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19
미축은 화난 표정으로 승태를 바라보았다.
벌써 일각이 넘는 동안 아무런 이야기 없이 차만 마시는 게 답답한 탓이었다. 안 그래도 식사를 하지 못한 빈속인데, 계속해 마시니 속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이미 서로 통성명을 하고 유비의 의중이 담긴 전한 서신도 건넸는데, 무슨 더 할 말이 있는단 말인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태는 차를 모두 다 마신 후에야 미축에게 물었다.
“미 종사, 식사나 같이하시겠습니까? 마침 시간도 다 되어 가는데 말입니다.”
미축은 자신을 놀리는 듯한 승태의 말에 아주 그냥 화가 머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내색할 수는 없어 애써 말을 돌렸다.
“수춘후께서는 어찌하여 사군께서 보내신 전언을 읽어보지 않으십니까?”
승태는 콧등을 긁다가 물었다.
“글쎄요.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수춘후께서는 지금 유 사군을 무시하는 것이옵니까?”
“무시가 아니라 읽어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축이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승태는 마에 마른 곡식 가루 묻힌 것을 내주며 말했다.
“유 사군께서 내게 줄 것이 없지 않습니까? 땅, 명분, 병, 금, 곡식······ 그 무엇도 없습니다. 뭐, 인재라면 받을 만하겠지만 말입니다.”
미축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승태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제가 그 받을 만한 것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승태는 미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무엇을 주실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서주 미가의 영향력을 드리겠습니다.”
순간, 승태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종사와 동생분이 모두 유 사군을 따라간다면, 서주미가의 영향력은 다른 세력에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없어질 영향력을 제가 공적인 업무에 끼워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이미 제가 많이 영향을 끼쳐 무너트리기도 하였고요.”
미축은 솔직한 승태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서주미가의 영향력은 금력이나 식객들의 힘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태가 답답한 말을 하는 미축을 빤히 바라보자, 가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 답해 주었다.
“뭐, 후께서 말씀하시는 진 노사나 서주의 진가가 오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미가가 말하는 영향력은······ 뭐랄까, 신적인 어떤 것입니다. 후께서 아무리 큰 힘으로 압박한다 하더라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말입니다.”
승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가후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사정을 설명하였다.
[설명하자면 굉장히 긴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겠지요.]소금과 철을 주로 다루는 미가에게 있어 부와 명예, 그리고 권세까지 모두가 충분하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권력에 의하여 그 지위가 위태롭기도 했다.
물론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다시 원래의 자리를 회복한 서주의 미가이지만, 염철회의(鹽鐵會議)가 시작되면서 완전한 몰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의 독점을 통하여 염과 철, 그리고 술을 독점하던 호족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유통을 통한 어마어마한 이득이 완전히 사라지자, 인력을 대며 하청(下請)을 맡아 하던 이들이 가장 먼저 국가에 넘어갔다.
무력과 정보뿐 아니라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던 하청업자들이 돌아서자 거대 호족들의 입지는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막대한 금전과 인맥을 이용하여 염철회의와 관련된 일파를 모조리 역적으로 몰아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염철에 대한 회의는 역모나 역적의 프레임을 씌워 그 제안자는 물론, 관련된 모든 이들을 몰락에 이르게 만들자 한대(漢代)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감히 염철의 이름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호족들은 이로써 모든 위기가 끝났다고 여겼지만, 미가는 달랐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을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 탈바꿈하기를 원했다.
‘미축이 화덕성군에게서 올곧고 바른 성품에 감탄하여 도움을 주었다는 말은 그런 것에 연장선인가 보네. 근데 그게 뭐?’
승태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가후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미가의 단결력이 높다는 것입니다. 돈이면 돈, 권세면 권세, 명성이면 명성, 신앙이면 신앙, 모두가 미가가 다루고 있음이고, 미가가 서주를 지킨다는 생각을 대다수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다는 뜻인가 보군요.”
“힘들 것입니다. 특히 바닷사람들은 미신을 믿는 바가 크니 전한대(前漢代)부터 내려오는 미신을 쉽게 내치지도 않을 것이고, 도리어 미가의 잘못을 알리는 이들을 공격할 수도 있음이죠.”
승태는 극단적인 종교 집단의 문제들을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미가에서는 무엇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까?”
미축은 이제야 대화가 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이내 몸을 풀며 승태에게 말했다.
“미가의 신명(神命)을 내드리겠습니다.”
순간, 승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미축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기적이라도 행하시려는 것입니까? 저는 일단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만.”
