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64
가후가 업성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은 병력이 업현 일대에 도착하고 나서야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업성이 혼란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업성을 지키는 심영은 심배를 배신하고 원담을 지지한 인물로, 전풍은 심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를 도위로 삼아 업성의 치안과 군을 담당하도록 만들었다.
기주의 심가가 전풍의 손에 의해 구원받자 업의 호족들은 더더욱 단결하였다. 그랬기에 업성을 포위한 병력을 보고도 딱히 걱정이 없었다.
“바라보기만 하면 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가?”
가후의 말에 양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업성을 어떻게 넘으려 하십니까, 스승님? 저 거성을 넘을 방법을 이 제자는 도저히 잘 모르겠습니다.”
가후는 수염을 쓸어 넘기며 태연하게 말했다.
“업성을 얻을 생각이 없으니, 구태여 넘을 필요도 없지.”
“네? 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업성을 차지하겠습니까?”
가후는 양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차지한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는데, 업성을 얻어 무엇 하겠느냐.”
“그럼 저 성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스승님?”
가후는 가만히 흙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주먹을 쥐어 보이자, 곧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이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억지로 주워 담을 생각 따위는 없네.”
양수는 가후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업성을 그냥 부숴 버리고 도망가자는 말인가?’
“흠, 자네도 수춘후의 곁에 오래 있다 보니 모사로서 기본을 잃어버렸나 보군. 표정을 왜 못 숨기는가?”
양수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가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순욱이 보내 준 서신을 꺼내며 말했다.
“사공께서 업성을 무너트릴 계책을 내주었으니 전혀 걱정할 게 없다네.”
가후는 순욱에게 받은 서신을 양수에게 건넸다. 양수는 그것을 보더니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장수의 물길을 틀어서 업성을 수몰시키자는 말입니까?”
가후는 수염을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가장 괜찮은 방법이지.”
“그런다고 하더라도 업성의 이들이 항복하겠습니까? 제가 보았을 때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만.”
“내 말하지 않았는가. 업을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적의 근거지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일이고 이제 여름이니 물길을 터 버리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지.”
양수는 순간 가후의 얼굴에 악마가 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물길을 바꿔 버린다면, 기주의 한 해 농사는 완전히 망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원가가 가진 물량의 대다수는 기주에서 나오기 때문에 농사가 망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회복하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이지. 어쩌면 업성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양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가후도 그냥 웃음 짓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저들이 절대 업성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후, 가후는 곧바로 부관을 불러 업성과 교섭을 해 보기 위해 전령을 보내었다.
***
심영은 가후가 보낸 종이 서신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내용이 거의 협박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왕마에게 보낸 서신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설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저 협박에 불과했다.
“뭐?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피해를 주겠다고? 이 업의 거성이 쉽게 넘을 수 있는 목책인 줄 아는 것인가?”
심영의 분통 섞인 말에 마연과 장의가 나서서 말했다.
“도위, 그러나 저들은 그 험관(險關, 험난한 관)인 호관도 넘은 이들입니다. 어찌 쉬이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왕마, 그 무능한 인간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네. 우리야 든든한 성벽에 보호받고 물자도 충분하네. 아마 저들이 먼저 지치거나 고 병주(고간)의 공격에 회군이 불가피할 것이네.”
심영의 나름 합리적인 추론에 좌중이 순간 조용해졌다가 이내 서로 맞는 소리라며 말들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업성에는 수많은 인재가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말 잘 듣는 멍청이들로 가득 찬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장군의 잘못된 판단도 있었지만, 원가의 분열이 그 많은 인재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구나.’
심영은 그대로 서신을 화로에 던져 넣었다. 순식간에 타 버린 서신을 일별한 심영은 전령을 보며 말했다.
“내 너를 살려 두어야 하겠느냐?”
심영의 말에 속관이 비단에 들어 있는 검을 내밀었다. 심영은 검을 뽑아 들고 전령에게 겨누었다. 욕이나 들어 있는 쓸모없는 내용을 전한 것도 죄이니 말이다.
전령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집금오께서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시고 말씀을 전하라 명했습니다.”
“···말해 봐라.”
“혹여나 전령을 죽이려 하거든, 예를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심영은 이내 칼을 옆에 서 있는 속관에게 다시 건넸고, 그제야 안심한 전령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돌아가 전하여라. 업성은 어떠한 일이 있다 하여도 절대 항복할 일이 없을 것이니, 헛물은 켜지 말라고.”
“예.”
심영은 전령을 위아래로 훑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저런 인물을 겨우 전령으로 사용하다니, 가후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심영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 전투는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승부였다. 버티고 기다리기만 하여도 충분히 승리를 얻어 내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이라 판단하였다.
