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46
치려의 서신은 안부를 묻는 두 겹의 종이 사이에 들어 있었는데, 그것을 읽은 최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칭찬과 비유로 점철된 서신의 마지막에 정변에 참여하라는 협박이 적혀 있는 탓이었다.
“청사에 역적으로 적힐 것이다라······.”
최염은 치려의 서신을 상 위에 올려 둔 채 승태가 준 연필을 휙휙 돌리면서 서신을 톡톡톡, 두들겼다.
물론 치려의 거사에 가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치려의 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다른 문제였다.
이것을 들고 바로 순욱에게 가는 것은 도리어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아마도 이 주변에 이미 눈을 깔아 두었을 테니까.
그뿐 아니라 간교한 뱀 같은 놈들이 구멍을 파고 들어가 다시 기회를 노리며 눈을 끔벅일 수 있었다.
‘하북과 전쟁을 하는 도중에 폐하도 정신이 없군. 내조를 전부 책임지는 순 사공을 쓰러트리고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조정에서 순 사공과 같이 백관들에게 존경과 군부의 믿음을 받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말이야.’
최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맏아들 최헌을 불렀다. 최헌이 달려와 앞에 앉자 최염은 혀를 차며 말했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어찌 내 너에게 관직에 나가도 된다고 허락을 하겠느냐. 관직에 올라 집안의 망신이 될까 무섭구나.”
그러나 최염의 말에도 최헌은 그저 웃음을 흘리며 말할 뿐이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나름 살뜰하게 챙겨 주는 최염이기 때문이었다.
최헌은 능글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도에서야 그렇겠지만, 아버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수춘에 가서 육이와 같이 학청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못난 놈, 인제 와서 내 수춘후께 청탁을 넣으라는 말이냐?”
“청탁이라니요. 일정한 시험만 보면 학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최염은 이마를 짚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고, 이 서신 내용을 외울 수 있겠느냐?”
최염이 죽간을 내주자 최헌은 그것을 스윽 읽어 내린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외웠습니다.”
최염은 약간 걱정이 되어 바라보자, 최헌은 염려 말라는 듯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읊어 볼까요?”
“되었다. 네가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겠지. 혹여 아버지에게 거짓을 고할 녀석도 아니고.”
최염의 말에 최헌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물론 겨우 수십 자 외우는 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거짓을 고한 것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최염은 그런 최헌을 바라보며 껄껄껄 웃었다.
“내 어찌 너를 모르겠느냐. 밖에서 놀고자 하면 놀고, 여인을 보고자 하면 봐도 상관없다. 네 나이 때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 말이다.”
최헌은 엄격하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네가 외운 것은 비밀 문을 통해 나가 네 친우인 순운에게 전해 주어라.”
“순가에 전해 주라는 말입니까?”
“아니다. 아마 밖에 눈이 많이 깔렸을 것이니, 네가 언제나 이용하는 비밀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들킬 일이지. 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면,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지 않겠느냐.”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순가의 장남이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니, 놀면서 알려 주면 알아서 알아듣지 않겠느냐?”
최헌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순운 또한 명민한 친우이니,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것입니다.”
최염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헌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최헌은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굳은 얼굴을 지우고 일어나 예를 표하였다.
최염은 그를 보며 다시금 당부하듯 말했다.
“내일 아침은 같이 먹자꾸나.”
“저번에 수춘후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요리가 정말 맛있었는데, 그것을 아침에 먹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최염은 최헌의 장난스러운 말에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런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들이라니, 최염은 최헌을 보며 문득 자신이 호랑이를 낳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최대한 따라 할 수 있도록 해 보마.”
최염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선 최헌은 비밀 문을 통하여 집을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그 길로 자주 뱃놀이를 즐기던 곳으로 가서 잠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뱃사공들 불러 금으로 된 반지를 꺼내며 말했다.
“이걸로 뱃놀이할 여자들과 배, 그리고 사공 좀 불러 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자 뱃사공이 한 명이 나서 말했다.
“아이고, 최가 도련님 아닙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젊은 뱃사공이 최헌의 금반지를 받아 들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빠르게 뛰어가 버리자, 다른 뱃사공들은 자신의 느린 결정을 후회하였다.
그러자 최헌이 다른 이들을 보며 품을 뒤적이다가 한지에 부동심이라 적힌 물건을 꺼내었다.
“이거, 아버지의 친필입니다. 나중에 부호들에게 파신다면 능히 비싼 값을 받을 것이니, 챙겨 두시지요. 그리고 저 어린애들이 진정 어여쁜 애들을 알겠습니까? 어르신들이 가서 좀 알려 주시지요. 그리고 혹 모르니, 뱃놀이하는 동안 여기 앉아 저희의 안전도 좀 지켜 주시고요.”
최헌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아, 제가 말씀을 못 드린 게 있습니다. 그 순가의 장남인 제 친우를 부르고자 하는데······.”
그러자 그들 중 가장 어린 뱃사공이 나서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최헌은 감사하다며 예를 표했고, 그 모습에 뱃사공들은 엎드려 예를 받았다.
“아이고! 아이고! 공자님,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다 요런 것을 받고 하는 일인데요.”
뱃사공들이 너스레를 떨며 사라지자 최헌은 고개를 돌려 붉게 타오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호수가 마치 불타는 것 같구나.”
***
“야야! 배! 배! 배! 배에 불붙었다!”
심미의 요란한 외침에 금범적 한 명이 급히 화로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워낙 뜨거워 잡지도 못하며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박도로 화로를 쳐 내 바다에 빠트리고는 배 위에 붙은 불을 껐다.
