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45
짤랑짤랑.
사공부의 상석에 앉아 있던 순욱은 방울이 울리는 소리에 상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을 흔들었다.
그에 속관들은 죽간들이 올려진 상을 들고 뒷걸음질로 조용히 물러났다.
사공부의 내부가 순식간에 고요해지자 그림자 속에서 마치 유령이 튀어나오듯이 환관 하나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순욱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그렇게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될 일인데.”
순욱의 말에 당종은 옅은 웃음을 띠었다가 이내 입을 가리며 말했다.
“호호호, 이러한 재미도 없으면 우리가 어디서 멋을 살리겠는가. 아니 그런가.”
순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는 붓을 내려놓고 말했다.
“제가 차를 가져올 테니, 처남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지요.”
당종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자, 순욱음 서랍에서 찻잎과 차구(茶具)들을 꺼내었다.
그런 후, 정성껏 우려낸 차를 건네자, 당종은 음미하듯 향을 맡으며 감탄을 내뱉었다.
“흐으으음, 순가의 청백리인 매부가 그 비싼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군.”
순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춘후가 꾸준히 보내 준 물건이라 가격은 잘 알지 못합니다.”
“호호호, 그런가? 나도 수춘후와 가까워지고 싶군요.”
“괜히 수춘후가 오해할 수 있으니, 제가 받으면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겠습니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후일 수춘후가 물건을 보낼 때 하나 정도 더 챙겨 달라 하겠습니다.”
당종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차를 마시더니, 주저리주저리 말을 꺼내었다.
“환관들 사이에서 수춘후가 만든 물건들이 꽤 유행이거든. 아니, 뭐, 낙양에 상인들이 따라 한답시고 나섰는데, 그 품질이 영 아니어서 말이야. 역시 그냥 잡놈들이 만드는 물건과는 확실히 다르단 말이야.”
그런 것에 관해서 잘 모르는 순욱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아이고, 매부는 참 재미없게 사십니다. 어머, 내가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온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차에 정신이 팔려 목적을 놓칠 뻔했네요.”
순욱은 호들갑을 떠는 당종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종을 울려서 오신 것을 보면 꽤 중한 일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슨 일이겠습니까?”
“폐하에 관한 일이겠지요.”
“맞아. 폐하가 또 이상한 일을 계획 중인 것으로 보이네.”
순욱은 당종이 정색하며 말하자,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문질렀다.
이해할 수는 있다. 젊은 황제이니 자신이 직접 일을 챙기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욱은 어떻게든 내부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후를 정리하였으며, 자신의 가산을 청산해 공후에 밀려난 이들이 계속 생활이 가능하도록 재산을 챙겨 주기까지 하였다.
거기다 지금 조가와 황실에 가까운 사람들을 조율하는 것도 꽤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조가의 인물들에게 자리를 많이 내준 일로 많은 관리로부터 조가의 부역자라 손가락질을 받는 순욱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그런 순욱의 노고를 알아주기는커녕 어떻게든 목을 쳐 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 내부에서 군을 일으킬 생각이시겠지요? 어차피 조가의 장수들은 수춘과 패국으로 떠났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지금 자네를 지킬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이통이나 고순을 중앙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한다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일입니다. 이후에는 이렇게 쉽게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고 말입니다.”
“그럼 어찌하고자 하는가?”
“기다려야지요. 대신 누가 나서게 될 것인지 파악해 주시지요.”
“그래도 자네 몸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조순이 지금 허도에 있습니다. 비록 호표기는 여양에 있지만, 조창과 조순이 직접 이끄는 부곡들이 저를 궁에서 호위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허허, 그 정도면 웬만한 이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겠군. 내 시름은 좀 덜겠어.”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당종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폐하의 곁에서 일하는 환관인데, 이런 일을 시켜도 되겠느냐?”
순욱은 그런 당종을 보며 말했다.
“처남께서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사람도 지금의 폐하를 진짜 폐하라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자신이 진짜 폐하가 되고자 한다면, 누군가의 권위 위에 서야 할 텐데······.”
“그렇지. 지금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상황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고 있지. 알았네. 폐하께서 잘 모르시니, 계도를 해야겠지.”
말을 끝낸 당종은 물끄러미 서랍을 바라보았다. 순욱은 당종의 빤히 드러나는 의도에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종이 함을 꺼내 당종에게 건네었다.
“차는 좀 마셨으나, 원하면 가져가셔도 됩니다.”
당종은 바로 함을 받아 자신의 품에 넣고 말했다.
“주면 고맙게 받지.”
당종이 일어나 다시금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듯 조용히 사라지자, 순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멋을 챙기기도 참 힘든 것 같군.”
순욱이 다시 종을 울리자 속관들이 도도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업무를 시작하였다. 순욱은 조금 전의 일은 모두 잊은 듯이 다시 업무를 시작하였다.
순욱이 업무를 끝내고 자택으로 가려 하자, 조순과 조창이 옆에 다가와 섰다. 순욱은 그들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자화.”
