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38
물길을 바꾸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등 물길을 다스리는 일을 치수(治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치수는 대단히 많은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어마어마하게 소요되는 일이었다.
승태는 수춘 일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쌀농사를 짓기 위해 물길을 조정하고 태풍이나 홍수로 물이 쉽게 넘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현재 수춘성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농지였다. 아니, 보이던 농지였다.
지금은 온통 검은 흙탕물에 잠긴 채 수춘성 근처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승태는 마치 관우의 얼굴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신을 가져온 이를 참하라 명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한바탕 욕설을 쏟아 내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말했다.
“서 율령사는 언제 오는 거지?”
승태의 말에 노숙이 깜짝 놀라서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조운이 승태의 옆에 서서 물었다.
“주공, 조금 참으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성민들이 보고 있습니다.”
승태는 안 그래도 가족을 건드린 놈들의 일에 발본색원하여 칼을 대려 했는데, 이제는 마치 장난을 치듯이 서신으로 거래를 하자고 해 놓고 수문을 열어 버린 것이다.
실로 어이가 없는 짓이었다. 물론 그놈들과 거래를 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만, 그래도 서신을 보내 놓고 조롱하듯이 거래 대상을 부숴 버리는 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선을 세게 넘은 것이었다.
‘이제야 수익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이렇게 망쳐 놔?’
“성민들도 봐야지요.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입니다.”
승태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고, 승태의 말을 들은 성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수춘성의 문이 열리자, 성민들 역시 참담한 외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대가 높은 수춘성 까지는 올라오지 못했지만, 강의 물길이 터지며 원래 강 근처에 있던 모든 전답을 휩쓸어 버렸다.
그들 중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고, 눈물을 보이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아마도 저곳에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으리라. 집이나 금은과 같은 재산이라든가, 어쩌면 자식이나 부모, 부인과 같은 인연(因緣)이.
그 모든 걸 잃어버린 성민들에게 기주민의 존재란 악,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승태를 노렸을 뿐 아니라 각자의 부와 인연을 앗아 간 테러리스트일 뿐이었다.
승태는 자리를 벗어나며 장사 원환에게 말했다.
“원 장사께서는 기주민들을 격리해 주세요.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가족이 당한 복수를 하는 것이니, 군병들의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차라리 반발이 크더라도 기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격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원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하들과 함께 빠르게 한곳으로 뛰어갔다. 승태는 길에 잠시 서서 눈썹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풍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이라면 충분히 잘 먹혔군. 그냥 갱살당하게 내버려 뒀어야 했나?’
참담한 생각을 이어 가던 승태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기주민 포로들을 이리저리 흩어서 서주와 양주에 두지 않았으면, 조조의 사망 뒤에 반기를 들어 올렸을 것이 빤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조조같이 모두 갱살을 할 깜냥은 되지 않는 승태는 그들을 그저 잘게 쪼개어 정착하게 했다.
지금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굉장히 만족하며 감사해 하던 기주민들이지만, 제아무리 일부라 하여도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기주민 전체에 철퇴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됐다.
***
승태는 율령사 서서를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아 고민하고 있었다. 서서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잠자코 승태가 할 말을 기다렸다.
일각이 넘는 시간 동안 승태는 말없이 차만 들이켤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윽고 말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 장사께서 적은 인물 중에서 대다수가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이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기주민들이 난을 일으킨 순간, 이미 성을 빠져나간 듯싶습니다.”
“그래요······.”
“소신, 죄인들을 놓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승태는 멀거니 서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웃으며 말했다.
“순 사공께서 추천한 인재를 제가 어떻게 벌하겠습니까.”
승태의 입에서 순욱이 언급되자 서서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어찌 제가 순 사공의 이름에 기대 요행을 바라겠습니까. 부디 청컨대, 벌해 주소서.”
하지만 그런데도 승태는 짧게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어찌 서 율령사의 잘못이겠소? 그저 저들이 영악했을 뿐이오. 그리고 원 장사같이 돈을 써서 사람을 부릴 정도는 아니지 않소.”
서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가진 것이 없어 승태가 내준 집에서 지내는 서서로서는 사람을 따로 써서 부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이야기였다.
“그 또한 소신의 무능이옵니다.”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척이 없이 청렴한 것 또한 능력이오. 하여 나는 그대에게 중책을 내릴 생각인데, 어떠하오?”
서서가 놀라 눈을 치켜뜨며 바라보자, 승태는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족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기관을 내 휘하에 두고 싶소. 그 수장을 그대가 했으면 하는데, 어떻소?”
이제는 아예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승태를 바라보는 서서.
이내 자신의 행동이 굉장한 무례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머리를 박았다.
“소신, 맡겨만 주신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자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짓을 써서라도’가 아니라 정당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돈은 걱정하지 말고 말이오. 정보기관이라는 것이 원래 취지를 벗어나면 옥상옥(屋上屋)이 되기 쉬울 것 아니오?”