“야잇, 얏얏얏! 이놈아, 배 태워 먹으려면 어쩌려고 그러냐! 대장이 번병들을 죽이랬지, 배를 태워 먹으래?”
“아니, 내가 일부러 태우려고 했겠소? 푹 찌르고 휙 베니까 그쪽으로 넘어가서 그런 것이지.”
예장의 파양호 일대에는 함대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고, 그 아래로 금범적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번병의 목을 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배에 남은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그중 대장선을 노린 심미는 양손에 수극(手戟)을 든 채 실수로 화로를 넘어트린 부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이번 일 끝나고 보자.”
“아니, 오랜만에 만나서는 술도 안 사 주고 이런 일을 시키면서 뭐요? 그래, 일 끝나고 봅시다.”
심미에게 말대답을 한 수적이 박도를 허리춤에서 하나 더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나팔을 불려는 이의 복부에 박도를 꽂아 넣고 목을 베었다.
“너 때문에··· 흡, 이렇게··· 후, 어렵게! 가야! 하겠냐?”
심미는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수극을 휘둘러 적의 급소에 찔러 넣었다. 어느덧 선상에 병사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심미는 수극을 등 뒤로 꽂고선 말했다.
“이놈아!”
심미가 조금 전 투덕거리던 수적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다른 금범적 수하가 그를 불러 세웠다.
“조장.”
“뭐?”
금범적이 바닥을 두들기며 말했다.
“이거, 3층이요.”
“그게 뭐? 아, 그것을 이제 말하냐?”
심미는 그 말을 하고는 휙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자신의 수하들이 병사들을 처리하였고, 이내 마지막 병사가 목을 움켜쥔 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심미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 넘길 수 있었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노꾼들을 바라보았다.
“노예를 쓰나 보네?”
“형주 놈들이야 생각보다 돈이 없으니 삯을 주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겠소. 황조도 의외로 수적들을 많이 쓰기도 하고 말이오.”
“알아, 알아. 내 말은 저놈들을 어찌 쓰냐, 이거지. 솔직히 여기 있는 놈들 모두 노질할 시기는 지났잖아?”
“족쇄를 풀어주고 노질 계속하면 먹고살 만한 돈 준다고 하면 되지 않겠소?”
심미는 갑자기 고개를 까닥이다가 다시 수극을 꺼내었다.
“그런데 너는 왜 계속 하오체냐? 이 새끼가 죽으려고!”
심미가 화를 내며 달려들자, 대들던 수적은 빠르게 도망을 다녔다.
그때, 하늘을 날 듯 배에서 배를 넘어 다니던 감녕이 그들의 어깨를 밟고 바닥에 내려섰다.
“이것들이 배를 접수하라니까 그냥 놀고 앉아 있네?”
“대장, 그게 아니라 저놈이······.”
감녕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심미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말했다.
“아니, 너는 대체 왜 그러냐? 대장선 치고 싶다고 해서 내주니까 엉뚱한 짓이나 하고. 애들은 일 다 끝나서 출발 준비까지 했는데 말이야.”
심미는 손가락으로 노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장선이 크니 저 노꾼들을 회유하려 그랬소. 형님, 그러기 위해서는 형님의 재가가 필요하니 기다린 것이오.”
심미의 말에 감녕이 주변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진정 그렇게 말했느냐?”
심미에게 맞은 병사도 고개를 끄덕이자 감녕은 허리춤에 매인 승태의 나침반을 만지작거렸다.
“알았다.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라.”
그에 심미가 손짓했고, 병사들이 노꾼들에게 다가가 어찌할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노꾼 중 가장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이가 심미와 감녕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정,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오?”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 풀어 드리겠소.”
“언제 말이오?”
“거참, 의심도 많군. 나중에 태사 장군이 머무는 곳에서 풀어 드리겠소. 그리고 우리가 가진 돈이 꽤 되니, 혹여나 노꾼을 하고자 하면 대가를 드리겠소.”
심미의 말에 노꾼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고마워. 평생 이 짓거리를 하다가 골병이 들어 죽을 줄 알았는데······. 크읍!”
늙은이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심미는 당혹하여 한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오. 곧 형주군이 눈치채고 올 것이니 말이오.”
심미의 다급한 말에 늙은이가 노를 잡으라 명했고, 다른 이들이 노를 잡기 시작하였다.
“대장, 이제 된 것 같은데?”
“그럼 네가 올라가 북을 울려라.”
“그래도 되오?”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함이다. 어차피 우리가 못 타는 배 대다수는 구멍을 뚫어 놓았으니, 이미 대충 눈치를 챘을 거다.”
감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감녕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출항하라!”
둥둥둥둥!
묵직한 북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대장선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 다른 배들도 뱃머리를 돌렸다.
“이대로 평택으로 향한다! 진형은 일자진, 선봉 대장선!”
“일자진! 일자진! 선봉 대장선!”
감녕의 명령에 대장선을 선봉 삼아 다른 배들이 꼬리를 물 듯 따라붙었다.
그때, 뭍에 있는 막사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며 계속 횃불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고, 나머지는 부랴부랴 소선을 타는 모습이 이어졌다.
감녕은 여명이 밝아 오자 차분하게 말했다.
“붉은 비단을 올려라.”
감녕의 명에 병사가 뛰어가 품 안의 붉은 비단을 올리자, 금범적들이 차지한 배들에서도 같은 깃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