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53
승태는 멍하니 진군을 바라보았다. 진군의 저런 행동은 술 마시고 막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태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진군이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 지금 허도가 어떤 상황인 줄 알고 온 건가? 아니, 분명 진 노사가 말을 해 주었을 터인데, 무시하였겠지.”
승태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 저도 생각이 있어서 왔지, 설마 그냥 왔겠습니까? 주변에 일을 풀어 줄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말입니다.”
승태의 말에 진군은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을 본 조운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 동조, 두 분이 친한 것은 알지만, 예를 좀 지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진군은 몸을 돌려 조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승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승태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지만, 조운이 진군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아무리 허도의 저택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이 모인 자리이고, 주공께서는 후의 자리에 오르신 분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말을 받을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주 때부터 저를 도와주던 형님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저를 걱정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그제야 조운이 예를 표하며 물러나자, 승태는 새삼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후의 자리에 오른 후, 승태에게 편히 대할 수 있는 인물은 정해져 있었다. 서주에서 같이한 이들 정도만 그에 속했다.
그런데 아예 선을 그어버리면, 승태에게는 이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승태는 모두에게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저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업무 중으로만 충분합니다. 여기서는 나이대로 가시지요.”
그러자 최염이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저이겠습니다?”
최염의 말에 승태는 웃으며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러십니까? 이제야 알아봤습니다.”
그러자 진군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최염에게 말했다.
“계규 공께서도 농은 그 정도만 하시지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진군의 지적에 최염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알기에 농을 치는 것이지요. 장사의 경우야 뭐, 어차피 한 번은 일어날 일이 아니었습니까? 선대 패공 조조와 같이 철저히 움직이는 사람이 계신 그때도 일어나던 일인데 말입니다.”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진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염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은 제가 알아낸, 폐하를 따르는 이들의 명단 중 하나입니다.”
승태는 최염이 건넨 서신을 받아 들고는 눈을 깜박였다.
“강성 선생, 정현의 제자분들이 많습니다.”
최염은 수염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려가 이들을 포섭했기 때문입니다. 한조의 재건과 정의를 이유로 스승님의 제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믿는 이들은 없겠지만, 욕심이 생긴 이들이 치려의 말에 가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욕심이 없는 자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직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외직을 받아 황도를 떠났지요. 몇 이들은 아예 없어졌습니다.”
“없어져요?”
승태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최염은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거사를 치르는 데 방해물이 있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진군이 놀란 눈으로 최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최 공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습니까?”
“주공의 이름을 들먹이며 중립을 지키겠다고 말했지요. 주공께서는 선대 패공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다 보니, 이해하더군요.”
“그냥 그렇게 넘어간다고요? 그것이 가능합니까?”
최염은 당당한 얼굴로 진군을 바라보았다.
“사라진 이들과 달리 저의 무게감이 다르니 그런 것이지요. 순가에서 떨어트려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하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주공을 보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최염이 단숨에 술을 들이켜고는 승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공께서 이 자리에 오신 것은 순 사공을 구하고 싶어서입니까?”
최염의 말에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순 사공에게 혹여 문제가 생길까 이렇게 직접 온 것이니 말입니다.”
최염은 그런 승태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잘 오셨습니다. 주공께서 순 사공의 숨겨진 패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승태는 최염의 말에 크게 동조하였다.
순욱의 숨겨진 패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리고 승태의 생각에는 순욱이 그리 쉬이 당할 인물도 아니었다. 아마 수많은 패 중에 마지막 패가 되는 사람이 자신이라 장담했다.
“숨겨진 패라는 것은 많은 패 중 하나라는 소리 같은데, 제 말이 맞습니까?”
그에 최염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승태는 순욱이 황제의 미친 짓에 과연 어떤 대응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다.
지금 천하의 정세는 오묘할 정도로 균형이 맞아 근근이 이어지고 있었다.
강남에서 몇 개의 세력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는 있지만, 이는 하북과 중원에 비교하면 중요도가 크게 떨어졌다.
큰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원 역사의 손책과 같이 일순간에 강동을 무릎 꿇리고 양주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에 허창까지 밀고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강남의 형편은 큰 반향을 일으켜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형주는 어떠한가.
이미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유표와 새로운 신성으로 떠오른 유비가 대립각을 세우며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순 사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십니까?”
승태가 묻자, 최염은 최헌을 한 번 바라본 후에 말했다.
“폐하를 미끼로 원담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승태는 순욱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한조에 충신으로 남고자 한 이가 쓸 만한 계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 사공이 직접 짜신 계책입니까?”
최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을 것입니다. 제 친우인 순가의 장남에게 들은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진군은 약간 소외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자 승태는 진군의 앞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형님, 형님은 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기 불러 이리 말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에는 몰랐어도 이제 알았으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진군은 승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전혀 눈치를 못 챈 무능한 인물이 아닌가.”
