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40
승태는 서신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러나 피변을 상 위에 올려 두고 머리를 긁으며 다시 읽어 봐도 그 어떠한 숨은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진짜 손가가 황조와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이해도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믿기지 않는군. 아무리 손가의 처지가 급박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불구대천의 원수와 손을 잡는다니 말이야.”
승태가 비단 위에 적힌 서신을 들고 멍하니 육손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게 믿기는가?”
육손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며 말했다.
“주공께서 걱정하는 바는 알 수 있지만, 대비하지 않는다면 서신과 같이 진정 좌우에서 포위되어 파양 일대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황조 휘하의 감녕과 같은 이가 물길을 따라 깊이 들어온다면, 방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두 곳을 모두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태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팽택과 시상에서 강하의 황조를 막는다 하더라도 황조의 본군만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황조와 연수되어 있는 산월의 군세들도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그들 말대로라면 예장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여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주공의 허를 받아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승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키지 못할 곳은 버리고 오겠다는 말인 것 같은데, 맞는가? 하긴 어차피 예장의 인구라고 해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차라리 합비에서 지원이 가능한 팽택 일대로 이주하는 것이 맞을 것 같군.”
태사자가 몸을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대 극존의 예를 표하며 말했다.
“소장 태사자, 주공께서 명하신 강동의 정벌을 마치지 못하고 이를 지키지도 못하였으니, 이는 죽어 마땅한 일입니다. 하여 주공께 죄를 청하옵니다.”
승태는 태사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불가능한 일을 맡기어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간 훌륭히 예장을 지켜 냈으며, 손책의 폭정에 맞서 남양주의 호족들을 모아 지금까지 버텨 준 것으로만 하여도 충분합니다.”
“하나 어찌 명을 수행하지 못한 장수가 주공의 얼굴을 보겠습니까.”
“지금처럼만 해 주시면 됩니다. 태사 장군의 공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이번에 강남을 포기하더라도 크게 상심치 않아도 됩니다.”
승태의 말에 태사자는 눈물을 흘렸다. 육손은 그런 태사자의 곁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곧 품 안에서 비단과 죽간 더미들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무릎으로 기어가 승태에게 그것을 바쳤다.
“강남 이남의 호족들이 올리는, 양주 오회(오, 회계군) 각 현의 지형과 인구, 특산물이 적힌 죽간이옵니다.”
승태는 놀란 눈으로 죽간을 받아 들고 주르륵 풀어내었다. 비단 안에는 흰 천 위에 각지의 자세한 지형이 그려져 있었다.
승태는 죽간을 상 위에 올려두어 재차 확인하였다. 각 지역의 이름에 인구와 특산물, 그리고 월족의 숫자까지 적혀 있었다. 승태는 재차 감탄하며 육손에게 물었다.
“이것을 준다는 것의 의미는 잘 알고 있겠지?”
양주의 지형과 인구, 그리로 특산물이 적힌 지도를 내준다는 의미는 그 지역을 그대로 바친다는 의미였다.
아마 손가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승태에게 넘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 그게 나에게 넘기겠다는 것이겠어? 어차피 강남 이남의 땅은 다스리기 어려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겠지. 거기다 손가의 인물들과 달리 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더욱 큰 힘을 얻으리라 말이지.’
“물론입니다. 주공께서 태사 장군을 강남에 보내 강남의 호족들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니 만일 태사 장군이 없었다면 양주의 호족들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이에 호족들은 양주의 정당한 지도자인 수춘후께서 양주를 완전히 지배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승태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육손의 행동에 분위기를 맞추어 주었다.
“좋네. 정당한 양주목인 내가 양주를 차지하는 것이 옳은 길로 가는 것이겠지. 그대들이 도와주게.”
육손이 정중히 예를 표하자, 승태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태사 장군과는 이야기할 것이 많으니, 물러가 잠시 쉬도록 하게. 전서를 보내 준비를 해두어도 되고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육손이 예를 표하며 물러 나가자, 승태는 태사자의 앞에 앉아 그를 일으켜 앉혔다.
승태가 태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리저리 흉이 많이 보였다. 과거, 잘생긴 얼굴의 형태가 아직 남아있지만, 여기저기 상처들과 주름이 눈에 띄었다.
승태는 태사자의 손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벽지에서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얼굴에 그 흔적들이 보입니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명을 지키지 못하여 아쉬울 뿐입니다.”
“태사 장군은 잘 버틴 것입니다. 오히려 손가가 황조와 함께 움직일 거라 예상하지 못한 제가 안일한 것입니다. 어차피 태사 장군의 세력이 제게 귀부한다면 황조가 쉬이 파양호 주변의 지역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장군께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사자는 승태의 말에 고마움을 표하며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아픈데.’
물론 승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소신, 높은 자리에 올라 일군을 다스리며 사세를 방비하였습니다. 하온데 세가 커질수록 제가 느끼는 것은 의심과 불안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주공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평온하시니, 소신은 그저 존경할 뿐이옵니다.”
