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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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경기는 조조 쪽으로 기울고(3)
여포는 꿩 깃 꽂은 투구를 쓰고 직접 아대의 끈을 묶었다. 일군의 수장이라면 으레 여인들이 수발을 들어줄 법도 하건만 여포는 무장을 하는 것만큼은 여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했다. 평복을 했을 때의 그와 무장을 했을 때의 그는 표정부터 달랐다. 미묘한 살기가 번진다고 할까. 무장한 그는 웃음마저 섬뜩한 면모가 있다. 그는 허리춤에 칼을 차면서 그의 앞에 모인 제장에게 말했다.
“나는 오천의 군사를 이끌고 가겠다.”
그 말에 진궁이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후, 지금껏 수천 정도의 병력은 보내는 족족 공파되었……”
여포는 진궁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 이상은 거추장스럽다.”
그리고 진궁 쪽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막힘없이 스스로 구상한 편제를 읊었다.
“내가 주장을 맡고 부장으로 성렴과 위속을 데려가겠다. 전원 기병으로 편성하며 참군에는……”
그는 말끝을 흐리며 문관들이 도열한 쪽을 죽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깐의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참군에는 청주별가 제갈찬을 삼겠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뜨끔했다. 지금껏 번번이 실패했던 삼성 공략에 종군하는 게 그다지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군의 수장이 여포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도 했고, 이 무수한 모사들 중에 내가 여포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니 뭐 좋게 해석하자면 좋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일단 부름을 받으면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내 이름이 들리자마자 자동적으로 허리를 꺾었다.
“더 없는 광영입니다, 온후.”
나는 그러면서 진궁을 흘끗 살폈는데, 그다지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가 조조에 반기를 든 것은 최고참 모사임에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까닭도 분명히 있는데, 여포의 휘하에서도 웬 굴러 들어온 청주별가에게 밀린다는 인식이 확고해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진궁도 술 한 잔 대접해줘야 하나. 골치 아프다, 진짜.
나는 조운이나 영자 정도를 부장으로 삼아 데려가라 권할까도 생각했지만 관두었다. 여포의 방식을 잘 이해하는 성렴과 위속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사족이리라. 나름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 군에서 여포는 직접 오천을 선발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외관의 정예병들이었다.
“출진이다!”
여포는 화극을 머리 위로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용기백배한 병졸들은 역시 우렁찬 기합으로 화답했다. 성의 동문으로 여포의 병력이 쏟아졌다. 여포는 물론 그의 병졸들 역시 저마다 능란한 승마술을 보유한 자들이었는데, 어줍지 않은 실력으로 그들을 따라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무수한 말발굽이 대지를 진동하니 내 가슴도 절로 뛰었다. 나는 간신히 여포의 옆으로 바짝 붙어 달렸다. 그때 성렴이 우리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더니 물었다.
“온후! 헌데 아무런 공성무기 없이 삼성을 공략하시렵니까. 오로지 기병만으로는 성을 함락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에 여포는 대답하지 않고 내 쪽으로 눈짓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성렴에게 답을 주었다. 목소리를 크게 해야 하나 건너의 성렴에게까지 들렸다.
“우리는 삼성을 공략하지 않습니다!”
“엥,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별가!”
“주렁주렁 공성무기를 달고 가면 우리를 방해하는 조조의 저지를 떨쳐내지 못합니다!”
“허면 어찌……”
나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뻗어 먼 곳을 가리켰다.
“일단 저기 떨거지들부터 치우고 시작합시다.”
내가 가리킨 곳에 으레 그랬듯 조조가 보낸 한 갈래의 군마가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오천에 불과한 우리 병력을 훨씬 웃도는 수효였다. 여포는 나를 향해 말했다.
“별가는 후미로 물러서게. 우리가 돌파하여 길을 틀 터이니 뒤따라오기만 하면 돼.”
주제넘은 만용을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여포는 씩 웃었다.
“성렴, 위속, 준비 되었나.”
성렴과 위속은 동시에 가슴을 두드렸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쾌속으로 놈들의 저지를 격파한다. 전술은 네들의 몸이 기억하고 있다. 아닌가?”
“맞습니다!”
먼발치에서 여포와 장졸들이 나누는 말은 전장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더는 참기 힘든 유희를 대비하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뭐랄까, 4교시 끝나기 3분 전,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중고등학생이라고 할까. 저들보다 더 많은 수효의 적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소년처럼 왁자하게 웃었다. 죽음의 최전선에 설 졸개들조차도. 나는 그들의 웃음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목숨을 값으로 치르고도 이 자들은 전장을 오락으로 즐긴다. 한 명의 명장이 탄생하기는 쉬우나 한 개의 군단이 모조리 정예이기는 어렵다. 이들이 모두 정예가 된 것은, 지지 않고 항시 이기는 여포의 무용의 덕택. 이 자의 무용은 도대체가……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조인이었다. 훗날 위나라 최고 명장으로 손꼽히는 자. 아직 젊을지언정 그 싹은 분명히 자라고 있겠지. 아무리 여포라고 해도 수효에서 뒤지는데 과연 쉽게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잠깐의 의구심을 품는 사이에 여포가 전군에 군령을 하달했다.
“전군! 진격하라!”
