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02
가후가 말하자, 백각대부 엄준이 발언했다.
“백각대부 엄준, 승상 종요의 탄핵안에 찬동합니다.”
엄준을 시작으로 참파의 모든 백각대부들이 탄핵에 찬동했다. 일절 반대토론 없이 전원 탄핵에 동의하자, 당황한 것은 도리어 본파의 백각대부들이었다. 비록 종요가 반대파의 지도자이기는 했지만 탄핵을 제기하자마자 빨리 처리해버리는 참파의 모습에 당혹했다.
이미 행간을 짚은 가후는 무덤덤한 눈빛을 본파의 백각대부들에게 보냈다.
“다른 각신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본파 백각대부들을 이끄는 백각령 등애는 쉽게 입술을 떼지 못했다. 혹 다른 술수가 존재하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후는 그런 등애를 보고 슬며시 웃었다. 돌다리는 안전하니 굳이 두드리지 않아도 좋네. 가후는 그 생각을 제 입으로 말했다.
“백각경 가후 역시 탄핵에 찬동하오.”
가후가 결정을 내리자 백각령 등애 이하 본파의 백각대부들이 모두 탄핵에 동의했다. 만장일치.
“승상 종요에 대한 탄핵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니, 이를 폐하께 품신하고 구체적인 처리와 형벌을 정위(상존)부로 넘기도록 하겠소.”
가후는 그렇게 선포하고 백각을 닫았다. 승상 종요의 탄핵이 백각에서 처리되었다.
“어어……”
탄핵안을 넘겨받은 정위 상존은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승상 종요의 건이 워낙 광범위하고 중차대한 건이라 정위부로 발령을 받은 중랑장 여몽이 상존에게 퉁을 놨다.
“뭐가 어어, 입니까? 뜸 들일 시간이 없습니다. 속히 승상 종요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명령하시고, 또 종요에 대한 양형을 정위부의 관료들과 논의하여 적당한 형벌을 폐하께 품신하셔야지요!”
“어어……”
“또 어어입니까!”
“이번에는 알았다는 뜻의 어어였네.”
“좋습니다.”
정위부에서는 즉각 모든 가용인력을 투입하여 승상 종요의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미 물증은 확보되어 있으니 당사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중요했다. 그리고 비리로 인해 취득된 모든 재물에 대한 압수조치가 이뤄졌다.
정위 상존은 천자를 알현하여 법률에 의거한 형벌을 제안했다.
“승상 종요의 죄가 크고 독하나, 그간 정사에 깊이 관여하며 세운 공이 적지 않으므로 식읍의 절반을 삭감하고 작록을 삭탈하는 것으로 벌하는 것이 어떨지요.”
나는 상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짐도 승상의 공로는 잘 알고 있네. 경의 품신이 적절한 것 같군. 다만 식읍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겠네.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하네.”
상존은 고개를 숙였다.
“역시 황상의 자비가 하해와 같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건데 자비가 하해와 같다는 말을 듣기가 민망했다. 나는 겸연쩍게 웃고 말았다.
종요는 순순히 용퇴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신하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올리겠다는 종요의 말을 거절했다. 민망하기도 했고, 그의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종요가 축출되고 난 후 첫 조례에서, 나는 말했다.
“승상의 탄핵으로 조정이 뒤숭숭한 것을 짐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필요한 것이오. 부디 경들은 종요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사익을 버리고 나라를 위한 일에만 골몰해주기를 바라오.”
나의 일성에 신료들은 허리를 꺾어 절대적인 복종을 다짐했다.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속들인지 알기 요원했지만, 나는 표면적인 복종만으로도 만족했다.
“분부 받잡겠나이다, 폐하.”
나는 옥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당분간 승상에 대한 인선은 보류하도록 하겠소.”
가후가 눈빛을 번뜩이며 내게 물었다.
“백각에서 논의하여 적절한 인사를 추천하도록 할까요?”
내친 김에 칼을 휘둘러보겠다는 의사였다. 참파의 지도자인 종요를 축출한 마당에 승상 자리를 본파에서 꿰차보겠다는 의도였다. 꼭 본파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선에서. 대략 노숙이나 염상, 왕수, 혹은 제갈근 정도가 거론될 터였다.
