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1
삼국지 : 미완의 군주 10화
“뭐? 여포? 그 여포 말이냐? 진짜 아만이가 네 짝을 여포 놈의 딸로 이어 줬
다고?”
하후돈이 확인하듯 바라보자, 진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입을 떡 벌리면
서 승태를 약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승태도 알아차릴 수 있는 생각을 하후돈이 모르겠는가. 그는 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지, 한숨을 내뱉으며 아미를 찡그렸다.
“후우, 아만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일 게다. 거기다가 혼자 생각한 것
도 아니고, 다른 지낭들과 이야기한 것일 테니.”
하후돈이 조조를 거스르는 말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승태는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그렇겠지요. 그분들과 다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후돈은 ‘역시’라는 얼굴을 보이며 승태의 등을 두들겼다.
“맞지? 그럼 너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게 나에게 좋은 일일까? 조조에게 좋은 일이겠지. 하후돈, 이 양반··· 진
짜 능구렁이 같네.’
승태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하후돈을 바라보다가 다시 진등을 보았다. 광릉 태
수씩이나 되는 인물이 멍청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좀 웃기기는 했다. 승태
는 다시 하후돈에게 물었다.
“사공께서 이분과 후일을 이야기하라 명하셨는데, 어디 이야기할 곳이 있습니
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조부에서 해라. 앙이의 제도 다 끝이 났고, 정 부인도 너를 보고자 하
니, 그곳에 가면 괜찮을 것이다.”
승태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수십 개는 뜨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럴 거면 자신의 자택에서 해도 될 일이었다. 승태는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를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답변이 엉뚱하게 진짜 어디서 하
라는 것이 나왔으니.
승태의 속을 읽었는지, 하후돈은 귀를 대고 살며시 말했다.
“네 혼사를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
맞는 말이었다. 조실부모해 버린 조안민이니, 혼사 준비를 본인이 할 수가 없
었다. 그러니 집안 어른 중 누가 맡아 줘야 해야 했다.
하지만 누가 해 주겠는가. 여포와 격이 맞는 사람이 없는데. 여포가 연의에서
는 그냥 무식한 장수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초기에는 문관으로 출사했고 지금
은 후의 작을 받은 제후였다.
그러니 그 격에 맞는, 혼사를 조율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보통 그의 부모가
하지만 천애 고아가 된 승태에게는 그런 사람이 마땅치 못했다. 그런데 조조
의 부인인 정 부인이 대모가 되어 혼사를 맡아 준다면, 아마 여포도 만족할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관통하는 하후돈의 안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하긴 집안에서 조조에게도 대놓고 뭐라고 한 사람이 정 부인밖에 없으니까.
기세도 있으시니, 여포를 봐도 꿇리지 않겠지. 그뿐인가? 조조의 부인이시니
급도 맞고. 이럴 때 보면 하후돈, 저 양반이 진짜 똑똑하긴 한 거 같아. 겁나
절묘하잖아?’
물론, 하후돈이 정 부인을 추천한 것은 다른 의도도 있었다. 조조와의 술자리
이후, 승태와 정 부인을 자연스럽게 붙여 놓을 방도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이번 혼사를 계기로 둘을 붙여서 조조에 대한 화를 다른 곳으로 쏟게 만들려
는 의도였다.
“진짜 절묘하시네요, 역시.”
승태의 영문 모를 칭찬에 하후돈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절묘하더냐? 그렇긴 하지. 그래 나는 아만이하고 이야기해 볼 테니, 조부로
가서 정부인께 도움을 구하거라. 또 거기, 음······.”
진등은 앞으로 나와 예를 표하며 말했다.
“서주 진가의 원룡입니다.”
하후돈은 아미를 찌푸리다가 이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한유(진규), 그 사람 아들이구나! 내 오랫동안 격조하여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그래, 반갑네. 내,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네. 아까 들어 보니 안민이에게 뭘 알려 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그가 사공부 안으로 들어가자, 진등과 승태는 다시 뻘쭘한 상황이 되었다. 서
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조조가 뭐 하나 하라고 던져 준 일
이기 때문이었다.
