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27
전풍의 서신이 강동에 도착할 무렵, 또 하나의 서신이 허유의 자택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허유는 서신을 뜯어 보지도 않은 채 혀를 차며 고개 숙인 하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물건일 줄 알고 아무것이나 받느냐.”
노복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사실 허유도 더는 꾸중하기 어려웠다. 조조에게 투항하고 나서 오소를 공격할 수 있는 계책를 준 것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정보들을 바치며 공을 인정받아 태복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이후, 허유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황실에 들어오는 물품들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러자 곧 자리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게 되었다.
허유는 거절치 않고 모두 받았다. 베푸는 것은 거의 없지만, 그가 뇌물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인간들이 널렸으니 허유로서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선물을 받고 덕담 몇 마디 하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한 역사가 있는데 노복에게 편지 하나 받았다고 뭐라고 하기에는 아무리 허유라 해도 체면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딱 봐도 좋은 비단에 서신을 담아 두었으니, 그것을 본 노복은 착각하기 딱 좋았다.
“알았다. 그만 가 봐라.”
노복이 예를 표하고 사라지자, 허유는 서신 봉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풍, 이 개자식은 평생에 도움이 되질 않아.”
허유는 서신을 그냥 태우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 넣었다.
“어차피 내가 서신을 받았다는 소식은 조정에 들어갔을 것이고. 이제 와 불태운다고 해도 의심받을 터인데······. 하아, 태워 버릴 수도 없고. 쯧쯧, 분명 조정 내에 전풍과 연이 있는 몇몇 또한 이것을 받았을 터인데, 난리가 나겠군.”
허유는 직접 신을 신고 노복을 부르려다가 이내 손을 내리고 마당을 빙빙 돌면서 생각했다.
‘이것을 들고 누구에게 가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쯧, 조조 놈은 왜 거기서 죽어 가지고는 이런 일을 만드는 거야? 응? 아유, 진짜.’
이전에 자신더러 탐욕스럽다며 비판한 순욱을 찾아가기에는 후환이 두려웠다.
‘만총? 에라이, 그 길로 잡혀서 고신을 당하겠지. 그놈은 아랫놈이면서도 위아래가 없어서 무섭기 그지없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순욱한테 보여 주지.’
이리저리 서성이던 허유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노복을 불렀다.
“양 태상의 저택으로 갈 것이다. 준비해라!”
***
양표의 저택에 도착한 허유는 수행원에게 시켜 수레에 실려 있는 물건들을 옮기도록 지시했다.
“양 태상께 허 태복이 왔다고 전하고 문 열어라!”
양가의 노비가 문을 빼꼼 열고 허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 약조가 없이 온 듯싶은데, 주인님께서 작금 쉬고 계시니 돌아가시지요.”
허유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문을 빼꼼히 연 노비를 끌어내 뺨을 후려쳤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러느냐! 네놈은 그냥 안에 들어가 ‘누가 왔습니다’ 하면 될 일이다!”
창졸간에 횡액을 당한 노비는 자신의 볼을 부여잡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허유는 수행원이 쌓아 놓은 물건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말했다.
“감히 노비 놈이 말이야, 기분 잡치게.”
그러자 수행원이 허유의 화라도 좀 풀 수 있도록 달랬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양 태상께서 마음이 너무 넓으시니 저런 놈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개나 노비들 교육에는 매를 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내 봤을 때, 양 태상은 마음이 약해서 회초리도 안 들었을 것이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문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예를 표하자 허유는 웃음을 지었다.
“허 태복을 뵙니다. 제가 나이가 있어 몸을 더 낮출 수 없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네, 아니야.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그러는가. 괜히 나이도 많은 노인네가 여기까지 나와서는··· 쯧.”
“제가 노복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태복께 사죄를 드리고자 이리 나왔습니다.”
“그런가? 이미 다 풀렸네. 그리고 내 부탁하러 온 것이니,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 필요한 사람이 몸을 낮추어야지. 조 아만이 그런 것처럼 말이네. 아니 그런가? 하하하하!”
노복은 허유의 뒤에 쌓여 있는 함을 본 후, 아래로 축 처진 눈을 들썩이며 물었다.
“저것은······.”
“이건 그··· 내 마음이네, 마음. 양 태상께서 청렴한 것은 잘 알지. 그, 허도에 자자하지 않은가. 그래도 내 마음이니 좀 보고 이야기를 했으면 하여 가져왔네.”
노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들을 시켜 옮겨 둘 터이니, 태복께서는 들어가시지요. 태상께서 기다리십니다.”
늙은 노비의 말에 허유가 움직이려는 찰나, 허유가 늙은 노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에 은덩이를 쥐여 주며 말했다.
“그래, 고맙네. 내 마음이 급하여 노비를 때렸는데, 자네가 알아서 책임져 주게.”
허유의 말에 늙은 노복이 은덩이를 품에 넣고서 예를 표하였다.
“그 노비도 허 태복의 아량에 큰 감사를 느낄 것입니다.”
허유는 늙은 노비의 손을 두드리며 은덩이를 더 꺼내 그에게 쥐어 주었다.
“이건 자네에게 주는 것이네.”
허유의 행동에 늙은 노비는 손을 내저었다.