“예, 사공.”
“자네와 자문(子文, 조창의 자)은 내부의 일이 터질 것을 준비하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지금껏 큰 사달을 막기 위해 순욱의 명을 받아 칼부림을 많이 해 왔다. 그럴 때조차도 딱히 준비하라는 말을 하지 않던 순욱이다. 그러니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꽤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폐하께서 다른 생각을 가지신 것 같네.”
조순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헛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헛일은 아닐 것이다. 그간의 일들 덕에 폐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을 테니.”
“그래도 폐하께 동조하는 이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동조해봐야 무엇을 하겠느냐. 그 수도 기껏 몇 안 될 테고. 폐하의 외척인 복씨 가문이나 마음이 흔들릴 것이네. 거기다 아직 의대조의 일로 충격을 받은 관료들이 다수일세. 원소가 죽고, 유비가 형주로 간 뒤, 그 힘을 집중해줄 사람이 없는데, 누가 그것을 대신하겠느냐. 공융이 하겠느냐, 아니면 치려 같은 놈이 하겠느냐?”
순욱은 공융과 치려를 아주 싫어했는데, 공융은 순욱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언가 현실을 타파할 정치적 행동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으로만 충을 말할 뿐, 딱히 하는 것이 없었다. 그저 말로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뿐이었다.
그 반대인 치려는 권력에 굉장히 민감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행동을 권력에 기대어 따르는 인물이었다. 그의 신념은 대국적이라든가 충효와 같은 감성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념은 오롯이 권력에 기대어 권세를 누리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조조의 곁에서 그 권세를 누렸다면, 지금은 순욱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 또 다른 권력이 대두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곁에 붙으리라.
“하긴 그들을 중심으로 어떤 정상적인 인물이 붙겠습니까?”
“각 교위들을 잘 다독이기만 하면 중랑장들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네. 만 도위도 궁으로 불러 대비토록 하게.”
“알겠습니다.”
조순은 조금 뒤쪽으로 떨어져서 걷고 있는 조창을 불러 뭐라 지시를 내렸고, 이내 조창은 순욱에게 예를 표하고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순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순에게 물었다.
“하후 장군의 전황은 어떻다고 하던가? 여양에서 일이 잘 풀리면 절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갈 수도 있을 텐데.”
“원담의 능력이 의외로 좋든가, 아니면 하후 숙부의 능력이 생각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순욱은 고개를 저었다.
“하후 장군의 능력은 후방에서 보급하는 데 있다. 올라온 장계를 보면 딱히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원담이 생각보다 뛰어난 것 같군. 그곳에 우금과 서황, 장료도 있는데 그 정도라면 대단한 것이다.”
조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 사공, 그렇다면 원담과 전풍의 사이를 갈라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글쎄다. 그리된다면 좋겠지만, 지금 품에 안은 원상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잘못하면 장양왕의 꼴이 될 수도 있지. 그렇지 않아도 여남에서 원상의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못내 거슬려 하는 이들이 있네.”
“만 도위가 여남에서 칼질을 했는데도 그 상황인 걸 보면, 참 대단하긴 합니다.”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은 일단 하북을 차지하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무슨 상관이겠는가. 될 것이라는 희망만 있어도 될 일이지.”
어느새 두 사람이 저택에 도착하자, 장남인 순운이 문을 열어 순욱을 맞이하였다.
“조 도위이시군요. 오랫동안 격조하였습니다.”
순운이 정중히 고개 숙여 말하자, 조순도 마주 예를 표하였다.
“순 공자님께서 관직에 잘 나오지 않으니 보기 어려운 듯싶습니다. 부공께 배우셨다면 분명 훌륭히 나라를 경영하실 수 있을 텐데, 이리 집에만 칩거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는 순욱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해 주니 고맙지만, 아직 조정에 나가기에는 불안하기 그지없네. 이 녀석도 그걸 이해하고 말이야.”
순운은 약간 어리숙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많이 모자라 관직에 나서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문 앞에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들어오시지요. 부곡들의 식사도 내오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자.”
조순은 순욱의 특이한 집 안 구조를 둘러보며 말했다.
“참으로 특이한 형태입니다.”
“패공이 주신 마지막 선물입니다. 천하의 눈이 나를 보고 있으니,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라는 의미였지요.”
조순은 순간 조조를 원망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이내 지워 냈다. 그러고는 순욱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어찌 저렇게 올곧게 조조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겠냐는 생각을 하였다.
***
한편, 최염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었다.
“사형께서 보낸 서신이 정확하더냐?”
“그렇습니다. 광록훈께서 보내신 서신이옵니다.”
최염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지, 계속해서 서신을 볕에 비추거나 하며 요상한 행동을 하였다.
“일단 알았으니 물러가게. 혹시 지금 당장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주인님께서도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할 일이니, 기다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빠르게 결정해 달라고 전했습니다. 덧붙여 충의를 위한 일이니, 이름을 청사에 남기자고 하셨습니다.”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