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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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똑똑한 온달이 공주를 얻는다
원술의 여식은 나를 자신의 저택으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원술의 집이기도 했다. 천 조각도 빌렸는데 음식까지 대접받게 생겼다. 이러려던 건 아닌데. 음식이 차려지고 가볍게 술을 곁들였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지만 정작 대화는 많지 않았다. 말을 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므로 간단한 신상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시영(毢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이는 나와 동갑이며, 취미가 자수를 놓는 것이고 파랑새 한 마리를 기른다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전사(戰史)에 관심이 있었으며 아끼기보다는 베풀기 좋아하는 성품이었다. 그래, 그러니 침 닦으라고 천 조각도 베풀었겠지. 대화에 활기가 띤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얌전한 분위기에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합비후께서는 지체에 맞지 않게 소탈하시군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철이 없긴 하지요.”
“아뇨, 칭찬으로 드린 말씀인데……”
나는 살짝 웃었다.
“그러시면 고맙게 듣겠습니다.”
그녀는 양주에 그 이름이 드높으신 미주랑의 얘기도 제법 비중을 들여 입에 담았는데,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주유는 이 일대 여인들의 아이돌인 듯했다.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빠른 박자로 주유의 칭찬을 늘어놓는 말이 불편해 나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술을 마셨다. 내가 주유를 만나 대담했다고 하자, 정말 얼굴이 그리 잘생겼냐, 혹 거문고 뜯는 소리를 들어보았느냐 물었는데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시영도 영 마뜩찮아 하지 않는 내 표정을 읽더니 이내 자기가 기르는 파랑새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다가 간혹 심각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녀는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스스로 제위에 오르고 싶어 하세요.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천하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구요.”
나도 십분 공감했다.
“나도 애써 만류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장군께서는 제위에 오를 만한 감이시지만…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대뜸 내 손을 붙잡았다.
“합비후께서 아버님의 총기를 붙잡아주세요.”
나는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어이, 둘이 분위기가 야릇한데.”
우리 둘의 사이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개입했다. 나와 시영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원요가 서 있었다. 그는 시시껄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근접했다.
“이제 우리 누이에게 추근거리는 건가, 합비후?”
원요가 비아냥거리자 시영이 꾸짖었다.
“합비후는 너의 상급자다. 말에 예의를 갖추어라.”
“누이, 합비후는 도겸의 밑에 있다가 공융, 온후를 거쳐 여기까지 굴러 들어온 패군지장이야. 주인을 여럿 바꾼 자야.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구. 언젠가 반드시 저 배반의 전력이 심판당하는 날이 올 걸.”
모욕적인 언사에 나도 딱딱하게 대응했다.
“원속연(원요의 벼슬은 대장군부속연), 말씀이 과하십니다.”
“흥, 속으로 찔리니 저렇게 울컥 하는 게지. 이 정도로 나한테 까칠하게 구는 걸 보면 나중에는 나한테 이놈 저놈 하겠는데?”
시영은 나를 두둔했다.
“합비후는 아버님을 위해 전공을 세우고 당당히 열후의 반열에 오르신 분이야. 그를 더 모욕하면 아버님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흥, 그러겠지! 아버지는 차라리 내가 제갈요이고 저 자가 원찬이기를 바라시니까!”
원요는 홱 몸을 돌려 떠났다. 시영은 한숨을 푹 쉬고 나를 위로했다.
“원체 귀하게 자라 사리분별을 모르는 아이이니 합비후가 이해하세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말았다.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이! 원요의 한없이 가벼운 입이 사달을 내고 말았다. 시영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원술에게 소환되었다. 양주자사의 일을 치르면서 그와 대면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별 생각 없이 그를 찾았는데, 원술은 대뜸 내게 물었다.
“임자, 요즘 연애하나?”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네, 네에?”
“아비가 되어서 모른 척 하는 게 성숙한 일인 줄은 알아. 그러나 확인해볼 필요는 있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원술은 픽 웃었다.
“둔한 척 하기는. 내 딸아이와 교제하고 있느냐 묻는 걸세!”
“아… 그게……”
원술은 흐흐 웃었다.
“재미 좋나?”
“아니, 아닙니다. 겨우 식사를 한번 함께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 자리에서 원술은 그렇게 묻고 말을 끝냈지만, 어쩐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원술은 대뜸 명령을 내려 예장에 있는 아버지를 수춘으로 소환했다. 아버지는 예장에서 올라오기 전에 인편을 보내 원술이 자신을 소환하는 까닭을 물었지만 나는 모르겠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나는 공적으로는 양주자사의 업무에 충실했다. 내가 치중으로 삼은 유엽은 빼어난 행정가였다. 여강과 구강 일대의 습지를 논으로 바꾸어 많은 소출을 기대했다. 특히 남부의 예장은 기온이 높아 이모작의 가능성도 점쳤다. 또한 그는 여러 곳의 난다 긴다 하는 선비를 끌어 모았다. 그도 글자깨나 깨친 식자이고 황실의 지파로서 어린 나이에도 인망이 두터운 까닭이었다. 그가 읊는 이름 중에 반가운 이름이 있었다.
