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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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경기는 조조 쪽으로 기울고(3)
전고가 울렸다. 빠른 장단으로 내닫는 북소리는 우리의 심장을 울렸다. 그 북소리에 맞추어 낭야의 말발굽 소리가 복양의 열린 성문으로 새어 나왔다. 요격을 예상하고 있던 조조의 선봉도 전열을 정비하고 격돌할 준비를 했다. 중군의 노구가 군령을 하달했다.
“진을 갖춰라. 방진으로 적과 맞서라.”
명을 받든 장교는 읍하며 깃발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전군! 방진!”
방진은 수비를 염두에 둔 사각형의 진형. 노구의 군령에 아군은 익숙하게 진을 갖췄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새삼 전쟁의 성패는 병력의 양보다 역시 질에 달렸다는 믿음을 굳혔다. 노구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쌓은 신뢰와 무수한 적들과 맞서며 터득한 전장의 지혜, 밤낮으로 이어지는 조련으로 단련된 무재. 비록 낭야의 군세는 일만의 안팎에 불과하나 그 기세는 일국을 쓸어버리기에 족했다. 역사에서 압도하는 병력이 터무니없이 간단하게 무너지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5만의 병력이 2천이 안 되는 왜병에 허물어진 용인전투를 꼽겠다. 군율에 질서가 없고 심신이 물렁한 약골들을 5만, 10만, 100만을 징병한다 해도 그들은 모두 전장에선 잠재적 주검일 뿐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방진을 이루는 아군을 보며 연병(練兵)의 더없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군이 방진을 채택하는 까닭은 퍽 계산적이었다. 공세적인 진을 택하면 적에게 심대한 타격은 주되 그만큼의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선봉을 자처하기는 했지만 1만의 병력은 우리의 목숨 그 자체다. 함부로 소모할 수는 없다. 방진을 채택하여 적과 장기적인 대치상황을 만들고, 그 틈에 드러나는 적의 허점을 여포의 기병부대가 타격하면 적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그것을 능히 짐작했는지 조조군 선봉장인 하후돈 역시 방진으로 맞섰다. 틈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중이었다.
전장은 삽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죽고 죽이는 소음으로 군령을 서너 번은 발해야 진의 경계까지 닿았다. 방진과 방진이 맞붙어 사각형의 한 모서리 전체가 전장이 되었다. 노구는 중군에 자리하면서 침착하게 병력을 운용했고, 하후돈도 마상에서 못지않은 통솔력을 발휘했다. 선봉에 선 조운도 선봉군의 중심에서 군을 다스렸는데, 함께 선봉장을 맡은 영자는 창을 꼬나 쥐고 전장의 최전방에서 직접 피를 튀기며 적과 격돌했다.
나는 손차양을 만들어 일기당천으로 맞붙는 영자를 바라봤다.
“영자가 직접 싸우고 있어. 저러다 적습에 말릴 수도 있어.”
노구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말릴 수 없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어느 곳을 가리켰다.
“원수 또한 날뛰는 까닭이다.”
그곳을 바라보니 조홍 또한 창을 내지르며 아군을 무자비하게 참살하고 있었다. 영자는 이를 으드득 갈며 적을 해쳐 조홍의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자의 독주를 말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던 내 입이 굳게 닫혔다.
“드디어 네놈과 대적하게 되었다. 놓치지 않겠다……”
마침내 영자는 조홍에 다다르게 되었다. 영자의 눈에서는 서슬 퍼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조홍은 가볍게 웃었다.
“그대는 누구기에 이토록 강한 적의를 드러내나? 아, 내가 계집을 쏴죽일 적에 그야말로 계집처럼 질질 짜던 사내들 중 하나였던 것 같군.”
조홍은 목을 까딱거렸다.
“계집 같은 놈이 내 적수로 가당하다고 보나? 너 역시 황천으로 보내주마.”
영자는 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조홍도 씩 웃으며 수비했다. 분노에 휩싸인 영자의 창은 정교함은 부족했으나 그 힘이 극도로 끌어올려졌다. 이따금 조홍의 공격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힘에서 압도하여 점점 조홍이 수세로 몰렸다. 조홍은 진땀을 빼며 점점 소극적인 수비로 일관했다. 영자가 조홍의 목을 취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숨죽이며 관전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뭐야!”
조조의 진에서 장수 서넛이 쏟아져 나와 일제히 영자를 공격했다. 한 명은 영자보다도 앳돼 보이는 소년 장수였다.
“나는 조순(曹純)이다!”
조순은 내가 알기로는 조조의 친족으로 조인의 아들이었다. 영자는 그 창을 받았다. 또 다른 장수 역시 영자를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이 몸은 여건(呂虔), 자는 자각(子恪)일세. 내 창 또한 받아보시게!”
“나는 한호(韓浩)다!”
순식간에 적수가 불어나자 오히려 영자가 수세에 몰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악전고투하던 조홍도 비로소 여유를 되찾고 영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 대 사로는 좌절감이 좀 느껴지지 않나, 계집?”
영자는 한꺼번에 네 개의 창을 받아내며 욕했다.
“비열한 자식!”
점점 몰리는 영자에 나는 애가 탔다. 근방의 아군이 영자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운이 있었지만 그가 장수들 사이의 싸움에 매달리면 선봉군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대장! 이대로는 힘들어!”