가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언뜻 웃음을 비쳤는데, 그 웃음의 뜻을 나는 알았다. 이 정도면 용납 가능한 시도이지요? 간을 보는 웃음이었다. 나는 역시 웃음으로 화답하여 시도 자체는 용납 가능함을 표해주었다. 그러나 승상 자리는 백각에서 맘대로 찜 쪄 먹도록 두지 않았다.
“아니오. 승상에 대한 인선은 짐이 직접 처리할 것이오. 백각에서 승상에 대한 인선까지 처리한다면 짐이 있을 까닭이 없지 않소?”
나는 자비로운 경고로써 가후의 제안을 물리쳤다. 가후 역시 그냥 한 번 찔러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마무리될 조례였다. 그때 저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신료들의 끄트머리에서.
“폐하, 신 비서랑 제갈각 돈수백배하고 아뢰옵니다.”
“응?”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말석으로 향했다. 조례에서 비서랑과 같은 하급관료가 발언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물론 제갈각은 다른 하급관료들과는 달리 그 지체가 높긴 했지만, 그 역시 조례에서 무언가를 발언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기이하고 재밌게 여겼다.
“비서랑 제갈각, 말하라.”
제갈각은 좌우로 도열한 신료들의 가운데로 나섰다. 가운데는 중간에 거치는 사람 없이 나와 제갈각만이 존재했다.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제갈각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과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긴장했다는 거다.
“폐하, 외람되오나 나라의 재상마저 탄핵되어 경질된 상황입니다. 시국이 매우 위급하나이다. 재상의 재(宰)는 요리를 하는 사람을 말하고, 상(相)은 걷는 것을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재상이 이럴진대, 재상이 없는 나라는 요리를 못해 날것을 먹어 탈이 나고 마는 것이옵고, 또한 제대로 걷지 못해 그야말로 정치가 파행(跛行, 절름거리며 걸음)으로 치닫는 것이옵니다.”
뭔데 이렇게 사설이 길어? 나는 흥미로워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계속하라.”
“나라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오니, 신의 생각으로는 역시 내내 궐석으로 있는 태자 책봉을 서둘러 나라의 질서를 단속하고 근본을 바로세우는 것이 가당할 줄로 아뢰옵니다.”
“와우.”
나는 육성으로 감탄했다. 재상과 태자 모두 없으니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염려가 있다. 그러하니 태자라도 세워서 질서를 바로잡으라. 말이야 바른 말이었다. 그런데 승상이 날아간 바로 그 다음날에 태자책봉을 건의하다니. 게다가 그 주체가, 일개 비서랑이라니. 나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내가 웃으면서 가만히 있자, 제갈각이 말을 서둘렀다.
“부디 장자승계의 원칙을 준수하시어, 원자 전하를 태자위에 서둘러 세우소서!”
크학. 나는 하마터면 웃다가 사래가 들릴 뻔했다. 일개 비서랑이 태자책봉을 서두르라 건의하는 것은 물론, 그 적임까지 거론한다? 간덩이가 부어도 분수가 있지! 제갈각이 교만한 성정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누군가 헛바람을 들게 한 것이 분명했다. 그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비서랑 제갈각은 어찌 그런 황망한 언사를 입에 담는가!”
대사농 보즐이 사나운 목소리로 제갈각을 꾸짖었다. 이어서 백각대부 엄준이 준엄하게 꾸짖었고, 일파인 백각대부 설종도 과장하여 분개하며 외쳤다.
“일개 비서랑이 운운할 정도로 태자위가 가볍지 않은 것이오! 어찌 이리도 무람할 수 있단 말인가!”
참파의 신료들이 일제히 제갈각을 공격하고 나섰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럼 그렇지. 사마의가 종요에게 흘렸구나. 종요는 안전한 퇴각을 위해 제갈각을 초원의 한가운데 내버렸구나. 제물로.
당연히 참파의 신료들이 거들어줄 것을 기대했던 제갈각의 얼굴은 삽시에 사색이 되었다.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파랗게 질린 혓바닥만 날름거렸다. 그의 아비인 종정 제갈근 역시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진화에 나섰다.
“폐하! 신이 잘못 가르친 죄이옵니다! 부디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태자는 짐이 알아서 책봉할 것이다,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도리어 웃길 뿐이었다. 웃음을 꾹 속으로 누르고 거짓 분노를 치르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 일은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여기서 제갈근의 체면이나 제갈각의 어린 나이를 참작하여 어물쩍 넘어가버린다면, 신하들은 태자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제멋대로의 목소리를 내버릴 것이었다.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실의 문제에 장삼이사들이 끼어들게 되면 군권은 무너지는 것이니까.