무슨 학익진을 만들어라, 방진, 원진을 만들어라도 아니고 여포의 군령은 단 한 마디, 진격하라였다. 그래놓고 그는 전군의 선두에 서서 무지막지하게 말을 몰았다. 본디 군의 수장은 중군에 머무르면서 전체적인 전황을 짐작하고 전국을 조율하는 것이 책무다. 저렇게 군의 맨 앞에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것은 결코 군의 수장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눈 먼 화살에 맞아 고꾸라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여포의 행동은 몰상식했다.
“적의 선두에 있는 놈이 여포다! 놈을 집중 사격하라!”
조인은 감정 없는 표정으로 침착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조조 측의 사수들이 일제히 나서 여포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쏴라!”
조인이 들었던 손을 내리며 명령하자 숱한 화살들이 사수의 손을 떠나 허공에 마구 흩뿌려졌다. 그것에 맞아 병졸 몇몇이 낙마하여 개중의 몇은 절명했다. 그러나 여포에게는 단 한 대의 화살도 근접하지 못했다. 여포는 질풍처럼 기동하여 정면으로 조조군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말이 인중여포, 마중적토였다. 우리말로 풀면 사람 중에는 여포요, 말 중에는 적토라는 것. 여포는 적토를 애마로 삼았는데, 그 덩지가 다른 말의 두 배는 족히 되어보였고 온몸이 숯불처럼 진한 붉은색이었다. 여포의 기량 또한 대단했지만 그가 탄 적토 역시 명마 중의 명마였다. 단순히 신체가 우수한 것이 아니라 감각 또한 비상했다. 보통 말은 겁이 많아 큰 소리만 나도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러나 적토는 수많은 적들이 내지르는 창칼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농락하는 듯 여유만만하게 회피했다. 겨우 한 발의 화살의 쏠 시간에 여포의 기병은 조인의 진을 순식간에 함몰시켰다. 여포는 조인에게 사수를 물리고 창잡이를 전방에 내세울 짬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후방으로 물러나려는 사수와 전방으로 나서려는 창잡이의 짧은 교대시간에 여포가 들이닥쳐 조인의 진은 혼란에 빠져버리고 군기가 초전박살 났다. 여포와 그의 장졸들은 정말 미친개처럼 조인의 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특히 놀라운 것은 여포뿐만 아니라, 그의 부장인 성렴 또한 어마어마한 무용을 지닌 용장이라는 점. 나도 수차례 전장에 나서서 여러 무장들을 봐왔는데, 성렴의 무용이 조자룡이나 영자에 전혀 달리지 않았다. 잡장으로 여겼던 위속 또한 한 사람의 몫은 너끈히 해냈다.
“아……”
나는 본디 사람 죽어나가는 전장을 혐오한다. 그런데 전장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여포와 성렴을 향한 감탄이었다. 살육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저들에게서 진정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제 목만을 노리고 창칼과 화살을 집중하여 쏟아내는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회피하고 튕겨낸 뒤에 그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한다.
“말도 안 되는 무장이오, 정말 말도 안 돼.”
내 옆에 있던 만지조차 여포의 무용을 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인의 진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여포는 순식간에 조인이 있는 진의 핵심까지 파고들어가 조인의 목을 향해 화극을 내질렀다. 조인은 그것을 용케 피했지만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여포가 흙바닥에 뒹구는 그를 참하려는데 그의 부장으로 참전한 악진의 창이 그의 화극을 가로막았다. 악진은 겨우 여포의 공세를 차단했지만 창날을 타고 전해오는 찡한 진동에 그만 창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잔챙이가 설치는군.”
악진을 치려는 여포를 다시 부장 주령(朱靈)과 노초(路招)가 막아섰다. 주령과 노초의 창은 여포를 막긴 했으나 일거에 창대가 부러졌다. 홀로 나서 역사에 족적을 남긴 무장 여럿을 무력화시키는 무용이 놀랍기만 했다. 그 사이에 조인과 악진이 다시 무장을 갖추었지만 감히 덤빌 생각은 품지 못하고 급히 말에 올라 여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여포도 굳이 더 쫓지 않았다.
“전군! 퇴각하라!”
조인은 다급하게 전군을 퇴각시켰다. 여포는 씩 웃었다.
“벌써 놀이가 끝났느냐?”
그는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활을 꺼내들었다.
“기념품 하나 정도는 챙겨둘까.”
여포는 활의 시위를 당겨 조인을 향해 쐈다. 정확히 조인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을 조인이 겨우 보고 급한 대로 양손으로 목을 감쌌다. 다행히 목이 관통 당하지는 않았으나 양손이 화살에 꿰어지고 고삐를 놓친 그는 절규를 내뱉으며 낙마했다. 주위의 장교들이 급히 그를 수습했다. 여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너무 큰 걸 노렸나.”
그는 다시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이번에는 정확히 노초의 목덜미를 맞혔다. 노초는 찍 소리도 못 내고 그대로 낙마했다. 여포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휘하에게 명했다.
“맞았다! 저놈을 끌고 와라! 내 전공이다.”
여포는 인형 뽑기 하듯 조조의 장수들을 사냥했다. 사냥감으로 전락한 노초는 처참한 몰골로 여포의 앞에 끌려갔다.
“이놈의 목을 베어 보관해두어라. 자, 나머지는 곧장 삼성으로 향한다!”
여포는 달아나는 조인을 향해 침을 찍 뱉고 견성을 향해 고삐를 바짝 당겼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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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 16. 노초(路招)
정사에는 주령의 짝꿍으로 등장한다. 아직 죽으려면 멀었는데 여포의 힘을 보여줄 적당한 잡몹이 필요했다. 스미마센 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