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54
자욱한 먼지로 인하여 피아간에 구분이 안 되는 상황.
그런데도 붉은 수실이 달린 극을 알아본 병사들이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장료! 장료가 온다!”
그 외침에 원가의 병사들은 고개를 돌려 장료를 보았다. 개중 하북 출신의 병사들은 그 화극을 보고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특히 흑산적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심어 준 인물.
“여포! 여포가 온다! 여포가 살아 돌아왔어!”
하북인들에게 있어 여포는 강력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주에서 암약하는 장연을 소수의 근위대만 이끌고 격파한 것이 바로 여포였다.
이후, 기주의 사람들은 인중여포(人中呂布) 마중적토(馬中赤兔)라는 말로 여포의 무용에 찬사와 경의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흑산적 출신의 외침에 병사들은 마치 여포가 돌아온 것과 같은 환상을 느꼈다. 심지어 경기를 일으키는 이도 생길 정도였다.
“먼저 가신 대형을 나에게서 본다니, 이거 영광이군.”
패닉에 빠진 병사들은 허우적거리며 전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렇게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장료는 그 틈을 노려 병사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좌충우돌하며 극을 휘둘러 대는 장료의 무위에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개중 몇몇이 무기를 들어 대적하려 했으나, 장료의 뒤를 따르는 기병의 공격에 금세 목이 달아났다.
장료는 혼란스러운 난전의 와중에도 눈빛만큼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포의 행동이 적의 파괴와 섬멸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장료는 자신의 목적에 충실히 맞추어져 있었다.
하후돈의 대장기가 보이는 곳까지의 거리와 병사들의 움직임. 장료의 시야에 마치 푸른 선이 그어진 것처럼 나아갈 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료는 마치 홀린 듯이 그 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그 순간, 마치 여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길을 잘 여느냐고? 그러니까 너는 아직 멀었다는 거야. 그냥 보면 길이 딱 보인다. 적을 쓰러트리다 보면 사방으로 뻗은 붉은 실들이 보이는데, 그중 굵은 실을 따라가다 보면 종내에는 피와 시체만 남게 되지.]장료는 여포가 말해 준 것과 달리 푸른 실이 그어진 것을 보고 생각했다.
‘대형, 저는 대형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붉은 실은 보이지 않지만······ 저는 이게 더 좋아 보입니다.’
상념을 접은 장료는 힘주어 외쳤다.
“뒤를 따르라! 팔건장 장문원이 길을 열겠다!”
장료가 원가 병사들을 해치며 나아간 끝에 비로소 하후돈 휘하의 호위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위병들은 순식간에 길을 열어 주었고, 장료를 비롯한 기병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장료는 하후돈과 한호 앞에서 말을 멈추며 물었다.
“이게 다입니까?”
“그래. 다른 이들이 퇴각하는 동안 나와 이 친구가 끝까지 버티고 있었네.”
장료는 하후돈을 내려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군의 대장이 버틴다고요? 가장 먼저 가셔할 분이 버틴다고 이렇게 있던 것입니까?”
“나로 인해 빚어진 패배일세. 어찌 내가 먼저 뒤로 빠질 수 있겠는가.”
장료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하후돈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말은 있습니까?”
“부족하네.”
“대체 몇 마리나 있기에 부족하다고 하십니까?”
“열 마리밖에 없네.”
장료는 화극을 꾸욱 쥐고 한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한호는 제 발이 저린 듯 고개를 숙였다. 장료는 그런 한호를 향해 한마디 날렸다.
“군을 책임지는 대장을 이렇게 놔두는 것이 부관께서 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장료의 말에 하후돈이 답했다.
“한 부관은 잘못이 없네. 내가 남자고 했으니까 나의 잘못이네.”
“잘 아시는군요. 그러니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바로 움직일 것입니다.”
“이들을 버리고 가라는 말인가?”
장료는 순간 고함을 치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후돈은 언제나 후방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왔다. 그렇기에 전군을 맡는다는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것을 구분 짓고, 버리고 치우며, 희생하고 죽도록 남겨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그것은 언제나 여포와 같이 선봉에 서는 장료로서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조조와 전투 중 진궁의 판단에 따라 버려지는 이들을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장료는 하후돈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장군 탓에 이들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하후돈이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반박하려 하자, 장료가 한발 앞서 말했다.
“만약 장군께서 먼저 몸을 빼셨다면, 저들도 각자 살길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장군께서 고집을 부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고 있습니다.”
“······.”
“얼른 움직이시지요. 지금 나가시면 적어도 여덟 명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나갈 것입니다.”
하후돈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번에도 장료가 먼저 말했다.
“저는 죽을 사람의 명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한호가 하후돈에게 말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장군. 빨리 나가야 합니다. 지금 장군께서 쓰러지시면 단순히 장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호의 말에 하후돈은 인상을 쓰다가 이내 말에 탈 수밖에 없었다. 호위병들의 장이 하후돈에게 달려와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장군, 혹여나 장군께서 여기서 생을 마감하신다면, 지금 앞에 있는 애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꼴입니다. 부디! 부디 살아 나가 주소서!”
