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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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0로 정벌군(2)
“애송이 밑에서 구른다고 고생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여포는 휘하 제졸에게 외쳤다. 여포의 병졸들은 일제히 와하하 웃어젖혔다. 희한한 모멸감이 드는 걸. 나는 이도저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걸쳤다. 당연하게도 나의 모든 지휘권을 여포에게 일임했다. 원래 여포의 것이기도 하고 야전에서의 역량은 그가 천하제일이니까. 저 한마디로 병졸들을 일거에 휘어잡는 것만 봐도 그랬다.
여포는 내가 구사하던 편제를 깡그리 뜯어고쳤다. 나는 겹겹의 호위를 받으며 총사령관의 깃발을 아군의 한가운데에 두었다. 그러나 여포는 전군의 선두에서 깃발을 나부꼈다.
나는 전국을 관망하며 불리한 곳에 병력을 충원하고 적의 허점을 깊숙이 찌르도록 하는 것을 지휘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지휘관의 소임이었다.
그러나 여포는 그것을 지휘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조전(助戰), 싸움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지휘관의 소임은 화살 비를 헤치며 앞장서 적의 수급을 베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지휘는 조전일 뿐이고, 따라서 그것은 일개 부장의 소임이었다.
“합비후! 그대가 중군에서 조전하도록 하라.”
나는 말이 우스워서 읍하며 웃었다.
“온후께서는 선봉에서 지휘하시고요?”
여포는 호방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다!”
“든든합니다.”
원윤에게는 본성의 수비를 맡겼다. 본인도 그것을 바랐다. 뇌박과 진란, 이풍 따위도 그의 곁에 두었다. 여포는 고순과 성렴을 좌우로 거느렸다. 후성과 조성이 그의 뒤를 받쳤고 장료와 학맹이 도왔다. 여포가 있는 여포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눈빛에는 결기내지는 광기 근사한 것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어떠한 신산과 귀모로 자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듯한 완력으로 우쭐거리는 잡장에게도 가당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로지 여포에게만 허락된 바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존재만으로 사졸들은 기운이 솟았다. 여포가 있는 이상 나의 역할은 정말로 조전뿐이다.
붉은 바탕에 금실로 여(呂) 자를 수놓은 깃발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주술적인 힘을 발하는 것이어서, 아군에게는 승리의 확신을 적에게는 패배의 전율을 안겨주었다.
어김없이 북소리의 빠른 박자와 고둥소리의 느린 박자가 어우러졌다.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북과 고둥의 소리에 병사들은 피를 끓였다.
“전군! 출진하라!”
여포의 호령에 찬현의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열린 문으로 여포의 방천극이 맨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맑게 붉은 적토마의 전신이 전장에 먼저 임했고, 그 뒤로 창칼을 받쳐 잡은 병졸들이 함성을 지르며 따랐다.
영자, 감녕, 허저, 만지가 건평에 주둔하고 있는 탓에, 내 곁의 무장은 오로지 진도뿐이었다. 노숙과 량이는 혀만 잘 휘두르는 문사들이었다. 나는 진도의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내 둔한 몸은 화살이 날아오면 그대로 맞는 수밖에 없소. 진 공만 믿겠소.”
그도 아랫입술을 악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공을 세워보이겠슈!”
아니, 그렇다고 의욕과잉은 사양입니다……
전장의 풍경이 점점 익숙해졌다. 다만, 시체가 쌓이고 쌓여 더 고약해지는 시취(屍臭)는 참기 어려웠다. 어서 전쟁이 끝나야 저들의 육신을 지하로 모시고 참담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터. 까마귀의 부리가 갑옷을 헤집고 썩은 살갗을 파먹고 있었다. 적토마의 말발굽소리가 들리자 영리한 새는 딱 필요한 만큼만 날아 달아났다. 여포의 붉은 깃발을 보고 적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문을 닫고 녹각성을 삼중사중으로 세워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품이었다.
“놈들도 지금이 노볼 투 스트라이크인 것을 알기는 아는가보네.”
나는 적의 면밀한 방비를 살피며 쉽지 않겠다 여겼다.
야구에는 파울볼이 있지만 전장에는 없다. 원희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걸 아는 원희는 절박하게 달려들겠지. 궁서막추(窮鼠莫追)라 하는 말은 절박함은 위험함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을 터다. 즉, 우리도 절박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원소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까?”
나는 노숙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건평이 함락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동향이 포착되질 않습니다.”
“적장자인 원담이나 귀여운 막둥이 원상이었다면 얘기가 달랐을 텐데요.”
“차남의 비애입니다.”
나와 노숙의 대화에 량이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원소로서도 판을 더 키우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기주의 병력을 움직이면 공백이 생기거든요. 그렇다면 역경에 찌그러져 있는 공손찬이 다시 활개를 칠 겁니다.”
나를 찾아와 읍소하던 공손월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공손찬은 꼼짝도 않고 있잖아! 이 사기꾼!”
량이는 나의 분노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는 제 말을 이어나갔다.
“원소는 예주에 추가적인 병력을 투입하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장악력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으니. 그리고 우리의 생리도 잘 알고 있겠지요.”
나는 량이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무슨?”
“우리도 깊은 강을 건너기 꺼려한다는 생리 말입니다. 원소와의 전면전은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니까요. 설마 원희의 수급을 벨 일은 없겠다 싶은 것이겠죠.”
“이만 하면 조조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만한데.”