내가 외쳤지만 노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내 옆에 바람이 한번 휭 하고 불었다. 옆에서 잠자코 있던 만지는 순식간에 가속하여 어느새 영자의 가까이로 바짝 붙었다.
“힘에 부쳐 보이는데 좀 도와드릴깝쇼.”
영자는 다급하게 대꾸했다.
“이럴 때는 물어보고 돕는 게 아니야!”
만지는 실실 웃었다.
“그렇군요.”
그는 조홍 등 네 명의 장수를 바라보더니 겅중 말안장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다 잠시 눈치를 보고 조순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조순의 말은 급작스런 만지의 등장에 놀라 앞발을 치켜들고 눈알을 뒤집었다. 아직 연륜이 부족한 조순은 비상식적인 공격에 대처할 방법을 몰랐다. 만지는 조순의 말 위에 올라 서있는 채로 한 차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다시 조순의 말 위로 떨어질 때 발에 육중한 힘을 실었는데, 그 힘에 그대로 말의 어깨뼈가 골절되어 말은 앞다리를 접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조순은 허둥거리며 창을 놓치고 흙바닥에 굴렀다. 만지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무사히 착지한 후, 조순의 목 뒤를 밟아 기절시켰다. 그런 후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자신의 말안장에 올린 후 유유히 본진으로 향했다.
“일 대 삼은 견딜 만 하실 거요, 손 장군!”
만지의 원맨쇼에 정신을 못 차리던 영자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한 놈만 더 잡아줬으면 수월할 뻔했는데. 뭐, 이 정도로도 괜찮소. 고맙군, 노인장.”
만지는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켰다.
“새로운 원군이 오고 있으니 일 대 삼도 수월해졌을 것이우.”
그의 손가락 끝에는 정말로 한 떼의 군마가 질주하고 있었다. 군마들이 나부끼는 깃발에는 ‘고’라고 쓰여 있었다. 노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순 직할 최정예부대, 함진영이다.”
순식간에 조순이 포로로 잡히고 갑자기 여포의 진영에서 군마가 쏟아져 나오자 조홍과 여건, 한호는 꽁꽁 얼어버렸다. 영자는 씩 웃으며 창을 휘둘렀다.
“나한테 집중해.”
그 일격으로 여건의 목이 달아났다.
조홍과 한호는 전의를 잃고 제 아군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조순이 생포되고 여건이 죽자 전황은 일거에 기울었다. 게다가 여포의 상장인 고순, 그가 이끄는 여포군 최정예 함진영의 등장은 조조군을 공포로 내몰기에 족했다. 고순은 군의 가장 앞에서 기합을 불어넣었다. 고순은 귀신같은 얼굴로 휘하를 다그치듯 독려했다.
“싸우겠느냐!”
“악!”
고순의 물음에 휘하는 괴성을 지르듯 응답했다.
“이기겠느냐!”
“악!”
“토벌하라!”
“악!”
고순의 함진영은 전원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함진영은 급속히 기동하여 조조군 선봉의 허리까지 일거에 치달은 후, 장수들의 패배로 위축된 군의 허리를 뚫어버렸다. 잠시 평정을 잃었던 선봉장 하후돈도 그 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리를 내주었다. 얇은 비단을 날카로운 쇠붙이로 뚫어 찢어버리듯, 함진영의 압도적인 돌파에 조조의 선봉군은 둘로 나뉘었다.
“됐다! 대장, 총공세를.”
나는 주먹을 쥐며 노구에게 진언했다. 노구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공격하라!”
노구의 군령에 전군은 악을 지르며 조조군을 몰아붙였다. 이미 한번 기세가 꺾인 조조군은 파죽지세로 궤멸되었다. 조홍은 아직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헛소리만 지껄였고, 조순과 여건, 두 부장의 공백과 대대적인 공습으로 하후돈의 통솔에도 치명적인 장애가 발생했다. 하후돈은 열세에서 포위공격을 떨쳐내기에 적합한 둥근 형태의 원진으로 전환할 뿐, 이렇다 할 역전의 계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이를 갈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전군! 퇴각하라!”
조조군이 물러나자 성 안에서 전세를 관망하던 연주의 호족들이 군을 출정시켰다. 별가 설란과 치중 이봉 등이 아우성치며 조조의 꽁무니를 막 치려고 하는데 노구가 그를 만류했다.
“지금 뒤를 치면 도리어 당할 것이오.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오.”
이봉이 받아쳤다.
“적이 허물어졌을 때 아예 짓이겨놓아야지 않소? 낭야상은 겁쟁이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
“내내 성에 숨어 있던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
반박할 말이 없는 이봉은 입술만 씰룩이며 다시 성으로 물러났다. 그때 다시 정신을 차린 조순이 만지의 말 위에서 버둥거렸다. 만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야, 조금만 더 자고 있어.”
만지의 손날이 조순의 목 뒤를 다시 가격했고, 다시 조순은 사지를 뻗었다. 내가 만지에게 농조로 타박을 주었다.
“애 잡겠어요.”
만지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대꾸했다.
“애가 애를 걱정하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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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 14. 여건(呂虔)
조조가 연주목이 되었을 때 발탁된다. 도적 및 산적 토벌 특화 장수. 청주 일대에서 들끓는 산전들의 반란을 모두 진압하고 기도위, 태산태수를 역임한다. 조조 사후 서주자사를 역임하다가 천수를 누리다 조예의 대에 사망한다. 이 글에서는 나온 지 1분 만에 죽는다. 미안해…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