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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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늑대의 젖을 물다
복양성으로의 퇴로가 차단되었고 서쪽에서는 원소가, 동쪽에서는 조조가 우리를 둘러싼 형국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만지는 침착했다.
“제남과 낭야는 공의 본영이니, 포위를 뚫고 그곳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하시우. 그게 옳소.”
영자도 그것에 동의했다.
“만사마의 말이 맞아, 찬. 우선 전력을 다해서 포위망을 돌파하자. 낭야에서 숨을 고르면 길이 보일 거야. 대장, 그렇게 하자.”
노구는 감정 없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화평자, 그게 옳다고 생각하나?”
나는 노구의 물음을 나의 목소리로 치환하여 자문했다. 제남과 낭야로 돌아가 군을 수습하는 것이 옳은가? 휘하의 일만을 상회하는 군사 중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적은 수로는 제남과 낭야의 땅을 수비하지 못한다. 내가 여포와 함께 그곳으로 용케 간다고 하자. 그러면? 연주 서남부를 석권한 원소는 기호지세로 남하하려 할 터. 또한, 서남부로의 진로가 막힌 조조 또한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을 터. 만일 그들의 주적인 여포와 우리가 제남과 낭야로 돌아간다면 본디 아무런 혐의가 없던 곳이 적군의 본거지가 되어 핍박받으리라. 그들의 최우선 표적이 되리라. 이대로라면 우리는 원소와 조조를 당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남과 낭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가? 나는 물음에 떳떳이 응답할 수 없다. 잔병들이 제남과 낭야에 식솔이 있다면 그 핑계라도 대고 돌아가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노구를 바라봤다.
“대장, 낭야로는 못 돌아가겠어……”
내가 윤랑을 지키지 못해 윤랑이 죽었고, 그 탓으로 병마를 일으켜 조조와 싸웠다. 그 탓으로 오천이 넘는 아군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다시 낭야로 돌아가 조조와 원소의 표적으로 전락시킨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낭야로는 못 가겠어.”
청주자사 공 공 전(前)
바람결에 들으셨겠지만 저는 실패했습니다. 폐를 끼칠 수 없어 돌아가지 않습니다. 부디 제남과 낭야를 거두어 그곳의 사람들을 보듬어주십시오. 인의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살리고 배부르게 하십시오. 좋은 때에 당하여 미주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이따금 윤랑의 무덤에 꽃을 놓아주십시오. – 포의 제갈찬
노구도 내 뜻에 동의했다. 잠깐 생각을 더듬어 영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운과 허저의 손을 붙잡았다.
“저 때문에 팔자에 없는 엄혹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조운은 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스스로 택하여 이곳에 왔다. 자책하지 말라.”
“그려유…… 지 일신의 명운을 지가 결정혔으니 토역께서능 괘념치 마셔유. 일단 살아나갈 길을 먼저 강구해야지유.”
저마다 의견을 말하는 와중에 귀진한 장료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양주로 가시지요.”
양주는 원술의 땅이다. 대대적인 연합군을 조직해 조조를 들이쳤던 원술이 도리어 대패하자 그는 본거지인 남양을 버리고 양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곳에 웅거하면서 다시 세력 확장을 꾀하는 중이었다. 장료가 원술을 입에 담은 것은 오로지 하나, 원소의 적성세력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대는 모두 원소에게 귀부하여 알랑방귀를 뀌는 통이다. 본 역사에서는 패퇴한 여포가 서주의 유비에게 의지하지만, 그 당시에는 원소는 조조의 간접지원세력이었고 직접 전장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원소가 직접 나서서 여포를 공략하는 형세이니, 원소의 뒤에 붙은 유비가 여포를 품는 모험을 감행할 리가 없었다.
군소제후들이야 원소에 딱히 호의가 없다 해도, 조정에서 삼공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은 여포를 품게 되면 도리어 그에게 신속하게 되는 상황을 뻔히 알기에 우리를 받지 않을 것이었다. 따라서 원소에게 깊은 적의가 있고 여포를 능히 품을 세력이 되는 전국제후는 오로지 양주의 원술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나 말로를 아는 나로서는 양주 행을 쉽게 택할 수 없었다. 그의 성질머리는 이미 당대에도 널리 알려져, 양주가 언급되자 모두들 낯빛이 흐려졌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 주변의 이름난 제후라고 해봤자 청주의 공융, 서주의 유비, 형주의 유표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예주의 곽공이 있기는 하지만 보신주의자인 그가 여포의 패잔병을 끌어들여 원소와 적대하지는 않을 터. 게다가 연주서남부를 장악한 원소가 가장 군침을 흘릴 지역이니 더욱 우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장료가 첨언했다.
“아주 그에게 귀부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우선 급한 불은 꺼야지요. 듣자하니 손견의 공자인 손책 또한 그의 휘하에 있다가 막 독립하여 웅비하려고 한다니, 젊은 그가 그럴진대 일세의 영웅인 온후께서 원술에게 휘둘리시겠습니까.”
그럼에도 양주 행을 주저하는 의견들이 들렸는데, 내내 침묵을 지키던 여포가 땅에 거꾸로 꽂아놓았던 화극을 쥐었다. 그의 곰 같은 덩지에 이목이 쏠렸다. 그는 짧게 말했다.
“적을 돌파하여 원술에게로 가자.”
여포는 적토에 올랐고, 그것으로 결단되었다.