량이는 흐흐 웃었다.
“조조의 입에 예주를 물려주느니 병력을 전몰시키고 예주를 구강공께 넘기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이쪽으로서는 고마운 판단이지.”
“조조는 죽을 맛이겠고요.”
셋이서 환담을 나누는 동안 선봉의 여포가 적군과 격돌했다. 적들은 맹렬하게 화살을 날리며 저항했다. 적의 진영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기전을 염두에 둔 탓으로 목책을 높이 올려 단시간에 돌파하기란 불가능했다. 여포는 진문 밖 목각성에 은신한 적병들은 모두 격파했지만, 굳게 닫힌 진문을 쉬이 공략하지는 못했다. 이럴 때 조전이 필요한 게지.
“사각(射角)을 높이 하여 불화살을 쏴라! 적의 목책을 불살라라!”
나는 진의 후방에서 사수들을 독려했다. 나의 영리한 사수들은 아군의 머리 위를 살짝 넘도록 화살을 쏴 적의 진문에 불을 질렀다. 이에 진궁은 적극적으로 방화수를 뿌려 불길을 제압했다. 원희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여포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전장의 피 냄새가 진해질 즈음, 북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랐다. 시커먼 연기는 고의적인 소각, 즉 인위를 의미했다. 북쪽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신호를 주기 위해 올린 연기인 것.
북쪽의 누군가가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나. 건평의 예쁜이들이지. 만지와 허저의 얼굴이 떠오르네. 예쁜이는 취소다.
건평의 아군은 적의 북녘을 공략했다. 적의 병력이 분산되었다. 견초가 병력의 일부를 북쪽으로 돌려 건평의 아군과 맞붙었다. 전장은 더욱 뜨거워졌다. 원희는 제법 침착하게 우리의 공세를 막아냈다. 건평에서의 습격까지야 그의 수 안에 들어있던 것일 테지. 필사의 각오라면 다소 내상이 깊더라도 막아낼 법도 하다.
그렇다면 대투수의 절묘한 체인지업은 실패로 끝나는 것인가? 원희는 이 절묘한 공을 파울볼로 만들어내는 것인가?
아니. 아직 공 안 던졌다. 여포와 건평은 와인드업일 뿐이야. 남쪽의 여포, 북쪽의 건평군, 원희는 앞뒤로 난처하게 됐다. 원희의 손발은 꽁꽁 묶였다. 이제 들어간다!
북쪽에서 피어났던 검은 연기가 이번에는 서쪽에서 진하게 올랐다. 연기를 보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원소의 둘째 도련님, 이제 끝났습니다……”
서쪽의 연기, 그것의 주인은 진등이었다. 진국에 주둔한 채 사세를 관망하던 진등이 나의 전갈을 받고 출격한 것. 진국의 방위 병력을 진규에게 맡기고 진등은 정예한 병력만을 차출하여 출격했다.
“와, 원희의 진이 마치……”
진등은 손으로 제 배를 쓰다듬었다.
“내 위장 속과 같구나.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내 위장처럼 완벽하게 아군에 유린당하고 있어.”
그는 혼자 흐흐 웃었다. 좌우의 심복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진등은 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군에 명령했다.
“우리도 이제부터 한 떼의 기생충이다! 알겠느냐!”
해괴한 명령에 그의 병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구강공의 정규군에게 처음 우리의 힘을 선보이는 자리다! 허투루 해서야 되겠느냐!”
이제야 제대로 된 말에 병력은 일제히 외쳤다.
“아닙니다!”
“진씨의 힘을 마음껏 뽐내도록 하라!”
“옛!”
진등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원희의 목에 칼을 찔러 넣는 것은 우리다! 전군! 적진을 향해 돌격하라!”
서쪽의 진등이 경사진 비탈길을 거침없이 내려왔다. 창공을 선회 비행하다가 먹잇감을 향해 발톱을 벼리고 내리꽂는 새매처럼, 진등은 원희의 진영만을 바라보고 돌진했다. 이것이, 이것이 나의 결정구였다. 진등의 칼로 원희의 배를 쑤셔버리는 것이 나의 결정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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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207)
자는 현혁. 원소의 차남. 원소의 공손찬 토벌 이후, 유주자사에 임명되었다. 원소의 사후 원담과 원상이 대립하자 원상을 지지했다. 원상이 조조에게 패하고 달아나자 그를 맞았지만, 자신의 부장 초촉에게 배신을 당해 오환(烏桓, 북방의 이민족)으로 망명한다. 조조가 오환까지 밀고 들어오자 이에 대항했지만, 오환왕 답돈이 횡사하는 등 오환은 허무하게 패망했다. 이에 원희, 원상, 그리고 오환의 잔존한 선우(單于, 흉노 등 이민족의 추장)들은 요동의 세력가인 공손강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공손강은 그들을 보자마자 생포해버렸고, 결국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당시 원상은 공손강을 토벌할 것을 주장했지만 원희는 주저했다고 전해진다.
원소의 삼남 중 존재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사서에는 아우인 원상과의 기록에서 원상, 원희의 순서로 등장한다. 또한 원소는 원상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원담을 장자에서 폐출시켰는데, 원희는 그대로 두었다. 원담은 폐출된 후 신평과 곽도 등을 포섭하여 당파를 형성했지만, 원희는 그러지 못했다. 이로 미루어 정치적 능력이 상당히 결여되었고, 부장 초촉 등의 배신으로 보아 인망이 훌륭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