아마 노숙이 옆에 있었다면 그냥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 말을 해 주었겠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기에 승태는 그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어떻게 저의 능력이겠습니까. 그저 태사 장군이 협의를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육손도 그리 주장하였고요.”
“그것은······.”
“됐습니다. 제가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제 아이들이나 한번 보고 가시지요. 단이가 좋아할 것입니다.”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며 걸음을 옮기자, 태사자도 곧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
강하의 태수부는 마치 수적들의 소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수부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황조도 관복은 마치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반쯤 벗은 채 턱을 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딱 보아도 수적으로 보이는 자들과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월족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관복을 입은 자들은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그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다가 황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황 강하께서 이러한 서신을 받은 것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손가와 손을 잡고 예장을 친다면, 쉬히 그곳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황조는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그래? 손가 놈들을 믿고 군을 일으키자고? 그 말 그대로 유 형주께 전해드려도 되나?”
황조의 비웃음이 실린 말에 관복을 입은 이들은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황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내가 맡은 일은 강하를 지키는 것이지, 군을 일으켜서 어딘가를 차지하는 일이 아니다.”
황조는 그 말을 하며 유표가 보낸 한희와 유호를 쏘아보았다. 둘은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황조에게 말했다.
“유 형주께서도 이 일에 대하여 크게 반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황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허벅지를 때리며 그들을 비웃었다.
“유 형주가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그럼 자네들이 확인이나 받고 오시게나. 그리고 손가 놈이 보낸 이 서신을 믿을 수 있냐고도 전하고.”
황조가 죽간을 그들에게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이전에 감녕을 중용할 때도 난리를 치고, 태사자와 손가가 싸울 때 차라리 태사자를 도와 예장군을 넘겨받자는 것도 반대했는데, 인제 와서 뭐? 믿을 수 있는 놈들을 믿든가. 응? 쯧, 그리고··· 아니다. 네놈들을 데리고 내가 무슨 말을 더하겠나.”
황조가 분노를 드러내자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모습이 더욱 한심하게 느껴진 황조는 상을 발로 걷어차고는 말했다.
“야, 나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서 떠들지 말고, 양번에 가서 떠들어! 엉?! 유 형주가 기분 나쁘면 어차피 다 못 하니까 일들 하지 마! 뭐라도 하려면 유 형주 허락받고 와!”
“황 강하!”
황조의 막 나가는 언사에 유표의 조카인 유호가 소리를 질렀지만, 황조는 그를 무시하고 자리를 박차며 나가 버렸다.
남은 이들 중 수적과 월족 무리는 웃음을 짓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 자리를 떠났고, 관복을 걸친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아 무엇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편, 소비는 급히 따라붙으며 황조를 불렀다.
“황 강하! 소신 소비이옵니다!”
황조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세우고는 몸을 돌렸다.
“아하! 그래, 우리 도독께서 무슨 일인가?”
황조는 친근한 척 소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의 화난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듯한 황조의 표정에 소비는 약간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도독들이 이번 일을 어찌 준비해야 할지 물어 이렇게 따라왔습니다.”
“쯧, 큰 것들은 뭐 하고 도독 중에 막내를 보내나? 그냥 내 말대로 따르라 해. 그래도 혹해서 나가는 놈은 있겠지? 그러면 지들 알아서 하라고 해. 대신 나는 모르는 일이고, 내 책임은 아니라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하온데··· 그 감녕의 일, 진짜이옵니까?”
“그 양아치? 뭐, 맞다. 중용은 모르겠는데, 하여튼 쓸 만하긴 하니 군대는 이끌 수 있게 해 주었겠지.”
“그런데 유 형주는 어째서······.”
“한번 수적들을 모아다가 칼 거꾸로 들려다가 실패한 놈이라서 군을 주지 말라 하더군. 이미 수적 놈들 쓰는 거에서 그거나 저거나 똑같은데 말이야. 이제 너는 어찌할 거냐?”
“태수께서 하신 명인데, 어찌 어기겠습니까.”
황조는 소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넌 높은 곳에 못 오른다. 유 형주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데. 그 입만 빠진 놈들 말을 들어 줘야 뭐라도 떨어지는 거다.”
“대신 빨리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러자 황조가 소비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으유, 이쁜 거. 말을 우리 아들보다 잘하는구나.”
“됐습니다. 저도 가족이 있는데, 높은 곳에 오르는 것보다는 안전한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그래, 안전이 최고지. 안전이 말이야.”
***
수군 도독 중 하나인 진취의 저택에 유호와 한희가 선물들을 잔뜩 가지고 도착했다. 그러나 진취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둘을 보았다.
수군을 통제하는 황조가 대놓고 ‘유표의 눈’ 또는 ‘감시하는 놈들’이라 말하는 둘과 가까이하면 자신의 신세가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 형주의 신료들께서 수적 나부랭이 도독에게 무슨 일입니까? 그것도 저렇게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와서 말입니다.”
진취가 공격적인 태도로 대응하자, 유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 도독, 이제 태수 자리에 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