“비서랑 제갈각, 경은 짐의 뜻을 알지 못했는가?”
도리어 천자의 뜻을 한 발 빨리 알았기에 감행한 일이었다. 제갈각은 지금 나의 이러한 평가가 당혹스러울 뿐이겠지. 제갈각은 대답하지 못했다.
제갈근이 급히 나섰다.
“폐하, 부디 신을 벌하여……”
나는 제갈근의 말을 일축했다.
“종정, 짐은 지금 비서랑 제갈각과 얘기하고 있소. 경의 아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조의 비서랑에게 얘기하고 있단 말이오. 가르침이 덜 되어서 본인 대신 아비를 벌할 것이었으면 경의 안방에 뒀지 조정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오. 조정에서는 누구의 아들인 것이 중요하지 않소. 경들은 똑같이 짐의 신하일 뿐이오.”
내가 냉혹하리만치 말을 자르고 들어오자, 제갈근 역시 당혹했다. 하기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나로서도 과장하여 냉혹할 만큼 이 일은 중요했다.
“비서랑 제갈각.”
나는 제갈각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눈빛이 그를 직격했다. 그는 무너져 내렸다. 천자가 쏘는 눈빛, 비서랑이라는 부름. 상하를 명백히 인식시키는 상황에 그는 무너졌다. 자신이 영특하다고 교만했던 것, 남들보다 앞서있다고 오판했던 것. 그 치기 어린 잘못들이 지금 무자비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경은 짐의 뜻을 어겼다. 또 짐의 권력에 도전했다. 이의 있는가?”
내 물음에 제갈각은 이의가 있어도 없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어, 없습니다……”
“좋아.”
나는 다시 옥좌에 똑바로 몸을 기댔다.
“천자의 뜻을 거스르는 신하, 천자의 권력에 도전하는 신하는 조정에 둘 수 없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는 조정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나가야 할 것이다. 짐은 현 시각부로 비서랑 제갈각을 파면하며, 어떠한 형태의 복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조례를 파했다. 제갈각은 그 순간부터 조정에 남지 못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특함보다 필요한 미덕이 겸손인 것이다. 우매하고 겸손한 자는 살아남지만, 영특하고 교만한 자는 저렇게 조기에 용도폐기 되는 것이었다.
나는 침전으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일단 종요와 제갈각은 처리되었군.”
제갈각이 원자 제갈단의 태자책봉을 주장하다가 나가떨어지자, 조정의 신료들은 이황자 주를 태자에 세우려 한다는 사마의의 정보를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심이 갈대 눕듯 표변했다.
“전하, 아무래도 이전처럼 자주 뵙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종요의 아들인 종육은 쭈뼛거리며 제갈단에게 말했다. 제갈단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 너를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서운하지만 어찌하겠느냐. 그것이 생리인 걸.”
종육은 허리만 한 번 꾸벅 숙이고 제갈단의 앞을 떠났다. 제갈각이 그렇게 날아가버리고, 종육마저 저리 떠나버리니 제갈단의 마음이 헛헛하기 그지없었다. 고우마저 죽마를 버리고 휙 가버렸다. 제갈단은 씁쓸하게 웃었다. 을나고니를 찾지 않은 것도 여러 날이 되었다.
자꾸 그 기억과 겹치는 고로 을나고니를 만나는 시간이 괴로울 뿐이고, 그의 괴로움이 또한 을나고니의 괴로움이리니 제갈단은 그녀를 찾지 못했다.
친구도, 연인도 없는 그 가운데서 제갈단은 외로움만 씹었다.
한편 이황자 제갈주의 곁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아비의 명을 받잡은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그의 곁으로 가서 알랑방귀를 뀌었다. 제갈단에게 붙었던 때에는 참새사냥이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서책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참새 깃털을 옷에 묻히고 갑자기 공자왈 맹자왈을 외는 풍경이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서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
제갈주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는 침전에 누구도 들이지 않고 혼자서 조용한 가운데 책 읽기를 즐겼다. 그런데 삽시에 침전이 시장통이 돼버리고 알량한 선물 이것저것을 바쳐대느라 맘껏 책 읽을 공간마저 부족해져버리니, 그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빨리 이 난리가 끝나든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