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69
어린 시절의 꿈을 꾸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던.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여기는…”
“정신이 들어요?”
눈을 떠보니 옆에 영이가 앉아 있었다.
영이의 옆에는 청이와 완이, 희, 그리고 연사까지.
이제는 다들 나이를 먹은 아내들이다.
얼굴에 주름이 졌고, 흰 머리가 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아내들의 모습에 난 웃었다.
“내가 또 쓰러졌었나보군.”
“여보.”
영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에 난 웃었다.
내가 웃는 것을 보자 청이는 주륵주륵 눈물을 흘렸다.
손을 올려 청이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준 후 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됩니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느라 일그러져 있는 희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손길 때문일까?
희는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떨었다.
“난 이제 괜찮으니까.”
“하지만 여보…”
“자… 너무 그러지 말자. 서방님도 힘드실테니까 말야.”
완이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떨리고 있었고 영이가 차분히 달랜다.
다른 아내들은 슬픔을 보이고 있지만 영이만은 유일하게 슬픔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오직 나만이 아니다.
영이는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리고 있을 뿐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성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영이가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강한 모습을 위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영이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영이는 사마의로 분장했었다.
사마준이 영이에게 제안해 사마가의 비고에 숨어 살며 사마의의 그림자 역할을 해달라고 했을 때.
그때부터 자신을 숨기고 사마의의 행세를 했던 것처럼.
영이는 자신을 숨기고 진가 안주인의 모습을 의태하고 있었다.
변장과 위장에 능숙한 영이다.
그렇기에 이토록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직 나만이.
유일하게 나만이.
영이의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막아 둔 둑은 반드시 터질 수 밖에 없다.
난 훌쩍거리는 다른 아내들을 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잠깐 나가줄래? 영이랑 할 말이 있으니까. 아. 청아. 그리고 성이도 좀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줘.”
“여… 여보. 괜찬…흑. 괜찮겠어요?”
“네 남편 이대로 안죽어. 걱정하지마.”
훌쩍거리는 아내들을 간신히 달랬다.
완이가 엉엉 울며 밖으로 나가자 난 희를 잡았다.
“그리고 좀 단게 먹고 싶으니까 준비 좀 해줘.”
“뭐… 뭐든 해드릴게요. 뭐든…”
“그거 고맙네. 그리고 연사야.”
“…예. 서방님.”
“태자 전하께 보여드려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그것도 연구소에서 빨리 진행되게 해달라고 전해주렴.”
“…알겠습니다.”
아내들에게도 부탁을 했다.
그녀들이 나가자 난 영이의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 울어도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이의 웃음이 사라진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기고 있는 가면이 산산조각나 부서진다.
그녀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난 손을 뻗어 당겼다.
나이를 먹고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듣는 영이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을 꽉 안아주었다.
얼굴을 내 가슴에 파뭍은 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영이를 꽉 안아주었다.
“거짓말…흑…쟁이…흐흑… 괜…괜찮다고…해놓고선…”
“미안.”
나도 이럴 줄 알았나.
난 영이의 등을 계속해서 토닥여주었다.
겨우 진정된 영이가 코를 훌쩍거리는 동안 몇번이나 사과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물을 완전히 삼킨 영이는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정말 괜찮은거에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글쎄.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저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들어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을 몇번이나 느낀다.
이제는 태의령이 된 당지에게도 몰래 진찰을 받아보았다.
당지의 말로는 몸의 생명력이 빠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큼은 약으로 기운을 북돋아도 답이 없단다.
금이 간 항아리에 아무리 물을 넣어봐야 물은 새어나갈 뿐.
항아리 자체를 고칠 수 없는 이상 큰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균열은 점점 커져가고, 항아리는 깨져버린다.
그것이 지금 내 상태라고 한다.
즉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
그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당지가 주는 약을 받아먹은지 오년도 훨씬 지났지만…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난 영이의 손을 꼭 잡았다.
“슬슬 그만둘 때도 된 것 같네.”
“그래요… 이제 당신도 그만해요. 이만큼 했으면 많이 했잖아요.”
지금 태자를 키워 놓은 후 완전히 은퇴를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겠다.
난 웃으며 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래간만에 다 같이 태원장에 갈까?”
“성이도 데리고?”
“응.”
성이도 바쁘겠지만 오래간만의 가족 여행이다.
물론 진가의 사람들을 모두 생각한다면 전부 데리고 갈 수는 없겠지.
당장 다른 지역에 파견가 있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진가에 있는 가족들만 데리고 간다면 며칠 안에 태원장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성이가 휴가를 받을 수 있으려나…”
“정 뭐하면 내가 어사부에 가서 기침 몇번 하지 뭐.”
어사부의 수장인 어사대부는 바로 서복이다.
그런만큼 내가 꼬장을 피우면 성이가 휴가를 받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영이는 애써 웃었다.
“알겠어요. 바로 준비시킬게요.”
“응.”
영이가 간신히 웃은 후 밖으로 나가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 온 것은 이미 장성하여 멋진 남자가 된 성이였다.
성이가 들어와 내 앞에 앉자 난 히죽 웃었다.
