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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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군량고 습격사건(1)
잠깐의 기다림 후에 처소에서 부름에 대한 대답이 들렸다.
“달 뜬 밤에 웬 손님이랴? 밤바람 차다. 싸게 드시라 혀라.”
초병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게 드시라는디유.”
나는 가볍게 읍했다.
“고맙습니다.”
처소에 들어가자 허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촛불이 빚어낸 그의 그림자는 우리 셋을 한 번에 뒤덮었다. 그의 덩치는 우리 셋을 합한 것보다도 컸다. 눈빛은 순박했는데 대중없이 자란 수염이나 털이 부숭부숭 솟은 솥뚜껑만 한 손은 위압되기에 족했다. 그는 그 손을 모아 나에게 공손히 읍했다.
“허저, 자는 중강이라 허유.”
나도 공손히 예를 갖췄다.
“이 사람은 청주별가 겸 토역장군 제갈찬이라 합니다.”
영자와 만지도 제 소개를 했다.
“편장군 손관이오.”
“만사마유.”
휘황찬란한 벼슬에 허저의 눈이 팽팽 돌았다.
“허구메, 지체 높으신 분네덜이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구먼유. 몰라 봬서 송구헙니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손사래 쳤다.
“벼슬을 내세울 마음은 전혀 없으니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고관님네들의 입맛에 맞는 차는 없을 건디… 부디 너그러이 해량해주셔유.”
“밤중에 찾은 것만으로도 면구스러운데 차를 따지겠습니까.”
“그래… 이 누추헌 곳까진 먼 일이시래유.”
허저의 물음에 나도 더 머뭇거리지 않고 본론에 들어갔다.
“실은 저는 이번에 곽예주의 부탁을 받아 여남에 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곽공의 이름에 허저의 낯빛이 살짝 굳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저는 황건잔당을 토벌하러 왔지 허 공과는 칼을 맞대고 싶지 않습니다.”
허저는 눈을 살짝 감았다.
“지두 곽예주와는 척질 생각이 엄는디 곽예주넌 본인 이외의 무장세력을 예주에 허용하지 않고 있슈. 우덜 보고 자꾸 무장을 해제하라 헌디 도적이 눈앞인데 우째 무장을 해제하겄슈?”
“마땅한 말씀입니다.”
나를 말이 좀 통하는 상대로 인정했는지 허저의 하소연하듯 내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두 창칼 맞대구 쌈허구 싶지 않슈. 그래두 가만히 앉아 도적 놈 칼 맞아 재물 뺏기구 죽을 순 없지 않여유? 우덜은 스스로 지키려구 창칼을 들었는디 곽예주가 요런 식으루다 우릴 자꾸 치구 그러는 것은 참말로 이치에 안 맞는 것이지유.”
“옳은 말씀입니다.”
“그려도 제갈토역께서능 말이 좀 통하는개비유. 딴늠들은 다짜고짜 앞뒤 안 재고 쳐들어와서능……”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 또한 허 공과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절대 싸우고 싶지 않다. 조조가 죽을 때까지 가까이 두면서 곁을 맡겼을 만큼 누구도 따르지 못할 용력을 지닌 이다. 함부로 맞섰다가는 저 넓고 두꺼운 손에 맞아 얼굴가죽이 벗겨질 거다. 최대한 어르고 구슬려 아군으로 두어야만 한다. 황건잔당을 목표로 한 원정에서 구태여 허저와 겨뤄 헛힘을 뺄 이유가 없다. 양측의 뜻이 맞아떨어지니 자질구레한 협상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상호불가침에 동의했다. 그리고 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허 공, 공의 용력을 우리에게 빌려줄 수는 없겠습니까?”
허저는 이 제의에는 난색을 표했다.
“지두 그러구 싶지만서두 이쪽두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녀유. 전력이 누출되믄 근방의 도적늠들이 들이닥칠 건디……”
나는 간단한 처방전을 제시했다.
“지금 갈피(葛陂)의 도적과 대치 중이신 걸로 아는데.”
“그려유. 그늠들이 골치여유.”
“그럼 이렇게 해요. 저희랑 힘을 합해서 갈피의 도적을 먼저 타진하고 연후에 함께 황건잔당을 토평하는 겁니다. 어차피 황건잔당 또한 허 공의 마을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이니까 언젠가는 무찔러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만지가 끼어들었다.
“허참, 우리가 손해 보는 장사요. 갈피 놈들을 치고 나서 허 공이 입 싹 닦고 물러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아니겠수?”
좋은 연계플레이다. 역시 만지. 허저의 속을 살살 긁어 결단을 유도해내는 화법이었다. 예상하듯 허저는 왈칵 성을 냈다.
“이보슈, 노인장! 이 허중강(중강은 허저의 자), 지금껏 신의를 배반한 적은 없시유. 내가 그런 파렴치한 작태를 보이면 하늘이 벼락을 내리쳐서 나를 태워버릴 거여유!”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를 달랬다.
“아무렴요. 허 공의 진의를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제의에 동의하시는 거죠?”
