를 언제나 유지하기를 바라오.”
각국의 사자들에게 딸린 통역관들이 열심히 내 말을 그들의 귀에다 속닥거렸다. 사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배석한 만조백관들도 좋은 말을 좋게 들었다.
“또한 창칼로써 맞붙어 피를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신의 강역은 신의 강역이고, 그대들의 강역은 그대들의 강역이오.”
그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따금 그대들의 싸움에 아조의 권위를 등에 업고자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오. 짐은 이것을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오.”
그 말에 사자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아조는, 외방의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을 것이오. 외방의 일은 외방끼리 알아서 처리하시오.”
내 말을 듣고 몇몇 신료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에 승상 종요가 아뢰었다.
“폐하, 아조는 천하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나라로서, 소국의 사대를 받을 자격이 있고 또한 그들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자애로운 어버이의 마음으로 해결해줄 자격 또한 있사옵니다. 구태여 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렇듯 못을 박듯 말씀하시는 건……”
대홍려 왕찬이 종요를 거들고 나섰다.
“그러하옵니다. 때로는 소국들의 다툼에 아조가 개입하여 쉽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사대란 있을 수 없소. 짐은 어떠한 나라의 섬김도 받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나라도 섬기지 않을 것이오. 이것은 확고하고 부동한 생각이니 경들은 새겨 들을 뿐 반박하지 마시오.”
종요가 뭐라 말하려는 것을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짐은 인간이오. 또한 짐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를 이도 인간이오. 인간의 오감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은 중화의 전토를 돌보기에도 부족하오. 어찌 외방의 일에 간섭할 여유가 있단 말이오. 그럴 여유가 있다면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더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즐거움에 함께 기뻐해야 옳을 것이오.”
그러나 종요도 마냥 물러날 태세는 아니었다.
“폐하, 아조의 권위는 외번(外蕃, 변방의 조공국)에게서 조공을 받고 그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써 바로서는 것이옵니다. 만일 폐하께서 그것을 포기하겠다 하시오면, 외람되오나 신의 귀에는 아조의 권위를 포기하겠다는 걸로 들리옵니다.”
그의 말이 퍽 도전적이었으나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경에게는 아조의 권위가 우선일지 모르나 짐에게는 아조의 백성이 우선이오. 순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조각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어 가라앉힐 수도 있다고 했소. 짐은 외번을 두는 것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