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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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경기는 조조 쪽으로 기울고(3)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여포와의 대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적당한 취기도 숙면에 도움이 되었다. 숙취도 없어서, 나는 일어나자마자 약한 허기를 느낄 정도였다. 전시이언만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편히 주무셨어요?”
그 한 마디 질문이 내 행복한 아침을 산산조각 냈다. 그 간드러지는 여성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파프리카의 것이었다. 나는 경악했다. 아직 누운 자세인 채의 내 시선은 허공을 향했다. 따라서 내 시야에는 높고 하얀 천장만 눈에 들어와야 옳았다. 그런데 내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멧돼지의 엄니처럼 툭 불거진 파프리카의 전투적인 광대뼈와 꿀은 물론이요 로얄젤리마저 뚝뚝 흘리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뭐, 뭐야……”
나는 엉겁결에 내가 숙면을 취했던 물렁한 베개를 더듬었는데, 그것은 영락없는 살결의 느낌이었으며 내 눈으로 확인한 결과 베개는 명백한 살색이었다.
“젠장……”
술이 웬수, 천하의 웬수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물렁한 베개라고 생각했던 것은 파프리카의 허벅지였던 것, 그렇다면 파프리카는 내내 허벅지를 빌려준 채로 밤을 새웠단 말인가. 젠장, 젠장. 앞으로는 원효대사 해골 물 얘기는 쓸 필요가 없다. 새로운 버전의 고사가 지금 막 생겼으니 말이다. 원효대사 해골 물 대신에 앞으로는 화평자의 파프리카 허벅지 고사를 인용하기를 바란다.
“네가 왜 여기에……”
파프리카는 부끄러운 듯 몸을 비틀면서 대답했다.
“아잉, 몰라요……”
“왜 몰라, 네가 알아야지, 왜 몰라.”
하마터면 왁왁 거려 화평을 그르칠 뻔했다. 그러자 이 여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저는 만지님이 별가 어른을 좀 위로해드리라고 하셔서…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너무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시지 말아주세요……”
만지 이 시러베 잡놈의 노인네 같으니라고…… 나는 간신히 화를 삼켰다. 내 관자놀이에 핏발마저 서자 파프리카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너무 만지님께 노하지 마세요…… 만일 제가 별가 어른을 꺼렸다면 처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처소에 든 것은……”
간드러지는 목소리.
“별가 어른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오,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나는 갑자기 솟는 두통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파프리카가 나를 건사하려는데 나는 그녀의 손을 내치고 급히 자리를 떴다.
“다음부터는 내 처소에 들지 말라.”
급히 변소로 도망가는데, 닫는 문틈으로 파프리카의 조용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지 말아야했다.
“저는 별가 어른의 잠을 도우려고 밤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누여드렸을 뿐입니다…… 별가 어른이 알아주시길 감히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게 매몰차시면 슬퍼요……”
나는 처소에 다시 들어가 위로해줄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냥 그대로 처소를 나섰다. 영자의 처소로 쳐들어가 그곳에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영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세 개는 족히 떠올랐지만 나는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부스스한 눈으로 나를 뒤따르는 만지에게 한껏 쏘아붙일까도 했지만 그냥 관두기로 했다. 저 능글맞은 눈매에 저주 있을진저!
모든 장수들이 무장을 한 채로 성부로 모여들었다. 모두 결연한 눈빛이었다. 여포도 촘촘한 미늘로 덮인 갑주와 꿩 깃을 꽂은 투구를 쓰고 기다란 보검으로 몸을 지탱했다. 그 밑으로 노국상 장료, 낭야상 장패, 진류태수 장막과 그의 아우 장초, 그리고 진궁. 그 밑으로 고순과 성렴, 조성, 위속, 송헌, 후성 등 여포의 막료들과 별가 설란과 치중 이봉(李封) 등 연주의 호족들. 더불어 장료의 부장 학맹과 낭야의 손관, 조운 그리고 나. 그리고 나의 부장 만지까지. 제법 화려한 면면들로 성부는 꽉 들어찼다. 여포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일 청주별가 제갈찬과 이야기를 나눴소. 고맙게도 낭야의 군세가 선봉을 맡아주겠다고 했소이다.”
그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사실 노구와 영자와는 협의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노구는 흘끗 한번 나를 돌아봤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 바로 옆의 영자는 내 등을 툭툭 두들기면서 귀엣말을 했다.
“잘했어!”
여포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지금껏 출진을 망설였으나 어찌 낭야의 뒤에 숨어 숨만 고르고 있겠소. 나는 장문원(장료)과 더불어 제2진으로 출진하여 조조를 치도록 하겠소.”