“제가 깊이 교제하는 선비 중에 노숙(魯肅)이라는 자가 있는데, 식견이 매우 뛰어납니다. 일전에 대장군의 밑에서 일했던 적도 있지만 크게 쓰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정보의 밑에 있으면서 꼭 포섭하도록 하려 했던 자였습니다. 합비후께서는 저를 쓰지 않더라도 노숙만큼은 쓰셔야 합니다.”
“노숙이라!”
주유의 뒤를 이어 손가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대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인재다. 초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 주유가 나서서 노숙을 손책의 편에서 일하게 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다. 나는 급히 유엽에게 말했다.
“치중, 내 무기한 휴가를 줄 터이니 서둘러 가 불러오도록 하십시오. 노숙 못 찾아오면 월봉을 반으로 후려칠 겁니다.”
유엽은 씩 웃었다.
“이거 무섭군요.”
다행히도 유엽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해냈다. 말쑥한 입성의 노숙이 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합비후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 사람, 노숙으로 자는 자경(子敬)이라 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잘 와주셨습니다, 노 공! 부디 나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우선 자양의 얼굴을 봐서 이곳까지 왔지만… 양적후의 밑에서는 힘써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원술의 악명은 대체 얼마나 자자한 것인가.
“저는 비록 양적후의 휘하이지만 양주자사로서 별도의 부곡과 세력을 거느렸으니, 노 공은 저를 도와주신다 생각하시고 머물러주시지요.”
유엽이 내게 말했다.
“노자경에게 치중의 자리를 약속하십시오.”
나는 의아했다.
“치중은 다름 아닌 그대가 아닙니까. 어찌……”
“노자경의 능력을 보이려면 치중의 자리는 내주셔야 합니다. 저는 본디 작은 재주를 타고나 작은 자리가 걸맞습니다. 저를 종사중랑으로 내리시고 노자경을 치중으로 삼으십시오.”
그 말에 도리어 노숙이 당혹했다.
“아니, 이보게 자양……”
“노 공, 부디 사양하지 마십시오. 노 공이 사양해도 저는 한사코 종사중랑을 고집할 것이니.”
유엽의 뜻이 워낙에 굳어 나는 그대로 해야 했다. 노숙도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노숙을 치중으로 삼고 유엽을 종사중랑으로 삼았다. 더불어 아직 나이가 어린 량이었지만 재주는 충분했으므로 량이 또한 장사로 삼았다. 이렇게 보니 별가 염상을 필두로, 치중 노숙, 종사 유엽, 장사 제갈량까지 그럴 듯한 문사의 진용이 갖추어졌다. 나를 견제하는 남양파의 가신들이 내가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외지의 이름 없는 선비들을 고관에 함부로 임명한다며 공격했지만, 원술은 개의치 않았다. 이쯤 되니 원술의 가신단은 남양파와 양주파의 구분으로는 난맥상을 온전히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남양파는 대개 결속이 굳은 반면에 양주파는 여러 출신의 선비, 무장들이 섞여 있었으므로 구분이 세분화되었다.
양주파는 원술이 양주에 기반을 다졌을 때 맨 처음 동조한 자들을 묶은 양주원류(揚州原流), 여포와 장료를 따르는 연주류(兗州流), 나와 함께하던 낭야의 이들과, 허저, 새로이 합류한 노숙과 유엽, 량이 등을 합쳐 합비류(合淝流)로 구분되었다. 차라리 내가 노구가 수장으로 있는 낭야류의 일원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공공연히 이르는 이름으로 합비류가 되고 내가 그것의 수장 취급을 받으니 노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았다. 노구는 애초부터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양주별가가 된 염상은 본래는 양주원류로 분류되었으나 나와 부쩍 가까워져 합비류로 취급되었다. 최근의 동향을 따져 가신단 내 세력도를 판가름해보자면, 남양파가 전체 세력의 4할 가량을 차지하고, 양주파가 나머지 6할이었다. 개중에서 양주원류가 2할, 연주류가 2할, 합비류가 2할이었다. 기실 연주류와 합비류는 동류라고 해도 무방했고 실제로도 긴밀하니 합해서 4할이었다. 본래 딱 절반의 세력비를 지녔던 양주원류로서는 배가 아플 법했다. 양주원류의 핵심인물이었던 염상의 이탈도 컸다. 이렇게 되니 양주파도 온전히 양주파라고 부르기 어려워졌다. 세간에서는 이제 남양파, 양주원류, 합비류 세 개의 지파로 구분해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