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33
진궁은 마치 예상한 일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손가가 다시 장강 이남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라는 것은 익히 짐작한 바였다.
게다가 손분과 손보가 자신들이 받은 서신을 진궁에게 직접 보고하여 손가와 원가의 결탁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뒤를 치기를 바란 원가의 의도와 달리 손가는 강동을 점하려 하는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손가가 지금 군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태사 장군에게 전했는가?”
“예, 대리.”
진궁은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따로 보내온 서신이 있는가?”
“없습니다.”
“도움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마도 주공의 상황을 아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진궁은 잠시 수염을 쓸면서 생각했다. 태사자는 영 까다로운 인물이라 진궁은 어찌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만약 손가가 태사자를 물리치면 강남은 적대적인 세력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태사자가 이기면 손가가 그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세력을 만들게 되는 셈이었다.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인 것인가. 아니, 절대 아니었다.
태사자는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 가면서 손책과 비견되는 인물로 강남에 알려졌다. 손책이 패도로 알려졌다면, 태사자는 의와 협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태사자는 손책에게 밀려난 강남의 가문들을 규합하여 서로는 황조를 견제하고, 동으로는 손가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다.
만약 이번에 태사자가 장강 이남을 차지한다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는 승태 휘하의 인물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었다.
‘아무리 주공을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그를 따르는 이들이 그러는 것을 원하지 않겠지. 되레 부추기기도 할 것이고.’
이것은 태사자를 믿는가, 믿지 못하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태사자를 소환하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 피어올랐지만, 이내 죽간을 내려놓고 말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노숙은 갑작스러운 진궁의 물음에 입술을 핥으며 고민을 하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다.
“사실 손가가 장강 이남을 차지하는 것보다는 태사 장군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진궁은 노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딴에는 맞는 말이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소리는 아니었다.
“알겠으니 이만 나가 보게, 우선 도적들을 처리하고 생각하지.”
노숙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간 후, 진궁은 승태가 선물한 연필로 죽간을 마구 긁으며 검게 물들였다.
“장수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군.”
진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이다가 화로를 빤히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내가 이럴진대, 순 사공은 속을 얼마나 썩을지 상상이 안 되는군.”
진궁은 강남을 어찌 통제할지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집게를 들어 화로 안을 뒤적거렸다.
“어차피 급한 일은 아니니 주공이 오신 뒤에 결정하는 것이 맞을 것 같군.”
승태에게 충성을 맹세한 태사자이니, 자신이 마음대로 일을 벌였다고 이전의 여포 때처럼 주공의 신임을 잃는 것은 결단코 사양하고 싶었다.
***
여장의 기주민들은 난을 일으키고 나서 어떻게든 수춘성을 넘기려 하였다. 특히 정보와 원술의 잔당들은 거대한 돈 냄새를 맡고 반군과 같이 행동하였다.
“성에 아직 수춘후의 식솔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정보의 잔당을 이끄는 하건은 그 소식을 가져온 기주민의 말에 웃음을 크게 지었다.
“하하하하! 이제야 우리 생이 필려나 봅니다.”
기주병의 대장인 한순은 하건과 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춘후의 명성이 다 거짓인 것 같습니다. 우리 세작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다니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아무리 진등이라고 하더라도 수춘후의 가족들이 포로로 잡힌다면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 명이 크게 웃음을 지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 때, 원술의 잔당을 이끄는 기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함정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함정? 하하하하! 내 정보원이 말하길, 그 여포 놈의 딸년이 남아 있겠다고 엄청 드세게 고집을 부렸다더군.”
이들 중 가장 어린 기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말을 알 수 있을 정도라면, 내부 깊숙이 파고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많이 있다면 내부에서 반란을 획책하든 납치를 하든,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하건의 말에 한순이 웃음을 지으며 이미 모든 것이 성공한 듯 말했다.
“하건 공의 세작과 기주의 의인들, 수춘후를 노리는 몇몇 인물들과 같이 수춘을 흔들면 수춘후의 가족들은 분명 저희의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자 하건이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밖으로는 수로를 틀어잡아 수춘을 압박하고, 안으로는 수춘후의 가족을 잡는다면, 수춘후의 부를 모두 차지할 수 있겠구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전술인가!”
한순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크게 움직이면 손가 측도 그만큼 운신의 여지가 커지니, 결국 우리를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유는 수춘의 지리를 자세히 알 뿐 아니라 모략 또한 출중한 인물입니다. 그의 계책은 믿고 따르기에 충분하지요.”
기훈이 그들의 말을 듣다가 물었다.
“공들께서는 수춘후의 가족들을 잡고 나서 협상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수춘성을 우리가 약탈할 수는 있어도 차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하건은 그런 기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질질 끌고 다니다가 도망갈 때쯤 죽이면 될 일이오. 협상은 무슨. 그 높은 분이 우리 말을 들어주겠소? 그리고 그 맹랑한 여씨 년도 맛을 보고 말이오. 흐흐흐.”
기훈은 하건의 말에 매우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을 모두 죽일 생각이오? 그리하면 수춘후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 그러오?”
하건은 한맹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뭐, 여장에서 버틸 생각이오? 나는 애들 이끌고 파양 근처 착융의 잔당과 합류하여 수적 질이나 크게 해 볼 생각이오.”
