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63
시간이 지날수록 염행은 마초의 공격을 약간씩 읽어 내기 시작하였다. 염행이 그간 보아온 마초의 습관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미 몇 번을 경험한 탓일까.
염행은 수비 와중에 틈을 노려 협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행동은 마초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마초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으나, 곧 다시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이미 흐름이 한 번 끊긴 탓에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마초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더더욱 강하고 빠르게 염행을 몰아쳤지만, 그럴수록 염행에게는 기회였다.
다만, 문제는 협도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뿌드득!
염행의 협도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흘러나오자 마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더욱 강하게 몰아쳤고, 염행은 당황하며 다시 수세에 몰렸다.
‘흠, 이번에는 요행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도가 부러지면 바로 거리를 벌려 나를 노릴 테지.’
짧게 판단을 마친 염행은 최후의 도박을 시도했다. 부러진 협도를 짧게 쥐고 마초에게 달려든 것이다.
물론 마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몸을 뒤로 빼 피해 낸 마초는 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염행의 협도를 세게 때렸다.
빠다다닥!
결국 충격을 더는 버티지 못한 협도의 손잡이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염행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맹기, 겁쟁이가 아니라면 이리 와 붙어라!”
“왜? 저번처럼 꼼수를 쓰려고? 정 붙고 싶으면, 네가 와라.”
마초가 거리를 벌리면서 약을 올리자 염행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까이 달려들면 극으로 견제를 하니, 도무지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패배하는 것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기에 염행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한편,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병사들은 신기와 같은 기마술과 무예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싸움의 승패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제아무리 염행이 뛰어난 무장이라고 해도 무기가 부러진 상태에서 마초를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염행의 방어 속도가 느려지자 마초의 극이 염행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드는 순간, 방덕이 대부로 막아 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염행은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단호한 방덕의 모습에 마초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그만하시라는 명입니다.”
마초는 불만스럽다는 듯 방덕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덕, 너는 마가의 사람이 아니더냐? 왜 나를 막는 것이지?”
“여기서 염행을 죽인다면 마가에 큰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시지요.”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마초의 언행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지만, 오랜 기간 마등을 섬겨 온 방덕으로서는 이런 작은 수모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자주 겪어 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욕보인 염행을 죽이는 일이다.”
마초의 단호한 태도에 방덕은 힘을 실어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무게 때문인지, 마초의 극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진짜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마초는 방덕의 행동에 삭을 휘두르려 했다. 하나 방덕이 강하게 후려치자, 이미 기운을 많이 소진한 마초는 속절없이 삭을 놓치고 말았다.
마초는 남은 극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방덕을 노려보았다. 그에 방덕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마가에 부담되는 일을 막는 것이라 말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초에게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마초는 극을 뽑아 재차 공격했으나, 방덕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염행은 일부러 살수를 피했습니다. 그와 달리 공자께서는 계속 살수를 펼쳤고 말입니다. 하니 이는 정당히 이겼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닥쳐라!”
마초는 더욱 분노하여 강하게 공격을 쏟아 냈다. 그때, 염행이 부러진 협도로 마초의 공격 경로를 막으며 끼어들었다.
물론 그런 행위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과 같았다. 분노를 참지 못한 마초가 격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비켜어어어! 다 죽여 버릴 거다!”
마초가 극을 뽑기 위해 팔에 힘을 집어넣자, 마치 풍선처럼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도 극이 꿈쩍도 하지 않자, 마초는 악을 써 대면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으아아아아아!”
마초가 계속 소리를 지르자, 가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이제 그만하면 될 것 같군.”
마초는 제 분을 못 이겨 가후를 째려보며 말했다.
“감히 무장 간의 일에 끼어들지 마시오!”
가후는 냉정을 잃은 마초를 보며 한마디 하였다.
“젊은 혈기에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네놈이 여기서 나를 무시한다면, 네 아비와 가문은 무슨 취급을 받겠느냐? 나의 호위인 염행에게 살수를 썼음에도 큰 사고가 나지 않았기에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네놈이 혈기에 못 이겨 군의 기율을 무너트리고 가문까지 피해를 주려 하느냐? 예도, 효도, 충도 없으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
가후의 준엄한 꾸짖음에 마초는 얼굴이 벌게 달아오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죽일 듯한 눈빛으로 사납게 노려보는 것만이 마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마초를 향해 가후가 냉정하게 말했다.
“당장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여 잘못을 빌어라.”