“저는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허! 쯧, 높은 사람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네.”
“알겠습니다.”
늙은 노비가 예를 취하며 물러나자, 허유는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려 양표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늙은 노복은 바로 노비들에게 호통치며 물건들을 정리하게 하였고, 허유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맷값 한번 잘 주었군.”
허유의 옆에 서 있던 수행이 물었다.
“맷값이라니요?”
허유는 수행원의 말에 마치 경멸을 담은 표정으로 노비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아무리 노비로서 양 태상께 충성을 바친다고 하여도 결국 돈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돈으로 때린 것도 무마하고, 돈으로 깨끗하신 양 태상의 집에 내 선물도 전하게 된 것 아닌가.”
“실로 그렇군요.”
“조조도 돈으로 명성과 권력을 얻고, 원소도 돈으로 권력과 힘을 얻었으니, 나라고 못 할 것인가. 집안이 좋지 않은 것은 더 큰 부로 이겨 낼 수 있음이네.”
허유는 웃음을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수행 또한 말없이 뒤를 따랐다.
***
하비성 관청은 밤이 깊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들락거렸다.
그런 이들의 수좌에는 진규가 끝이 처진 눈을 만지작거리면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진응이 달려와 진규에게 말했다.
“주공께서 오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규가 승태가 내준 장려(杖藜, 청려장)를 짚으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 보니, 그곳엔 승태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서주의 진 모가 수춘후를 뵙니다.”
진규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려 하자, 승태가 빠르게 뛰어 올라가 그를 잡고는 말했다.
“밤바람이 찹니다. 들어가시지요. 이렇게 혹사하시면 혹여 남들이 저를 욕할까 봐 무섭습니다.”
진규는 승태의 너스레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남에서 유비를 격파하고 서주에는 언제 오시나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왔으니 된 것 아니겠습니까?”
“서주가 어려워져야 비로소 오시니, 참 어려운 분입니다.”
“저는 집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서신도 매번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 장려도 선물로 보내 드렸는데요.”
“다 늙지도 않았는데 몸이 성치 않으니, 걱정만 끼쳐 드리는 것 같습니다.”
진규의 엄살에 승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승태가 관청에 들어서자 수많은 관료가 예를 표하였고, 승태도 마주 답하였다. 그런 후, 관료들은 다시 제 할 일에 몰입하였다.
승태와 함께 오랜만에 하비의 관청으로 온 이들은 새삼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꼈다. 승태는 진규와 진응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관리들이 꽤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던 것 같은데요.”
“강남으로 피난을 간 이들이 많이 돌아왔습니다. 거기다 형주로 피난을 간 몇몇 가문들도 돌아왔습니다.”
승태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진 대리께서 아무나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고, 괜찮은 가문들입니까?”
“제가 어찌 주공의 뜻을 거스르겠습니까? 제갈가나 주씨 가문은 본시 서주에서 명가였습니다.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배격하고 스스로 솔선한 모습을 미덕으로 삼는 가문이었으니, 돌아와 패악질을 부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만약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말로는 빤히 보이는 것이지요.”
또각거리는 지팡이 소리에 관리들이 바로 예를 표하자, 진규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고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 공의 권위가 참으로 높습니다.”
승태의 말에 진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주공 덕분입니다.”
승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진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들이 주공의 얼굴은 몰라도 서주에서 한 일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부공의 뒤에 주공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 혹여나 일을 잘못하거나 밉보이면 가문이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허, 그 정도로 제가 두렵게 한 것은 아닌데요. 참 기분이 묘합니다.”
“본시 호족들은 지역에서 군림하며 법 위에서 살던 이들인데, 주공께서 법의 지엄함을 알려 주었고, 처벌 또한 예외가 없음을 알려준 것 아니겠습니까?”
승태는 과거 돈이 부족하여 호족들을 때려잡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띄워 주는 두 부자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본청 앞에 다다르자, 경계병들이 굳건히 서 있었다. 진규가 지팡이를 두 번 두드리고 외쳤다.
“수춘후께서 드신다! 모두 나와 예를 갖추어라!”
진규의 말에 병사들이 우르르 나와 승태의 좌우를 호위하듯 섰고 관리들이 나와 닫혀 있던 문을 모조리 올렸다.
곧이어 관리들까지 뛰어나와 엎드리며 예를 표하니, 승태는 창피함에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딱 보기에도 젊은 관리와 병사들이 많아 승태는 조그마하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관리들이 이 정도로 예를 표하다니요?”
“과거, 주공께서 각지에 학청(學廳)을 마련하고 관리들을 뽑겠다 한 후, 처음으로 배출된 군관과 문관들이옵니다.”
승태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오 년밖에 안 된 시간에 많은 이들이 나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저들은 주공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순한 유사(儒士)가 아니라 실사구시의 필요성을 몸소 겪은 이들이니 말입니다.”
승태의 명으로 만들어진 학청이 드디어 첫 관리들을 배출한 것이었다.
서주의 학살 이후, 가문이 풍비박산 난 이들은 조가에 굉장한 반감을 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조조에게 당한 승태에게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교육해 서주를 위하여 일할 수 있게 해 준 승태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인 이들 중 한 명이 나와 승태에게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낭야학청의 제갈근, 수춘후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