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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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여강은 화평할진저
원술의 영지 밖에서는 천하가 바삐 돌아갔다. 장안의 조정에서 큰 변화가 감지되었다. 장안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이각과 곽사가 제일권력을 두고 반목한 것. 전황이 대규모 내전으로 번지자, 천자와 그의 측근세력들은 은밀히 장안을 탈출했다. 장안 탈출을 주도한 것은 천자의 후궁인 귀비 동씨의 아비이자 안집장군인 동승(董承)이었다. 그는 본디 동탁의 사위인 우보의 부장 출신이었다. 그는 정의감이 특출한 까닭이 아닌 천자를 내세워 권세의 부스러기를 좀먹기 위해 장안 탈출을 감행했다. 천자의 탈출 사실을 안 이각과 곽사는 휴전하고 대병을 보내어 그의 뒤를 쫓았다. 동승은 급히 이각의 부장 출신인 양봉(楊奉)을 포섭하고 도적떼인 백파적의 한섬(韓暹)과 흉노의 어부라를 동원하여 이각과 곽사에 대항하도록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천자는 낙양에 당도했는데, 이미 낙양은 폐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동승은 오랜 고심 끝에 인접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원소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원소는 마침내 이를 받아들였다.
원소는 차남 원희와 장막, 상장 안량을 보내어 천자를 봉대(奉戴)하게 했다. 천자를 구원하여 한 가닥 잡아보려 했던 양봉과 한섬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울분을 못 이겨 원소의 병마를 습격하였으나 도리어 안량의 손에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원희는 원소의 본거지인 기주의 업군(鄴郡)까지 천자를 보위했고, 마침내 천자의 신병은 원소가 거머쥐게 되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조조의 몫이었을 천자가 원소의 품으로 날아든 것이다.
천자는 원소를 백관의 으뜸인 승상에 임명하고 업후(鄴侯)의 작위를 내리니 원소는 명분과 실리는 모두 지닌 전국제후의 꼭대기에 섰다. 천자마저 손에 넣은 원소는 장군 장합과 고람을 보내 본래 공손찬을 치고 있던 국의를 돕게 하였고, 공손찬은 역(易) 땅에 대규모 방호시설을 구축하고 장기간 농성에 들어갔다. 하북에 떨치던 공손찬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원소는 또한 맏아들 원담(袁潭)을 보내 청주를 접수하게 했다. 아쉽게도 공융은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영지를 원소에게 바쳤다. 낭야에도 이제 원소의 깃발이 꽂히게 되었다. 원소는 원담을 청주자사에 임명하고 공융은 업으로 소환하여 감찰을 총괄하는 어사대부에 임명했다. 원소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반면에 조조는 연주 동북부에 찌그러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영지만을 유지했다. 서주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서주민들의 조조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고 서주자사 유비가 잘 해내는데다가 유비가 원소에 아첨하여 조조가 서주를 치는 것을 원소가 용인하지 않으니,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명실상부 중원 으뜸의 제후가 된 원소는 천자를 내세워 공식적으로 한 제국의 도읍을 업으로 정하게 하고 자신이 한실의 수호자임을 천명했다.
“이 얼자(孼子, 원소는 첩의 소생으로 적자가 아니다. 원술과 이복형제) 자식이 도를 넘는구나. 제깟 게 감히 뭐라고 한실의 수호를 운운한다는 말이야!”
원술은 크게 분노했다. 원소와 깊은 원한관계에 있는 그였다. 원소의 승승장구가 당연히 배 아플 수밖에. 이는 그로 하여금 제위참칭의 충동을 더욱 강하게 했다.
나는 종종 원술에게 곧잘 불려갔다. 손책을 잃은 이후 그의 신임은 나에게로 쏠렸다. 그가 나를 양주자사에 임명해 수춘에 눌러앉게 만든 것도, 손책처럼 외방으로 돌아 독립하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술자리에서 농조로 제갈 가문을 버리고 자신의 양자로 입적하라는 말까지 입에 담았으니, 이 과한 신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가 나를 깊이 신임하니 나에게 행보에 대한 자문을 열심히 구한다는 것.
“이봐 임자, 원소가 천자를 봉대했으니 한실은 더욱 쓸모없어졌어. 하내의 장형이라는 점쟁이가 점을 쳤는데, 한실이 크게 쇠하고 마땅히 내가 제위에 오를 운수라더군. 또한 원씨는 본디 진씨에서 나왔는데, 진씨는 순임금의 후손이고 흙이 불을 이으니 오행의 이치에 부합하며 참문에 이르기를 한나라를 이을 자는 응당 도고라고 하였으니, 도고란 곧 나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별 말도 안 되는 잡소리에 나는 질려버렸다. 그러나 나는 겨우 낯빛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진언했다.
“물론 업에서 원소의 뒤나 닦는 천자보다 대장군이 제위에 오름이 가당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실의 운수가 다하지 않았고 제후들이 대장군의 위명을 시기하여 빈틈을 노리니 만일 제위에 오르시면 사방의 제후들이 대장군을 칠 것입니다. 먼저 형주의 유표와 서주의 유비를 정리하고 천리를 거스르는 원소의 세력과 나란히 설 때, 한의 멸망을 공표하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시어 천하를 다스리십시오.”
