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61
왕마는 하루하루가 불안하여 계속 밖에 주둔하는 가후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곰곰이 날짜를 계산하였다.
“이제 칠 주야까지 나흘이 남았다.”
언뜻 고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후의 진영을 본 왕마는 답답한 마음에 성벽을 내려치며 눈을 감았다. 그런 후, 관문 뒤로 보이는 병사와 군량들을 바라보며 부관에게 물었다.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능히 석 달은 버틸 것입니다.”
“주변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말인가?”
“예.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정확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로군.”
“하나 호관은 중요한 관문이니, 만약에 공격받는다면 돕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저건 뭐라고 생각하느냐?”
왕마는 부관의 어깨를 잡아 가후가 주둔하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 상황이 공격받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관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흠, 어쩔 수 없지. 적장에게 서신을 보내라. 내 한번 만나 봐야겠다.”
마음을 정한 왕마는 부관을 시켜 가후에게 서신을 보냈다.
***
가후는 서신을 받아 들고 웃으면서 왕마의 부관에게 물었다.
“태수께서 다른 곳의 상황은 알고 계시오?”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인가? 하긴 그러하니 이리 서신을 보낸 것이겠지. 아직 나흘이 남아 있긴 한데, 혹 시간을 더 끌려고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항복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이것참, 답답하군. 서신은 이상한 말로 채워 넣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자네는 그저 태수가 나를 직접 보고 싶다는 말만 하니,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것이 제가······.”
가후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가진 권한이 없을 터인데, 무슨 말을 하려 하는가?”
가후가 부정적인 답을 뱉으려는 느낌이 들자 부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는 권한이 없으니, 부디 태수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가후는 부관이 보는 그 자리에서 서신을 화로 속으로 던지며 말했다.
“나는 기한을 정해 주었고, 그대의 태수는 거기에 따르면 될 일이다. 싸우자고 하면 남은 나흘간 준비하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인수를 들고 나오면 될 것이네. 내 그리한다면 자리는 유지하게 해 줄 것이네.”
부관은 모욕감에 몸을 부들 떨면서 가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쓰지 말고, 전투 준비나 해 두라 전하거라.”
부관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자,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다른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가후의 무례한 행동은 도발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양수가 가장 먼저 나와 물었다.
“집금오, 작금에 공성을 위한 저희의 준비도 미흡한 것이 사실인데, 어찌 사신을 저렇게 보낸단 말입니까? 지금 다시 불러 태수와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대화를 빙자해 그를 사로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수의 제안에 가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짧은 생각이네. 왕마 같은 이를 포박한다고 하여 호관이 열리지는 않을 것이네. 오히려 굳게 지킬 인물이 거기 남아 있을 수도 있지.”
가후의 말에 양수는 고개를 숙였다. 하긴 이렇게 불안에 떠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 호관을 넘으실 요량입니까? 태수를 설득하지도 못하면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우선 막사를 화살이 닿지 않는 곳까지 전진하여 주둔하도록 하게.”
양수는 놀란 눈으로 가후를 바라보았다.
“진정 공성을 할 생각입니까?”
가후는 양수의 말에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대장은 나일세. 제아무리 수춘후나 순 사공과 친분이 있다고 하지만, 자네가 내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네.”
가후는 양수의 앞으로 다가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자네의 생각은 너무 짧네. 한발 앞은 보면서 그 너머는 어찌 보지 못하는가. 그런 안목으로 과연 수춘후의 옆에 서서 같이 무엇인가를 노려볼 수 있겠는가? 그의 옆에는 계속 인재들이 모이는데, 자네는 영······.”
양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자, 가후는 어깨를 한 번 으쓱대고는 다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도 영 믿지 못하는 눈치로군. 그럼 내기를 하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나흘 안에 호관을 얻지 못한다면, 내 당장 직을 내려놓고 복귀하도록 하지. 어떤가?”
가후의 자신감 넘치는 선언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가후는 주변을 스윽 바라보고 눈썹을 들썩이더니, 다시 양수의 앞에 앉았다.
“결국 자네와 나만의 내기가 되겠군.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으니 말이야. 나는 큰 것을 걸었는데, 자네는 무엇을 걸겠는가?”
그때, 마초가 나섰다. 그는 눈에 불을 켠 듯 형형히 빛내고 있는데, 방덕은 그런 마초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저도 양 공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 말에 가후는 웃음을 지으며 마초를 바라보았고, 염행이 예를 표하며 말했다.
“하면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저는 가 공에게 걸겠습니다.”
가후는 염행을 바라보며 웃었다.
“하면 두 사람은 무엇을 걸고 내기를 할 것인가?”
가후의 말에 염행은 마초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가후는 양수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자네가 패배한다면, 나를 스승으로 삼게.”
