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18
장비는 자신의 앞에 모여든 승태의 군영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예상한 상황은 공성전을 시도하는 승태의 진형과 이를 방어하는 한저관의 모습이지만, 현실은 그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승태군의 진형은 마치 유비가 나오기를 바라며 포진을 해 둔 모습이고, 후방 역시 누가 오든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포진되어 있었다.
공성 병기라고 해 봐야 커다란 노들만 보였다. 가끔씩 화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딱히 성을 넘겠다는 것이 아닌, 그저 성 위의 병사들을 괴롭히려는 것처럼 보였다.
“당했군.”
장비는 자신에게 유비의 위협 상황을 알린 전령을 떠올렸다.
놈은 자신의 도착 사실을 알리겠다며 도중에 따로 몸을 움직였는데, 지금 곰곰이 따져 보니 이해가 갔다.
“북방의 말투라 여겼는데 묘하게 다른 점을 보니······ 서북 놈이었어. 서량의 억양을 쓰는 놈들이라 봐야 몇 되지도 않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하아아~ 제길.”
장비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다가 이내 작금의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조(曹)라는 글자가 새겨진 깃발은 아마도 이번 원정군의 총수인 승태의 것이리라.
순간, 적진를 뚫고 들어가 승태를 포로로 잡는다면 승산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봐도 뚫기는커녕 그냥 목을 내줄 상황으로 보인 탓이다. 제아무리 자신이라 하더라도 방패병과 장창병들이 단단히 지키는 진 속에서 원하는 이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들지 않았다.
‘거기다 그놈을 지키고 있는 자가 그 헤실대는 산적 놈이 아니라 조운이라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저번처럼 꼴사나운 상황이 되겠지.’
장비는 사모를 빙빙 돌리다가 이내 생각했다.
‘남양을 돌아서 양번으로 가야 하나?’
물론 그 길은 멀고,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 되겠지만, 약간의 혼란만 던져 준다면 남양을 건너기만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남양이야 지금의 조정이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여러 번 전쟁터가 된지라 소규모 병사를 이끌고 넘나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천천히 한저관 앞에 포진된 승태의 군영 주변을 서성거리며 들어갈 기회를 찾았다.
그러다 곧 멀리서 기병들이 우르르 나타나는 것을 보며 장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퇴각하는 병력들과 합류해서 남양을 돌아 양번으로 향해야겠다. 모두 준비해라.”
장비는 뒤를 따르는 기병들의 뒤를 쫓으며 주변을 살피었다. 혹시나 승태 휘하의 기병들이 나오면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퇴각 속도가 꽤 늦어지는 것을 보며 장비는 적이 추격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으나,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이통을 바라보며 사모를 내리깔았다.
“감히 저런 것들로 나를 잡으려고 보냈다는 것인가?”
기마술이 딱히 뛰어나 보이지 않는 모습에 장비는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그들의 머리 위로 백기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라도 하려고 보냈나 보군. 하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딱히 끝장을 보려는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야.”
어느 정도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가 되자, 장비는 바로 이통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조의 잔당들이 내게 무슨 일인가?”
장비의 무례한 언사에 이통은 잠깐 욱했으나, 승태의 당부를 떠올리며 애써 예를 표하며 말했다.
“여남 태수 문달이오.”
장비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네.”
“흐으음, 수춘후께서 공을 노리지 말고 안전히 관을 넘을 수 있도록 명을 내리셨소.”
“하! 애송이 놈이 제 백부가 죽고 나더니, 아주 그냥 살판이 났구나.”
순간, 분을 참지 못한 이통은 참마도를 뽑아 들었다가 다시 깊숙이 내리꽂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후께서 예를 표하셨는데, 응당 그에 맞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옳지 않겠소?”
장비는 이통을 바라보며 물었다.
“말로는 예를 취했다면서 말도 못 타는 인물을 보낸단 말인가? 자네, 진짜 태수는 맞는가?”
결국, 참다못한 이통은 참마도를 뽑아 겨누며 말했다.
“그런 말로 괜한 시비를 걸지 말고, 보내 준다고 할 때 얌전히 가시지요? 작금의 역적을 이리 대하는 것도 많이 참은 것입니다.”
장비는 이통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감히 조조의 잔당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느냐? 분명 폐하의 칙서에서 조조를 조적이라······ 흡!”
장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말에서 내린 이통이 순식간에 달려들며 참마도를 휘두른 탓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쳐 올린 참마도는 장비가 타고 있는 말을 노렸다.
‘말을 제대로 타지도 못하는 놈이 어떻게 이 정도 힘을······.’
장비가 놀란 눈으로 이통을 바라보았지만, 감상은 길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말이 죽을 판이었으니.
그와 동시에 빠르게 외쳤다.
“혼자도 충분하다!”
장비의 외침에 달려들던 부하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내 이자에게 예의를 알려 줄 것이니, 누구도 다가오지 말라!”
이통 역시 병사들에게 소리쳐 개입을 막았다.
“좋소! 저런 버릇없는 놈에게 형님께서 단단히 예절을 알려 주시오!”
이통과 함께 온 무리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쳐 답하자, 장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되지도 않는 겉멋만 들어서는.”
이통이 참마도에 감긴 끈을 풀어 손에 묶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비는 사모를 들어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왜? 그 무거운 참마도를 무슨 철퇴 날리듯 쓰려고?”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런데 말은 안 타도 되겠나? 아, 뭐, 하긴 그런 기마술이면 없는 게 나으려나?”