가후는 담담히 걸음을 옮겨 마초의 앞에 섰다. 마초는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염행이나 방덕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후를 바라보았다. 지금 마초의 무기를 막는 것도 어려운데, 만약 급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마초가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염행과 방덕 또한 급히 말에서 내려 가후를 보호하듯 옆에 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마초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초의 행동은 주변에 큰 파문을 낳았다. 막무가내로 나가던 마초가 얌전히 고개를 숙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마어마한 무예를 지닌 세 무장과 한마디 말로 마초를 고개 숙이게 만든 가후의 능력. 이는 병사들에게 왕마의 항복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로 인해 왕마에 대한 병사들의 반발은 크게 줄었고, 호관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가후는 곧바로 업성으로 진군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바로 태원으로 퍼져 나갔다.
***
고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부인에게 죽간을 전하였다.
“부인, 이것 보시오. 호관이 넘어갔소,”
곽연은 고간에게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공께서는 바로 움직이려 하십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소?”
“그러다 원담에게 공을 넘겨 줄 수도 있습니다.”
“흐음, 어찌하여 말인가?”
“부공(夫公)께서 가후가 빠진 적병들을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후가 자멸하지 않아야 업성에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번에도 말을 했듯이 업성에 아무런 피해가 없으면, 결국 원담이 모든 공을 가져갈 것입니다.”
고간은 한숨을 쉬면서 죽간을 내려놓았다.
“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소?”
“그것은 부공께서 결정할 일이옵니다.”
“그럼 가후의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알아야겠군.”
“그것을 알면 좋겠지만,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걱정 마시오. 상당에는 내 눈이 될 자들이 많으니, 금방 알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일 것입니다.”
“그렇지. 혹여 빈틈이라도 생기면 언제라도 반기를 들 수 있을 정도이기도 하지.”
고간의 자랑에 곽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업이 하루 이틀 만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곽연의 날카로운 지적에 고간은 약간 고민을 하며 말했다.
“사실 호관도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보았는데, 겨우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호관을 얻지 않았소?”
“그것은 그곳의 태수가 무능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업은 다르지요.”
고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마를 거기에 앉힌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닌가.”
“돈을 그만큼 냈으면 주는 것도 맞는 일입니다. 왕마가 엄청 무능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 금액이면 태수 자리를 주는 것도 나쁜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로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소. 호관은 못해도 수개월은 버틸 수 있는 곳인데.”
“업에서 지원이 없다고 하는데, 그가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가후가 본대를 이끌고 갔다면,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수순이었겠지요.”
“그렇기야 하지만··· 뭐,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부인, 나는 군을 준비하겠소.”
고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곽연이 일어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부공.”
고간은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웃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스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 안전히 다녀오겠소. 내 어찌 부인과 자식들을 두고 죽음으로 다가가겠소. 무사히 돌아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곽연은 살갑게 말을 전하는 고간을 더욱 꽉 껴안았다.
“허험, 내 이제 가야 하니, 손을 풀어 주시오.”
“알겠습니다.”
고간이 갑주를 챙겨 노복들과 같이 떠나려 하자, 곽연은 자식들을 안아 들고 마중을 나갔다.
이윽고 집을 나선 고간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 사병들을 바라보았다.
“내 출전 후에 그 누구도 감히 저택을 건드리지 못하게 해라.”
“충!”
고간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좌우의 병사들이 마차의 뒤로 달라붙으며 뛰기 시작했다.
“둔영으로 향한다. 속도는 일정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부관들 불러 모아 두어라.”
고간의 지시에 옆에서 따르던 기병은 예를 표하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고간은 다시 마차를 모는 병사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속도를 조금 줄여라. 보병들의 행군이 벌어지니 말이다.”
“충!”
속도가 적당히 줄어들자 순식간에 병사들이 대열을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본 고간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간은 둔영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쓱 훑어보았다. 고간이 지나갈 때마다 병사들은 창을 바짝 세우면서 고간을 맞이하였다.
“부관들은 모두 모여 있는가?”
“예. 모두 모였습니다.”
고간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부관들이 일어나 정중하게 예를 표였다. 고간이 손을 한 번 내젓자 부관들은 자리에 앉았고, 고간은 상석에 앉았다.
“업성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평양을을 얻어 낼 것이다.”
고간의 선언에 부관들이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전에 가후에게 크게 데인 이들은 더더욱 웅성거리면서 두려움을 나타냈다.
“가후와 마가의 인물들이 있다면 아군의 능력만으로는 힘이 들 것입니다.”
고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용맹한 수하들이 한 번의 패퇴로 겁쟁이가 되다니, 새삼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가후의 본대는 업성으로 갔다. 우리가 평양을 차지하면 가후의 본대는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