“조가로 가시지요.”
“아! 예.”
승태의 눈에 진등은 나이 서른 먹은 신입 사원처럼 보였다.
‘아니, 조조 앞에서는 그렇게 말을 잘했으면서 왜 이런데? 그냥 좀 편하게 사
는 방법이나 알려 주라. 알아서 잘 숨을 수 있으니까.’
승태는 말년 병장처럼 어디에 숨어서 조 씨의 위세를 부리며 놀고 싶었다. 그
러나 진등의 눈에 승태는 능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대붕처럼 보였다.
‘무엇 때문에 조가의 사람이 조가의 세상에서 능력을 숨기는 것인지 궁금하군.’
***
조부의 별채를 사용하는 것은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 부인이 직접 나
와 승태를 안고 손을 잡으며 친밀감을 표하자, 그 아래의 하인들은 알아서 준
비해 주었다.
진등과 승태는 조부의 별채에 앉아 조가에서 내준 술과 술안주를 가운데 두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 어색함이 싫은 승태가 먼저 입을 떼며 물었다.
“원룡 공, 그래서 명공께서 어떤 뒤통수를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지만 진등은 답 없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 승태는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
며 다시 물었다.
“명공과 진공께서는 서주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지요.”
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눈을 감은 채 술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술이 참으로 감미롭군요. 서주의 술과 달리 조부의 술은 다양한 맛이 느껴집
니다.”
승태는 눈을 깜박이며 무슨 개소리인지 판단하기 위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승태의 반응에 그도 뻘쭘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조가의 인재가 많아 부럽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제야 의미를 이해한 승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인재는 무슨 놈의 인재(人才)? 아 인재(人災)?’
이번의 일로 속마음에 먹구름이 낀 승태로서는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가문에 대한 아첨은 저에게 별 감흥이 없으니 넘어갑시다. 솔직히 오늘
봐서 알지 않습니까? 명공도 겨우 귀환한 저를 그저 장기 말로만 사용하는데,
제가 가문에 무슨 덕을 본다고 그러십니까? 그냥 본론으로 시작하면 안 되겠
습니까?”
그는 사레가 들려 입을 막고 기침을 하다가 승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긴 이렇게 포장 없는 말은 처음이겠지? 권세가 약한 사람은 칼침 맞기 싫
어서 포장했을 거고, 높은 사람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예쁘게 말했을
거고. 그런데 난 그 둘이 아니거든. 그냥 미칠 것 같을 뿐이지.’
“광릉 태수께서야 의미도 있고 뜻도 있는 일이겠지만, 제게는 그냥 살아남아
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겨우 약관을 넘긴 제가 명공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오니 가문의 재물은 없어지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
러 온 자리에서는 느닷없이 남의 세력 집어삼키려고 결혼 통보까지 받게 되었
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승태는 열이 뻗쳐 이야기를 더 진행했다.
“솔직한 말로 제가 뭘 할 수 있나 싶습니다. 군을 이끌어 본 것도 아니고, 현
하나도 맡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유예주와 서주의 진가를 도와 무엇
인가를 하라니요. 지금 제가 재물이 있습니까, 아니면 연이 넓어 명사들을 압
니까? 그런 것도 아니고, 군재에 밝은 것도, 모략에 밝은 것도 아닌데요.”
진등은 그런 말을 하는 승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사공의 명을 어기겠다는 말입니까?”
승태는 잠깐 치고 올라오는 분노를 참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명은 이행해야지요. 단지, 해야 할 일을 빨
리 듣고 대책을 세우고 싶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없는 이 조 모는 뭐라도 해
야 할 것 아닙니까.”
진등은 그런 승태를 놀리듯이 채소볶음을 한 줌 쥐어 느긋하게 입안에 넣었
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승태의 귀에는 욕처럼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를 부글
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승태는 무엇인가 번뜩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승태는 앞에 놓인 술병을 들고 쭉 들이켜며 물었다.
