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12
이전은 노숙이 보내준 군량과 군수 물품이 적힌 죽간들을 살핀 다음, 진궁에게 보고했다.
진궁은 웃는 얼굴로 이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 주공의 밑에서 군을 이끌어 보는 것이. 서주에 앉아 죽간들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말일세.”
그에 이전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닙니다. 저는 군과 무보다는 민과 문 쪽의 일을 더 좋아합니다.”
“군의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네. 게다가 자네는 경험도 많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말이네.”
잠시 과거를 떠올린 이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진 노사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숙부를 죽인 이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가문 사람들도 은근히 제가 주공을 돕는 것을 의아하게 여깁니다. 지금에 와서는 다행이라 하지만 말입니다.”
“뭐, 복수야 자제분이 이루지 않았는가.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이 문제였긴 하지만.”
이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래서인지 분노의 감정보다는 주공께서 또 어떤 물건을 꺼낼지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건이, 그 친구만 살아 있었으면 그냥 집안일은 던져 놓고 공방까지 쫓아다니고 싶은 마음입니다.”
“별별 신기한 게 많은가 보군. 그간 올라오는 농산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농기계들은 꽤 좋은 것 같던데 말이네.”
“이를 말씀이십니까. 사실 군용품들도 주공께서 직접 개량한 것이 많지 않습니까. 삼단 노라든가, 투석기를 조립하고 이동할 수 있게 만든다거나 말입니다.”
진궁은 약간 곤란하다는 듯이 수염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크흠, 그렇긴 한데··· 위 장군이 이번에 가져온 것들도 주공께서 만든 것인가?”
이전은 진궁이 말하는 게 무엇인가를 곰곰이 짚어 보다가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공이 만드신 물건들을 제가 모두 봤는데, 그런 물건은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괜히 좀 걱정이 되는군. 지난번에 위 장군이 투석기 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주공께 졸랐다고 하는데, 직접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과 품이 적잖이 들어가는 것을 그저 호기심 때문에 만든다는 말입니까?”
이전의 물음에 진궁은 위월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세워 얻은 포상 품과 그간 모은 재물들을 모두 팔아서 주공과 함께 공방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렇다 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예전, 수춘으로 자리를 옮길 때, 위월은 승태의 조언을 받아 공방에 자신의 재산 모두를 털어 넣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무기들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때만 해도 진궁은 한때의 여흥이라 여기며 쉽게 넘겼는데,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 가져왔으니, 이것을 축하해야 할지, 걱정을 해야 할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진궁은 곤란하다는 듯 수염을 꼬면서 답했다.
“야전에서 그것을 쓰겠다고 우기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네. 혹여 투석기라면 더더욱 쓰면 안 될 일이고 말이야.”
“설마 위 장군께서도 그것을 모르시겠습니까? 한두 번 전투를 치른 분도 아니신데.”
그러자 진궁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보지 못해서 그러네. 주공이 만든 투석기를 보며 어찌나 눈을 반짝이든지, 약간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았거든.”
“설마요. 정 그러시다면 제가 나중에 넌지시 물어보겠습니다. 대체 수레 안에 든 게 무엇이냐고.”
“그리해 주겠는가? 그렇다면 꼭 좀 부탁하네. 갑자기 어떤 해괴한 짓을 벌일지 모르니 말일세.”
이전은 진궁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로 위월의 막사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공방에서 나온 장인들이 여럿 있었다.
위월은 평소 학문을 싫어해 글도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는 것으로 유명한데, 장인이 설명하는 내용을 하얀 무명천에 꼼꼼히 옮겨 적는 모습에 이전은 이것이 생시가 맞나 싶었다.
이전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리저리 살피자, 그 모습에 장인이 설명을 멈추었다. 그제야 위월이 이전을 알아보고는 물었다.
“자네가 여긴 무슨 일인가?”
마치 불청객인 양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에 이전은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위 장군님이 가져온 물건들이 대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진 대장께서 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위월은 마침 잘됐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장인을 물러나게 했다.
“그게 궁금했다는가. 허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위월이 속으로는 좋아 죽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죽 덮개를 벗겨 내자, 곧 차노(車弩)가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창과 같은 화살들이 수레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거··· 혹시 노입니까?”
“그래. 잘 보았네.”
위월은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으나,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쏴 보셨습니까?”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화살에 이전 또한 관심이 생겼다. 과연 어떠한 위력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이전의 모습에 위월은 활짝 웃음을 지었다.
“당연하지. 그럼 시운전을 해 보지도 않고 가져왔겠는가.”
“어떻습니까?”
“엄청났지.”
“하긴, 제가 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저렇게 커다란 화살이 날아가면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겠네요. 그런데 이번에 상대할 적은 기병 위주라 조금 아쉽네요.”
이전의 의견에 이해한다는 듯 위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그러잖아도 기병을 잡는데 유효한지 한번 확인하려고 일부러 가져온 것이네. 성 같은 표적이야 맞추기 어렵지 않지만, 말을 타고 달려드는 놈들에게 제대로 먹힐지 확인해야 하니 말이야.”
“호오, 그런 뜻이셨군요. 그런데 자칫 진형이 무너지지는 않겠습니까?”