“나의 죄과가 가장 크니, 내가 선두에 서서 너희를 생으로 이끌겠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둔중하며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의 좌우를 성렴과 고순이 보좌했다. 이에 질세라 노구와 영자, 허저와 조운, 만지가 제각기 병장을 들고 뛰쳐나가니, 이미 목숨을 건 맹장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온 원소나 기진맥진한 조조가 능히 막을 수 없었다. 특히 원소는 추격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로서는 구태여 잔병을 습격하여 피를 볼 이유가 없는 탓이었다. 차라리 세를 온존하여 연주 서남부를 석권하는 데 쓰는 것이 옳았다. 도리어 조조는 하후연에게 기병을 딸려 맹추격하게 했는데, 우리가 전력을 다하여 물러나니 한참 쫓다가 관두었다. 사력을 다해 달리다가 마침내 성렴이 더 쫓지 않습니다! 안전합니다! 크게 외치니 그제야 뛰던 것을 걷게 했다.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던 여포가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 대갈했다.
“이 여봉선의 일생은 패배와 방랑뿐이냐!”
그러더니 상체를 숙이며 진득한 핏덩이를 토해냈다. 급히 성렴이 나서서 그의 몸을 부축했다.
“온후!”
여포를 보고 그를 따르던 병졸들이 참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음소리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보이지 않는 복양성을 향해서.
“모란을 두고 왔구나……”
나는 나에게 기댔던 여인을 또 지키지 못했다. 제갈토역의 애첩 취급을 받으며 조롱과 겁간의 대상이 되려나. 나 때문에 끔찍한 꼴을 당하려나. 지금 여포의 병졸처럼 울고 있으려나. 제발 그러지 않아야 한다. 나는 대체 몇 사람에게 죄인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만지가 조그맣게 얘기했다.
“모란이가 보고싶수?”
“노인장……”
만지는 이가 서너 개쯤 빠진 치열을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데려오리다.”
그는 말 머리를 돌려 복양의 우회로로 달려 나갔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만지가 그런다면 놀랍지 않다……
양주로 가는 길에 곽공의 영지를 경유했다. 관문마다 예주자사 곽공의 수하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곽공은 우리의 가는 길을 막지는 않았다. 나는 예주의 치소인 초현을 향해 공손히 장읍하며 관문을 통과했다. 또한 패국(沛國) 일대를 지나갈 때에는 패국상 진규의 접대를 받았는데, 본디 내가 알기로 너구리같은 노인네라 경계심을 품었지만, 일전에 노구와 깊은 교분을 맺었고 또한 원술과 돈독한지라 그는 우리를 후하게 대접하고 양주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길고 긴 길을 지나 마침내 양주의 치소이자 원술의 본영인 수춘(壽春)에 당도했다. 과연 일주의 치소이자 손꼽히는 전국제후의 본성다운 위용을 자랑했다. 원술은 주부 염상을 수춘의 북문으로 보내 우리를 마중하게 했다. 염상은 차분한 외양에 깡마른 체구였다. 그는 말에서 내려 공손히 장읍하여 여포를 맞이했다.
“주부 염상이라 하옵니다. 온후와 노국상, 낭야상과 같은 천하영웅이 친히 수춘까지 납시니 다시없는 광영이옵니다. 양적후(陽翟侯, 원술의 작위. 관직은 좌장군이었음)께서 한미한 포의로 하여금 영웅들을 모시라 하셨습니다. 미천한 주제로 뵙게 되어 심히 두렵습니다.”
여포는 그의 공손한 대우에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염 공은 그만 나를 놀리구려. 이렇듯 처량한 천하영웅도 있단 말인가. 다만 좌장군께서 우리를 거두어주시니 그 은혜에 감읍할 따름.”
“때를 잘못 당하시어 추악한 원소의 무리에 당하셨으니 지금의 웅크림이 어찌 온후의 과오겠습니까. 자, 우선 안으로 드시어 양적후를 뵌 후 여독을 푸십시오.”
“고맙소.”
적토마는 어울리지 않게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수춘에 입성했다. 나도 그를 따라 수춘으로 들어섰다. 염상은 하고 많은 이 중에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제갈토역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눈부신 전공을 이루었다기에 꼭 뵙고 싶었습니다.”
이 무슨 황공한 말씀. 도리어 염상의 말이 내 폐부를 찔렀다.
“크게 실패하여 양적후께 의지하게 되었는데 어찌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하십니까. 염 공은 짓궂으시군요.”
“하하, 언짢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어린 나이에 실패는 도리어 훌륭한 약이 되는 것이니 너무 낙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읍하며 고개를 숙였다.
“염 공의 말씀이 아름답습니다.”
원술은 큰 연회를 열어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자신과 나란히 여포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갖은 진미와 독한 미주를 마련하여 성대하게 대우해주었다. 원술의 문무 수하들도 모두 모였다. 하기야, 공손찬이 크게 위축되고 흑산적 또한 지리멸렬하는 와중에 여포 같은 거물이 스스로 찾아주니 그로서도 반가울 만했다. 원술은 작은 체구에 광대가 튀어나오고 입술이 다부졌다. 그는 매양 뒷짐을 지고 있기를 좋아했고, 목소리에는 잔뜩 힘을 주었다. 여포가 들어서 원술에게 읍하자 원술은 크게 웃었다.
“내 여 장군과 술 한 잔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크게 반갑소!”
원술이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주니 여포도 말을 다듬었다.
“패전지장을 환대해주시니 부끄럽소.”
“나 또한 조조를 들이치다가 크게 패하여 남양을 버리고 수춘으로 달아났으니, 동병상련이 아닌가! 함께 조조의 목을 칠 궁리를 해봅시다!”
그는 자신의 애첩을 돌아보며 분부했다.
“어이, 임자! 어서 여 장군께 술 한 잔 안 올리고 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