“혹시 명공께서 저에 대하여 명한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까?”
진등은 이제야 웃으며 입을 떼며 답했다.
“정확합니다. 명공께서는 그저 제 판단대로 움직이라 명하셨습니다. 진가의
능력으로 충분히 온후의 장악력을 분쇄할 수 있으니, 굳이 공자를 위해 따로
명령을 내려 주실 이유가 없지요. 공자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말한 듯이 혼자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승태는 허탈한 감정에 힘을 쭉 빼고 의자에 기대었다.
“그럼 명공께서 말씀하신 명은 무엇입니까? 유예주와 뭘 해야 한다고.”
“그 일도 이미 다 성사된 일입니다. 감히 지고(至高)의 자리를 참칭한 원술을
상대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원술을 처단하고 난 후의 일도 이미 판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긴, 뭐··· 그렇겠지. 원래 역사에서도 원술을 수춘 아래로 밀어낸 뒤에 유
비가 여포를 살살 긁으면서 여포가 유비를 공격하게 하고 여포를 끝장내니까.’
“그러니까 상서령과 좨주 같은 인물들과 서주의 진가가 무엇을 할지 다 완성
해 두고, 곁가지로 거기에 저라는 작은 말을 넣어 둔 것이라··· 이 말이겠군요.”
그는 말이 없었으나, 승태는 그것이 동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명공께서 이러한 말을 하라고 하시진 않았을 것 같고··· 대충 둘러대라
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다 말해 주시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심심해서 그렇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승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심하다니요?”
“저는 공자를 그저 명공께 충성하는 명견으로 알았습니다. 완성 전투에서 이
야기는 그리 믿기 충분했죠. 한데······.”
진등이 말끝을 흐렸다. 이에 승태는 말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고자 미간을
찌푸렸다.
‘한데? 내가 충성을 보인 게 아니면 뭔데? 이 인간, 진짜 말 흐리고 모호하게
하는 거 좋아하네! 무슨 지가 흑막이나 되는 것마냥.’
진등은 진중한 표정으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더군요.”
“그 무엇인가는 무엇인가요?”
승태의 멍청한 물음에 진등은 피식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가 남들을 평가하는 건 잘하는데, 동물을 잘 알지 못
해서요. 공자가 재미있는 분이다. 그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질질 끌지 좀 마라. 뭐라는 거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개인 줄 알았는데,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알아서 놀랍다는 거 아니야?’
승태는 게슴츠레하게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서주의 구신(舊臣)인 진가는 서주의 안정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는 이번 혼사로 서주의 패권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겁니다. 그런
데 제가 공자님께 관심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공자님께서 서주에서
무슨 일을 하실지 궁금해서요.”
만일 조조가 여포를 쓰러트린다면, 항복한 여포의 잔병은 자연스럽게 승태의
밑에 둘 것이고, 서주의 부유함과 여포의 군세를 아우르는 세력이 되는 것이
었다.
즉, 승태의 손 위에 어마어마한 권세가 놓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아는 승태로서는 딱히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한 권세를 이용하여 서주는 유비가 반기를 들어 올릴 수 없도록 다져야
했다.
승태는 눈을 크게 끄면서 진등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
다. 자신이 서주의 패권을 쥐게 되면 유비와 같은 영웅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인데, 관우나 장비와 같은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았다.
‘조조는 어차피 서주를 직접 다스릴 수가 없다. 그가 서주에서 학살한 사람들
때문이라도 말이야. 어차피 서주의 명사를 기용해야겠지? 그럼 그 명사를 견
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나일 것이고··· 아니면 나를 꼭두각시처럼 세워 뒀다가
혹 잘못되더라도······.’
두려운 생각이었지만, 일부러 조카를 죽을 자리에 세워 두고 청소를 하듯 밀
어 버릴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핑핑 돌리며 어떻게든 살 구멍을 만들려는 순간, 진등이 젓가락 소리
를 크게 냈다.