영자도 팔짱을 낀 채 웃음을 흘렸다.
“아무렴. 설마하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전략적 오판을 하실 허 공이 아니시지, 암.”
허저는 잠시 주저하다가 눈을 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습니다. 제갈토역과 힘을 합쳐 먼저 갈피를 토벌하고 이후 황건잔당을 토평하는 것을 돕겠습니다.”
나는 환히 웃으며 허저의 손을 잡았다. 허저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흔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야말루 잘 부탁드려유.”
나는 가뿐한 마음을 지니고 진으로 돌아갔다. 허저와의 연합에 장규는 아연실색했지만 곧 수긍했다. 윗선에서 결정한 일은 무조건 따르는 그였다. 날이 밝자마자 허저와 군을 합쳤다. 허저의 군은 대략 삼천 여를 헤아렸는데, 개중 백 여는 일군의 부장을 능히 맡을 정도로 날래고 용맹했다.
허저가 갈피의 도적들을 상대로 고전하던 까닭은 첫째가 군량의 부족이었고 둘째가 삼천 여의 병력으로는 수세만 유지할 수 있을 뿐 과감한 공세로 나아가기에는 역부족한 탓이었다. 낭야군의 합류는 그들에게도 가뭄 끝의 해갈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충분한 양곡을 제공해주었다. 뭐 어때, 내 것도 아닌데. 또한 낭야의 일만과 예주의 일만을 합쳐 도합 이만의 정규군이 합세하니 갈피의 도적들이 일만 대군 운운한다지만 그 소리는 이제 다 하찮게 들리는 것이었다. 허저의 용력과 예주의 군량과 낭야의 병력이 합치니 갈피의 도적들은 초겨울 다 죽어가는 파리 떼처럼 손쉬웠다. 그들은 이미 도합 이만삼천을 헤아리는 병력에 짓눌려 전의를 상실했다.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말아 넣고 낑낑거리는 꼴이라니!”
만지는 형편없는 기운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실은 저들두 굶고 굶다가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돼버린 자들이유. 이미 기울어버린 싸움인디 구태여 많은 인명 상할 거 없지유.”
허저는 그렇게 말하고 휘하의 장사들과 함께 말을 달렸다. 그는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쇠붙이를 긴 자루에 달아 썼다. 허저가 눈을 부라리며 적진으로 거침없이 달려가자 심약한 몇몇은 도주해버렸다. 허저의 눈빛에 이미 꽁꽁 얼어버린 도적 두령은 칼을 든 손을 덜덜 떨었다.
“대가리는 베어야 밑의 것들이 딴 마음을 못 품으니 나를 원망허지는 말어.”
허저는 창을 휘둘러 원을 한번 그리더니 그대로 두령의 목을 단합에 꿰뚫어버렸다.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도적들은 일제히 투항했다. 낭야의 군사를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갈피 도적과의 전투는 싱겁디 싱겁게 종결했다. 허저는 잔심부름 다녀오듯 적장을 목을 덜렁덜렁 들고 귀환했다. 내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따르던 모란은 피를 뚝뚝 흘리는 적의 수급을 보더니 내 뒤로 숨었다. 나는 그녀를 흘끗 보고 그대로 두었다. 나는 그를 환한 웃음과 박수로 맞아주었다.
“대단하십니다, 허 공.”
허저는 얼굴을 붉히며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므시 대단하대유……”
“갈피를 평정한 것은 허 공이니 투항한 자들은 허 공이 거두도록 하십시오.”
내 말에 장규가 반발했다.
“아니! 저들은 응당 관부로 끌고 가 죄를 물어야 합니다! 어찌……”
“머시라구유……? 한번만 더 말씀해주시겠어유?”
허저가 눈에 힘을 팍 주자 장규의 기세가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그의 반발은 미수로 그쳤다. 갈피의 투항병들은 도합 오천 가량이었다. 삼만 명 가까이 불어난 우리는 곽공의 군량을 마구 해치우며 황건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진격을 이어나갔다. 거칠 것 없는 그야말로 쾌진격. 이대로 황건을 멸망시키고 양곡을 거두어 복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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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정사 한토막
(조조가 허저를 등용한) 그날 도위(都尉)로 임명하여 조조를 호위하도록 하고, 허저를 따른 협객들을 모두 호사(虎士:근위병)로 임명했다. … 처음, 허저가 호사로 임명된 사람들을 인솔하여 조조를 따라 정벌하러 갔는데, 조조는 그들이 모두 장사(壯士)라고 생각하고, 장수로 임명했다. 이후 공에 따라 장군이 된 열후가 몇 있었고, 도위와 교위가 된 사람이 백 여 명이었는데 모두 검객이었다. (출전 : 삼국지 위서 허저전, 원출처- 파성넷/수정- 본인)
허저가 이끌던 군은 본인 말고도 휘하에 힘깨나 쓰는 자들이 많았음을 나타내는 자료다. 이후 무려 백 여 명이나 도위와 교위에 임명되었다고 하니, 허저의 세력은 단순한 자경단이 아니라 굉장한 무력집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