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55
장료의 공격에 조연은 속절없이 말에서 떨어졌다. 조연은 말발굽에 짓이겨지며 단말마도 내뱉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장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교묘하게 말의 속도를 줄여 적 진형의 첨단을 무너트렸다.
그 와중에 몇몇 병사들이 말로 들이받으려 했으나 장료는 가볍게 극을 휘둘러 막아 냈다.
그런 후, 말에 탄 병사를 베어 넘기니, 곧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수십의 병사들이 장료가 휘두르는 극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고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장료가 쐐기진을 완전히 분쇄해 버리자, 원가의 기병들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려 하였다.
장료도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는 빠르게 외쳤다.
“양익을 열어라!”
장료의 우렁찬 명령에 기병들이 순식간에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회라는 듯 조연은 기병들을 이끌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장료는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원가의 기병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그렇게 지친 듯 화극을 땅에 박은 채 있음에도 감히 다가오는 병사는 없었다.
어느새 원가의 모든 병사가 사라지고, 그제야 장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힘들어 죽겠군.”
곧 장료에게 수하들이 모여들었다.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장군.”
“알고 있다. 근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 안 움직여. 대형은 이런 짓을 어떻게 적이 무너질 때까지 한 것인지 모르겠군.”
푸르르릉.
장료가 잠시 넋두리를 늘어놓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는지 그의 애마가 투레질했다.
그에 장료도 화극을 다시 쥐고 말했다.
“흑총(黑驄)아, 이제 좀 기운을 차렸느냐. 그렇다면 가야지. 여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장료가 훌쩍 뛰어 올라타자 흑총은 조금씩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다가온 하후돈이 장료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가?”
장료는 하후돈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무극의 자리에 오른 이의 단면을 엿보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흠, 무극이라······.”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는 듯 장료는 그 자리를 벗어났고, 하후돈 역시 말없이 뒤를 따랐다.
***
장료의 선전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하후돈은 여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곧 황하를 건너려 하는 병사들을 보고 분노했다.
그에 하후돈은 따지기 위해 순유가 있을 막사로 향했다. 그와 달리 장료는 순유의 행보에 맞추어 병사들에게 강을 건널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윽고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막사 안에 들어선 하후돈은 다짜고짜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겨우 차지한 여양을 버리려 하다니!”
그러나 순유는 하후돈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죽간과 물건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장군, 지금 여양을 버리지 않으면 연주가 불안해질 것입니다. 금번의 패전으로 인해 저희가 쥐고 있던 주도권이 흔들리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괜한 고집을 부린다면 원가가 겪은 실수를 저희가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순유의 냉정한 지적에 하후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순유는 적의 함정일 것이라 충고했지만, 그걸 믿지 않고 병사들을 움직인 것은 하후돈 자신이었다.
“···그렇군. 모든 것이 내 잘못이야. 그럼 패공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먼저 강을 건너셨습니다.”
“빠르군. 나는 그래도 여양을 지키려 하실 줄 알았는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사공께 빨리 하북을 쳐야 한다고 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순유는 붓을 마지막으로 짐 속에 집어넣은 후, 하후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을 건너는 것을 말렸을 것입니다.”
“그 정도인가?”
“병주와 청주에서 이득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기주입니다. 하온대 지금의 상황을 보시지요.”
“흐음, 다른 이유는 없는가? 연주의 불안요소 말고 말이네.”
“다른 것 말씀입니까? 많지요. 이미 원담은 큰 승전을 거두었으니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런 병사들이 강을 건너게 되면 백마의 전투 때와 같은 일이 다시 재현될 것입니다. 그때의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하후돈은 순유의 뼈아픈 지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도 그때의 절망감을 떠올리면 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뭐라 할 말이 없군. 정말 지옥 같은 순간이었으니까.”
“그나마 그때는 허 공의 반기가 마지막 희망이 되어 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잡음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전풍의 기주계가 세를 꽉 잡았으니 말입니다.”
단정 짓는 듯한 순유의 결론에 하후돈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하후돈의 모습에 순유가 이번엔 당근을 내밀었다.
“그래도 그때보다 나은 점은, 순 사공을 따르며 아군들이 각지에서 공을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유는 짐을 직접 들고 하후돈을 지나치며 말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장군이 잘하시는 일을 하면 됩니다. 굳이 안 맞는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요.”
말을 마친 순유는 막사를 나가 짐들을 모두 수레에 실었다. 그런 후, 허리를 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앞에 언제 왔는지 모를 서신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종형께서 급하셨나 보군. 아니면 이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예상했거나.’
순유는 이내 서신을 펴고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인상은 한껏 찌푸려졌다. 왜 굳이 비싼 종이로 서시을 보냈는지도 이해가 갔다.
“우선 장군을 부추긴 인간들을 한번 찾아봐야겠군. 역시나··· 그때, 용서해 주는 게 아니라 칼로 목을 베어 버렸어야 했나?”