“온후에게서 살아남는다면 말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조조와 유비가 여포의 뒤통수를 때린다면, 가장 먼저 위험할
사람이 자신이었다. 여포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는 사실은 빤했다.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하아, 하긴··· 산 하나 넘기도 힘들겠습니다. 여기서 고민해 봐야 아무것도
안 되겠으니, 저는 정 부인과 만나 혼사나 이야기하겠습니다. 태수께서는 어
찌하시겠습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저도 온후가 명한 일은 모두 해냈고, 돌아가 보고만 하면 되니··· 이만 허도
를 떠나야지요.”
그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승태는 예를 표하며 말했다.
“가시는 길 무탈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공자께서도 하시는 일이 잘 되길 기원합니다.”
***
진등이 떠난 후에도 승태는 자리에 앉아 머리를 감싸며 생각했다.
‘하아··· 조조, 그 양반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아니, 그냥 원래 역사대로
가라고! 내가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냥 허도에서 놀고먹으려는 일
이······.’
승태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숲속에서처럼 계속 절벽 끝으로 밀어 넣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역사의 흐름대로 흘러가기를 원치 않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괴롭
기를 바라는 건가?’
솔직히 정치적인 일은 몸에 맞지 않는 승태였다. 그는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보다는 홀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마치 싫어하는 일을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닥친 일인데.
‘조조의 말대로 원술을 상대하는 일이나 집중해야지.’
승태가 반쯤 포기하고 남은 술을 마시려는 순간, 밖에서 정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민아, 들어가도 되겠느냐?”
승태는 허겁지겁 일어나 직접 문을 열며 답했다.
“예! 들어오십시오!”
승태의 당황한 얼굴에 정 부인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술상을 쓱 훑
어보며 말했다.
“찬이 별로였나 보구나?”
의외로 많이 남은 반찬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모습 때문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승태는 당황하여 손을 흔들면서 답했다.
“아닙니다. 맛있는데, 일 때문에 입맛이 없어 그렇습니다. 먼저 가신 서주 진
가분께서 술이 맛있다고 했습니다.”
승태의 말에 정 부인은 살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이
리저리 흩어진 찬을 정리하며 말했다.
“경사스러워야 하는 혼사가 입맛이 없을 정도로 고민스러우냐?”
승태는 약간 놀란 눈으로 정부인을 바라보았다. 오늘 조정에서 나온 말이 정
부인에게서 흘러나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신기하더냐? 조가 안주인의 자리가 주는 힘은 조정 안의 큰 소식 정도야 금
세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래서? 혼사 소식에는 어떤 심정이더냐?”
승태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정 부인의 말에 답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또 그 장인 되는
사람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정 부인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원래 원하지 않아도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지. 아마 주
변의 사람들도 너의 마음보다는 그것으로 오는 실익을 이야기하기에 바빠 뭔
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도 꺼내지 못하겠지? 아니더냐?”
승태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원하지 않는 정략결혼으로 복잡한 정쟁의 한가
운데에 빠진 것만 같았다.
“저는 그저 다툼 없이 살고자 하는데, 아무도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지 않습니
다. 그리고 명공께선······.”
정 부인은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답해 주었다.
“이용하겠지? 원래 너에게 와야 했을 가주의 자리도, 조가의 재물도 모두 그
이에게 갔으니 말이다.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승태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정 부인은 젓가락을 자리에 바르게 두며 물
었다.
“잘해 보려 했겠지? 그래서 아만이에게 나에 대해서도 그런 주제넘은 말도 하
고 말이다.”
“그, 그것이······.”
승태는 이내 변명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넘었습니다.”
“아니다. 네가 잘못했다고 타박하는 것이 아니야. 단지 주제를 넘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내 의도도 정확히 파악하였으니, 모사가 지녀야 할 자질을 보여
준 것으로 생각한다.”
승태는 식은땀이 등줄기에서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도통 어느 장단에
놀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했다는 거야, 아니야? 주제를 넘었다는 말은 잘못했다는 말 아니
야?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