“바쁜 놈이 왜 여기까지 왔냐?”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데 어찌 일이나 하고 있겠습니까.”
“쯧. 요즘 놈들은 근성이 부족해. 어? 옛날 나 때는 말이야.”
“아버지 때 많은 분들이 무척이나 고생한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전에 어사부와 승상부에서 일장연설을 하셨다지요?”
씩 웃는 성이에게 마주 웃어보였다.
말 그대로다.
요즘 젊은 놈들은 노오력이 부족해서 말이지.
나 때는 진짜 하루가 뭐야.
며칠 밤을 꼬박 새가면서 일했는데.
고작 사, 나흘 야근 한 것 가지고 투덜투덜 거리길래 잔소리를 좀 해줬었다.
그것을 성이가 언급하자 난 킬킬 웃었다.
“그렇게 한번씩 조여줘야지.”
“태사께서 그렇게 나서시면 다른 관리들이 무서워합니다.”
“이것이 태사의 즐거움이다.”
황태자의 스승이며, 위국 모든 관리의 스승이라는 자리.
스승이 제자를 갈구는게 뭐 잘못되었나?
성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그래. 이제 슬슬 말해 줄 때도 되었구나.”
지금까지 성이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난 성이를 시켜 방 안쪽에 있는 비밀장치를 작동시켰다.
몇겹이나 되는 자물쇠와 문, 고리를 돌려 안에 있는 상자를 꺼내온다.
그것을 본 성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뭡니까?”
“중요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곳이지.”
고급진 상자를 쓸어만지며 난 작게 웃었다.
이건 말이다.
내 추억이 담겨 있는 상자다.
상자 안에는 옛날에 영이가 나에게 주었던 바둑 교본, 화타에게 받았던 육초본기.
그 외에도 아내들과 함께 시장을 노니며 받았던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었다.
잡동사니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보물들이다.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가장 안쪽에 있는 판을 들어 올렸다.
그 밑에 있는 책 한권.
그것을 꺼내 난 성이에게 주었다.
“…이건…”
제목조차 적지 않은 책이다.
그것을 받은 성이가 떨떠름해하자 난 옆에 놓여져 있는 물을 한모금 마셨다.
“네 아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비밀이다.”
천천히 책을 펼친 성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시진여.
내가 차를 마시는 사이 성이는 책을 전부 다 읽어 본 후 천천히 말했다.
“이게 진실입니까?”
“그래. 네 아비가 나무에서 떨어진 날부터 갖게 된 기억과 지식이다.”
책에 있는 내용은 내가 가진 이유하의 지식들이 잔뜩 있었다.
하늘을 나는 철새, 땅을 달리는 철마.
불을 뿜는 철포.
서역에 대한 것.
광할한 바다.
그 외에 다른 것들까지.
기억을 쥐어짜내 적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술과 역사에 대해서 정리해 놓았다.
“이것은… 미래입니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유하의 지식에는 진유하라는 인물이 없으니까.”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이유하의 시대와 과연 어떻게 연결될까.
두개의 거울을 마주보게 하면 수많은 상들이 남는다.
어쩌면 나는.
진유하는 이유하의 수많은 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것을 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아버지!!”
“내 아버지… 네 조부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것이 바로 섭리지.”
난 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거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조천은 군말없이 사직서를 받아들였다.
물론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 말고도 일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파사국과 협력을 하게 되며 위국은 안정되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조공 체제도 큰 문제가 없고.
각 지역에 있는 이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개별적인 힘을 기르고 있었다.
거기에 중앙에는 서복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됐다.
“괜찮냐?”
“아. 물론이지.”
태원장으로 가기 위해 짐이 꾸려지는 것을 보며 서복은 무뚝뚝히 물었다.
이놈은 나이를 먹어서도 무게잡는 건 여전하네.
“그래… 휴가는 잘 다녀와라. 이쪽 일은 나에게 맡겨두고.”
“때려쳤는데 뭔 휴가야.”
“그래도 업으로 올 것 아니냐?”
“산양군으로 갈 수도 있어. 나중에 네가 산양군으로 와라. 그리고 이거 받아.”
“이건…”
“감찰부주의 패다. 사실 성이에게 넘길까 했는데 성이도 일이 많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성이에게 넘겨. 아니면 네 아들에게 주든가.”
“내 아들에게 그 고생을 시키라고? 미쳤냐? 곱게 가지고 있다가 성이가 감당할 정도가 되면 넘겨주지. ”
감찰부주라는 위치는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모든 것을 숨기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업적도 최대한 숨겨야 하는 것이 감찰부의 일이다.
쉽게 말해 똥덩어리다. 똥덩어리.
저 똥을 드디어 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속이 편하다.
“죽는거냐?”
“아마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어떻게든 보약과 환약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 거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난 웃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앞으로도 고마워해라.”
감찰부주의 금패를 주머니에 우겨 넣은 서복은 벌떡 일어나 휙 가버렸다.
그의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자식.
끝까지 무게 잡는구만.”
“여보! 준비 다 됐어요!”