그 말을 들은 한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크게 한몫을 챙기면 말을 탈 수 있는 기주병 몇만 데리고 하북으로 갈 생각이네.”
기훈은 그들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었다. 한 놈은 기껏 한다는 것이 수적 질이고, 한 놈은 기주민 따위 어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미쳐 버리겠군.’
아버지의 유지로 원가의 잔존 세력 수호에 무수한 노력을 쏟아 온 기훈이다. 하여 작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하남의 원가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손가에 의탁하면 되지 않겠는가. 손가에 인재가 많이 부족하니, 자네가 이끄는 부곡을 거느리고 의탁한다면 크게 쓰일 것이네.”
“예에. 손가가 강남을 차지하면 충분히 의탁할 수 있겠지요.”
한맹과 하건이 웃으며 서로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을 때, 기훈은 밀려드는 걱정에 표정이 암울해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저 여장에서 군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한편, 수춘부의 원환은 원가의 인물 몇과 함께 서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의 서신입니까?”
“기령의 아들 기훈이 원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나에게 이를 알리는데, 굉장히 패악한 짓을 하려 하는 것 같군.”
“패악한 짓이라면······.”
“도적놈들 생각이야 빤하지 않은가. 내부의 인물들을 포섭하여 누군가 사로잡고 협박을 하겠지. 지금과 같이 수문을 틀어쥐어 수춘 일대에 백성들의 논밭을 포로로 잡은 것처럼.”
원가의 인물들은 마치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표정을 썩히면서 수염을 쓸었다.
“장사(長史)께서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원가가 분열하여 높은 곳에서 추락하였다고 하지만, 이리 더러운 짓에 몸을 담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면······.”
“기훈이 칼을 거꾸로 잡게 해야지. 옳지 않은 일에 기 장군의 핏줄을 가담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원환은 그렇게 말하고 원가의 인물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작금 하남 원가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원환을 거스를 수 있는 인물은 없기에 모두 동의하고 물러났다.
원환은 멀리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서소가 물었다.
“장사께서는 어찌하시려 합니까?”
“분명 저들 사이에 간자가 있을 것이네. 그들을 찾아내 대리에게 알려야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원가의 인물인데, 진정 그리하시려 합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그리해야 하네. 수춘후까지 죽여 양주를 모두 차지한다면 모를까, 작금 수춘만 얻어내고 수춘후의 부를 빼앗는다고 하면 무엇을 하겠는가?”
서소는 말없이 원환을 바라보았다. 그에 원환은 말을 이었다.
“아니, 조제를 죽인다고 하여도 문제겠군. 조조와 달리 조제는 가진 권력보다는 의(義)와 은(恩)이 높은 인물이네. 조조 때와 달리 그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복수를 천명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네.”
“그렇다고 하여도 너무 과한 일입니다. 차라리 수춘후만 축출할 수 있다면······.”
원환은 서소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행여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 만일 원가가 이에 조금이라도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남방에서는 태사자가 움직일 것이요, 동에서는 진등이, 북으로는 수춘후에게 은혜를 받은 이들을 전부 상대해야 할 것이네. 그뿐인가. 그와 지음(知音)의 정을 나눈 양수가 직접 나설 것이네. 양수만큼 원가를 잘 아는 인물은 없으니, 분명 덜미가 잡히겠지.”
“하북의······.”
원환은 괜한 이야기를 꺼낸 서소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그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었다.
“공로가 마지막까지 어떤 생각으로 원소에게 서신을 보낸 것을 아는 이가 그런 말을 하는가? 더러운 하북의 원가는 말도 꺼내지 말게.”
“······그럼 저들의 뒤에 사람을 붙이겠습니다.”
“그리하게. 혹 누군가를 만나는 이가 있다면, 다 전한 이후에 잡을 수 있게 하게.”
“어찌하여······.”
“가족을 지키는 일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복수하는 쪽이 더 큰 공을 세우는 법 아니겠는가. 막아 낸다 하여도 공을 똑같이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네. 아, 물론 원가의 고수들에게는 수춘후의 저택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게.”
“하면 장사의 저택을 지키는 이들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생색을 내기에는 내 집이 좀 타는 것도 좋겠지. 허허.”
원환의 너스레에 서소는 예를 표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원환은 마당으로 나서 뒷짐을 지고는 황제를 칭한 원술이 있던 곳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공로야, 나는 너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 하여 그를 도울 생각이다. 하니 부디 청사에 무능하고 무지하며 패악한 사람으로 남지 않고자 한다면, 부디 그를 도와다오.”
[원술 말입니까? 솔직하고 사람 내음 풍기는 분 아니겠습니까? 독하고 미친 사람들 사이에 그런 사람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해합니다.]원환은 옥에서 풀려나며 여포의 축문(祝文)을 쓸 때를 떠올렸다. 당시 술을 한잔하며 나눈 대화를 떠올리던 원환은 원술에 대한 승태의 평이 적힌 죽간을 펼쳤다.
[이와 같은 혼돈의 시대에 공로와 같이 진실한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숨기지 않으며, 누구를 대할 때도 진실하였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욕망에도 진실하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