순유는 순욱과 승태가 원가와 손을 잡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죽간을 태운 일을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에 불과할 뿐이다.
고개를 내저어 얼른 상념을 떨쳐 낸 순유는 종이를 벅벅 찢은 다음에 하나씩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우선 복양으로 돌아가 정 태수와 우 장군을 한번 만나 봐야겠군.’
***
하후돈의 대패 소식이 퍼졌지만, 순유의 예상과 달리 중원은 조용했다.
그동안 순욱이 노력을 많이 기울여 내정을 안정시킨 데다, 측근들을 보내 불안요소들을 쳐 낸 효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곳만은 달았다. 허도는 하북의 패배 소식이 퍼지자마자 마치 폭풍전야와 같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과거, 낙양에서 많은 고통을 겪은 이들 중에는 허도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조용해진 허도의 성벽을 따라 걷던 순욱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호위병에게 물었다.
“고요하군.”
순욱은 지금의 여유를 즐기는 듯 허도의 밤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지만, 호위병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했다.
“사공 어르신, 위험하십니다. 안 그래도 암살 위협을 받으셨는데, 어째서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 나와 계십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순욱은 호위병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나를 따른 것이 언제부터이지?”
호위병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소인이 주인어른을 섬긴 지가 못 해도 20년은 된 듯합니다.”
“그렇군. 그보다 더 오랫동안 나를 알아 온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네.”
“알아 온 것은 더 길지요. 그전에는 순가의 무사였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그럼 내가 여기 오른 것이 무엇 때문인지도 알겠군.”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고민이 많으면 항상 이리 걸으시지 않습니까. 거기다 굳이 성벽까지 오르신 것은 무엇인가 보고 싶은 게 있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잘 아는군. 맞네, 내가 지금 생각이 많아 이리 자네와 같이 걷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성벽에 오른 것도 맞고 말이야.”
“그런데 뭘 보러 오신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허도의 시내를 보려 하신 것입니까?”
“멀리 보이는 궁이 아직은 아름다워 보이기에 눈에 담아 두기 위함이네.”
호위병은 아무 말 없이 순욱의 시선을 따라 조조가 지은 황궁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조가 아니라 순욱이 지은 황궁이었다.
터는 물론, 돈과 물자, 인부들까지 모두 순욱이 손수 나서서 만든 곳이었다. 황궁에 들어간 나무 하나하나마다 직접 글귀를 새겨 넣었다.
그렇기에 순욱에게 눈앞의 황궁은 너무 소중했다. 자신이 품은 충심의 상징이자 결과였으니.
그러나 내일이면 아마 두 번 다시 황궁의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름답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공께서 하나하나 고심해서 만든 것이니까요. 당시에 제가 그 옆에 있기도 했습니다.”
순욱은 호위병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저 아름다운 궁이 감옥과 같다고 여기시나 보더군. 어떻게 해서는 벗어나고자 하시니 말이야.”
순간, 호위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껏 순욱을 보필하면서 조조와 황제 사이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조조가 죽고 나서 순욱이 어떤 것을 내주고 희생했는지도 지켜봐 왔다.
하지만 희생의 결과는 토사구팽이었다.
순욱은 스스로 나서 조조가 조정을 위협하는 것을 막아섰다. 황제가 하지 못할 이야기를 대신 전하여 조조를 한발 물러나게 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들이 쌓여 가자 황제는 어느 순간부터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겼다.
조조가 죽고 순욱이 그 자리에 앉게 되자, 순욱은 흩어지려는 조가의 사람들을 뭉치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많이 내주었다.
그러한 일에 황제는 배신감을 느끼고 순욱을 적이라 설정해 버렸다.
순욱은 오랫동안 황제의 틀어진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 번 비틀어진 관계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황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황제 측 사람들도 기용해 보았으나, 자신의 자리만 노릴 뿐이었다.
결국, 순욱이 택한 것은 포기였다.
‘권력 따윈 포기하고 그저 할 일을 하려 했는데, 이제는 황제께서 검을 뽑아 들고 내 목을 노리는군. 그동안의 충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순욱은 성벽에 서서 말없이 황궁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화로와 겹쳐 황궁이 마치 불타고 있는 듯 보였다.
순욱은 화로 속의 황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따지고 보면 청사에 어찌 남을지 걱정을 한 것이겠지. 명공의 뒤에 앉아 마치 한조에 충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말이야.’
어느 쪽에서도 미움받기 싫어한 순욱이지만, 이제는 황제를 포기하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선까지 넘어 버린 황제를 이제 혼내는 수밖에 없었다.
“폐하, 부디 살아서 다시 돌아오기를 비옵니다. 소신 순욱, 아직 한조의 백성으로 남기를 바라옵니다. 부디 큰일 없이 돌아오소서.”
순욱이 성벽에서 황궁을 향하여 부복하였다. 그러고는 더 이상 미련 따윈 남지 않았다는 듯 일어나 호위와 같이 성벽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