“형님의 장기는 이런 모략이 아니지 않습니까. 암로(暗路)를 가는 사람이 있으면, 명로(明路)를 걷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형님은 명로에서 밝은 마음으로 백성을 품을 사람입니다. 도리어 저는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곳에 머리가 핑핑 돈다면, 어찌 형님께서 명도를 걸을 수 있겠습니까.”
승태의 말에 진군은 쓰게 웃음을 지었다.
“말이라도 고맙군.”
승태는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순 사공과 폐하의 결투 끝에 떨어질 열매나 먹읍시다. 제 생각에 폐하가 이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공처럼 폐하를 압박하는 위치에 서지는 말고, 모시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될 것입니다. 하면 좀 더 부드럽게 정국이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순 사공도 동적과 같은 좋지 않은 불명을 쌓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
가장 먼저 뒤틀림이 나타난 곳은 여양이었다. 원담의 군세가 갑자기 몇 차례 패배를 계속하며 남군까지 밀린 것이다.
순유는 이에 천천히 진군할 것을 간언했으나 하후돈은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이번 기회에 원가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이미 맛이 가버린 상황이었다.
하후돈의 본대가 기산을 돌아 업현으로 가려는 참에 전풍이 이끄는 매복에 걸렸다.
선봉에 선 장료는 불타는 사방을 바라보며 팔자로 눈을 찡그렸다. 자신의 부곡인 철기병들이 다가와 장료에게 물었다.
“태수, 이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전멸입니다.”
“알고 있다. 내 눈에도 훤히 보이는데 어찌 모를까. 순 군사가 말할 때 좀 들어야 했는데 말이야.”
“대형, 어찌해야 합니까?”
“시끄럽다. 어쩌긴 뭘 어떻게 하겠느냐? 하후 장군을 구해서 빠져나가야지.”
“이 상황에서 우리만 빠져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후 장군을 구한다니요? 장군, 어차피 선주의 사위이자 지금의 주공이신 수춘후와 하후 장군은 갈등이······.”
말이 길어지는 병사를 장료는 빤히 바라보았다.
“뭘 이것저것 재느냐?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 주공의 밑에서 대우를 좀 받더니, 배가 불렀냐? 우리는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말을 돌려 하후 장군을 구하고 여양까지 후퇴한다.”
장료의 확고한 선언에 병사들은 침을 삼켰다. 장료는 사방에서 달려오는 중갑 병사와 기병들을 보며 말했다.
“마갑주를 다 끊어 내라! 빠르게 달려간다!”
장료의 명령에 철기병들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렸다. 마갑은 어찌 보면 그들의 정체성과도 같다. 철갑기병이 된 이후로 마갑과 말을 마치 자신의 몸과 같이 다루었는데, 지금 그중 하나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살고자 하면 지금 끊어야 한다!”
퍽! 퍼퍼버버버벅! 퍽!
재차 이어진 장료의 지시에 철갑기병들은 말의 갑주를 모두 풀어냈다. 무거운 갑주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말들은 무겁게 짓누르던 마갑이 사라지자 갑자기 달리고 싶어 푸르릉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봉에 서겠다. 뒤만 따라서 오너라.”
“충!”
고삐를 잡아챈 장료가 한 손에 화극을 쥐고 앞으로 달려나가자, 철기병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장료의 돌진을 막기 위해 원가의 병사들이 달려와 방패로 앞을 막고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장료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허리춤에 묶인 도끼를 꺼내 던졌다.
방패병의 머리에 도끼가 꽂히자, 일순간 진이 무너지며 가운데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장료는 마치 과거의 여포와 같이 전장의 바람을 느끼며 종횡무진했다. 사방을 휘저으며 진을 무너트리자, 그럴 때마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 다녔다.
병사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장료는 빠르게 진을 빠져나가 하후돈이 있을 중군으로 향했다.
***
깃발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하후돈을 지키는 호군들은 힘겹게 방패를 들어 올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원가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왕문은 가장 앞에 서서 대도를 휘두르며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빈틈이 만들어질 때까지 쉴 새 없이 두드려라!”
왕문의 말대로 공격이 이어질수록 호군들의 방진에는 균열이 생겨났고, 그 틈으로 날카로운 장창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호군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결국 앞줄의 한 열이 통째로 무너져 버렸다.
한호는 하후돈의 옆에서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무조건!”
바로 그때, 멀리서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뿌연 먼지구름이 보이자 호병들은 이를 악물었다. 장창병도 막기 어려운데, 이게는 기병까지 등장했으니, 마지막 한 줄기 희망마저 꺼져 버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