“그래.”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곁으로 온 문앙이 날 부축한다.
그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 오른 나는 문앙에게 말했다.
“자네도 이번 기회에 푹 쉬게나.”
“예. 어르신.”
“그럼 출발하자.”
마차가 움직인다.
그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난 눈을 감았다.
태원장의 시설은 더 좋아졌다.
내가 태원장에서 휴양하는 것을 좋아한 것 때문인지 순선이 미친듯이 태원장을 개발한 것이다.
덕분에 관리들에게는 정말 꿈의 휴양지가 되어버렸다.
“뭐 더 드실 것 좀 가져다 드릴까요?”
“하하. 아니. 지금 다들 만들고 있잖아?”
태원장까지 와서 요리를 할 줄이야.
나를 돌보기 위해 영이만 남고 나머지 부인들은 태원장의 주방에서 약선 요리를 만들고 있다.
굳이 약선요리까지는 필요 없는데.
내 건강을 위해서라며 좋은 약재와 재료들만 모아와 아내들이 직접 요리를 해준단다.
감사할 뿐이지.
“다들 재밌어하네요.”
“음… 그렇지.”
날이 시원해서 그런 걸까?
병사들과 성이, 유와 석이가 한데 모여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으로 축국을 하는게 보인다.
그들의 열기를 보니 나까지 활력이 돋는 것 같다.
“날이 추운데 이제 들어가는게 낫지 않을까요?”
“으음. 아니. 좀 더 바람을 쐬고 싶네.”
“그럼…”
“여보.”
“예?”
“우리 오래간만에 장기나 둘까?”
내가 웃으며 말하자 영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왠 장기인가 싶겠지.
그냥 하고 싶어서 그런다.
영이가 시녀를 불러 장기판을 가져오게 하는 사이 난 몸에 힘을 풀었다.
다들 즐거워하는구나.
안정된 천하에서.
내 가족들.
내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하는구나.
난 웃었다.
“뭐가 그렇게 즐겁나요?”
내 볼을 꼬집으며 영이는 상냥히 말했다.
그녀의 상냥함에 취해버릴 것 같다.
“항상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후후. 저도 사랑해요. 그리고 알면 좀 더 잘하라구요. 나 걱정하게 하지 좀 말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영이는 내 입술에 입맞춘 후 내 손을 잡았다.
잠시 후 시녀가 장기판을 가져오자 영이는 패를 판 위에 깔았다.
“흐음~ 차를 떼어줄까요? 포를 떼어줄까요? 아니면 상? 마?”
애써 밝게 웃는 영이를 보며 난 웃었다.
저쪽에서 신나게 떠드는 내 아들들.
멀리서 요리를 가져오는 아내들이 보인다.
다들 오는구나.
행복하다.
내일이면 순선과 휘, 진태와 율이도 온다고 한다.
그래.
이게 행복이겠지.
천하를 잡았다는 것보다.
내 가족들, 내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있다는 것에 더 충만감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싶었기에 그동안 무리한 것일지도 몰랐다.
찰칵찰칵 움직이던 장기패가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며 난 웃었다.
이유하의 기억을 깨닫게 되고 매일 바쁘게 살아왔다.
태사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그리 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이렇게 가족들과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
행복하다.
편안하고, 마음이 즐겁다.
이것을 바랬다.
이것을 위해서.
이 작디 작은.
말 그대로 소의를 위해서 나는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여보…?”
그 편안함과 행복에 짓눌린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힘이 빠지고 눈이 감긴다.
“여…여보!! 여보!!”
영아 울지마.
청아. 그렇게 뛰다가 다친다.
완아. 들고 있던 요리 다 쏟았잖니.
희야. 뜨거운 접시를 들때는 조심하렴.
연사야. 들고 있는 그거 탄거 아니니? 먹어도 되겠냐?
성아.
석아.
유야.
내 자식들아.
진가의 아이들아.
“빨리 당지 어르신을 불러라! 어서!!”
공포로 창백하게 얼굴이 물든 성이가 외치는 것이 들린다.
나를 잡은 아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엉엉 우는 것이 보인다.
몸에 힘이 빠진다.
남은 생명이 점점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나무에 올라갔을 때.
그리고 떨어졌을 때.
이유하의 기억을 가졌을 때.
요화를 만나고, 영이를 만나고, 수경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동료들을 만나고.
다른 아내들을 만나고.
내 적들을 만나고.
그 모든 일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신기하네.
이게 주마등인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과거를 다시 본다는 것이 즐거울 뿐.
무수히 지나가는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을 회상하며 난 손을 들어 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아버지!! 아버지!!”
“아아악!! 죽으면 안돼!! 거짓말쟁이! 날 두고 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안돼!! 가지마!! 가지마요… 제발.. 여보…으아…아…”
영아.
표정관리 해야지.
그렇게 울지마.
다들 이상하게 보잖아.
영이 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가 울며 괴로워한다.
그들을 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그래.
나는.
난 아내들을, 자식들을, 부하들을.
내 사람들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행복한 꿈을… 살았다.”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는 것을 끝으로 나는 완전한 편안함에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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