“원가를 위해 종형을 버리고 나니, 내가 드디어 비상할 날이 온 것이다.”
심영은 마치 꿈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간을 꺾은 가후를 포박하고, 밖에 보이는 수만의 병력을 모조리 물리치는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가후는 전령으로 갔다 온 부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사히 돌아왔군?”
“집금오께서 하신 말을 전했더니, 칼을 거두었습니다.”
가후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사신은 대접해서 보낸다는 전쟁의 예를 언급했을 뿐이다.
“적어도 체면은 아는 인물인가 보군. 그래, 그럼 성내의 분위는 어떻던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심영을 중심으로 잘 뭉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성내의 백성들도 큰 동요는 없었습니다.”
“그런가? 백도(伯道, 학소의 자), 자네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사공의 계책대로라면 어차피 성안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을 속일 물건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길을 바꾸는 데는 분명 시간이 걸릴 테니 말입니다.”
“그렇겠군.”
가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물길을 바꾸어 업성을 공격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가?”
“소신에게 3개월만 주신다면 능히 물길을 바꾸어 업성의 모든 곳을 물에 잠기도록 하겠습니다.”
가후는 자신만만한 학소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업성에서 눈치를 채게 되면 자네를 노릴 것이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고.”
“하면 영명을 제게 붙여 주십쇼.”
가후는 젊은 부관의 패기에 웃음을 지었다. 학소는 그런데도 병사나 인부 등 자신의 요구 사항을 계속 이어 나갔다.
가후는 거부하지 않고 학소의 말을 들어주었다. 학소는 야음을 틈타 장하로 향하였고, 가후는 남아 적을 현혹할 물건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
심영은 멀리 보이는 토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놈들이 관도의 전을 재현하려는 것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는 거야?”
심영은 짜증을 내며 성과 높이가 같아지려는 토산들을 바라보며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정란(井欄)을 세워 화살 비를 퍼붓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어디에서······.”
“성내의 비어 있는 건물을 부숴 가져오면 될 것 아닌가. 어차피 토산에서 불화살을 쏜다면 화마를 막기도 어려울 것이니, 차라리 불이 번질 만한 곳을 먼저 없애고 적이 토산 쌓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심영의 지시대로 업성에서는 정란을 세워 가후군이 토산을 쌓는 것을 막아 내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즈음, 장수의 공사가 거의 완료되며 심영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
“뭐? 적이 수공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어째서?”
심영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업성이 물에 잠긴다면, 이제 지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심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안에 있는 것들을 가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수몰된 업을 빼앗아 향후 원담에게서 업성을 지킬 방법은 거의 전무했다. 즉, 업을 얻으려 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얻을 수 없으니 최후의 수간을 쓰는구나. 기병들만 이끌고 그들을 막도록 해라.”
가후가 가진 병력으로는 업성을 모두 포위할 수는 없기에 일부 지역은 거의 뚫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업의 기병들은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지켜본 가후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들킨 것 같군. 뭐, 이 정도면 충분히 시선을 끌어 준 셈이지. 이제 내 손에서 벗어난 일이니, 나머지는 학소가 알아서 할 것이다.”
***
기마병들은 학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놀란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이미 공사들이 거의 끝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네 이놈! 이런다 하여도 업성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니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라! 내 너희를 해하지 않겠다!”
학소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당신들만 왔소이까?”
고작 수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기마병들은 학소가 보기에도 하찮게 보였다. 방덕의 눈에도 그저 죽여 달라고 온 이들에 불과해 보였다.
“그렇다! 그러하니 두려워 말고 항복하도록 하여라!”
학소는 그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방덕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 저들을 직접 상대하고자 하는데, 괜찮겠소?”
“그래도 숫자가 좀 되지 않습니까? 대충 겁만 주어도 돌아갈 텐데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저 정도쯤이야 양주에서는 식후 운동만 못 하오.”
“알겠습니다. 부디 저런 모자란 이들에게 다치는 일 없이 돌아오십시오.”
방덕이 부곡들을 이끌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자, 기병들은 깔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사이, 방덕은 가장 앞에 서서 대부를 들고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마씨 집안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명성을 날려 볼 것이다!’
방덕은 그간 마초에게 공을 밀어 주며 언제나 판만 깔아 왔다. 그러다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판 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난 몰이꾼이 아니다.’
각오를 다진 방덕은 곧바로 대부를 들어 올리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선두 영명!”
그를 따라 부곡들이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곧 삼각뿔의 형태가 갖춰지며 사나운 진형이 짜여졌다.
그들의 먹이는 눈앞에서 여전히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멍청한 무리들이었다.