서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 총명하십니다! 본시 환관들도 제실(帝室)이 쉽게 다룰 수 있었으나 본말이 전도되어 한조가 이 상황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승태는 그런 서서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건 좀 다른 것이긴 하지만, 시스템··· 아니, 뭐라고 해야 하지? 아, 규율과 법으로서 한 번 정도 걸러지기야 하겠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할 것이오. 그래서 율령사가 적격이기도 하고 말이오.”
서서는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예를 표하였다. 본시 순욱에게 발탁되어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서서는 갑자기 수춘후의 휘하에 들게 되었다.
수춘후의 옆에서 법을 평정하는 직책에 앉아 있다고는 하지만, 큰일은 결국 승태가 직접 참관하거나 진궁이 담당하였다. 그런 탓에 자신은 그저 법 조항이나 알려 주기 바빴다.
물론 서서가 올바른 법제를 알려 줘도 자기 마음대로 판결하는 승태나 음흉한 진궁은 영 이상한 법을 끌고 와서 형(刑)을 내리기 일쑤였다.
하여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랬기에 그냥 낙향해 버릴까 하는 고민까지 했으나 매우 급한 일들이 터지면서 기회를 놓쳤고,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소신, 주공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승태는 엄청 굴리기 위해 한 말이 서서에게 감동을 일으킬지는 몰랐기에 그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인장을 따로 내려 그대에게 권한을 내리고, 내 집안의 부와 관의 부 또한 쓸 수 있도록 해 주겠소. 내 인수를 내리면 그때부터 율령사와 정보 조직을 겸직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듭니다. 혹 정보 조직을 만들게 되면, 이름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승태는 약간 장난기가 돌아 그에게 답하였다.
“동창은 어떠한가?”
“동창(東廠)······ 알겠사옵니다.”
서서는 승태의 장난에 다른 생각을 하며 물러났다.
‘흠, 주공께서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정보기관을 하나로 하지 않을 생각이시구나.’
그때, 밖에서 내관이 승태에게 말했다.
“부조 종사(노숙) 듭니다!”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소. 부조와 이번에 입은 피해를 이야기하면 길어질 것 같으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소신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자 서서는 뒷걸음질로 그 자리를 떠났다.
중간에 노숙을 마주친 서서는 공손히 예를 표하고 지나갔고, 노숙은 안으로 들어 승태의 앞에 앉았다. 내관이 문을 닫자마자 노숙이 승태에게 물었다.
“서 율령사가 그 직을 맡는다고 했습니까?”
급하게 노숙이 묻자,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청 좋아하던데? 이거, 잘못된 거 아닙니까, 형님. 나는 혹여 율령사가 거절할까 봐 엄청 칭찬도 많이 했는데. 한꺼번에 수락하던데요?”
노숙은 심사숙고하다가 승태를 바라보았다.
“혹시 진 형(진군)처럼 틀을 짜고 난 후에 던지고 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승태는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부들거렸다.
“설마요. 설마 아닐 겁니다. 그럼 안 되지요.”
“아니, 진 형도 주공의 과중된 업무에 지쳐 있다가 주공의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이 되니 밖으로 뛰쳐나간 것 아닙니까?”
“시발.”
승태는 참으로 오랜만에 직설적인 욕을 내뱉었다.
생전 처음 듣는 표현에 노숙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승태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 시발점(始發點)이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이제 그런 일은 없게 해야지요.”
“그럼 일을 줄여 주는 것입니까?”
승태는 눈을 껌벅이며 노숙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수춘성 밖의 상황을 보고도 일을 줄이겠다는 말이 나옵니까?”
“하면 무슨 뜻입니까?”
“일을 그만두고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어야지요.”
“예?”
“가족을 노리는 것입니다.”
노숙은 승태의 말에 가족들을 인질로 잡느냐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승태의 의도는 전혀 달랐다.
“가족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죠. 자식에게는 시험 없이 학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고, 부인에게는 가족을 잘 보살펴 주어 감사하다는 서신과 함께 제철 음식을 보내는 것입니다.”
잠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인 승태는 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제 자식들도 학청에 보낼 것입니다. 그리한다면 아마 저와 줄을 대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둘 자식을 학청에 보낼 것이고, 유행을 만들 것입니다.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싫으면 말아라. 그런데 이 지역의 가장 높은 사람이 먼저 할 거다. 이러면 위아래 모두가 알아서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하면 관리들은 그 권리를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도망가지 않겠지요.”
승태의 의도는 ‘프리드리히의 감자’ 같은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조가 무너지며 유교의 영향이 크게 무너진 지금이 적기라 생각한 승태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었다.
“주공께서는 모든 이들을 쓰고자 하십니까?”
“조조가 이리 말했다지요?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라고 말입니다.”
승태는 손을 튕기며 말했다.
“나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나아가 스스로 일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도와주세요.”
노숙은 승태의 말에 순간 기염을 토하며 물러났다.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며 승태에게 말했다.
“소신은 부조로서 이번에 입은 피해를 정······.”
그러자 승태가 부랴부랴 일어나 옷을 잡았고, 노숙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공, 사··· 살려 주십쇼.”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형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