양수는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가후를 태연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제자가 된다면 그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부터 바꾸어야겠군.”
가후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손을 내저어 보이자, 다른 이들이 예를 표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염행이 여전히 남아 있자 가후가 물었다.
“자네들 두 사람은 무슨 내기를 하였는가?”
“마초와 다시 붙기로 하였습니다.”
가후는 염행을 바라보며 살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뭔가 있었나 보군?”
“이전의 결투에서 제가 겨우 이긴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긴 것은 이긴 것이지요. 한데 마초가 도통 결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은 칼로서 자신을 증명하니, 그럴 만도 하겠군.”
“그래, 이번에도 이길 수 있겠는가?”
“글쎄요. 마초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수 없으니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싸우겠단 말인가?”
“무인은 자존심으로 사는 법이니 말입니다.”
“뭐, ‘자존심으로 산다’는 그 생각은 내가 느껴 보지 못한 삶이긴 하군.”
장수는 염행과 가후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금오, 어찌 요즘 너무 과하게 사람을 상대하시는 듯싶습니다.”
가후는 장수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내 뒤를 이를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렇다네.”
장수는 가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전의 가후는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과 같은 표정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세상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저 자신의 조언을 들어줄 사람을 만나 정착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마치 무엇을 이루고 이를 남기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다툼을 어떻게든 피하던 가후가 지금은 누군가와 계속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집금오께서 생각하시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양수일세.”
순간, 장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가후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가장 충돌을 많이 한 인물이 바로 양수인데 후계자로 삼겠다니.
“솔직히 내 아들들은 머리가 그리 좋지 않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비를 닮아서인지 앞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네. 그런 아이들에게 내 후계를 맡기겠는가? 안 될 말이지. 그렇다면 가장 잘할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지.”
“무슨 뜻이신지요?”
“내가 바라는 시간이 곧 오리라는 것이네. 천하를 망가트린 이들에게 치죄를 내리는 것이지.”
장수는 가후의 말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후는 도리어 어느 때보다 생기가 온몸에 가득한 듯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지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기 위해 평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나의 손짓 하나에 움직이는 수만의 병사들 말이야.”
“그것과 후대를 잇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나를 이곳에 올려준 이에게 보은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수는 가후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양수를 가르치는 것이 누군가에게 보은하는 것이라는 것만큼은 알아들었다.
그런 장수의 눈에 저 멀리 호관이 보였다.
***
왕마는 사신으로 간 부관을 발로 세게 걷어차면서 말했다.
“지금 장난하느냐?”
부관은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아닙니다. 적장의 뜻은 너무도 완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부관의 모습에 왕마는 다시 한번 발로 걷어차려 했다. 그에 부관은 황급히 말을 꺼냈다.
“그럴 시간에 전투준비를 더 하라며 서신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부관의 마지막 말에 왕마는 이성의 끈이 반쯤 끊어지고 말았다. 서신을 불로 태우는 행위는 그냥 싸우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진짜 준비가 다 되어있는가 보군.’
그러나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 왕마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말을 꺼냈다.
“그래. 그럼 그쪽 분위기와 준비는 어떠하더냐? 공성 병기라든가, 다른 준비를 해 놓았을 것 아니냐?”
부관은 눈을 굴리다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병사들은 불안한 모습은 보였으나, 크게 분란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공성 병기는 사다리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적은 싸우고자 하는 의사가 역력한데, 고작 그 정도로 준비가 빈약할 리가 없었다.
그 말인즉, 분명 공성병기를 숨겨두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문으로 듣기에 돌을 쏘아서 산을 무너트리는 병기가 있다고 하는데, 분명 그런 것을 숨겨 놓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을 숨겨서 오는 것이 가능한가? 설마 허허실실인가?’
왕마가 다시 이성을 회복하려는 순간, 밖에서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곧 병사 하나가 안으로 들이닥치며 소리쳤다.
“적병이, 적들이 지금 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째서! 아직 날짜가 남지 않았느냐!”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병사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왕마는 망설일 시간도 아깝다는 듯 성을 올라 밖을 바라보았다.
화살이 닿을 거리보다 몇 걸음 밖에서 멈춘 상대는 그곳에서 다시 군진을 꾸렸다.
그 모습을 본 왕마는 머리를 잡고 인상을 찡그렸다. 진짜 싸우려는 것처럼 보이는 가후의 행동에 왕마는 바로 다시 관청으로 들어갔다.
“망했다, 망했어. 허허실실이 아니야. 분명 가후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나를 죽일 거라고. 분명 그럴 거야.”
***
가후가 준 칠 주야에서 이틀이 남은 그날, 양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호관을 바라보았다. 백색 깃이 올라오며 성문이 열린 것이다.
가후는 웃으며 양수를 바라보았다.
“내 말대로 호관의 문이 열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