한껏 비웃는 장비의 말에 이통은 웃음을 지었다.
“북방 놈들은 말이면 다 되는 줄 아나 본데, 말이랑 한꺼번에 베어주마.”
장비가 사모로 찍어 누르려 하자, 이통은 어림없다는 듯 참마도를 들어 올리며 막아냈다.
“흥, 네놈이 유협질을 너무 오래 하여 착각하나 본데, 내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 주마.”
장비가 짓누르는 사모에 힘을 주자, 이통은 참마도를 비틀어 사모를 쳐 내고는 횡으로 그었다.
그에 말이 놀라며 뒤로 물러나자, 이통이 말했다.
“말? 좋지. 공간도 늘고, 힘도 더해지니 말이야. 그런데 언제까지 내 공격을 버틸 수 있을까?”
이통은 끈으로 묶은 참마도를 길게 휘저으며 허리춤에서 팔뚝만 한 검을 뽑아 들었다.
참마도는 마치 살아있는 뱀 마냥 연신 말을 노렸다.
당황한 장비가 사모를 휘둘러 접근을 막으려 했으나, 이통은 집요하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장비가 탄 말은 몸부림을 치며 이통을 떨쳐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까가각!
기어이 뼈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말의 앞다리가 참마도에 걸린 것이다.
히이이잉!
다리가 베이며 크게 울부짖은 말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고, 이통은 한차례 바닥을 구르며 참마도를 지팡이 삼아 빠르게 일어났다.
“어떠냐? 역시 북방 놈들은······.”
이통이 뭔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분노한 장비의 사모가 날아들었다.
챙강!
간신히 검을 들어 막았으나, 장비의 힘을 이기지 못한 듯 곧 부러지고 말았다.
그에 이통은 다시 한번 바닥을 구르며 장비의 사모를 피하였다.
“하아~ 너, 얘가 얼마짜리인데······.”
장비의 공격을 피해 낸 이통은 얼얼한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흥! 북방 놈치고 제법 하는군.”
“염병하지 마라. 네놈 이름은 내가 유협행을 할 때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네가 정말 천하를 위한 협행을 펼쳤다면 연나라에 있는 나에게도 그 이름이 들렸을 것이다. 그런 너와 달리 천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나는 형님들과 같이 모두가 바라는 자리에 올라섰다.”
자랑하듯 떠들어 댄 장비가 망치질하듯 사모를 내려쳤다.
이통은 황급히 참마도를 들어 막아냈지만, 장비는 그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나는 천하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당당히 선언하듯 외치는 장비의 모습에 이통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비웃음이 분명하지만, 장비는 딱히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참마도를 계속 내려칠 뿐이었다.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참격에 이통의 몸이 점점 바닥으로 내려갔다.
결국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자, 이통은 표정을 찌푸렸다. 이대로라면 더는 장비의 사모를 막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최후의 승부를 위해 반격을 펼치려는 순간, 멀리서 유비군의 인물로 보이는 이가 나타났다.
얼굴이 붉은 것이, 왠지 관우를 닮아있었다.
“장 숙부!”
“아, 평이로군.”
급히 달려와 주변 상황을 살핀 관평은 약간 곤란하다는 모습으로 이통에게 예를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관 장군의 장남인 탄지(坦至)입니다.”
장비는 묘한 표정으로 관평을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관평이 이통에게 예를 표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전에 관평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평아, 네가 여기는 웬일이더냐?”
“미 종사님이 수춘후와 담판을 짓기 위해 오셨습니다.”
“담판은 무슨. 이미 발붙일 곳을 다 잃었는데, 무슨 수로? 어차피 형주로 피신할 것이 아니더냐.”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금에 우리의 형편이 어려우니, 미 종사께서 무엇인가 거래를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난리를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관평의 개입으로 그제야 머리가 식은 듯 이통이 참마도를 바닥에 꽂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낸 후, 장비에게 예를 표하였다.
“천하를 걷는 이의 무예는 잘 견식 하였소이다. 그러나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지금과 다를 것이오.”
“흥! 그러든지 말든지.”
장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통이 참마도를 들고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충격이 쌓인 탓인지 일순 휘청거렸다.
그러자 몇 사람이 이통을 부축하기 위해 달려 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이통을 위시한 무리가 물러나자, 관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조가의 휘하 장수를 저렇게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줄 마음이 생기다가도 저 모습을 보며 안 줄 텐데요.”
“흥! 뭐가 아쉬워서 그런 놈에게 숙이고 들어가야 한단 말이냐! 게다가 시비는 저놈이 먼저 걸었다.”
자신의 행동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목소리를 돋워 변명하는 장비였다.
“안 그래도 조가 밑에는 미친놈투성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 어쨌든 그런 건 됐고, 형님들은 무사하시냐?”
“별일은 없으십니다. 뭐, 단지 큰 숙부께서 이번에 좀 상심을 하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럼 별거 아니다. 큰 형님 엄살이 한두 번은 아니니까. 뭐, 미 종사만 온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유표, 그 구렁이의 사신단도 왔느냐?”
“예. 실은 유 형주의 사신이 오니까 이제야 만나 주는 것이라······.”
관평의 이야기를 들은 장비는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사모를 바닥에 내리꽂으며 말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냥 확 다 쏟아 내 버릴까?”
“예?”
“아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