그러자 위월이 수레 안에서 몇 가지 물건들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질려와 날카로운 날이 튀어 나와 있는 방패였다.
“이런 것을 뿌리고 세워 두면 감히 기병들이 우릴 노리지는 못하겠지.”
“음, 대비는 확실하시군요.”
“그보다는 자네도 이게 날아가는 것을 직접 봐야 한다고. 정말 끝내주거든.”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그나저나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다 하시다니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위월은 이전의 칭찬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이전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러고는 은근히 제안했다.
“하하, 자네도 이참에 공방 하나 만들어 보지그러는가.”
“저는 위 장군만큼 돈이 많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가를 챙겨야 해서요.”
“그런가? 아쉽군.”
마치 교리 전파에 실패한 신도마냥 위월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워했다.
“솔직히 내 머리로는 쏘고 부수는 것이 한계인데, 수춘후께서 계속 그림을 들고 와 뭔가를 만들어 달라 부탁하지 않는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할 수밖에.”
자랑하듯 말하는 위월의 모습에 이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냥 시키신 것이 아니고요?”
순간, 위월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변명을 쏟아 냈다.
“절대 아니라네. 주공께서는 본래 자신이 잘하는 일에 열중하시고 다른 부분은 역할을 나누지 않는가. 그 의술 분야는 화 노인에게 맡기는 것처럼 말이네. 그러면 화 노인도 제자들에게 일을 분류해서 내리지 않는가. 그 뭐지··· 그래, 분업! 분업을 하는 것이지.”
그 말에 이전은 화부(화타)를 떠올리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 또한 처음에는 제자를 들이지 않겠다 고집을 부렸으나, 승태와 같이 다니더니 어느새 수많은 전문의원을 받아들였다.
화부의 얼굴이 펴지고 의원들의 눈이 퀭해진 것을 보면, 그 이유야 묻지 않아도 빤했다.
여하튼 위월이 자신을 은근히 포섭하려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승태가 쏟아 낸 짬 처리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서리라.
결국, 사정을 보다 못한 이전이 한마디를 했다.
“주공께 직접 말을 전해 보시지요.”
그에 위월은 한숨을 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나라도 안 해 보았겠는가. 내 분명 처음에는 수춘후께 전쟁에 관련된 것만 공방에서 발주하고 싶다고 했네. 일부러 그쪽 장인들만 불러 모으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들의 용도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효용성을 설파하시는데, 순식간에 넘어가서 알겠다고 말을 해 버린 거네. 내가 뒤돌아 나오면서 그제야 번뜩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래도 위 장군께서는 주공처럼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 아니, 아니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커다란 것이 날아가 그곳을 산산이 박살 내는 거야. 뭐랄까, 막힌 가슴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거든.”
이전은 역시나 위월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위월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한번 말씀을 드려 보는 것은 어떤가. 수춘후께서는 자네를 많이 아끼시기도 하고, 나보다야 언변이나 지식이 훨씬 뛰어나니 말도 잘 먹힐 것이 아닌가.”
“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지금 우리 공방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고. 그러니 자네가 말을 좀 해 주면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
“예. 뭐, 그 정도야 나중에 주공을 뵙게 되면 한번 건의하겠습니다. 결과는 알 수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전 그럼 이만 진 대장께 가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차노라고 전하면 도리어 좋아하실 것입니다. 보군들 박살을 내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을 테니까요.”
이전이 인사를 하고 떠나자, 위월을 그 뒷모습을 보면서 미묘한 미소를 띠었다.
‘흐흐, 자네도 이제 걸려든 거야. 주군과 한번 말을 섞고 나면 어느새 노예가 되어 있다니까. 어쨌든 덕분에 이제 거대한 투석기를 만들 시간이 나겠군.’
***
장비는 회수 근방의 보급이 가능한 지역을 순찰하며 전장을 살폈다. 그 결과, 별다른 소득 없이 대충 세 가지 정도로 예상이 좁혀졌다.
그러나 딱 여기다 할 수 있는 곳도 없고, 한 곳을 정해 기다리기에는 수지타산도 맞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들이치면 익양까지는 직통이라 이도 저도 못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막사로 전령이 도착했다.
“미 주부께서 백성들과 같이 한저관을 넘었다고 합니다. 또한, 유 사군께서 두 분 의제께 몸 성히 돌아오라는 전언입니다.”
“흥, 큰형님도 참. 이 익덕이 누구에게 당할 인물인가.”
장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승태에게 붙잡힌 것이 떠올라 인상을 찌푸렸다.
“큼, 하여튼 알았다고 전해 주게. 관 형이나 나나 수만의 적병 속에서도 제 몸 지키는 데는 문제 없으니 말이야.”
“충!”
전령이 물러나자, 지도를 내려다보던 장비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럼 급하게 나갈 필요는 없겠네. 어차피 익양 근방의 백성들과 서주 유민들은 큰형님을 따라갔을 테니 말이야.”
순식간에 포석을 바꾸면서 웃음 짓는 장비.
“어차피 우리 땅도 아닌데, 잘 관리해 줄 필요는 없겠지?”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