당연하다는 반응에 미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본시 기적이라는 것은 진실과 과장, 그리고 약간의 거짓만 있으면 되니,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뭐, 그것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미가의 재산들을 처분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지요. 어차피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돈이 필요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말을 마친 승태가 유비의 서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꼭 읽어야 합니까? 어차피 유 사군이 직접 써 준 것도 아닐 것이고, 간손미······ 아니, 종사, 중랑들 중에 누군가가 쓰지 않았겠습니까? 굳이 제가 읽어봐야 일만 복잡할 것이니, 그냥 원하는 바를 말씀하시지요. 어차피 제 목표는 유 사군을 예주에서의 장악력을 없애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 외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들어 드리겠습니다.”
“이해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미축과의 대화는 얼마지 않아 약간 이상한 상황에 빠졌다.
장비가 이끌던 잔당들이 한저관을 구원하기 위해 진궁이 이끄는 병력을 기습했는데, 진궁이 그만 유시에 다치고 만 것이었다.
승태는 보고를 받자마자 한저관에 머무는 이들에게 항의하였고, 그로 인해 유표와 유비에게서 사과의 말까지 받아냈다.
그로 인해 승태가 유비를 예주에서 몰아내고, 유표와 유비의 사과를 받아냈으며, 조공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이 허도까지 퍼졌다. 아울러 신진 신료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이를 기뻐하였다.
한편, 조정의 고관들은 동전을 뒤집듯 처음과 다른 태도로 젊은 장군을 추천한 순욱의 혜안을 칭찬했다. 당연히 조정에서 순욱의 입김은 더더욱 커져 나갔다.
허도로 돌아온 승태는 황제를 배알하고 공을 칭찬받으며, 좀 더 많은 가호를 좀 더 늘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아직 원가와의 전투가 끝나지 않아 이후 논공을 정확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조회가 끝났다.
이후, 사공부에 들러 순욱을 독대한 승태는 의외의 명을 받았다.
“허도에 대기하게.”
여남의 전투에서는 쉽게 승리를 따냈지만, 하후가가 자신한 하북의 전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루어진 탓이다.
“하북으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하북의 전장이 불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북으로 보내질 줄 알았는데 도리어 허도에서 대기하라는 명은 지금 상황에서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 순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태연히 말했다.
“하북의 일도 중요하지만, 여남의 일이 정리된 지금은 괜찮네. 아주 급한 일은 아니지.”
“그래도 하후 숙부와 집안 어른들이 모두 매달려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저도 그곳으로 가야······.”
“진정 그리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후 장군의 후환이 두려워 그러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요. 사실 원가의 일만 끝나면 어느 정도 전국(戰國)도 끝나지 않겠습니까?”
승태의 태평스러운 말에 순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더 복잡한 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네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말이다.”
“그런 일들이야 영명하고 높으신 순 사공께서 다 처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장난치지 말아라. 너도 이제 한조를 지키는 어엿한 장군이니 말이다.”
승태는 순욱의 말에 예를 표하며 물었다.
“······네. 그나저나 원직 공은 안 보입니다.”
“아, 그 아이는 수춘으로 보냈다.”
“예? 저야 그런 인재를 보내 주면 감사하지만, 갑자기 어째서 그러십니까?”
“내 보기에 자네나 서가 아이와 같은 사람이 지금의 조정에서 있다가 난리가 날 것 같아서 그렇지.”
승태가 겸연쩍다는 듯 머리를 긁자, 순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마 가문의 사람이나 양가의 아이가 자네 옆에 붙어 있을 때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군. 그래, 공대는 어떠한가?”
“크게 다치신 것은 아닙니다. 화 공도을 따르는 의원들이 전투에 많이 따라와서 빨리 조처할 수도 있었고요.”
승태의 말에 순욱은 조금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화 공께서 제자를 들였다는 말이냐?”
“딱히 제자는 아니고, 노······ 뭐, 제자라고 볼 수 있지요. 화 공을 따라서 배우고 같이 연구하며 일하는 사람이 맞겠지만, 제자 쪽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제자들을 좀 보내 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봐 주겠느냐?”
“물론입니다. 사공이나 우리 쪽 사람 중에 과로하지 않게 약도 같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전 얼마 동안 대기하면 되겠습니까? 걱정되어서 말입니다.”
“얼마 안 걸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
허도의 순부에 모든 인물이 자리하게 되었다. 순욱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원가의 밑에 있던 순심은 상석을 내주며 예를 취하였다.
“순가의 가주를 뵙니다.”
“형님, 굳이 그리 극진한 예를 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잘못된 선택으로 가문을 흔들었으니,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저 속죄하는 마음으로 예를 다할 뿐입니다.”
순심의 미안해하는 말에 순욱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잘 돌아오셨습니다.”
순심의 복귀로 순가가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을 본 순욱은 가슴속에서 흡족해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러나 조가와 원가의 수장이 죽으면서 보조자의 역할을 맡던 순가가 얼떨결에 전면으로 나선 지금, 순가의 기조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 순욱의 역할은 순가의 인물들을 모아 이제 새로운 전략을 세울 때임을 알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