그 말에 진궁의 안색이 잠시 변했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의 곁눈질이 나를 한번 훑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진류(장막)와 진공대(진궁)는 성을 수비해주시오. 장광릉(장초는 전임 광릉태수)께서는 종사중랑 허사, 왕해와 더불어 후미를 맡아 우리를 원호해주시오.”
여포의 말에 장막, 진궁, 장초, 허사, 왕해는 읍하며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낭야의 편제는 낭야상이 알아서 하시오. 제2진은 장문원이 중군을 맡고 학맹이 후군을 맡으며 좌익에 성렴, 조성, 위속을, 우익에 고순, 송헌, 후성을 두겠소.”
여포가 편제를 밝히자 노구도 읍하며 앞으로 나섰다.
“낭야는 손관을 선봉에 세우고 소장과 별가 제갈찬이 중군을, 조운 공을 후군에 세우겠소.”
그 말에 조운이 웃으며 나섰다.
“객장을 배려해서 후군에 두실 것 없습니다. 저는 관전을 따분해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후군을 편제에서 없애고 저를 손 장군과 나란히 두십시오.”
노구도 화답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낭야는 후군을 두지 않겠습니다.”
“훌륭한 장부들이군.”
여포도 흐뭇하게 웃었다. 아군의 편제가 완료되자 전군의 참모 격인 진궁이 나서서 조조의 편제를 일러주었다.
“조조는 현재 선봉에 하후돈과 조홍을 세우고 중군을 자신이 직접 통솔하고 있습니다. 좌익에 하후연, 우익에 조인을 두고 후미에 이전을 세운 형세입니다. 하후돈과 조홍은 용장들이니 낭야군은 유의해서 싸우십시오.”
노구는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이미 한바탕 혼쭐이 났으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궁은 쓰게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러면서 그는 연주 전역이 표시된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연주 전역에서 조조에게 협력하는 곳은 단 세 곳뿐입니다. 범과 동아, 그리고 견. 이곳은 조조의 모사인 정욱과 순욱이 각각 지키고 있습니다. 조조와 맞서다가 별동대를 이곳으로 보내어 공파한다면 조조는 연주 전역에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여포는 마뜩찮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수차례 군을 보내어 공략했지만 쥐새끼 같은 놈들이 틈을 내주지 않아 여태 손에 넣질 못했어.”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우선 조조의 예기를 꺾은 후에 대군을 보내어 단숨에 함락시켜야 합니다. 정욱과 순욱은 이름난 꾀주머니들입니다. 고만고만한 병력으로는 떨어뜨리기 힘듭니다.”
진궁이 내게 말했다.
“제갈 별가는 연주에 연이 없으면서도 정욱과 순욱이 이름난 모사인 것을 아시는군요.”
나는 헤헤 웃으며 얼버무렸다.
“바람결에 들었습니다.”
조조의 진용에는 빈틈이 없었다. 진궁이 말했듯 조조의 선봉에는 하후돈과 조홍이 선 듯, ‘하후’라고 적힌 깃발과 ‘조’라고 적힌 깃발이 한데 얽혀 나부꼈다.
“겁도 없이 선봉에 서다니. 이번에야말로 그 개놈의 목을 창에 꽂을 거야.”
영자는 조조의 쪽을 바라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동감이었다.
“응. 이번에야말로……”
내 옆에 슬그머니 만지가 섰다. 작은 키의 그는 까치발을 들어 조조의 진용을 살폈다.
“역시 이기기 쉽지 않겠어.”
힘이 쭉 빠지는 말이었다.
“노인장,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좀 희망적인 얘기를……”
“아이고, 또 입방정을. 이번에는 이 추한 늙은이도 판세를 점칠 수 없을 만큼 백중세이니 안심하십시오. 온후의 무용은 천하를 덮는 재주이니 조맹덕도 이번에는 쉽게 꺾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굳이 안 붙여도 될 사족을 더했다.
“그리고 아직 조맹덕은 제정신이 아닐 걸요.”
그는 음흉하게 웃었다.
“제가 아주 세게 만져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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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 13. 성렴(成廉, ?~?)
여포의 막료. 여포가 흑산적의 장연과 겨룰 때 고작 기병 수십 기로 장연의 본진을 하루에 수 차례 돌파할 정도의 무용을 지녔다. 하비성에서 조조와 싸울 때 여포와 함께 나서 요격을 시도하지만 붙잡혔다. 생사 여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사에서 효장(梟將), 건장(健將)이라는 수식이 등장하는데, 상당한 무재를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