하후돈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하후돈을 호위할 병사 여덟 명이 빠르게 차출되었고, 그들은 바로 장료의 부대의 뒤를 따랐다.
***
한편, 산 위에서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전풍은 턱을 두들기며 조용히 말했다.
“원 공자가 저번에 말한 인물이 저자인가?”
비록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진을 짜지 못하였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빠져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맹대가 물었다.
“어떤 일로 놀라계십니까?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대장을 잡지 못했다고는 하더라도 큰 공적입니다.”
“흠, 우리 중에 저자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있겠는가?”
“흐음, 저자라시면··· 적의 대장을 구해 나가는 장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전풍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지.”
맹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잠깐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소인이 무예에 그리 출중하지 못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순우 장군의 부장이었던 이들이 나오면 능히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풍도 딱히 무예가 깊지 못해서 뭐라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일단 조 장군을 불러 저자를 막아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풍은 무너지는 하후돈의 군세를 보며 살랑살랑 부채를 부쳤다. 자신의 계책으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줬으나, 전풍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깊이 서려 있었다.
‘문추와 안량만 살아 있더라면 고민이 없었을 터인데.’
공손찬을 격파한 이후, 하북에서 백만에 가까운 군세를 만들어 내면서 무예보다는 군을 관리하는 인재들을 발탁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다행히 장합이나 고람 같은 이들은 무예와 관리 능력을 모두 겸비했다.
그러나 이제 하북의 기둥이라 불리던 이들은 모조리 뽑혀버렸다.
문추와 안량이 죽었고, 장합과 고람은 수춘후의 품에 안겼다.
아쉬운 마음에 전풍이 몇 번이나 접촉을 시도했지만, 되레 서신을 전한 간자가 죽음을 맞이하고 그와 관계된 다른 접선 책들도 주르르 잘려나갔다.
결국, 지금은 하북의 장수들은 오롯이 관리형 장수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더욱 크게 남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여간 여포가 문제야. 여포를 막으려고 너무 많은 무인이 사용되었고, 무예에 능한 무장들이 무수히 죽었지.’
과거, 여포를 암살하기 위해 쏟아부은 무인들을 떠올린 전풍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중원을 차지하고 황제를 세운다면, 인재는 어차피 절로 모이게 될 것이다.’
***
장료의 옆으로 조연와 정예 기병들이 다가와 섰다. 장료는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적만 꺾어 낸다면, 기산을 벗어나 어양으로 향할 수 있으리라.
한편, 기병들은 장료의 기세를 느끼며 과거의 여포를 떠올렸다. 그들이 그렇게 느낄 만큼 현재 장료가 보여 준 무용은 대단했다.
다만, 장료에게서는 피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힘들겠군.”
조역은 창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말했다.
“순우 장군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실 것이다. 그분께 부끄럽지 않으려면, 물러날 수는 없겠지.”
조역이 조금씩 빠르게 말을 내달려 오자, 장료는 말 머리를 돌렸다. 이는 마치 도망치려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는데, 명백히 불리한 행동이었다.
조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짝 뒤를 따라붙었으나, 이는 장료가 원하는 바였다.
장료를 따르던 기병들이 갑자기 세 방향으로 나뉘더니, 양익이 뒤로 빠졌다.
조역은 신경 쓰지 않고 장료를 쫓으려 했으나, 그 순간 갈라진 양익이 뒤로 따라붙었다. 그들은 마치 살을 깎아내듯 조역의 병사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조연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더욱 빠르게 말을 내달렸지만, 그의 앞에 홍실이 달린 화극을 쥔 이가 나타났다.
조연이 당황하여 우물쭈물하는 사이, 화극이 날아왔다. 겨우 몸을 젖혀 피해 낸 조연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그러자 그를 돕기 위해 뒤에 있던 기병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그 모습에 장료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재차 화극을 휘둘렀다.
화극에 어깨를 찔린 기병이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장료는 다리를 들어 그가 탄 말을 걷어찼다. 그러자 놀란 말이 두 다리를 치켜들었고, 기병은 속절없이 추락해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
그사이, 또 다른 기병이 뒤를 노리려 했으나, 장료는 마치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날아오는 창을 화극에 걸어 그대로 내던졌다.
그러자 병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정예 기병을 잃은 조연은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예 차이가 크다니,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 여포에게 공포를 느낀 흑산적들이 한심하게 여겨졌는데, 막상 자신이 직접 겪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사람의 무용이 이처럼 뛰어나니, 어찌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연이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탁.
그러나 하늘은 이번에도 그를 돕지 않았다. 그의 창이 장료의 화극에 걸린 것이다.
장료가 화극을 잡아당기자, 조연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그와 동시에 장료의 화극이 횡으로 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