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15
승태가 한저관의 앞에서 군영을 세우고 점거하자, 유비는 가슴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유비가 간옹이나 미축을 보내어 사신으로서 승태와 협의를 하거나 의중이라도 듣기 위해 나아갔지만, 얼굴조차 보지도 못하고 가후와 차나 좀 마시며 다시 돌아왔을 뿐이었다.
승태는 멀어지는 미축을 바라보며 가후에게 물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저들을 저렇게 보내 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승태는 이전의 가후가 한 말인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도저히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가후가 한저관을 경계로 삼으려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이러한 지지부진한 상황이 무엇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유비에게 우위를 알려 주는 겁니다. 제아무리 유표가 후원을 하는 유비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우리의 밑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지요.”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의심생암귀로 적들을 약간 혼란을 줄 뿐입니다. 유표에게 유비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슬쩍 알려 주는 것이죠. 조정에서 직접 장군을 내세워 급하게 움직일 만큼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비가 당신의 머리맡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지요. 유표는 유비가 걱정되고 유비는 유표의 의심 때문에 유표가 걱정이 되어 다시는 형주를 벗어나기 힘들게 말입니다.”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승태도 잘 알고 있는 말이었다. 의심을 통하여 서로서로 믿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그러나 가후는 계속 유비의 사신과 차만 마실 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의심을 불어넣는다는 것인지 승태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때, 전령이 도착하여 장비가 후방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가후는 전방의 부대에 고순을 보내어 혹여 한저관에서 다른 이들이 나와 응전하는 것을 막았다. 그 후, 가후와 승태는 조운과 위월, 장합 등과 함께 장비를 맞이하러 자리를 옮겼다.
***
장비는 꽤 급하게 왔는지 그가 이끄는 기병 모두 상태가 굉장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들도 침을 질질 흘리며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월이 승태의 옆에 다가가 물었다.
“지금 저놈들을 노리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솔직히 승태도 고민이 되었다. 장비에게 조조의 암살 거래를 의뢰한 상대가 자신이었다. 혹여나 장비가 조조를 죽인 범인이 승태라고 알리고 다닌다면, 미쳐 버린 하후돈이나 어려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조비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때문에 어떻게든 죽여서 그러한 사실을 묻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장비를 죽이면 저 뒤에 있는 한저관에서 미친놈처럼 달려들 인간들이 승태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관우와 유비가 미친놈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망상을 떠올리며 승태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때, 가후가 승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보내 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이통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가후에게 물었다.
“저자는 수춘후의 백부이신 패공을 죽인 원수입니다. 그런데도 그냥 보내자는 말입니까?”
“예. 장비를 잡는 것은 딱히 득이 될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득 될 것이 없다니요? 조 가의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이통이 소리를 높이자, 위월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빠졌다. 이통은 눈을 부라리며 가후를 바라보았다. 이에 가후는 고개를 돌렸다.
“진정 원수를 갚으면, 어떠한 이득이 돌아옵니까?”
장비를 잡는 일이 득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였다. 조가의 지지를 좀 얻을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이내 고개를 젓게 했다.
조가는 이미 패공이라는 작위에서 조가와 하후가를 어우르는 어린 조비가 있었다. 승태가 장비를 잡는다고 하여도 반쯤 맛이 간 조비가 딱히 조가의 주인 자리를 넘겨주거나 잘 대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도리어 조조처럼 시기하면 모를까.
‘차라리 그때 하후돈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할 껄 그랬나. 그랬으면 장비를 잡고 목을 하후돈에게 바치는 게 제법 큰 의미가 됐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승태였지만, 이내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솔직히 반쯤 미친 광기에 빠진 인간의 세력을 등에 업고서 조정을 장악한다고 해서 딱히 무엇인가를 크게 할 일은 없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이야 지금 다 땅속에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조가의 원수를 잡았다는 명성은 잠깐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한 몇 년 지나면 사라질 뿐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조가의 사람들이야 당장 권력을 가진 사람이 중요하지, 어디 원수를 갚고 이런 것이 중요하겠는가.
반면, 실(失)은 좀 크게 다가왔다.
‘관우나 유비의 원한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겠지.’
승태는 조조의 조카로 일개 호족들을 때려잡았을 때도 순가의 사람들이 곁에 없었으면 가족들이 당했거나 아무것도 모르고 독살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고작 호족이 아니라 무려 유비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승태는 그러한 상상을 하고는 이내 치를 떨었다.
“그래도 장비를 그냥 보내 주면, 나중에 큰 말이 나올 것 같은데요?”
승태의 말에 이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저번에 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비는 그냥 보내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인물입니다. 그러하니 지금 여기서 사로잡거나 죽이는 편이 좋을 겁니다. 또한, 장비를 혹여 그냥 보내면 그가 두려워서 놓아주었다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이 양반, 만약 내가 진짜 장비를 그냥 놓아주면 자기가 그 말을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들리는 것 같냐? 설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그때, 후방에서 고순이 직접 오는 것을 보고 승태는 놀란 마음에 그에게로 말을 몰았다. 그러자 고순이 웃음을 지었다.