“그런가?”
일단 듣기 좋은 말에 원술은 뺨을 긁으며 내 말을 들었다.
“대장군의 깃발이 천하를 덮으면 그 누구보다도 제가 나서서 대장군의 즉위를 눈물로 호소할 것입니다. 천하가 대장군의 참뜻을 깨달을 때까지 조금만 참으십시오.”
원술은 픽 웃으며 몸을 비스듬히 누였다.
“임자는 말 한 번 예쁘게 하는군.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웃음으로 화답한 후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얹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태부 마일제의 쓸모도 이제 다했습니다. 굳이 표를 올려 관직을 내리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원소의 손아귀에 들어간 조정이 무슨 정통성이 있습니까? 이제 마일제도 영지에서 쫓아내십시오. 밥이 아깝습니다.”
“임자 말이 옳다.”
원술은 내 말대로 했다.
“아주 깨가 쏟아지는데.”
원술의 처소를 물러나오는데 적개심이 담긴 목소리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공자.”
원요(袁燿). 원술의 적장자로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도련님이라는 말이 꼭 맞을 것이다.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않아 뽀얀 피부에 약간의 심술이 담긴 입모양. 오만이 엿보이는 눈매. 그는 아버지 원술이 장관으로 있는 최고관서인 대장군부의 부관인 속연으로 있었다. 품계나 직급으로 따지면 나한테 싸가지 없게 찍찍 반말을 내뱉는 놈을 당장 참수해야 옳았지만, 원요는 금수저를 뛰어넘는 금강석 수저이므로 내가 고분고분하게 굴어야 했다. 원요는 원술의 등극을 강력하게 찬성했는데, 별 다른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황태자의 이름을 누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원요 같은 부류가 원술 가신단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남양파의 가신들이 원술의 황제 등극을 강하게 주장했다. 원요는 그들의 얼굴이 되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양주파 가신들은 자신들과 가깝고 또 양주자사로 임명되어 양주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 나를 내세웠다. 원술이 나를 아들처럼 신임하니, 원요의 대항마로 삼은 것. 그런 탓에 여염에 떠도는 말이, 원술의 성부는 도련님을 내세워 힘겨루기를 하는 ‘도련님 씨름판’이 되었다고 했다. 풍자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어서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명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나와 원요의 관계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부친의 신임을 손책에 이어 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원요가 나를 좋게 바라볼 리 만무했다.
“너는 어째서 아버님의 등극을 막는 것이냐? 한실의 태양은 쇠하였고 우리 가문의 치욕인 원소가 천자를 억류하고 있다. 이런 시국에 천하영웅인 아버님께서 제위에 올라 백성을 돌보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네, 철없는 소리 잘 들었구요.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양병하고 영지를 늘린 후에 등극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등극하시면 당장 원소가 격문을 띄워 전국제후를 책동하여 수춘으로 밀고 올 텐데, 공자께서는 마땅한 계책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잘하면 이기지 않겠느냐! 또한 아버지의 등극은 천리에 순응하는 길이니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우리를 도울 것이다!”
나는 코를 한번 씰룩였다.
“천하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원요와의 대담을 끝냈다.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해대고 있어, 아주. 원술이 손책이나 나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들이라고 싸질러놓은 게 저 모양이니 나 같아도 그러겠다. 나는 길 가다가 아무도 보지 못할 때 바닥에 침을 뱉어주었다.
“어머나……”
젠장… 누가 봐버렸다. 그냥 누가가 아니고 원술의 여식이 봐버렸다. 나는 침을 잘못 뱉어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침이 길게 실처럼 늘어졌는데, 그 순간에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죽고 싶었다.
“아, 저, 가래가 끓어서……”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을 형편없는 변명에 그녀의 표정은 더 떨떠름해졌다.
“네……”
그녀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저… 입가에 묻었어요. 닦으세요.”
그녀는 나에게 손수건 같이 작은 조각 천을 내밀었다. 지금 이걸로 침 닦으라는 거야? 나는 엄청난 굴욕감에 절망했다. 닦을 수도, 안 닦을 수도 없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받아들어 대충 입가를 정리했다.
“이, 이건 빨아서 드리겠습니다.”
“…됐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서 천 조각을 가져갔다.
“그럼……”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를 지나쳐가려고 했다. 이대로 보내면 어떡하나. 그녀의 뇌리에 형편없는 놈으로 각인될 텐데. 잘한다, 제갈찬! 사촌동생은 토쟁이고 너는 침쟁이구나. 나는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저, 소저……”
“네?”
나는 긴장했다. 지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렸다가는 완전히 찌질이로 그녀의 인상에 남으리라. 그래, 강하게 나가자. 목소리에 힘 팍 주고! 의문문이 아니라 강력한 평서문으로 가자!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나 함께 하시죠.”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뭐…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