“어찌 일군의 대장께서 몸을 이리 쉽게 움직이십니까?”
“그럴 만하지요. 고 도독이 한전관에서 나올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있지 않았습니까? 혹 한저관을 지키는 이들이 무너진 것입니까? 그럴 리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럴 상황이 아니라 직접 왔습니다.”
승태가 빤히 바라보자, 고순이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유표 측에서 사신을 보냈습니다. 유비의 사신인 미축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승태는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가후를 바라보았다.
“유표의 사신이 왔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만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승태의 말에 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표의 사신이라면, 만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다만, 미축과 함께 만나기보다는 유표의 사신만 따로 만나고 이후에 미축과 만나는 것으로 하시지요.”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장비를 포위하려는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저기 보이는 장비는 그냥 풀어주는 쪽으로 하지요.”
이통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승태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유표와 유비의 사신을 만나려는 상황입니다. 혹여 장비에게 문제가 생겨 전쟁을 더 이어 가야 하거나 끝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원가와 싸우면서 예주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여남, 잘 판단하세요.”
이통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제가 직접 부하들에게 일러 장비를 풀어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승태는 이통을 스윽 내려다보다가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승태의 뒤에 있던, 가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말에서 내렸다.
승태는 이통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통은 놀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려 했고. 하지만 승태가 그의 팔을 잡아 자세를 바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여남께서 백부께 열렬한 충성을 바친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원적이 감히 조정을 범하려 하였을 때, 여남의 대다수가 원가와 내통하여 군을 일으켰을 때, 여남에서 조 낭릉과 함께 도위의 신분으로 반기를 든 이들을 처리하였습니다. 고 도독이 나중에 이 일을 도왔겠지만, 여남의 친인들을 상대하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감히 이 여남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 제가 이 여남의 책을 거절하는 것은 무시함이 아니라 다른 곳도 신경을 써야 함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통, 네가 난리 쳐서 일이 틀어지면, 내가 하는 일들이 모조리 나가리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자. 제발.’
이통의 잠깐 눈을 크게 뜨며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승태의 손이 아플 정도로 꼬옥 잡았다.
“소인, 패공께서 반드시 천하를 평정할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여 죽을지언정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 패공께서 비명에 떠나고 소인은 단 하나 복수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승태는 이통의 말에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나, 후께서는 더 높고 깊은 곳을 바라보시니··· 소인이 감히 넘보지 못하여 후를 감히 재단하고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깨달았습니다. 어찌하여 후의 곁에 이렇게 많은 인재가 따르는지 말입니다.”
승태는 이통의 말에 눈을 껌벅였다. 이통의 모습에서 최염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오해와 이상한 콩깍지가 겹친 상황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이유를 알아낸 것이라면 대단한데?’
“소인, 후의 행동에서 패공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잘 쳐 줘도 한복 정도 아닌가······.’
승태는 속으로 한심함을 표했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하기에는 좀 상황이 좀 그랬기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찌 감히 패공과 저를 비교하겠습니까? 저는 일주를 담당하기에도 벅차고 백 명의 군사를 이끌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옥과 같은 지재를 가진 분들이 도와주니, 그 덕에 무사히 지금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이 여남도 충렬하며 무예도 고강하니, 그런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니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만 한 걸음을 물러나 주셨으면 합니다.”
승태의 말에 이통은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물론입니다. 후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이통은 바로 말에 올라타고 병사 몇을 이끌고 장비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본 승태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가후가 다가와 물었다.
“말이 유수와 같습니다. 다른 능력도 그 정도만 하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승태는 그런 말을 꺼낸 가후를 흘기며 바라보았다.
“어차피 제가 다 할 것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머리는 모사 분들이 할 것이고, 군을 이끄는 것은 군사나 장군들이 할 것이니 말입니다.”
승태의 말에 가후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아직 그런 것을 고려할 때는 아니지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의심암귀를 적에게 심겠다는 사람이 제게 심으면 어떻게 합니까?”
가후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승태는 그러한 그를 바라보고는 손을 털면서 말했다.
“가시지요. 어차피 집금오께서 원하신 대로 이 여남의 확답을 받아 놓았으니, 장비를 심각하게 다치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금오께서 짜 놓으신 판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으니, 좀 알려 주시죠. 그 판에 바둑알이 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면 패착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옆에서 좀 바둑알의 귀에도 귀띔을 좀 해주시죠.”
“글쎄요. 딱히 바둑의 큰 판을 알려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뭐, 대강의 원하는 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후께서 원하는 대로 하시지요.”
‘이 양반도 사람 보는 눈은 글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